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호는 비서실로 나가서 온 손님을 정중히 맞았다. "어서 오십시요. 형님." 태호는 허리를 굽히고 왼손을 부회장실로 안내하면서 자리로 안내했다. "오랜만이네." 두사람은 자리에 마주하고 앉았다. 키가 크고 몸이 호리호리하고 머리를 루스를 묻혀 뒤로 넘긴 사람은 필리핀 대사관에 근무하는 공사였다. 태호에게는 대학 동창중에 가장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형이었다. 필리핀에 가끔 친구와 함께 가족을 동반하고 피크닉을 가기도 했다. 그 때마다 지금 여기 앉아 있는 형이 마중 나와서 반겨주었던 것이다. 대사 다음으로 대사관 일을 맡고 있는데 외무고시 공부할 때 태호는 가끔 놀러가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하였던 것이었다. 설희는 중국에서 가져온 향기 넘치는 차를 가져와 테이블에 놓고 나갔다. "드십시요." 태호는 차를 권했다. 파란 양복에 희미한 줄무늬 양복을 입고 있는 공사는 차잣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무슨 차지? 향기가 아주 좋은데..." "네, 아마 그럴 겁니다. 중국에서도 상류층 만이 마실 수 있는 차이니까요.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 차라고 하는데 이름은 잊어버렸습니다. 선물을 받은 거죠." 태호는 즐거운 듯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아는 선배도 중국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그분은 중국어를 잘 모른단말야." "네, 그렇군요." "중국어 아는 외교관이 드물어. 수도 북경 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들도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니까. 안타까운 일이지." "우리가 중국 개방을 대비해서 후학을 장려했어야 하는데요." "글쎄 말이야. 누가 중국이 이렇게 우리에게까지 빨리 개방할 줄 알았어야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얼마전 미스코리아 출신이 필리핀 재벌 회장에게 시집을 갔다고 하던데요?" "응, 필리핀 매스콤들도 기사화하고 있지." "그 그룹은 어떤 그룹이지요?" "주로 부동산을 다루고 있는데 필리핀에서 상위 7위에 들지. 재무구조가 탄탄하다고 하더군. 매스콤에 의하면 말이지." "잘 살아야 할텐데요." "잘 살겠지. 아쉬움 없이 말이지." 공사는 껄껄 웃으며 차를 훅! 하고 소리내며 들이마셨다. "언제 들어가세요?" "아, 오늘 들어가야지. 오랜만에 사업하는 자네도 볼겸해서..." "네. 잘 오셨습니다." 태호는 말하고 비서실로 나갔다. 잠시후 자리로 돌아와 다시 앉았다. 자리로 돌아와 차를 마시고 태호는 테이블 위에 있는 서류를 보자 생각난 듯이 물었다. "필리핀은 열대지방이니 물이 많겠지요?" "그렇지, 그런데 왜?" "네 그 물로 맥주를 만들면 어떨까 해서요." "맥주라면 우리나라 맥주도 있지 않나?" "그렇긴 하지만 새로운 프로젝트 서류가 올라와서요." "흠, 그것 좋은 일이군." 공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새로운 맥주를 만들려면 보통 맥주보다 3배 이상 물이 소비가 됩니다." "그래서 물어 본 것이군. 필리핀이야 홍수피해가 심각한 지경이니 물걱정은 일년내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네." "네, 조만간 찾아 뵙겠습니다." 태호는 인터폰을 누르고 말했다. "가져와." 잠시후 설희는 봉투를 가져와 태호에게 두손으로 건넸다. 태호는 받아서 설희가 나간 후 공사에게 건넸다. "형님 쓰십시요. 작은 월급가지고 사교생활을 하는데 필요하실 겁니다." "아니, 괜찮네. 지난번에도 신세를 졌는데..." "괜찮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쓰십시요. 달러니까 환전없이 그냥 가지고 출국하시면 표가 나지 않습니다." "고맙네. 잊지 않겠네." 공사는 봉투를 양복주머니에 넣고 일어섰다. 태호는 공사를 모시고 대기해 놓은 차로 가서 함께 승차했다. 