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 태어났는지 기억이 안납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창고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죠.
그 사람은..
아마 지금 생각해보니까 주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따금 찾아와서 창고 문을 열 때면 찬란한 빛이
스며 들었는데, 박스 안에 있는 나는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해방감을 맛 볼 수 있었지요.
박스 틈새 속으로 스며들은 그 빛은 찬란한 무지개 색을 띠고 비추는 태양의 빛 임을 알 수 있었고,
나는 아, 이제 바같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가 보다 하고 기대하였지만, 그 주인은 무정하게도 다른 인형을 꺼니고
매정하게도 문을 닫아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리곤 했습니다.
덥수룩한 휜 수염이 듬성듬성 섞인 구레빛 얼굴로 잠바차림의 뒷모습을 남기고는 가버렸습니다.
나는 서러워서 엉엉울었습니다.
나 외에 많은 동물인형들이 커다란 창고 속에 가득 쌓여있었고, 언제나 잠버차림의 주인이 올 때마다
점차 조금씩 줄어갔습니다.
그 주인은 1톤 현대포터 짐차를 가져와서 몇 박스씩 싣고는 냉정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휑하니 가버렸습니다.
겨울이 오면 싸늘한 추위가 스며들었지만, 나는 춥지않습니다. 나의 몸은 털로 되어있으니까요.
하지만 고요한 정막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 쓸쓸했습니다. 쥐라도 있으면 말동무하고 바깥 세상 소식이라도 듣겠지만,
여기는 쌀 한톨도 없는 곳이라 쥐도, 바퀴벌레도 찾을 수가 없지요.
달력도 볼 수 없고, 시계도 없어 기약도 없는 아득한 긴 시간을 영면해야 했습니다.
아마, 사람이 죽으면 땅 속에 묻히는 것을 교회에서는 영면한다고 하는데 내가 바로 그렇습니다.
1
그렇게 얼마동안이나 긴 어둠 속에서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날, 마침내 고대하던 그 날이 내게 왔습니다.
바깥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리더니 창고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는 늘 혼자와서는 박스를 실어나르는 그 주인이 와서는 박스에 붙어있는 항목을 보고 다녔습니다.
그는 내가 있는 박스 앞에 와서 멈추고는 매직으로 표시하고 나서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 김형, 이리와서 이것 가져가 ! "
내가 빛을 본 것은 저녁이 지나 천정에서 불빛이 방안에 환하게 비출 때였습니다.
"할머니, 이것 가지고 벼게로 하세요."
"이게 뭐냐?"
할머니는 의아한 듯이 물었습니다
"회사에서 가져왔어요."
"돈도 없는데 왜 이런 걸 사왔어?"
할머니는 손주아이가 월급을 못받아서 부모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회사에서 주는 거니까 등에 기대고 편히 쉬세요."
할머니는 금빛나는 이 곰인형을 깔고 누울 수가 없었습니다.
털이 너무 고아서 웬지 내키지가 않았던 것이죠.
2
이튿날 할머니는 매일 나가는 육교 위로 장사하러 나갔습니다.
아범이 아침마다 차로 전시할 물건들을 실어 운반해주고 갔습니다.
할머니는 육교 위에 돗자리를 펴고, 물건들을 올려다 놓고 먼지털이개로 털었습니다.
어제, 손녀가 가져온 금빛 곰인형을 올려놓으니까 이상하게 진열해놓은 모든 상풀미 빛나는 듯했습니다.
손톱깎이, 욕실 때밀이, 구두솔, 벨트, 좀약, 여자 숙녀복 , 신사 콤비 상의, 여자신발, 여성구두, 화장품, 향수, 등.
가을이 시작돼도 많은 사람들이 기웃거리며 하나 둘씩 사갔지만, 금빛나는 곰에게는 별로 주의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커다란 아이 만한 곰인형은 하루종일 할머니 왼쪽에 세워져 육교 위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고 바라봅니다.
매일 물건들을 정리하러 아범이 오면 말했습니다.
"어머니, 이 곰인형은 크니까 사람들이 안사가는데 집에 놓고 등받이 하세요."
아범은 안스러운지 딱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아니야. 다 임자가 있는 법이야."
할머니는 집에 와서 누워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크고 멋진 금빛 털을 가진 곰을 왜 가져가지 않을까)
할머니는 곰을 바라보다가 흠집을 발견한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보았습니다.
금빛 털이 눈을 살짝 덮고 있었던 거지요. 눈도 좀 작게 만들어졌고, 거기에 털이 눈을 덮고
있으니 날카로와 보였던 겁니다.
3
사람도 다 연분이 있으니 이녀석이 눈이 좀 작다고 해서 모두 다 외면하지는 않을테지.
할머니는 손녀가 월급대신 가져온 이 곰을 꼭 팔고 싶었습니다.
이튿날에 아범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이녀석은 짐만 되니까 놔두세요."
그 말을 듣고 할머니는 고집을 피웠습니다.
"아니야, 다 임자가 있는 법이야. 짚신도 짝이 있다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할머니는 자신있다는 목소리였습니다.
아범은 할 수 없이 큰 곰을 마지막에 박스에 담아 차에 싣고 보조석에 어머니를 태우고
양재동 육교 위로 운반했습니다.
"어머니, 날씨가 쌀쌀하니까 추우시면 전화하세요. 감기 조심하셔야 돼요."
"그래, 알았다. 어이 걱정말고 너 일보러 빨리 가려무나."
