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비싸면서 귀한 것들과 맛있고 좋은 수산물을 이웃 일본에 수출해봐야 기계 한 대를 수입하는 것 밖에는 수출다운 수출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준호는 조상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을 했단 말인가! 더욱 웃을 수도 없는 일은 툭하면 어업침공이니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뻔뻔스럽고 기고만장한 일본 국민이 하는 작태를 볼 때면 더욱 울분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인데 것이다.
위안부 문제도 해결을 하지 않으려는 일본을 기필코 타도해야 한다고 외치는 준호였다.
그래서 한일간 축구경기가 벌어지면 목청이 터져라 하고 외치며 응원을 하였고
경기가 끝나서 이기면 즐거워서 한 잔 걸치고 지면 울분에 못이겨 통음을 하고 들어오는 것을 하숙집 아주머니는 쯧쯧 또 한국이 졌구먼. 하고는 북어국을 끓여주는 것이었다.
시장조사를 하러 일본 여행을 가보고는 이 프로젝트에 더욱 확신을 굳힐 수가 있엇던 것이었다.
영원히 모방할 수 없는 이 프로젝트의 고유의 모델은 이미 전 세계로부터 1,600년전르네상스 시대 이후에 모든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1억2천만의 인구를 가진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늘 팽창주의를 가지고 군비증가을 매년 세계에서 제일 많이 지출하고 있는 일본, 세계의 무역 장벽 속에서도 고급 자동차의 대명사인 벤츠나 BMW와도 당당히 경쟁하는 그 유명한 자동차 도요다,
전자상품으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으며 워크맨을 독점으로 우리 학생들까지도 하나씩 가지고 다니게 할 만큼 뛰어난 기술과 상술의 나라 일본에 수출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것도 일본의 국민들 내실에 수출할 수 있는 꿈이 실현될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준호는 상상의 꿈을 펼치고 있었다.
ㅡ 매년 입시생이 70만이라 계산하고 가정할 때, 워크맨 하나만 가지고 우리 국민들에게 자그만치 약 7,000억을 수출한 나라 일본, 어디 그것만인가 기계,전자,자동차 부품까지 추정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어 수 년후에 일본시장을 공략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기적같은 일인 것이다. 그야말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일 무역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상품인 것이기 때문이고, 영원히 우리 만이 독점으로 세계 선진국 장벽에
관계없이 판매할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에는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ㅡ
어두운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스타- 이세상 어디든지 많은 스타들이 있고, 또 스타들이 탄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스타탄생이라는 말을 매스콤에서 많이 듣도 또 CEO중의 CEO라는 기사를 많이 듣는다. 준호는 자신도 이 프로젝트가
무사히 달성되었을 때는 자신도 스타라는 영광의 찬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에 차있다.
서울의 하늘이 이처럼 반짝이는 별들을 보기가 싶지가 않은데 웬일인지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수 놓아져 있었고 카시오페리아와 백조자리까지도 보였다.
스타란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창조되는 것인가, 준호는 자신이 스타와 거지의 갈림길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은 스타가 될 마음도 없고 단지 이 프로젝트를 하지 않으면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되기 때문에 미련없이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이며 따라서 후회도 없다고 여겼다.
설사 거지가 되고 빚 속에 사는 결과가 나온다 치더라도 반드시 자신이 아니면 누군가가 해야 될 일이었다.
애초부터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않았기에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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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에 사옥을 두고있는 한성그룹 회장은 국내최대의 그룹인 화성그룹 명예회장의
둘째동생이며 지난 해에 명예회장으로 물러나 자식들에게 계열사를 물려주고는 일주일에 한번만 출근하고 있었다.
얼마전에 중풍을 맞아 중국으로 건너가 침을 맞아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완치가 되지는 못하였으며 지금도 걸을 때는 조금씩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해방직후 형을 도와 화성그룹을 일으키는데 일조를 하여 오늘의 화성그룹이 국내 최대의 그룹으로 올라서자 시멘트와 자동차 부품회사를 차려 지금은 30대 그룹으로 도약을 하겠다고 큰 아들인 지금의 회장이 선언을 하였다.
