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山 行 後 記/천년사찰 조계산

선암사와 송광사을 안고 있는 조계산 2003,11,10

방형석 2005. 5. 7. 21:47

 

 

 

 

 

 

 

 

 

 

                   승선교는 중국의 절에 있는 모양을 본따서 만들 것. 시멘트 없이 돌을 사용해서

                       만든것이 특징이고, 계곡에 비친 강선루 누각이 비친다. 마치 거울처럼...

 

 

 

 

                 12월인데도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

                 눈이 오면 이끼 낀 돌 위에 눈이 쌓이고 물흐르는 소리가 지금도 변함없이 들린다.

                 25년 전, 필자는 이곳에서 풍덩하고 수영도 했던 추억이 새롭다.

 

 

 

                  선암사 일주문.

                  계곡에 아름다운 선암사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입구에 있는데,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떨어져 바닥에는 마치 카페트를 깔아놓은 듯했다. 

 

 

 

 

                    필자가 한때, 젊었던 28세 나이에 이곳에 계시는 노스님의 먹을 갈아드렸는데.

                                        25년이 지난 절의 모습을 그대로이다. 

 

 

 

 

 

 

 

                                                                조계산 전경

                 조계산에는 조계종과 태고종< 결혼을 허락하는 불교 >을 마주하고 있는데,

                            보물을 놓고 중들이 서로 폭력을 써서 싸웠다는 것.

 

                           위 사진은 2011년 1월에 촬영한 것

토욜 저녁 시간은 자정을 향해서 부지런히 달리가 있을 때,
겨울을 재촉하는 동장군의 전령인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은
마음이 삼겹살과 소주가 그리워지는 그런 날씨였다.

흠, 생삼겹살과 김치를 준비하고 콜맨 버너를 배낭에 챙겨서
신사동으로 향했다.

출발할 때 인원이 생각보다 적었다.
아마 비가 내일 내린다고 하니 많은 님들이 산행을 취소했으리라.

나는 아쉬웠다.
왜냐하면 자연의 사계절 모습은 계절마다 다르기에...

선암사 계곡도 좋고 절의 웅장함과 절 주위를 감싸고 있는 은행잎이
너무 아름다우니 산행을 날이 밝아오면 하자고 건의하였다.

순천과 선암사를 다니는 시내버스 기사를 만나 옛 추억을 더듬어 화포로
가는 길을 물으면서 십년이 지난 길에 대해서 물었다. 

그 버스기사가 대뜸 와서 하는 말이 "누가 대장이요? 장군봉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한데..."

나는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시골사람의 순박함을 느꼈기도 하거니와 도봉산에서 암벽도 하는 우리에게 걱정해주는

그 마음씨가 고마웠다.

순천 대대포구와 화포로 가는 길을 어느 정도 숙지한 후 회원들께 말해서

산행이 넘 짧으니까 우리는 날이 어스름할 무렵에 선암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80년도에 절에서 머물면서 공부하면서 산에 올랐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대웅전과 절들을 둘러보고 기억에 의하면 학생들이 묶었던 곳 뒤로 산행을 했던

기억이 있지만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남아 있지 못했다.

일주문 앞에 있던 주목, 하늘을 뚫을 것처럼 드높고 넓게 가지를 드리워

그늘을 드리워 주었던 주목나무는 언제 그랬는지 형체가 사라졌고 뿌리와

부러진 짧은 기둥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대각암으로 향하면서 지나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있었다.
후회가 있었던 지난 세월, 기쁨과 희열이 겹쳐 폭탄주를 밤새도록 마셔댔던

지난 젊은 날의 초상이 떠올랐다.

아마 지나온 시간 속에 남겨진 추억은 다시는 얻지 못하리라!
마음 속으로 다짐하면서 시간의 귀중함을 새삼 알게 되ㅡ는 순간이었다.