공항까지 마중하려고 했으니 같이 출국해야 할 직원이 있어 광화문 종합청사까지만 동행하고 자신은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42 태호는 차 안에서 설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설희의 사랑스런 모습이 떠올랐다. "난데, 바로 퇴근하지." "예, 알겠습니다." 설희는 대답을 하고 평소와 같이 퇴근 준비를 했다. 부회장실로 들어가 테이블을 정리하고 실내를 한바퀴 둘러보고 나왔다. 자신의 자리에 와서 음악을 끄고 보던 뉴스위크지를 덮고 핸드백을 열어 거울을 꺼내 들여다 보았다. 다시 백 속에 넣고 곰곰히 생각했다. - 누굴까? 달러를 드린 분은? - 태호는 아파트에 도착해서 차임벨을 눌렀다. 곧 인터폰에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야?" "응" 태호가 들어서자 아내는 태호의 양복을 받으며 말했다. "자기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좀 생각할 것이 있어서.... 애들은?" "지금 막 나갔어. 옆집 아이와 함께." 태호는 옷을 벗으면서 샤워실로 갔다. 태호는 평소와는 달리 혼자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아내가 물었다. "등 밀어 줘?" "아니, 금방 씻고 나올거야." "저녁 준비할께요." 아내는 냉장고로 갔다. 태호는 샤워를 하고는 김이나는 목욕탕에 몸을 담그고 생각에 잠겼다. 언제나 하루일과를 끝내고 하는 습관이지만 오늘은 사무실에서 본 새로운 모델을 떠올리고는 그 모델이 무었일까? 하는 궁금증이 따라 다녔다. 태호가 욕실에서 나오지 않자 아내는 들어와서 태호에게 말했다. 그러자 태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당신 아리아스, 아그리빠, 비너스, 줄리앙이 뭔지 알아?" 태호는 허준호가 놓고 간 서류중에 새 모델 이름을 기억하고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미대를 졸업했다. 그래서 태호는 혹시 아내는 알고 있지 않을까 하고 일찍 들어왔던 것이다. "그건 미대 입시생들이 입시과목으로 선택된 교재인데, 그건 왜요?" 아내는 궁금해서 듯이 물었다. "응, 회사 영업부에 근무하는 사람이 새로운 모델은 그것으로 해야된다는 거야." "당신이 새로 설립한 회사?" "응, 그게 뭐지?" 태호는 궁금해서 빨리 물었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초상 조각품이야. 전 세계인들이 다 알고있고 그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 장식품으로 하나씩은 갖다 놓는데 미대생들은 그것을 보고 기초 뎃싱 연습을 하는데 소묘라고 불러." "뭐야!" 태호는 자신이 욕실 탕에 있다는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아이, 망측해라." 아내는 고개를 돌리고 소리를 질렀다. 43 태호는 자신이 알몸인 것을 알고는 다시 첨벙!하고 물속에 자신의 몸을 탕 속에 던졌다. "아니, 당신 왜 그래요?" 아내는 당황해서 붉어졌던 얼굴을 다시 돌리고 태호를 보며 물었다. "그러면 아리아스, 아그리빠, 비너스, 줄리앙이 서기 1,600 전에 나왔던 골동품이란 말이지? 그럼 그것을 어디 가야 볼 수가 있지?" 태호는 다급하게 물었다. "화랑에 가면 볼 수 있어." "그럼 당신 지금 가서 사와." "지금 몇시인데 벌써 문을 닫았을거야. 여성 속옷파는 회사가 비너스를 상표로 하고 있거든. 닦고 나와요. 보여 줄게." "알았어.그럼 내일 나하고 같이 화랑에 가보자구." 태호는 무언가 영감이 스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상하게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태호는 서둘러 목욕을 마치고 부엌으로 나와 식사를 하는 동안 아내는 비너스 상표를 가져와서 보여 주었다. 태호는 커피를 마시면서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럼 이것을 모델로 하면 다른 기업에서 모방을 할 수 없겠지?" 태호는 흥분하여 다급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런데 지금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 그림을 모방해서 판매하고 있는데 그건 어떻게 되는거지?" 