할머니는 어제 손녀가 가져온 작은 인형들을 돗자리에 놓았습니다.
금빛나는 큰 곰과, 스누피, 고양이, 멍멍이, 여자아이 인형 등이 일반 생필품과 함께 육교 위에
전시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묵주를 꺼내 손에 쥐고 손가락으로 묵주에 연결된 구슬을 엄지와 인지로 짚으면서
1단,2단..중얼거리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 예수의 고난을 ..."
금빛 털을 가진 곰을 보면서...
점심때가 되자 할머니는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꺼내 숟가락을 들고 밥을 떠서 먹고 보온통에서 국을
꺼내 맛있게 먹으면서도 육교 위를 오가며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지나칠 때마다
수저를 놓고 말했습니다.
"좋은 물건들이예요, 새거구요, 싸게 드릴테니 가져가세요."
어떤 아주머니는 검정 구두약과 구두솔을 살 때, 할머니 얼굴에는 미소가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놀라운 듯이 물었습니다.
"할머니 저 곰은 얼마예요? "
"아, 금빛나는 그 곰은 싸게 드릴테니 가져가세요...2만 7천원 주세요. 백화점으로 납품하는 것인데...
삼만원은 받아야 하는데...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싸게 가져가세요."
주름이 얼굴에 가득 있는 할머니는 희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중년 여자는 곰을 가슴에 안고 금빛털을 만지면서 이마를 쓰다듬었다.
"집에 가서 딸아이에게 물어볼께요. 할머니."
4
그 후 할머니는 딸아이한테 물어보고 온다는 손님을 기다렸으나 일주일이 다 지나도 오지 않자,
한숨을 쉬었습니다.
해는 넘어가려고 하던 그때, 어떤 사람이 불쑥 나타났습니다.
"어 ? 멋있는 녀석인데."
그 남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듯 탄성을 발하였습니다.
* 그 남자가 나를 가슴에 안는 순간, 갑자기 나는 전신이 부르르 떨려오고 머리에 이상한 전류가
흘러들어 온 듯 했습니다. *
"할머니, 이녀석 얼마?"
할머니는 순간 얼마를 부를까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할머니 비싸도 사드릴께요.'
"이녀석은 백화점에 납품하던 것인데, 단지 흠이 있어서 손녀가 가져온 것이라우. 백화점에서는
십만원에 파는 거라우. 금빛털을 가진 귀한 인형이지요. 이만오천원만 줘요."
할머니는 빨리 팔아야겠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무슨 흠? 깨끗하고 털도 짱인데...이만원, 그래요. 내가 저기 정형외과 병원 주사맞고 올테니까 기다릴 수 있죠?"
"그럼, 얼마나 걸리는데?"
"금방 와요, 문닫을 시간이 다돼니까 환자가 몇 없을 거예요."
"어이 그래요. 기다릴께요."
그 남자는 육교를 총총히 내려갔습니다.
언뜻 보니까 나이가 쉰은 되어보였습니다.
아들 사다주려는가 보다 하고 할머니는 생각했습니다.
호리호리한 그 남자는 아들이 몇살일까 하고 궁금했습니다.
이윽고 그 남자가 육교 위로 올라와서는 말했습니다.
"할머니, 자요."
지갑에서 만원짜리 세장을 꺼내서 할머니에게 주고 말했습니다.
"할머니, 잔돈은 손녀 과자 사다주세요."
그는 말하고는 인형을 가지고 다시 육교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가 나를 팔을 펼쳐 가슴에 안는 순간 부터는 그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삼만원을 손에 쥐어주고 뛰어가듯이 육교 아래로 내려가는 중년 남자를 바라보면서 묵주를 손에 들고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기도하였습니다.
할머니 주름진 얼굴에는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손녀 얼굴을 떠올리고는 서둘러 집에 가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5
나는 주인님, 즉,할머니로부터 나를 사들인 마른 중년 남자를 앞으로는 주인님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주인님은 나를 가슴에 안고 마을버스를 타고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집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습니다.
강남 아파트, 아니 서초동 아파트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빽빽하게 들어선 무지개 단지로 들어가더니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차 문을 열고는 휙! 뒷자석에 던져놓고는 문을 잠그고 가버렸습니다.
"어~"
나는 뜻밖의 상황에 당황했습니다.
따뜻한 방에 들어가 부인과 아이들이 나를 안고 좋아할 줄 알았는데...
차디찬 차 시트에 쳐박아 놓을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창고 안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나았습니다.
춥기는 마찬가지지만, 이따금 차 문 옆으로 사람들이 오가고, 아이들과 엄마들이 지나갔기 때문에 외롭지 않았습니다.
저녁 때가 되면 가로등에 불이 들어와 어둠이 다가오지 못하게하였고, 불빛에 비추어진 어둠은 조명이 되어
처음보는 내게는 좋았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주인님은 왜 나를 방으로 데려가지 않고 차에 놓아두는 지를 ...
어둠이 짙어졌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희미해져가는 어둠을 볼 수 있었고, 마침내 어둠은 사라졌습니다.
가로등 불빛도 어느새 꺼져버렸고, 고독감이 밀려왔습니다.
긴 밤동안 가로등에서 쏟아지는 불빛은 나를 포근하게 해주었으나, 날이 밝아오면서 모든 가로등이 하나 둘씩
빛을 멈추자, 어느새 주위가 환해졌습니다.
출근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아파트 조그만 출입문에서 나와 주차해놓은 차 문을 열고 시동을 켜는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습니다.