최근 소비 붐과 레저붐으로 콘도사업과 스키사업을 주관하는 레저사업으로 매스콤에 광고를 쉬지않고 홍보하고 있으며 특히 해외 스포츠 경기에는 빠지지 않고 그룹 이미지광고와 함께 한성레저를 광고를 하고 있었다.
1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한성그룹은 사원들에게는 30대 그룹 어느회사 못지않은 대우를 받고 있으며 또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국내 최대그룹인 화성그룹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고 있으며 건설의 노하우를 직접 건네받아 중동지역에까지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화성의 현 회장들과 사촌간인 한성그룹의 회장들은 선친이 이룩해놓은 업적을 어려서부터 성장할 때까지 귀가 따갑게 들어왔다.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기까지의 우여곡절과 국내 처음으로 중동에 진출하여 기적에 가까울 만큼 시공해놓은 성공신화 이야기는 마치 영웅담이나 고전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전세계 건설업계가 주목하고 놀랐던 것이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하며 비웃었지만, 큰 아버지는 전세계 기업인들에게 보란 듯이 공사기간을 어기지 않고 성공리에 마무리 지었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으며, 외환위기가 왔을 때에 우리나라의 3분지1에 해당하는 외화를 벌어들여 부도나기 직전인 국가경제에 커다란 일을 한 것은 정말 신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었다.
지금세대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해방직후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는 흉년까지 겹쳐 소나무 껍질을 솥에 푹 삶아 끼니를 연명하고 보리가 수확을 할 때에 이르러 보리밥을 먹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소위 보리고개의 어려움을 지금의 50대 후반이 되는 사람 만이 그 고통을 알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시절에 국가가 외환이 부족하여 국가부도라는 웃지못할 에피소드 같은 일이 벌어지려는 찰나에 화성그룹의 명예회장은 중동건설에 뛰어들어 기술도 자본도 없이 전세계가 불가능하다는 설을 뒤집고 시공을 기한내에 마쳐 세계속에 화성건설을 심어놓았던 것이다.
그렇게까지 할 수있었던 것은 포항제철이 있었고 박정희 대통령의 섬유와신발등 1차 산업에서 중화학으로 자동차. 조선,중공업,전자.기계,건설등에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은 바가 컸기 때문이다. 세계의 석학들과 경제전문가들이 한국의 수준으로는 중화학으로 뛰어드는 것은 시기상조다 하며 말렸지만 <잘살아보세>라는 새마을운동의 기치아래 마침내 도약에 성공을 하였던 것은 큰 아버지의 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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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다고 밖에는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국내 누구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에 침을 튀겨가며 말할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모래땅에 조선소를 설립하던 당시 웃지못할 에피소드하며 전 세계에서 불가능하다는 공사를 거뜬히 해낸 큰아버지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듣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하게 올라가고 자부심이 생겨나게 하였다.
밤이 새도록 들어도 싫증이 나지않는 영웅담이라 어려서부터 성장하면서 "나는 큰아버지보다도 더 훌륭한 회사를 만들어야지" 하는 다짐을 했던 것이다.
미국에 있는 UCLA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MBA를 마치고 나서 한국에 돌아와 아버지 사업을 수업하면서 지금은 부회장으로서 경영을 하고 있었다. 유학생활 중에 기숙사에서 같은 룸을 사용하던 선배, 환경공학을 전공하던 한국 유학생과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그 선배의 의견을 받아들여 아버지한테 사업자금 300억을 달라고 해서 회사를 설립하고 그 사람에게 사업을 맡기고 있지만 사실 불안감은 늘 가지고 있었다.
물론 보름에 한번씩 사장인 그 선배에게 보고를 받고있지만,..
만약에 사업이 잘 못되기라도 한다면 한성그룹 직원들에게도 창피한 일이고 큰 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사촌들에게 얼굴을 들수가 없기 때문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터 이었다.
오늘도 부회장은 9시가 한참 지나서야 한성그룹 사옥에 도착했다.