아내는 궁금해서 물었다. "그거야 장식용으로 걸어놓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할까, 훔쳐온 것이 아니고 사온것이니까 법에 접촉되지는 않는거지." "하긴 당사자가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 누가 소송을 할까?" 아내는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고 이탈리아 국가에서 우리에게 국제법을 적용해 소송을 할 수도 없지 않잖아." "아, 피곤하다. 신경을 썼더니 일찍 눕고 싶은데." 태호는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조금 있다가 누워요. 식사하고 나서 바로 눕는다면 배가 나온대." "알았어." 잠시 신문을 뒤적이던 TV를 보던 태호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이튿날 태호는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며 아내와 함께 가까운 화랑에 들렀다. 태호를 태운 그랜저가 화랑 앞에 서자 마자 태호는 문을 자신이 열고 화랑 안으로 들어가자, 주인이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십시요." 뒤따라 들어오는 아내에게 태호는 물었다. "어떤 거야?" 태호는 아내를 보며 물었다. 주인은 태호의 아내를 쳐다봤다. 44 아내는 화랑을 둘러보다가 한쪽에 세워져있는 하얀 석고상을 보고 가리켰다. "저기 있어요." 태호는 다가가 자세히 살폈다. "그것은 아리아스 입니다. 드릴까요?" 주인은 태호 뒤에 서서 물었다. "어떤게 아리아스이고 아그리빠이지? 그리고 비너스와 줄리앙은?" 태호는 자기도 모르게 흥분되어 물었다. 주인은 태호 앞으로 나서서 비닐을 벗기며 손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것이 비너스이고 이게 아리아스와 아그리빠이며 그 옆에 있는 것이 바로 줄리앙 이죠." 태호는 비너스를 테이블위에 올려놓고 넋이 나간 듯이 바라보았다. "당신 왜 그래요?" 아내는 넋이 나간 듯한 태호를 보면서 물었다. "이게 르네상스 시대의 초상 조각 골동품이란 말이지?" 태호는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주인에게 다시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학생들이 대학입시 과목으로 문교부에서 지정한 것입니다. 학생들이 방에서 뎃싱 연습을 하려고 하나씩 사가기도 하죠. 때로는 미대출신 부부들이 응접실에 장식하려고 하나씩 같다놓고 또 아이들에게 뎃싱공부를 시키려고 갖다 놓기도 하지요." "이게 뭘로 만들어졌습니까?" "네, 석고로 만들어서 다듬은 것입니다." "태호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어쩔수 없었다. "당신 이것 다 사가지고 집에 바로 가!" 운전기사가 차에 실으려고 하니 태호는 아내에게 택시를 타고 집에 가라고 말했다. "당신 웬 난리야!" 아내는 영문을 몰라 걱정되어서 여지껏 볼 수 없었던 태호의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아내의 외침을 뒤로하고 태호는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다. 설희는 태호의 늦은 출근을 맞으면서 옷을 받아 옷걸이에 걸고 차를 준비하러 비서실로 갔다. 태호는 찻잔을 받쳐들고 들어오는 설희보고 허준호에 대하여 말하려다가 멈추고 아버지가 말한 것을 상기하면서 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ㅡ 아래 사람을 부리려면 자신의 심중을 내보여서는 안된다. 부하가 윗사람의 마음을 읽으면 거기에 맟추어 일을 하려하기 때문에 아부하게 되고 또 상사를 이용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부리는 것이 아니라 부림을 당하고 말기 때문이다. 표정관리를 잘 하여야 만이 부하들에게 마음을 읽히지 않는 방법중의 하나이고 또 위엄이 서는 것이다. ㅡ 4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