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각 상류는 연천에서 시작되어 임진각을 지나 파주로 흘러간다.
넓은 강줄기는 바람한점 없이 잔잔했다.
남쪽의 강들은 4대강 정비사업으로 공사중이지만, 이곳 임진강은 청정지역으로 깨끗하다.
북쪽에 자리하고 있으니 발길이 뜸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이 다리를 건너면 남한을 넘어선 것이나 다름없다. 다리 위에는 군인이 없었지만 냉기가 감돌았다.
허준선생 묘소를 찾아 탐방을 수소문 끝에 임진각관광 안내소에 코스가 있었다.
1사단 정보과에 문의하였더니 파주시청 공문서 팩스로 신원이 확인돼야 민통선에 출입할 수
있는 것인데...
담당 유하사는 농사짓는 원주민을 만나 부탁하면 통과할 수 있다고 했다.
진작에.... 여행코스가 있다고 했으면 핸드폰 요금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을텐데...
50년을 살아와도 난생 처음 민통선 다리를 통과해본다.
관광버스회사에서 취재하러 찾아와 부탁하는 필자 혼자인데 45인승버스를 내주었다
무더운 날 에어컨을 켜고 안내해주었다. 감사할 따름이었다.
역사의 시대로 들어가는 필자의 마음은 사실성에 대한 궁금함이었다 수많은 역사영웅들의 기록을 찾아 실감해야 겠다는 마음이었고 정말 그런 사건이 있었다니 ..
의성 허준선생 묘를 걸어 올라가니 인간의 숙명을 다시 가슴에 와 닿았다
입구에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인물
당시 둘째부인 자식은 아버지를 부르지도 못하는 시대였다 설움과 교육을 혼자서 독파하여 임금 건강을 관리하는 막중한 자리에 오르기까지 당파간 얼마나 험난했을까
임금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어의자리를 놓고 보이지 않는 투쟁이 험났했으리라
양반출신 의사도 아닌 명문가도 더욱 아닌 의사가 임금을 돌보는 어의로 임명되기까지 참으로 험난했으리라
그 옛날 티없이 맑은 청년의 시절 소설 동의보감을 아주 재미있고, 감명깊게 읽었던 그 주인공 모습을
대하고 보니 지나온 세월이 묻어난다.
구암 허준명의를 담고자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내게는 지나온 아득한 청년시절 부터 장년을
향해 잠시도 멈추지 않는 야속한 세월을 찍어내는 듯한 소리이다.
그 누구라도 시간...세월을 멈추게 할 수 없고, 잡을 수도 없다.
동서고금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세월 앞에 숙명을 거부할 수 없는 미약한 동물이다.
영웅호걸, 미인들도 세월에 엄숙하게 그 날을 맞이한다.
사람이니까 인간사회의 폐습에도 불구하고 봉사와 희생, 쉬임없는 노력으로 의성 醫聖 묘를
참배하는 나는, 카메라를 들고 역사 속에 일어났던 사건 기록을 뒤척여 끄집어내는 것은 후손들에게
교훈과 자랑스런 긍지를 전하기 위해서이다.
사회 지도층과 정치인들에게..
역사기록을 찾아 보다 더 국민과 나라를 위해 파란만장한 역사적인 일을 비추고 현재, 당면한 시대의
문제들을 반영하는데 나침판으로 하고자 하는 취지이다.
임진강을 건너 묘를 자리한 이유를 필자는 모르겠다.
당시 풍수지리학자들이 지정할 만큼 민통선 안에 땅의 기를 필자는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율곡선생 자운산자락은 도착하기 전까지 내내 파주의 길이 황망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가
묘를 쓴 자운산을 보고는 산이 나즈막하지만 정기를 느낄 수 있었다.
청년시절에 가슴 속에 허준이라는 명의를 찾아가는 필자의 기분은 마치 환자가 화타와 편작
<중국에서 있는 전설적인 명의,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는 의술의 대가>을 바쁘게 찾아가는 것처럼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서두르고 있었다.
부인과 양천 허씨 허준선생 비
의성 양평군 허준선생 추모비
상단의 묘가 허준선생의 모친묘이며, 아래 왼쪽 묘가 허준선생이고, 오른쪽이 허준선생 부인묘이다.
문인석 만이 세월의 지난 지금도 풍우와 뜨거운 태양볕 아래에서 모시고 있다.
젊은시절 사회의 제도에 서자라는 딱지를 갖고 태어나 얼마나 많은 울분과 설움을 받았을까.
시대의 관습에 서러워했을 허준선생의 생을 생각하며 DMZ의 있는 임진강을 뒤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