늘 그 시간에 오는 것을 아는 경비와 보안직원은 미리 나와서 무전기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차가 정문 앞에 정차하자 운전기사는 재빨리 내려서 뒷문으로 다가가 문을 연었다.
검은 차문이 열리자 태호는 내렸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은 허리을 90도로 굽혀 인사했다. 직원의 호위를 받으며 태호는 대기해 놓은 엘리베이터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러자 지나는 한성그룹 직원들이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보통보다 좀 큰 키에 곤색 양복을 입은 태호는 부리부리한 눈에 사각형의 얼굴을 하였고 얼굴에는 사춘기 때에 여드름이 많았는지 피부가 햇빛에 탄 것처럼 약간 검었으며 뺨에는 젊은 날의 여드름으로 점같은 구멍이 보였다. 머리는 젊은 세대들이 하는스포티하게 무스를 발라서 올렸기 때문에 유난히 크고 날카로운 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부모들로부터 어려서 호랑이 눈을 닮았다고 해서 태호가 들어오면 큰 아버지가 무릎에 앉히며 기뻐했던 것이었다. 큰 아버지는 태호의 눈이 상대를 꿰뚫어 보고 거역할 수 없는 위엄있게 생겼다고 종종 말했던 것이다.
비록 체격은 크지는 않지만 남을 위압하는 눈은 상대로 하여금 오랫동안 마주볼 수 없게 하였다.
태호가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인폼에 다가가니 화사한 유니폼을 입은 늘씬한 안내 여직원이 공손하게 인사를 하자 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스 김, 요즈음 이뻐지는 것 같은데..."
태호는 기분이 좋은 듯 웃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부회장님."
그러자 미니스컷트 입은 여직원은 엘리베이터로 가서 버튼을 누르고 태호가 타기를 기다렸다.
- 늘씬한 몸을 가졌군.-
스튜디어스같은 유니폼에 입술에 진하게 바른 루즈색과 화장품에서 풍기는 여자의 향기를 맡으며 오늘은 기분이 상쾌함을 느꼈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세워져 있었으며 태호가 타자 여직원은 인사를 하자 곧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곧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8층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태호는 문을 나서서 부회장실로 갔다.
비서인 박 설희는 문을 열고 화사한 유니폼과 함께 화사한 백합같은 미소를 머금고 서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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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도 해결을 하지 않으려는 일본을 기필코 타도해야 한다고 외치는 준호였다.
그래서 한일간 축구경기가 벌어지면 목청이 터져라 하고 외치며 응원을 하였고
경기가 끝나서 이기면 즐거워서 한 잔 걸치고 지면 울분에 못이겨 통음을 하고 들어오는 것을 하숙집 아주머니는 쯧쯧 또 한국이 졌구먼. 하고는 북어국을 끓여주는 것이었다.
시장조사를 하러 일본 여행을 가보고는 이 프로젝트에 더욱 확신을 굳힐 수가 있엇던 것이었다.
영원히 모방할 수 없는 이 프로젝트의 고유의 모델은 이미 전 세계로부터 1,600년전르네상스 시대 이후에 모든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1억2천만의 인구를 가진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늘 팽창주의를 가지고 군비증가을 매년 세계에서 제일 많이 지출하고 있는 일본, 세계의 무역 장벽 속에서도 고급 자동차의 대명사인 벤츠나 BMW와도 당당히 경쟁하는 그 유명한 자동차 도요다,
전자상품으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으며 워크맨을 독점으로 우리 학생들까지도 하나씩 가지고 다니게 할 만큼 뛰어난 기술과 상술의 나라 일본에 수출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것도 일본의 국민들 내실에 수출할 수 있는 꿈이 실현될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준호는 상상의 꿈을 펼치고 있었다.
