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나 운전을 할려고 하는데 내 옆에 있어줘요. 운전을 이제 배우기 시작하는데 옆에 아무도 없으면 떨려서 그래요." "사장님이 계시잖아요?" 준호는 부담이 되어서 말했다. "그 사람 내 앞에서 언급하지 말아요. 우리는 말이 부부이지 이미 남남이나 다를바 없어요. 가요." 선경은 말하고 일어서 준호가 일어나기를 재촉했다. 준호는 일어나 진경을 따라갔다. 준호는 조수석에 앉아서 진경이 운전하는 것을 보면서 말했다. "운전 잘 하는데요?" "그래도 아직 떨려요. 시내에 나오면 당황하게 돼요. 오빠 우리 차 한 잔 마시고 가요." "그러죠." "아이, 오빠 아무도 없을 때는 말을 놓아요. 네?" "알았어요." 준호는 마지못해 승낙을 했다. 두 사람은 차를 파킹해놓고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커피숍에 앉자 진경은 말을 꺼냈다. "오빠, 나는 속아서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성격이 맞지않아 지금 별거를 하고 있는 것과 같아요." 준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별거는 뭐..." 말끝을 흐리자 진경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니, 진짜예요. 둘째 아이 경아를 낳고는 한 번도 같이 잠을 안잤어요. 이혼을 하자고 해도 들은 척도 않고 어머니 집에서 아주 살다시피하고 들어오지도 않아요. 그렇게 지내온지가 벌써 일년이 됐어요. 오빠, 나는 이곳을 떠나고 싶어요. 어떻게 돈 좀 받아줘요?" "내가 그럴 권리가 있어야지. 그리고 아이는 어떻할려고 그래요?" "큰 아이는 다 컸으니 고모도 있고, 할머니도 있으니 잘 클거에요. 유치원에 가면 친구랑 사귀면 차츰 엄마 생각도 덜 날 것이고 학교에서도 적응이 잘 될거에요." "내가 뭔데 돈을 받아줄 수가 있어야지. 내가 나설 입장이 못돼요." 준호는 진경이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진경은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오빠도 참." 그리고는 눈물을 흘렸다. "지금 울고 있어요?" 준호는 진경의 얼굴을 보면서 물었다." "아니에요." 진경은 손등으로 눈을 닦는다. 준호는 손수건을 꺼내 진경에게 건네주었다. "이혼은 그렇게 쉽게 되는게 아니에요. 그러니 시간을 갖고 인내하면서 설득을 시켜봐요." "알았어. 오빠" 화장을 한 진경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려서 흐른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자, 화장을 해서 눈물자국을 감춰요. 알았지요?" "알았어요." 181 태호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사무실에 출근했다. 설희는 사랑을 나눈 후로부터는 모시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연인을 대하는 다정한 모습으로 태호와 이야기를 하였다. 태호는 흥신소로부터 준호가 서류를 가지고 우체국에 갔다는 정보를 전해듣고는 우편물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나 한동안 기다려도 오지않자 이상하게 여기도 있었고 그 후 준호가 서초관에 취직을 했다는 정보도 흥신소를 통해서 듣고 있었고, 매일 하루 일과를 전해 듣고 있었다. 사무실에 앉아서 신문을 보아도 집중이 안되자 설희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사무실에서 같이 앉아 차의 삼매경에 빠지기라도 한듯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태호는 생각에 잠겨있고 설희는 태호를 바라보며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기다리고 있다.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태호는 말했다. "내가 중국에서 차에 매료가 된 이유가 있는데 설희는 궁금하지 않아?" "궁금해요." "차에는 다섯가지 아름다움이 있는데 차향과 차색, 차미 외에 효와 기를 포함하고 있다고 하고, 효는 차가 인체에 미치는 효능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것이고, 기는 차를 우려내는 다기로부터 찾아낼 수 있는 아름다움을 말한다는 거지. 추사 김정희가 '고요히 앉은 자리에 차가 익어가며 향내를 뿜기 시작하고' 라고 묘사했던 대로 차색을 보거나 혀끝이 맛을 느끼기 전에 멀리서도 알아챌수 있으며 눈을 감고 있을 때, 더욱 잘 드러나는 아름다움이라는 거지. 차인들이 오래 전부터 '향내를 맡다.'라고 할 때 문향이란 말을 애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차향이란, 고요한 가운데 귀로 들어야만 알 수 있는 정신의 향기를 강조한 것은 아닐까하는 말을 쓰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거야." "어머, 우리가 흔히 마시는 차에 그런 지식이 있는 줄 몰랐어요." 