나는 기다렸습니다. 주인님이 어서 나와 문을 열고 다른 사람들처럼 시동을 걸기를 말이지요.
무지개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많은 차들은 하나 둘씩 빠져나가자, 주차장에는 커다란 공터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가기 위해 박스같은 아파트 단지 문을 열고 하나 둘씩 떠들면서 책가방을 메고 나타나더니 내
앞을 지나갔습니다.
부모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학교 정문까지 바래다 주려고 시동을 켜기도 했습니다.
6
초겨울의 아침은 매우 추워서 길을 지나는 사람들 옷차림은 마치 겨울인 것 같았습니다.
바람은 휭~불어와 나무가지에 매달려 색이 울긋불긋 변해가는 나뭇잎은 우수수 땅으로
떨어지고 내가 있는 차 앞유리와 버넷 위에 떨어져 바닥으로 떨어지고 뒹굴었습니다.
나는 처음 본 광경이라 신기했습니다.
나무는 왜 자신의 몸을 떨어뜨리는지 안타까웠지요.
햇빛이 비추자 빗자루를 든 아저씨가 와서 부지런히 허리를 숙이고 바닥을 쓸고 있었고,
아이들이 하나 둘씩 아파트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이 다시 밀려오고 가로등 불빛이 어둠이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막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주인님은 운전석에 앉더니 등에 기대고 뒷좌석에 있는 나를 들어 조수석에 앉혔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유심히 보더니 금빛 털을 쓰다듬었습니다.
"녀석, 금빛이 그만이야... 그런데 눈이 조금 작구나. 그게 흠이구나. 눈만 크게 만들었다면
아마 너는 백화점에 갖다놓아도 금새 사갔을텐데.. 나를 만난 것도 인연이다."
중얼거리는 소리는 이상하게도 나는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육교 위에서 할머니가 묵주기도 하고 있을 때 이 아저씨가 왔고, 나는 주인님을 본 순간
온 몸이 떨려왔는데..
그 후 말하는 소리를 알아듣게 된 것 같읍니다.
하느님 초능력일까요?
천지창조 하신 후 모든 동물과 곤충을 만드신 하느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갈비뼈를 뽑아
이브를 만들고서 아담이 외롭지않겠구나 하고 미소를 띄었던 하느님께서 무한한 그 능력으로 된 것일까요?
알 수가 없습니다.
7
그는 CD와 TAPE를 번갈아 틀면서 음악을 듣고 있었고, 내게는 눈길 한번 주지않고 의자를 뒤로 젖힌 채,
눈감고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입에서는 술냄새가 났습니다. 그렇다고 혀가 꼬부라져서 중얼거리는 것도 아니고, 잠들은 사람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올드팝송 철새는 날아가고 음악이 흘렀습니다.
사이먼과 카펑클 노래는 가을에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음악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그는 상체를 일으키고는 테이브를
넣었습니다.
패티킴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노래가 차 안에 흘러나왔습니다. <나뭇잎이 떨어져서> 노래가 나왔고,
이선희 <J에게> <사랑이 지는 이자리> 노래에 이어 김수희 <멍애>가 이어져 나와 나로 하여금 가을 정취에
흠뻑빠지게 하였습니다.
나는 창고에 갇혀 박스 안에서 얼마동안 있었는지 어둠과 정적 속에서 생활하다 밖을 볼 수 있는 이 자유로운 곳에서
음악까지 들을 수 있다는 것에 자유의 소중함을 느꼈습니다.
테이프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한 것이었습니다.
팝송이 흘러나왔는데, 아름다운 목소리로 감미로운 여성이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 The water is wide >
이 노래가 흘러나오자 그는 눈을 감은 채로 따라부르는 것이었읍니다.
나는 처음으로 주인님이 팝송을 부르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팝송과가요를 듣기만 하던 그가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은 웬일일까요?
팝송이 끝나자 가곡이 나왔습니다. <선구자> 였습니다.
가곡을 따라부느는 주인님은 슬픈 듯한 얼굴로 부르다가 내게 기댔습니다. 나는 주인님과 크기가 비슷했지요.
부르고 나서 내게 말했습니다.
" 너 어깨가 포근하다."
그리고는 내 어깨를 쓰다듬고 이마를 쓰다듬고는 차 문을 열고 나가서는 키로 문을 잠갔습니다.
그가 가버리고 나자, 적막이 흐르는 차 안에 가로등 불빛 만이 나의 벗이 되어주었습니다.
8
언제나 오실까 하고 나는 손가락을 꼽고 있었습니다. 그는 출근하면서 차 뒷모습만 보고 가는지 궁금했습니다.
내가 얼굴을 돌릴 수만 있다면 주인님이 문에서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을텐데..
할머니가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들어주실지도 하는 아쉬움 속에 할머니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다섯 손가락을 다지나고 새끼손가락을 꼽은 날 저녁 그는 문을 열고 운전석에 털썩 앉고는 나를 보고는 키를
돌렸습니다.
곧 커다란 엔진소리가 나고 후진기어를 넣고는 도심 속으로 나를 데려갔습니다.
넓고 일직선으로 쭉 뻗은 도로 양 옆으로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빌딩들이 수없이 서있었으며 가로등에서 비추는
불빛은 아파트 불빛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한참을 가는데 궁금했습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차 창밖으로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달려가는 차들은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클락션을 울리면서 서로 먼저 가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주인님도 예외는 아니어서 차선을 바꾸기도 하면서 지나는 차를 추월할 때 나는 신이났습니다.