이래서 여행은 자신의 뒤를 돌아 보게 하여 더욱 성숙하게 되는 것이리라.
장군봉 정상을 조금 남겨 두고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정상에 이르러서는 옷을 젖을 만큼 내리고 있었고 선암사 절들이 조그맣게 보이고

중간에는 상사호가 한반도를 그려내듯이 다가왔다.

아마 저쪽에 송광사가 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으리라 여겨졌다.
신령님은 우회하며 능선을 타고 혼자 가겠다고 했고 우리는 송광사로 가는 길로

접어 들었다.

산 속에 있는 보리밥 집을 지날 때에 산나물과 보리밥을 기름을 넣고 썩썩 비벼먹는

상상이 걸음을 옮기는 눈 앞에 선하게 보여졌다.
쩝~
나도 모르고 침을 꼴깍 삼키고는 아쉬움을 남기기 않고 지나쳤다.
<우리 한 그릇 시켜 놓고 한 사람이 한 숟가락씩만 먹고 가면 어떨까? >


보리밥집 굴뚝에서 나오는 싱그러운 연기가 코를 킁킁하게 하고있었다.

마치 하이에나가 킁캉하듯이...

송광사에 이르러 주차장 뒤에 와서 삼겹살과 김치를 꺼내놓고 함께 도착한 일행과 처음 오신분

이렇게 셋이 한점씩 먹으면서 술 한잔 하고 있었고 회원들이 도착하여 합세하였고

고향이야기를 하는데 거제도에서 왔다는 어느 분이 " 고향이 안동이요?" 하고 물어 왔다.

회원들과 그분은 반가워서 고향의 그 시절을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내가 가져 온 삼겹살이 동이 났다.
그러자 회장님과 동향인 그 분이 "안주가 없어요?" 하고 묻기에 나는 후라이 팬을 드리고

안주를 부탁하자, 그분은 얼른 차로 내려간다.

잠시 후 그분은 소주와 후라이 팬 가득 보쌈고기를 담아 왔다.
몇점을 서로 입에 넣고 나니 김치가 떨어졌다.
"선생님, 김치 있나요? "
나는 염치도 없이 물었다. 그러자, "그래요 김치가 없어요?" 하고 반문하더니 다시 차로

내려가 김치를 가득 담아왔다.

우리 모두는 깔깔대고 웃어댔다.
"하하 고향 까마귀 만나니 이렇게 즐거운 일이 생기네."
회원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외쳤다.

우리는 오랜 만에 하늘을 향해서 웃음을 터뜨렸다.
곧 우리 일행이 모여들자 시장하더 참에 입에 넣기에 바뻤다.
나는 후라이 팬이랑 연료 그리고 버너가 식기를 기다렸다가 차에 타고 해안 포구

"화포마을"을 찾아 가기 위해 기사 옆 보조좌석에 앉았다.

세월이 지나서 길이 많이 생겨 헷갈려서 차를 돌려 다시 되돌아 와야
하는 일이 생겼다.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전망 좋은 횟집을 회원이 골라서 가보니 광어2킬로, 놀래미, 도다리, 숭어, 꼬막 전어 등 있었다.
그토록 정성을 들이느냐고 기다리던 회가 접시에 담아 나왔다.
장나라가 모델인 "잎새주"와 참이슬, 그리고 보해소주를 우리는30병 정도는 마신 것 같았다.

정말 오랜만에 먹어보는 자연산이었다.
서울서는 자연산이라지만 어디 실감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를 먹고 노래방 시설까지 갖추어져 있어 금상첨화였다.
술김에 바람핀다는 듯이 우리는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를 불러대면서
몸을 흔들어댔다.

밖에는 순천만의 섬들이 바다에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듯 했다.
한동안 먹고 마시고 시원한 매운탕과 새하얀 햅쌀밥을 먹고 밖으로
나와 커피를 마시면서 아쉬운 시간을 접고 차에 올랐다.

내장산 단풍 때문에 차가 밀려 11시 넘어 도착해서 회원님들은 이튿날 업무에 지장이

있었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