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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형석 2005. 7. 4. 23:39
이튿날 손과장은 준호를 만나고 온 후에 박실장을 만나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페인트를 칠한 자신의 사무실 문과는 달리 실장실 문은 짙은 밤색의 색을 띠고 있었으며
정적 속에 문 위에는 기획 실장실을 나타내는 글이 씌여 있었다.

손과장은 그렇게 자주 출입을 하면서도 지위를 느끼지 못했는데 오늘은 웬지 문 앞에서
실장이라는 지위를 한참 보게 된 것은 어제 워더맨을 만나고 왔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마 박실장도 자신의 직책을 계속 유지하고 싶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차장직을 앉아보고
싶은 욕망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인사이동을 대비하기 위해서 자신이 워더맨과 접촉을 허락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과장은 나무결 무늬가 있는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비서는 손과장이 들어오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머,과장님, 오늘은 웬지 얼굴이 무척 밝아 보이는데 어찌된 일이지요?"
"그래? 뭐 늘 그렇지."
"아닌데요? 저는 척 보면 알아요."
"어쭈구리? 무슨 점장이 같구만 그래."
"어머, 과장님도 그런 말을 쓰세요? "

"왜? 나는 젊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쓰면 어디가 덧나나?"
"아니 그런 뜻이 아니구요. 보수적인 과장님한테 첨 그런 말을 들으니 좀 우스워요. 그런데 어쭈구리라는 말이 무슨 뜻이지요?"
여비서는 킥킥대며 웃고 나서 궁금한 듯이 물었다.

"아들녀석이 쓰는 말을 한 번 써봤어. 그러니까 어쭈구리는 어원이 한자의 고사성어(魚走九里)에서 기인한다고 하는데, 연못 속의 잉어가 메기를피해 엉겹결에 연못 밖으로 나와 지느러미를 발삼아 9리나 도망치다 지쳐지나가던 농부에게 잡혀 매운탕거리가 됐다는 이야기인데, 물론 주해를 붙인다면 '능력도 안되는 이가 센 척하거나 능력 밖의 일을 할 때 주위사람들이 쓰는 말' 이라는 뜻이지.

젊은이들이 쓰는 용어를 쓰고 나니 어쭈구리 호프집에서 아들녀석하고 호프 한 잔을 하고 싶은걸. 그러면 나도 한결 젊어지지 않겠어?."
"아드님하고 대화를 자주 하시는가 보죠?"
"음 그런 편이지. 그래야 공감대가 형성되야지만 가까워질 수 있고 뭐든지 터놓고 말을 하지 그렇게 해야 여자 관계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않겠어?"
"맞아요. 아무리 부자지간이라도 대화가 없으면 그냥 부자로 있지만 대화를 통해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아버지가 되기고 하지요. 외국의 아버지들은 그런 면에서 자식들과 수평의
관계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참 들어가 보세요, 실장님이 기다리시겠어요."
"그래."
문을 열고 손과장이 들어가자 박실장은 책상위에서 결재서류를 보고 있다가 말한다.
"앉게."
말하고는 자신도 의자에서 일어나 쇼파에 마주 앉는다. 비서는 곧 차를 찻잔에 받쳐들고
들어와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나간다.
비서가 나가자 손과장이 먼저 말했다.
"어제 워더맨을 만났습니다."
"그래? 어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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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실장이 바로 물었다.
"인사동 미술관에 있을 때 제가 등산복 차림으로 들어가 말했습니다. 여자 문제에 끼어들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그만 손을 빼야된다고 말했지요."
"그러니까 뭐라나?"
박실장은 궁금해서 손과장을 보며 물었다.

"제가 누구냐고 묻길래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놀래서 저를 보려고 하길래 그림을 주시하면서 가급적 말을 하지 말고 듣기만 해달라고 했지요.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왜 안기부에서 자신의 일에 관여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묻기에 더 이상 말 할 수가 없고
서초관에서 도청과 미행을 하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러니까."

"놀라면서 잠시 그림을 보더니 자신이 도와주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면서 세금을 두둘겨 달라는 부탁을 하기에 우리가 하는 업무가 아니지만 알아는 보겠다고 했습니다."
"세금을 때리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박실장은 궁금해서 물었다.
"옛날 임금같은 호화 사치 묘가 경기도 이천에 있다고 하는데 글쎄요?"
손과장은 그것이 가능한지 몰라 말끝을 흐린다.