설희는 탄성을 발하며 말했다. "또한 차의 미를 논할 때 다기가 주는 아름다움은 다관과 숙우, 찻잔과 차호, 다시, 퇴수기등이 차상 위에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빼어난 아름다움이고 향, 미, 색, 효의 네 가지 아름다움이 배어나온다고 하지." "그래서 차를 마실 때는 항상 명상에 잠겨 계셨어요?" "그런 이유도 있고 또 이것 저것 경영을 해야되는 까닭에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함이야." "허준의 동의보감에서 작설차는 눈을 밝게하고, 변을 이롭게 하며 갈증을 덜어주고, 잠을 적게 하며 온 몸의 독을 풀어준다. 라고 하는데 작설차를 많이 드셔요." 태호는 자신을 바라보는 설희의 눈은 사랑에 갓 눈을 뜬 소녀처럼 검은 눈동자에는 빛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설희는 선을 본 적이 있어?" "선이요? 아직 한 번도."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 돼." 182 "어머, 왜요?" "일백 번 선을 본 여자의 스토리가 있는데 말이야 들어 볼테야?" "어머, 말해 주세요." 설화는 미소를 띠며 재촉했다. "조 선녀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결혼 상담소에서 소개해준 남자를 만나는 날이기에 미용실에 다녀와서 외출 준비를 서둘렀지. 화장을 하면서 달력을 보니, 오늘 날짜에 동그라미를 쳐놓 고 그 밑에 100이란 숫자가 적혀 있는 거야. '오늘이 바로 일백 번째 선을 보는 날이구나.' 1992년에 선을 보았으니 벌써 8년의 세월이 흘러 100명의 남자를 만나보는 동안 나이를 먹어 33세가 되어 버렸지. 선을 보러 나가면 딱지를 맞았고, 다음에 만나자는 남자가 아무도 없었던 거지. 조선녀처럼 뚱뚱한 여자를 두 번 다시 만나려 하지 않았던 거야. 그래도 그녀는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남자 백명 가운데 한 명은 뚱뚱한 여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라는 신념을 갖고 99명의 남자에게 퇴짜를 맞았기에 일백 번째 남자에게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었고, 그 남자를 만났을 때 약간 놀랐지. 키가 몹시 작았기 때문이었는데 상대방은 더 놀라고 있었던 거야." "어머, 왜요?" "조선녀가 몹시 뚱뚱했기 때문이지. 남자는 선녀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담배를 꺼내 물어 우거지 상이 되어 말없이 빡빡 피워대며 연기를 조선녀에게 날리는 거야. 그러자 선녀가 그 남자에게 물었어. "저, 군대는 다녀오셨나요?" 하고 묻자 그 남자는 불쾌한 듯이 선녀를 노려 보았어." "왜요?" "그러자, 그 남자는 '그걸 질문이라고 하세요? 키가 기준치에 미달되었으니 군대를 못갔는데 군대를 갔다 왔냐고 물으니까 그렇지요. 제 키가 153cm이하라 병역이 면제 되었어요. 됐나요?' 그 남자는 자신의 약점을 거론하는줄 알고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 그러나 선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직업군인 이었기에 대화를 이끌어 가려는 뜻이었는데 그 남자는 더 이상 선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아서 5분도 되지 않아 커피숍을 나가 버렸지 뭐야." "그 남자는 성질이 무척 급해요." "선녀는 멍하니 빈자리를 바라보았고, 일백 번째 남자도 퇴짜를 놓았으니 이제는 결혼에 대한 꿈은 접어 두어야 할 것 같았고, 지난 8년 동안 선을 본 일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 그 후에도 선녀는 결혼 정보 회사 , 미팅 정보 잡지에 자신의 신상정보를 보내기도 하고 또 미팅 이벤트 회사에 열심히 드나 들었지. 미팅 정보 잡지에 자신의 생년월일, 주소, 직업, 취미, 싫은 사람, 이상형등이 실리는데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어 연락처를 알려주었는데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하는 남자는 하나도 없는거야. 그래도 선녀는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짝을 찾아 헤메었고, 더욱이 1999년에는 길하다는 숫자 9 가 연속으로 겹친 해인데다, 새 천년을 앞두고 있었기도 했지." 183 "9 라는 숫자는 길하다는 것을 가리키는 숫자였네요." "그렇지, 새 천년을 외롭게 맞이할 생각을 하니 끔찍했고, 그래서 다른 해보다 선도 많아 보고 각종 컴퓨터 통신 대화방을 기웃거렸고 채팅을 통하여 상대와 만나기도 했는데 남자들은 그녀의 모습을 보자 기겁을 하고 달아났어." "단지 뚱뚱해서요?" "그렇지. 남자들은 뚱뚱한 것을 싫어하거든. 선녀는 일백 번째 남자와 선을 본 뒤에는 묘한 버릇이 생겼는데, 무슨 발작이라도 일어났는 것처럼 게걸스럽게 음식을 마구 먹는 버릇이었는데, 이것은 정신 의학적으로 '신경성 마구 먹기 병'이라 하고 맞선 실패에 따른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푼다고 할 수 있지.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어떤 남자가 만나자고 전화가 왔어. 선녀는 반가워서 누구시냐고 묻자 그 남자가 이름을 밝혔는데 그 이름이 생소하기만 했고, 하긴 그 동안 100명의 남자와 선을 봤으니 알 수가 없는 것이 당연했지. 선녀는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약속 장소로 나갔는데 그 남자를 보자 생각이 났지 뭐야. 