ㅡ 매년 입시생이 70만이라 계산하고 가정할 때, 워크맨 하나만 가지고 우리 국민들에게 자그만치 약 7,000억을 수출한 나라 일본, 어디 그것만인가 기계,전자,자동차 부품까지 추정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어 수 년후에 일본시장을 공략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기적같은 일인 것이다. 그야말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일 무역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상품인 것이기 때문이고, 영원히 우리 만이 독점으로 세계 선진국 장벽에
관계없이 판매할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에는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ㅡ
어두운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스타- 이세상 어디든지 많은 스타들이 있고, 또 스타들이 탄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스타탄생이라는 말을 매스콤에서 많이 듣도 또 CEO중의 CEO라는 기사를 많이 듣는다. 준호는 자신도 이 프로젝트가
무사히 달성되었을 때는 자신도 스타라는 영광의 찬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에 차있다.
서울의 하늘이 이처럼 반짝이는 별들을 보기가 싶지가 않은데 웬일인지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수 놓아져 있었고 카시오페리아와 백조자리까지도 보였다.
스타란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창조되는 것인가, 준호는 자신이 스타와 거지의 갈림길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은 스타가 될 마음도 없고 단지 이 프로젝트를 하지 않으면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되기 때문에 미련없이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이며 따라서 후회도 없다고 여겼다.
설사 거지가 되고 빚 속에 사는 결과가 나온다 치더라도 반드시 자신이 아니면 누군가가 해야 될 일이었다.
애초부터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않았기에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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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에 사옥을 두고있는 한성그룹 회장은 국내최대의 그룹인 화성그룹 명예회장의
둘째동생이며 지난 해에 명예회장으로 물러나 자식들에게 계열사를 물려주고는 일주일에 한번만 출근하고 있었다.
얼마전에 중풍을 맞아 중국으로 건너가 침을 맞아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완치가 되지는 못하였으며 지금도 걸을 때는 조금씩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해방직후 형을 도와 화성그룹을 일으키는데 일조를 하여 오늘의 화성그룹이 국내 최대의 그룹으로 올라서자 시멘트와 자동차 부품회사를 차려 지금은 30대 그룹으로 도약을 하겠다고 큰 아들인 지금의 회장이 선언을 하였다.
최근 소비 붐과 레저붐으로 콘도사업과 스키사업을 주관하는 레저사업으로 매스콤에 광고를 쉬지않고 홍보하고 있으며 특히 해외 스포츠 경기에는 빠지지 않고 그룹 이미지광고와 함께 한성레저를 광고를 하고 있었다.
1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한성그룹은 사원들에게는 30대 그룹 어느회사 못지않은 대우를 받고 있으며 또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국내 최대그룹인 화성그룹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고 있으며 건설의 노하우를 직접 건네받아 중동지역에까지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화성의 현 회장들과 사촌간인 한성그룹의 회장들은 선친이 이룩해놓은 업적을 어려서부터 성장할 때까지 귀가 따갑게 들어왔다.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기까지의 우여곡절과 국내 처음으로 중동에 진출하여 기적에 가까울 만큼 시공해놓은 성공신화 이야기는 마치 영웅담이나 고전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전세계 건설업계가 주목하고 놀랐던 것이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하며 비웃었지만, 큰 아버지는 전세계 기업인들에게 보란 듯이 공사기간을 어기지 않고 성공리에 마무리 지었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으며, 외환위기가 왔을 때에 우리나라의 3분지1에 해당하는 외화를 벌어들여 부도나기 직전인 국가경제에 커다란 일을 한 것은 정말 신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었다.
지금세대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해방직후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는 흉년까지 겹쳐 소나무 껍질을 솥에 푹 삶아 끼니를 연명하고 보리가 수확을 할 때에 이르러 보리밥을 먹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소위 보리고개의 어려움을 지금의 50대 후반이 되는 사람 만이 그 고통을 알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시절에 국가가 외환이 부족하여 국가부도라는 웃지못할 에피소드 같은 일이 벌어지려는 찰나에 화성그룹의 명예회장은 중동건설에 뛰어들어 기술도 자본도 없이 전세계가 불가능하다는 설을 뒤집고 시공을 기한내에 마쳐 세계속에 화성건설을 심어놓았던 것이다.