박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 번 가보고 오게 . 사진도 찍어오고 말이야."
"네, 밤에 갔다오겠습니다."
"워더맨은 그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은가?"
"그여자라면 사장 부인 말씀인가요?"
"음."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자신은 한 여자의 슬픔을 알고 또 학대를 받는 것을 모른체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박실장은 알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간다.
두 사람은 차를 다 마실 때까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앉자 실내에는 차 마시는 소리만 들린다.
준호는 미술관에서 만난 안전기획부 손과장 이라는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도데체 자신이 어디에 있고, 또 어떤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왜? 일반 기업의 일까지 국가의 정보기관에서 관여를 하고,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면서까지
자신을 도와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떻해 해서 한성그룹의 일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으며 그렇다면 국가에서 개입을
하는데 한성부회장은 왜 여지껏 자신에게 어떤 처우개선을 해주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손과장이라는 사람이 정말 국가 안전기획부의 과장인지 어떻게 알 수가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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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손과장이라는 사람이 안기부의 과장을 사칭했다면 그는 누구인가? 어떤 이유에서
사칭을 하는가? 서초관 현사장의 끄나풀인가? 현사장이 왜 사람을 시켜 자신에게 그런식으로 접근을 하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말 안기부 과장일까? 혹시 한성그룹 부회장이 보낸 것은 아닐까? 분명히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 만약 그 자식이 사람을 보냈다면 왜 안기부 과장이라고 해야했고, 직원을 시켜 부르면
되는데... 아무리 추리를 하여도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어쨋든 선경이 일을 매듭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해? 어차피 어디로 가든 미행을 피할 수 없으니 굳이 숨기려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밖으로 나가 전화를 한다.
신호가 가고 곧 선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목소리를 듣자, 준호는 한 여자의 슬픔이 가슴에 전해져 왔다

"응, 선경아 나야."
"오빠, 지금 어디야?"
"집이야, 이따가 시내로 나올수 있겠어?"
"그럼, 몇시에?"
"3시경에 신촌으로 갈게."
"알았어, 오빠."

현철은 점심 때가 되면 어머니 집에 설치한 전화 감청을 매일 확인하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서초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어머니 집 2층으로 올라가 녹음된 버튼을
누르자 선경이가 통화한 내용이 생생하게 들린다.
"명숙아. 너의 신랑 출장같니?"

"응, 며칠 있으면 와."
멀리 부산에서 말하는 소리가 선을 타고 들려온다.
"꼬맹이는 유치원에 잘 다니니?"
"말도 마라, 애들하고 얼마나 재미있게 노는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까 좋더라.
집에 데려다 줄 시간을 맞추어 볼 일을 볼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아직도 너의 신랑하고는
담을 쌓고 있니?"

"신랑은 뭐가 말라 죽은 신랑이니?"
선경이 빽 지르는 소리가 들리자 현철의 얼굴은 이그러진다.
"미안해, 습관이 돼서. 그런데 그 자식은 이혼을 안해주겠데?"
현철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욕을 듣자 식식거리며 욕을 했다.

"아니 이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더 못듣겠는데...개가 뜯어 먹고 버린 것을 쥐가 또 뜯어 먹을 것들"
"얘 말도 마라 그 돼지 같은 자식이 글쎄 사람을 시켜서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게 하는 거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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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뒤를 잡히지 않으려고 택시를 타고 또 전철을 타고 그리고 버스를 타고는 한
두 정거장 가다가 운전수 아저씨에게 돈을 주고 급히 세워달라고 해서 따돌리는데
그런 인간을 잡아가지도 않는 귀신은 뭐하는지 모르겠어."

현철의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 자꾸 변하고 있다. 화를 이기지 못해 이를 뽀드득 갈고
있다.
"어머, 그 인간이 그런 짓을 한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그런데 어떻게 알았니?"

"응, 우리가 하는 음식점에 지배인으로 온 분이 있는데 그분의 말에 의하면 위자료를 주지 않고 시간을 끌어 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게 하여 간통죄를 씌울려고 한다는 거야.
그렇게 만들어서 쫒아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거야."
"어머머, 뭐 그런 거머리 같은 자식이 다있니?"
명숙의 화가 난 목소리는 녹음기로 그대로 전해졌다.

어쩔줄을 모르고 식식대고 있는 현철. 애매한 담배만 빡빡 빨아대고 재떨이에 장초를 두 손가락으로 꽉 눌러 끄고 있다.
입속에 있는 담배연기를 녹음기를 향해 뿜어대는 현철.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노파가 될 때까지 나를 안 풀어 줄거야. 그 더러운 인간은 그러고도 충분히 남아."

"그럼 어떻하니?"
명숙이가 걱정하면서 말했다.
"그 분이 무슨 대책이 있나봐."
"뭔데?"
"몰라. 하지만 분명히 그 분은 나를 도와준다고 했어."
"몇살인데?"
"나보다 5살이 많아. 너무 멋있는거 있지?"
"너 좋아하니?"
"응, 이혼하면 그 분과 함께 살거야."
"그 사람도 너 좋아해?"
명숙이가 궁금한 듯 물었다.
"음, 시인도 부정도 하지 않는데 지금 내가 남의 집 부인이라서 머뭇거리는 것 같은데 이혼 을 하고 나면 그 분도 나를 좋아할 거야."
"잘 됐으면 좋겠다."
"이따 만나기로 했어."
"그러니? 조심해야겠다. 그 똥같은 자식이 뒤를 밟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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