엘비스프레슬리 < unchangded melody > 노래를 들으면서 운전하는 주인님은 즐거워보였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커다란 강이 있고 양쪽으로 수많은 아파트들이 밀집해서 쏟아져나오는 불빛은 강물을 붉게 물들이는
한강 둔치였습니다.
가을이라 강바람은 매우 쌀쌀했습니다.
주인님은 나를 놔두고 문을 잠그고는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에이 , 주인님이 여자라면 틀림없이 나를 안고 같이 산책했을텐데..."
나는 혀를 찼습니다.
"남자들은 다 저렇다니까. 도움이 안돼요."
둔치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벗과 연인끼리 산책하고 있었고, 날씨는 찬바람이 있었지만 푸른 잔듸
위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담소하고 마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윽고 산책을 마친 주인님은 들어와 운전석에 앉아 강을 보며 음악을 틀었습니다.
<닥터 지바고 > 경음악이 흘러나오자 차 안에 분위기는 단번에 바뀌었습니다.
강물에 비추는 야경과 잔디에 서있는 가로등 불빛, 다리 위에서 비춰지는 자동차 불빛들은 아파트 단지에서
쏟아져나오는 빛들과 어우러져서 멋진 앙상블이 되었습니다.
빠삐용 영화 주제곡이 나오자 주인님의 나이는 몇살일까 하고 궁금했습니다.
9
주인님은 고독에 쩔어있는 내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문명과 자연의 어우러진 멋진 장관을 보여주었고,
또 나를 지켜주었습니다. 비록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 안이지만, 쾌쾌한 먼지와 적막, 동물과 곤충들의 침입을
막아준 주인님이 얼마나 고마운지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주인님이 나를 차안에 쳐박아두어도 나는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유의 소중함을 가르쳐준 주인님을 만날 수 있게 해준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이지요.
나는 감사했습니다. 오늘 한강 야경을 볼 수 있어서 다시 또 오기를 기다려집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서 앞유리를 통하여 문명이 만들어 낸 도시를 본 후 인간의 위대함에 탄복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했어요.
주인님 부인되는 여자가 통 나타나지 않는 것이죠.
외국에 있을까. 기러기 부부일까. 사별로 혼자가 되었을까. 정말 궁금했습니다.
왜, 내가 그렇게 궁금할까요. 사모님이 오면 나는 뒷자리에 쳐박혀서 문명과 자연을 볼 수가 없으니까요.
나는 초조해졌습니다. 아침이 밝아오고, 또 저녁이 되고 어스름한 어둠이 대지를 뒤덮을 무렵 나의 벗인
가로등은 빛을 떨어뜨리고 새벽이 될 때까지 내 곁에 있어주었습니다.
날이 밝아올수록 나는 초조해졌습니다.
아, 오늘 오시는 것 아닐까.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습니다. 사모님은 결코 오지 않았습니다.
주인님은 혼자임이 분명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왜냐하면 한강둔치에서도 어떤 여자로부터 전화가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멋진 야경에 있으면 가족, 애인에게 전화하기 마련인데도 말이지요.
부인이 있다면.. 애견이 있을 것같고, 젊지도 않은 남자가 인형을 샀다는 것은 혼자임이 분명했습니다.
차 안에 긴 시간을 있었는데도 전화 한번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인님은 몇살일까 하는 궁금함이 무럭무럭 피어올랐습니다.
10
어느날 이었습니다.
하얀 서리가 온 대지 위에 카페트처럼 덮은 아침이었습니다.
나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라 신기했습니다. 나무도, 가로등도, 차지붕에도 온통 하얀 세상이 되었습니다.
환상에 젖어 있을 때, 차 문이 열리고는 주인님은 배낭을 메고, 양손에 짐을 들고 차 안에 싣는 것이었습니다.
어? 이양반이 .. 나는 놀랐습니다. 차문을 닫고 가고 또 짐을 가져다가 트렁크에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반복해서 들락거리며 뒷자리와 내가 있는 조수석 의자 아래에 커다란 비닐봉투 안에 수건,면도기,로션,샴푸,속옷
등을 빼곡히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다됐다. 휴~ 하고 숨을 내쉬더니 나를 보며 말했습니다.
"너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줄께."
나는 "쳇, 한강 야경 보러 갈 때도 안고 가지 않고 혼자만 보러가는 양반이 무척 내 생각해주네."
하고 투정했지요.
요란한 엔진 소리는 해뜨는 초겨울 아침 정적을 흔들었습니다.
서초동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차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고, 그때서야 음악을 듣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떠나요, 갯바위, 파도,고래사냥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이 노래를 즐겨듣는 세대는 아마 40대가 아닐까요?
평택항을 내려다보며 건널 때, 서해대교의 위풍당당한 조형물을 보면서 인간은 필요하면 무엇이든지
만들어낸다는 것에 감탄했습니다.
행담도휴게소에 주차장에 내려서는 내게 말했습니다.
이 휴계소는 IMF 시대에 싱가폴의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1억달러에 토지개발공사가 팔았다고 했습니다.
30년 동안 사용하고 반환하는 조건이며, 이 서해대교는 길이가 7킬로가 넘는다고 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만 있다면 , 또 말은 그만두고 감탄사를 발할 수만 있었다면.. 하고 아쉬워했습니다.