첫 번째 선을 보았던 남자였는데 30대 중반인 자신의 나이 보다 더 겉늙어 있었고 놀라운 것은 머리숱이 몽땅 빠져 대머리가 되었다는 사실이지." "대머리가 되었는데 알아 볼 수가 있었네요." "아무래도 첫 번째 선을 본 남자이니 다른 남자보다 기억을 할 수가 있었겠지. 그 남자는 첫 번째 선을 볼 때와는 달리 무척 친절한 태도를 보이며 대뜸 이렇게 말하는 거야. '선녀씨, 고맙습니다. 아직까지 시집을 가 주지 않으셔서... 저도 사실 상대를 고르느라 선을 많이 보았는데 20대 후반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더니 몇 년 전에는 진짜 대머리가 되었어요. 그러자 선을 보는 여자들이 족족 퇴자를 놓는 거예요. 어떤 여자는 자기를 뭘로 보고 대머리를 소개해 주었느냐고 내 앞에서 결혼 정보 회사에 항의 전화를 하더라구요. 기가 막히지 않겠어요? 그래서 한 동안 선을 보는 것을 포기하고 지냈지요. 하지만 결혼을 해야겠기에 내가 옛날에 선을 보았던 여자들에게 연락을 해 보았어요. 그런데 몇 년 사이에 저와 선을 보았던 여자들이 거의 다 시집을 가 버렸더라구요. 마지막으로 선녀씨에게 연락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선녀씨는 아직 미혼이시군요. 선녀씨, 고맙습니다.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거야. 우습지?" "정말 우스워요." 설희는 소리내어 웃었다. "요즈음에는 선녀처럼 뚱뚱하지 않고 팔방미인인 노처녀가 많지. 고르고 또 고르고 그러다가 혼기를 놓친 여자가 생각보다 의외로 많아. 하나의 우스게 소리라기 보다는 한 번쯤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 "저는 행운이네요." "나도 행운이야. 설희같이 아름답고 미인인 여자가 나의 곁에 언제까지 있어주니까." 태호는 말하고 설희 눈을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설희는 태호에게 기대었다. 184 "아, 참 공사를 해야겠어." "녜, 공사요?" 설희는 태호에게 기댄 채 올려다 보며 물었다. "응, 옆에다 좀 쉴만한 공간을 꾸며야 겠어. 누워서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말이야." 태호는 말하면서 설희의 눈을 지긋이 응시하였다. "알았어요." 태호는 이렇게 이해하여 주는 설희가 사랑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설희를 안고 가볍게 이마에 키스를 하였다.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안오지?" "누구요?" "오준호라는 사람 말이야." 태호는 혹시 서류를 놓고 갔는지 물어보았다. "글쎄요, 부회장님이 아무 말씀도 없으시니까 그 후로는 한 번도 안오는데요. 어떻하지요?"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태호는 준호가 우체국에다 부쳤다는 서류가 궁금했다. 자신에게 말고 다른 곳에다 부쳤을까? 어디에다 부쳤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이 가질 않았다. 무슨 내용이 실려 있을까?" 생각을 하면 할수록 궁금증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24시간을 감시하고 있는데 그 누구하고 접촉을 했다는 정보는 오지 않았기에 태호는 더욱 이상했다. 그렇다고 불러올 수도 없는 일이고 그냥 두고 보는 수 밖에 달리 뾰족한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시간에 흥신소 직원에게 전화를 하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고 통장에 얼마가 있는지도 알 수가 있었다. 같은 젊은 사람으로서 태호는 준호에게 미안함을 늘 느끼고 있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는 그 프로젝트가 자신의 손을 떠나 화성그룹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자신이 주장을 내세울 계기가 못되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자신의 그룹은 화영그룹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화성그룹으로부터 하청과 기술이전을 받고 있으며 혈연으로 맺어져 있다는 것을 세상이 다 아는 사실 이었기 때문이 었으며 만약 화성그룹이 자신의 그룹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낙후된 그룹으로 몰락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5조 달러 시장을 서류 하나로 해서 나눈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도 누구라도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것이었다. 지금 끓지 못하면 약점을 잡히기에 더욱 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마치 외과의사가 완벽하게 수술을 하듯이 휴우증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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