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을 향해서 밤을 새며 버스는 달리고 있었다. 대전을 지날 때는 바닥에 얼어붙은 눈으로 인해 45명을 태운 육중한 버스는 덜컹거렸다. 군데군데 도로 옆에는 사고차가 있었고 눈이 한쪽으로 몰아져있었다. 가지산 기슭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06 시 경이었는데, 버스에서 내리니 굵은 소나무가 바람에 시달리면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바람탓이려나~ 기온이 마치 서울 영하12도였던 구정에 서울을 출발해 지리산에 도착했을 당시의 추위였다. 춘삼월에 이렇게 매서운 바람이 불다니... 영남지방인데... 각자 식사를 해결하고 있었고, 나도 라면을 꺼내 두사람과 함께 식사를 했다. 손이 시려울 정도였으니... 겨울이 다시 오는 줄 알았다. 마치 1월 중순의 날씨처럼... 산행을 시작할 때는 07시였는데 처음부터 경사진 곳을 올라야 했다. 계단으로 이어진 길과 너덜지대 위에 눈이 살짝 덮여 지루함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올라가다 보니 "동의보감" 속에 나왔던 허준의 스승 유의태가 자신의 위를 해부하여 의학에 진전을 바라는 스승의 바다 같은 은혜를 깨달을 만큼 한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동굴이 나타났다. 허준, 천민의 아들로 태어나 임금의 어의<御醫>가 되어 전설 같은 인물이었다. 소설 동의보감을 참 재미있게 읽은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너덜지대의 경사를 오르고 나니 능선이 펼쳐졌다. 뒤를 돌아다 본다. 저멀리 거대한 산맥이 길게 이어져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바위가 없는 거대한 거대한 산맥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서 그 중압감과 장대함에 찬사가 절로 나오게 하였다. 파란 하늘에 흰눈을 덮고서 사방을 둘러쌓고 있다. 억새는 무릎까지 밖에 자라지 않았다. 화왕산 억새와는 사뭇 달랐다. 화왕산의 억새는 키를 훌쩍 넘을 만큼 크고 바람이라도 불 때면 억새와 억새끼리 부딪치는 마찰음이 마치 여인이 흐느끼듯 산을 찾는 이에게 애수를 느끼게 했는데.. 이곳 가지산 억새는 그런 애수가 없다. 단지 화왕산과는 달리 무한정 드넓다. 다행이 눈이 대지를 살짝 덮고 있어 운치를 더해주었다. 바람이 찼다. 천황산에 도착해 소주와 막걸리을 마셨다. 평원을 걸어갔다. 평원을 지나면서 멀리 보이는 거대한 산맥은 비박이나 텐트를 치고 자연에 도취하고 싶은 호기를 불러일으켰다 사자평에 도착해서 간이 주점이었던 곳에는 기다란 빈의자 만이 우리를 쓸쓸하게 맞이하였다. 여름에는 수많은 등산객들이 이 의자에 앉아서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며 시름을 덜어냈을 것이었다. 세파의 시름을.... 나는 재약산을 향해서 올라갔다. 네명이서 정상에서 한참 기다렸으나 아무도 올라오지 않는다. 아무도... 그때 무전기가 울렸다. 표충사로 바로 내려간다는 것이었다. 태고의 사찰 표충사는 누구에게나 가슴에 추억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절이었다. 절 뒤에는 높은 산맥이 늘어서 있고, 왼쪽에는 푸르름을 간직한 드높은 대나무 숲이 야산을 세워 놓은 듯 바람에 잎을 휘날리고 있었다. 절의 목조건물도 화려하지 않게 찬란했으며, 커다란 종이 보호막도 없이 있는 것은 아침 저녁에 예불과 식사 시간을 알리는 것이리라. 그 아래 개울에는 한 겨울인데도 맑은 물이 철철 흐르고 있다. 이런 풍수를 차지한 절이 어디에 있던가. 수많은 산 속에 있는 절을 다녔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죽림사 밖에 없는 것이었다. 죽림사였던 것을 표충사로 불렀다고 했다. 산방찻집에 도착하니 회원이 다도를 음미하듯 모여서 산수유 차를 마시고 있다. 마다하는 나에게 차를 주문해준 여성회원의 호의를 마다할 수 없어 마셨다. 막걸리를 마시려고 사양했던 나에게 산수유 차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차의 멋을 몰랐던 나에게 은은한 정적과 함께 차를 대접하는 보살님의 절복이 더욱 고찰에서 마시는 차의 경건함을 느끼게 하였던 것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버스에 먼저 도착한 회원들은 먹자판을 벌이고 있었다. 나도 끼어들어 술도 삼겹살도 맛나게 어울려서 먹고 마셨다. 주량을 넘겼다. 서울로 오는 도중 버스 뒷자리에는 대포집 기행이 연출되고 있었다. 엘리트 대포기행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