주인님은 문을 열면서 커피 가져올께. 하고 휴계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이 진짜 원두커피를 두 잔을 가져와서 컵 홀더에 놓고는 말했습니다.
"마셔~"
" ......! "
아, 할머니는 이왕이면 다홍치마 라는 것도 모르셨나봐. 하느님께 간청하면서 듣기만 할 수 있도록 하시다니.
나는 할머니가 원망스러웠습니다.
평소에는 듣고, 볼 수 있는 자유를 주시라고 기도하여 주신 것을 고마워했는데...
나도 어느새 욕심이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인간들처럼...!
11
달팽이 집을 찾아 올라가는 것처럼 빙빙돌아서 다시 차는 고속도로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나는 그만 넋이 나갔습니다.
끝이 안보이게 곧게 나있는 드넓은 도로에 어느새 차는 휙 지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쉴틈없이 바쁘게 살아야 만이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커다란 트럭에 짐을 하늘 높이까지 가득 싣고 가는 차들, 이따금 멋진 디자인을 한 외제차들도 스쳐 달려갑니다.
"수입차들은 한결같이 공통점이 있어. 가격이 비싼 것은 그렇다치고, 선의 절제하여야 아름다움을 창조한다는
디자이너는 말했다는데.
한국 차들은 화려함을 치장하려고 선을 남발하여 아름다움을 잃고 있지 않는 것인지 싶군.
세계의 베스트 셀러 카들은 역시 선의 미학을 실현했어.
성능은 별개라 해도... 렉서스, 아우디,벤츠, BMW, 포르쉐, 롤스로이스, 등은 디지로그시대 임에도 불구하고
선을 절제하면서 예술성을 실현했다고 나는 봐. 선을 절제한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선을 헷가리게 해도 잘만 팔리는데 뭘... 말하면 할말 없지만, 예술성 보다는 절제를 잃는 데서
오는 거칠성, 난폭함을 안겨 주기에 다분해...!"
주인님은 내가 듣을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한 것처럼 내게 말했습니다.
조수석에서 보니 오가는 수많은 차들을 볼 수가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주인님은 음악을 즐기고 스쳐가는 광경을 기웃거리는 듯이 보면서
운전하는데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지금은 괜찮답니다. 안전거리를 두고 이따금 밀러를 통해 좌우를 보니까요.
홍성휴계소가 멀리 보였습니다.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람 한점 없는 하늘에서 하얀 솜 같은 눈을 떨어지기 시작하자, 바닥은 금새 은세상이 되어 마치 크리스마스
같은 기분이 났습니다.
12
사람들은 구경거리라도 생겼는지 화장실 가면서도 나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승용차 안에는 침낭,배낭,양복, 압력밥솥, 등산화 접이식테이블 등 온갖 생활필수품이 차에 가득찼습니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신기해하였습니다.
금빛털을 가진 커다란 곰을 살림도구와 함께 섞여있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것이 재미있다는 듯이
모두 모여 구경거리리도 생긴 듯 손바닥으로 창문에 떨어진 눈을 닦고 보았습니다.
눈은 쉬지않고 내려서 소나무에 솜을 뿌린 듯 하얀 눈이 쌓여갔습니다.
아이들은 신이나서 외쳤습니다.
"야 ~ 눈이다 눈이 온다. "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즐거워서 아이들은 팔을 아래 위로 흔들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이리저리 뛰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하늘에서 하얀 솜을 풀어놓은 듯, 온통 세상은 눈으로 덮고 있는 것입니다.
( 하느님의 무한한 능력이 정말 있구나 )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크리스마스 기분이 들어 휴계소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했습니다.
"첫눈이 아주 탐스럽게 내리는군."
그러면서 차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있는 나를 신기한 듯 얼굴을 차유리 앞으로 들이대고 들여다
보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저거 나 줘 !"
아이들은 엄마를 졸라댔습니다.
"안돼, 남의 것이야."
아이 엄마도 즐겁고 재미있는지 차 안을 이곳저곳 살펴보고 있습니다.
주인님은 자신의 차에 사람들이 모여서 살펴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왜 안오고 휴계소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이사가는 것 같은데 아이들은 어디에 탈까?"
사람들은 궁금해했습니다.
"다른 차에 탔겠지."
중년 남자도 신기한지 말했습니다.
"아이들 보다도 인형이 더 귀여운가 봐 !"
아이 엄마는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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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이 차에 다가오자 사람들은 이사가는 주인공을 유심히 보고 있었습니다.
맑고 커다란 검은 눈을 가진 아이들은 차 문을 열고 차가 출발할 때까지 뒷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너를 무척 좋아하는가보다."
조수석을 보면서 주인님은 내게 말했습니다.
"홍성은 충절의 고장이지. 옛날 선비들이 모여서 시를 읊고, 왕실 정치를 논하고 노래와 시를 논하며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선비 만이 갖는 학처럼 고고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고장이야."
서해안고속도로가 없었으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나도 홍성으로 해서 내려가지 않아.
그런데, 예산 방향으로 가면 수덕사가 있어. 공민왕이 타던 악기 가야금이 보존되어 있어.
또, 수덕사는 비구니절이야. 박대통령 첫째부인이 수덕사에 있다고 하기도 해.
높은 곳에는 바람 잦을 날이 없다는 우리 속담이 있지. 소문이지 알 수 없지."
주인님은 중얼거리고 고개를 갸웃뚱했습니다.
와이퍼는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유리에 떨어진 눈을 걷어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신기했습니다.