그렇게까지 할 수있었던 것은 포항제철이 있었고 박정희 대통령의 섬유와신발등 1차 산업에서 중화학으로 자동차. 조선,중공업,전자.기계,건설등에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은 바가 컸기 때문이다. 세계의 석학들과 경제전문가들이 한국의 수준으로는 중화학으로 뛰어드는 것은 시기상조다 하며 말렸지만 <잘살아보세>라는 새마을운동의 기치아래 마침내 도약에 성공을 하였던 것은 큰 아버지의 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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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다고 밖에는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국내 누구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에 침을 튀겨가며 말할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모래땅에 조선소를 설립하던 당시 웃지못할 에피소드하며 전 세계에서 불가능하다는 공사를 거뜬히 해낸 큰아버지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듣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하게 올라가고 자부심이 생겨나게 하였다.
밤이 새도록 들어도 싫증이 나지않는 영웅담이라 어려서부터 성장하면서 "나는 큰아버지보다도 더 훌륭한 회사를 만들어야지" 하는 다짐을 했던 것이다.
미국에 있는 UCLA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MBA를 마치고 나서 한국에 돌아와 아버지 사업을 수업하면서 지금은 부회장으로서 경영을 하고 있었다. 유학생활 중에 기숙사에서 같은 룸을 사용하던 선배, 환경공학을 전공하던 한국 유학생과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그 선배의 의견을 받아들여 아버지한테 사업자금 300억을 달라고 해서 회사를 설립하고 그 사람에게 사업을 맡기고 있지만 사실 불안감은 늘 가지고 있었다.
물론 보름에 한번씩 사장인 그 선배에게 보고를 받고있지만,..
만약에 사업이 잘 못되기라도 한다면 한성그룹 직원들에게도 창피한 일이고 큰 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사촌들에게 얼굴을 들수가 없기 때문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터 이었다.
오늘도 부회장은 9시가 한참 지나서야 한성그룹 사옥에 도착했다.
늘 그 시간에 오는 것을 아는 경비와 보안직원은 미리 나와서 무전기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차가 정문 앞에 정차하자 운전기사는 재빨리 내려서 뒷문으로 다가가 문을 연었다.
검은 차문이 열리자 태호는 내렸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은 허리을 90도로 굽혀 인사했다. 직원의 호위를 받으며 태호는 대기해 놓은 엘리베이터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러자 지나는 한성그룹 직원들이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보통보다 좀 큰 키에 곤색 양복을 입은 태호는 부리부리한 눈에 사각형의 얼굴을 하였고 얼굴에는 사춘기 때에 여드름이 많았는지 피부가 햇빛에 탄 것처럼 약간 검었으며 뺨에는 젊은 날의 여드름으로 점같은 구멍이 보였다. 머리는 젊은 세대들이 하는스포티하게 무스를 발라서 올렸기 때문에 유난히 크고 날카로운 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부모들로부터 어려서 호랑이 눈을 닮았다고 해서 태호가 들어오면 큰 아버지가 무릎에 앉히며 기뻐했던 것이었다. 큰 아버지는 태호의 눈이 상대를 꿰뚫어 보고 거역할 수 없는 위엄있게 생겼다고 종종 말했던 것이다.
비록 체격은 크지는 않지만 남을 위압하는 눈은 상대로 하여금 오랫동안 마주볼 수 없게 하였다.
태호가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인폼에 다가가니 화사한 유니폼을 입은 늘씬한 안내 여직원이 공손하게 인사를 하자 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스 김, 요즈음 이뻐지는 것 같은데..."
태호는 기분이 좋은 듯 웃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부회장님."
그러자 미니스컷트 입은 여직원은 엘리베이터로 가서 버튼을 누르고 태호가 타기를 기다렸다.
- 늘씬한 몸을 가졌군.-
스튜디어스같은 유니폼에 입술에 진하게 바른 루즈색과 화장품에서 풍기는 여자의 향기를 맡으며 오늘은 기분이 상쾌함을 느꼈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세워져 있었으며 태호가 타자 여직원은 인사를 하자 곧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곧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8층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태호는 문을 나서서 부회장실로 갔다.
비서인 박 설희는 문을 열고 화사한 유니폼과 함께 화사한 백합같은 미소를 머금고 서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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