자동차는 팔을 좌우로 흔들며 눈을 밀어내면 다시 하얀 눈은 다시 떨어집니다.
수많은 하얀 점들이 나를 찌르려고 다가오는 것 같아 나는 움찔하고 놀랐지만,
이제는 눈이 앞유리에 떨어지는 것에 익숙했졌습니다.
주인님은 음악을 틀었습니다. 테이프를 몇개 꺼내더니 쏙 집어넣자, 눈이 내리는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내리내 당신이 가버린 지금 하얀 눈을 맞으면..."
여성 특유의 목소리가 내리는 눈과 함께 애수를 자아냈습니다.
창밖을 볼 수 있다면 스쳐가는 눈을 보면 음악이 얼마나
마음을 녹이는지 느낄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채 가시기 전에 남자의 노래가 나왔습니다.
아다모의 눈이내리네 였습니다.
팝송으로 들으니 또다른 음의 세계를 알게되었습니다. 주인님은 정취가 있으신 분 같아 혹시
할아버지 총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똑바로 쭉 나있는 고속도로는 장쾌했습니다. 거기에 눈이 쉬지않고 내리니 마치
신선이 사는 세상으로 가는 도로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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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은 오른손으로 테이프 버튼을 누르자 노래가 멈추었습다. CD를 꺼내고 핸들 위에 걸치고 한개 꺼내고 넣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궁금해졌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음악이 나올지 말이지요.
경음악이 흘러나오자 분위기가 단번에 바뀌었습니다.
주인님은 내게 말했습니다.
"닥터 지바고 영화음악이야 이 영화를 내가 본 적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무척 오래됐어.
세월은 참 빠르지. 설원이 펼쳐지는 러시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는 오래토록 남을 명화야.
차가 낡아서 DVD를 볼 수 없지만 나중에 돈을 받으면 차를 사서 보여줄께. 그런데 그 놈의 돈을 언제 줄지
알 수가 없어서... 15년이 지났는데 꼬리도 보이지 않고 있으니..."
주인님은 앞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젊은 날 영화를 봤던 추억의 장면을 그리는 것일까요.
" 음, 부안이군."
낮게 중얼거리면서 속도를 낮추고 우측으로 진입하고 있었습니다.
앞에는 차가 도로요금 내려고 멈추어 있었고, 주인님은 차를 바로 뒤에 댔습니다.
"눈이 참 많이 왔어요. 그 잠깐 사이에.."
주인님은 요금을 내면서 영수증을 주는 도로공사 여직원에게 말했습니다.
"네, 고객님 올해 첫눈이 아주 풍성하게 왔어요. 조심해서 가세요."
여직원은 매일 수천대 운전사를 만나면서도 지겹지도 않은지 밝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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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톨케이트를 나오고 눈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창 밖을 보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주인님은 차를 세우더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눈이 나무에 모자를 선물했어."
즐거운 표정은 마치 동심의 아이 같았고, 눈이 탐스럽게 내려앉았습니다.
아, 하늘에서 이처럼 깨끗하고 순백의 눈을 지상에 내려주는구나 하고 나는 놀랐습니다.
인간세계는 볼 것이 많다고 생각들었습니다. 잠깐 사이에 내린 눈은 온 세상을 신비한 정취로
가득찬 곳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차는 눈 덮인 도로를 향해 천천히 달리고 있었고, 창 밖에 펼쳐진 설경은 너무나 신비로웠습니다.
주인님은 나를 남겨둔 채 식당으로 갔습니다.
잠시 후 차에 타더니 말했습니다.
"오리고기가 전국적으로 인기가 좋아 훈제오리 음식점을 사업한 사람은 돈 많이 벌었는데..."
말하고는 잠시 묵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궁금했습니다. 말을 할 수 있다면 왜? 묵념을 하느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시동을 켜고는 나에게 잠시 눈길을 주더니 이윽고 말했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오리농장으로 갔었지. 전기기술자인 아버지는 오리농장 전기공사를 하고, 또
오리도 얻어왔었는데 오리 목을 비틀어 칼로 피를 뽑고 펄펄 끓는 물로 오리를 담가 털을 뽑고 칼로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내고 하는 작업을 나는 보았지."
말하고는 시선을 먼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며 잠시 상념에 젖고는 서서히 차를 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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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는 박정희정권이 새마을운동을 일으켜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세. 노래를 만들고 전국민에게
두 팔을 걷어붙이고 국민 모두 눈동자를 반짝이게 하였지."
주인님은 부안톨케이트를 나가려다가 내소사로 향했습니다. 이상하게도 박정희대통령 이야기를 하다가는 도중
내내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나는 무척 궁금했습니다. 알고 싶었습니다. 물러볼 수만 있다면...
전국에 수많은 절이 있지만 내소사는 꾸밈 즉, 화려함을 치장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 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절 중에 하나야.
서해안에 이처럼 고풍스럽고 운치있으며, 조용한 절이 있다는 것은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서민들에게
정신적으로 증진할 수 있게하고, 휴식을 줄 수 있다는 거지.
주인님은 세상에 무척 시달려왔고, 삶에 지친 사람처럼 실연당한 사람처럼..예전에 찾아와서 머물렀던
추억을 떠올리고 그 시간 속에 빨려간 듯 했습니다.
"중랑천 뚝 아래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 때가 제일 행복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먹고살기 힘들었지만,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때는 먹고 사는 것에 걱정 없었고, 황금빛 들판에서 메뚜기 잡아 볶아먹고, 누나들하고 뛰어놀고, 휘영철 밝은
보름달이 어둠을 비출 때,강강술레하면서 놀았던 시절이 그립다.
다시 돌아올 수만 있다면..."
중얼거리면서도 시선은 앞을 보고 있었습니다.
차는 평균속도를 유지하고 있고 이따금 상행선으로 차들이 휙 빠르게 스쳐지나가고, 하늘은 어느새 파란 속살을
드러내고 그 위에 모양을 만든 구름은 한가로이 떠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닭을 많이 키우는 시대였는데 ... 우리 집에도 닭을 백마리 키웠지. 그 닭 먹이를 대느냐고 어머니한테 시달린 것
지금도 생각난다. 집 앞에는 논이 펼쳐져 있고, 밭에는 무가 파랗고 팔뚝 만한 몸매를 과시하고 있었으며, 나는 동네
꼬마들을 모아다가 함께 무서리를 해서 밭을 쑥밭으로 만들었어.
하긴 동네 꼬맹이들 십여명이 넘게 모아 무밭으로 쳐들어가 탐스럽게 파란 무를 뽑아 파란 무잎사위를 손으로 비틀어 와싹
떨구어내고는 파랗게 된 위에만 먹고는 남어지는 바닥에 버리고 또 다른 것을 뽑아먹었지.
집에 가도 밥이 없고, 엄마들은 밭에 가서 농작물하러 갔고, 텅 빈 집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 무밭
습격도 감행하게 된거지.
당시는 배고픈 시절이라 집에 와도 먹을 것이 없기는 동네 꼬맹이들 다 마찬가지였어.
우리집이 제일 컸어. 뚝 아래 집을 대궐처럼 지어놓고 살았지. 뚝 위로 올라가는 경사진 곳에 꽃을 잔뜩 심어
꽃집이라고 부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어. 아버지는 기간만 있으면 늘 꽃을 키우고 손질하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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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밭 주인은 소문을 듣고.. 꽃집 아이가 꼬맹이들을 잔뜩 모아 무를 뽑아먹는 것을 보았다는 길을 지나가는 아주머니로부터
정보를 듣고는 득달같이 달려왔지.
아버지는 무값을 물어주고도 나를 혼내시지 않으셨어. 나는 아버지가 부르면 매맞을 준비를 하고 조마조마했는데...
대신 어머니한테 혼났지. 어머니는 논바닥을 뒤져 미꾸라지, 개구리 잡아오라고 성화였어.
나는 매안맞은 것에 신이나서 단숨에 큰 그릇을 들고 논으로, 논두랑으로 달려갔지.
미꾸라지를 잡을 삼태기를 들고서...
나와 형은 논에 가서 개구리 잡기에 정신없었어. 아카시아나무를 꺾어 끝에 줄을 달고 지렁이를 줄에 달고
논에 가서 먹이를 찾는 개구리 앞에 흔들면 이녀석은 덥석 물어 낚시바늘에 턱이 꿰어 줄에 대롱대롱 걸려서
몸을 흔들었지.
이렇게 해서 가져간 큰 통에 가득채웠고, 형은 삼태기로 잡은 미꾸라지를 집으로 가져오면 제일 반가워하는
것은 어머니였어. 풀만 먹여가지고는 닭이 안크지만, 이렇게 개구리와 미꾸라지를 잡아 먹이면 한 달이면
다 자라서 백숙을 먹을 수가 있거든.
해떨어진 저녁에 커다란 그릇에 잔뜩 잡아온 미꾸라지, 개구리를 칼로 잘게 쪼개서 사료와 풀을 잘게 썰어
버무려서 그릇에 가득 담아 닭장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반가워하는지 가만히 있던 녀석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내게로 날아오는 거야.
병아리였던 녀석들이 제법 털이 굵어지고 몸통도 커지고 또 보름 지나면 어느새 중닭이 되는 거야
나는 매일 닭장에 들어가 잘 모르는데 어머니와 아버지는 놀라서 감탄하시는 거였지.
그 시절에 돼지,닭,소고기 사먹을 형편이 안되었는데, 내가 매일 개구리잡아다가 닭을 주니 집에서는 내가
영웅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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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들은 날개를 퍼덕이며 달려와 꼬고댁 ! 소리를 내며 소란을 피우고 이녀석을은 배를 채우고서야 잠잠했지.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야. 식욕을 채우고 나면 조용해지거든."
" 어느날 허름한 난방차림 중년남자가 우리집을 찾아왔어. 그리고는 아버지를 만나러 왔다고 하잖아.
나는 방으로 들어가 아버지에게 말했어.
아버지는 마당으로 나오셨지. 그러자 그 남자는 말했어.
< 동네 사람들에게서 듣고 왔습니다. 전기일하신다고... 그래요 ..? 네, 제가 오리농장을 하려고 하는데
전기공사를 해주셨으면 해서요.. 그래요? 몇 동이나 되는데요? 네, 7채를 지으려고 합니다.
오리요? 요즘 오리키우는 농장 못봤는데... 지난번 나의 친구가 오리 두마리를 줘서 가져와서 백숙해서
먹었지만, 영 무슨 맛인지 모르겠던데... 그 남자는 빙그레 웃고는 말했지.
네, 오리는 닭처럼 백숙으로 먹지 않고,,, 훈제로 먹어야 만이 제 맛을 알 수 있지요. 훈제..?
훈제가 뭡니까? 하고 아버지는 처음 들어서 되물었지. 네, 오리 배를 갈라서 내장을 꺼내고 열로 찌게되면
기름이 거의 다 빠지게됩니다. 그리고 나서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썰어서 불에 데워 소스와 함께 먹으면
아주 맛좋고 건강에 좋은 최고의 보양식이 됩니다.
지금부터 붐이 불 것입니다.
또, 오리고기는 성인병에 좋습니다. 소, 돼지, 닭고기와는 전혀 다릅니다. 기름이 굳지 않고 혈관에
붙어있지 않아서 많이 자주 먹어도 좋습니다.
그래요 ..금시초문이군. 어쨋든 젊은 사람이 꿈이 대단해요. 알았어요 공사 해드리지요.
참, 성함은...? 네, 김종수라고 합니다. 아, 그래요 나이는요? 30세입니다. 그럼, 애는 몇이나
두었습니까? 아직 결혼 못했습니다. 왜? 돈버느냐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그 후 아버지는 창고에서 전선을 꺼내고, 전기도구와 벨트 등을 차에 리어카에 싣고 오리농장으로
가서 공사를 해주었지. 어머니는 걱정스런 말을 하셨지. 또 공사해주고 돈 못받으면 어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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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은 말하고는 나의 옆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은 뒷좌석에는 배낭, 테이블, 침낭, 보따리, 보온밥통, 아이스박스, 낚시대, 등 빈공간이 없을 만큼
빽빽하게 생활도구로 가득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겠지요. 이 시간 만큼은 음악도 틀지않고 어린시절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주인님은 가난한 것 같았어요. 호텔에 가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어렸을 때
제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버지는 이따금 나를 데리고 오리농장으로 갔지. 젊은 노총각은 부화시킨 새끼 오리를 키우느냐고 땀을 뻘뻘흘리고
있었는데.. 오리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어.
그 넓은 건물에는 불빛이 24시간 밝히고 있었고, 새끼오리들은 노란 털 옷을 입고는 벌떼처럼 바닥에서
꽥꽥소리를 지르며 뒤뚱뒤뚱거리며 긴 주둥이를 내밀고 걸어다니고 있고, 물을 먹기도 하고 잠자는 녀석도 있었어.
다른 건물에는 제법 큰 녀석들이 우리 속에서 나란히 일렬로 앉아 앞에 놓인 사료와 물을 먹어대고 있고 그 광경을
볼 때마다 주인은 기쁨이 충만한 얼굴로 아버지에게 자랑하였지.
아버지는 이렇게 많은 오리를 누가 다 먹을 지 걱정이 되셔서 물었어.
< 여보게 젊은 사장. 지금 우리나라는 먹고 살기가 힘든데 자네도 알겠지만, 월남으로 가서 먹고 싶은 김치도
먹지 못하고 부모형제, 사랑하는 부인과 귀여운 아이들 보고 싶어도 참고 목숨을 던져서 달러를
벌어오기 위해 정글에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또,박정희대통령은 불호령이야 !
지원병을 착출해서 빨리 보내라고 말이지.
여자들은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팔기 바쁘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 돈과 벌고, 독일로 간호사로 수출하는 세상에
오리가 성인병에 좋다는 것 귀에 들어오겠나? >
아버지는 어이가 없어했어. 하지만 확신에 야망으로 가득찬 젊은 오리농장 사장의 고집을 꺾지 못했어.
< 네, 맞습니다. 하지만 돈 있는 사람들은 다 사먹습니다. 입소문으로 달려와 먹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몸에 좋다고 하면 바퀴벌레도 잡아 먹을 겁니다.>
꿈으로 가득 찬 사장의 눈은 신념으로 눈동자에는 빛이 나오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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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대통령의 중화학공업으로 경제를 일으키자는 장대한 계획은, 저는 당장은 아니지만,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소득이 높아지고, 전국에 상류층을 대상으로 합니다.
전국 체인점을 만들어 대도시, 대전,대구, 광주, 인천, 부산, 포항, 울산, 체인점을 추진 중입니다.
아마 오리를 키우는 사람은 저 밖에 없을 겁니다.>
젊은 사장은 자신있다는 듯이 말했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부정적이었어.
1970년 초에는 학교에서 도시락 싸오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미국에서 가져온 옥수수빵을 배급으로 주었는데,
일주일에 두번 밖에 배당이 안됐거든.
여름이 다가오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나와 형들은 논으로 갈 수가 없었어.
물이 허리까지 차올라서 개구리와 미꾸라지를 잡을 수가 없거든, 잘못하면 빠져 죽는다고 못가게 하셨어.
닭들은 그날 저녁 꼬박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 나는 이녀석들이 굶어죽지나 않을까 걱정돼서 자주 닭장을 가봤어.
며칠을 굶어도 닭은 죽지않는다고 말씀하셨지.
아버지는 걱정하셨어. 그럴 때마다 담배를 두개를 한꺼번에 피우셨어. 두개를 입에 물고 피운다는 것이 아니라,
담배 필터를 잘라내고 한개 끝에 붙여서 길게 만들어 피우셨어.
걱정을 할 때, 속상할 때마다 늘 그렇게 피우곤 하셨거든.
쉬지않고 쏟아지는 비때문에 닭장에 가보면 닭들로 새어드는 빗물에 털이 젖어 오들오들 떨고 서로 모여서 얼굴을
옆녀석 날개 털 속에 푹 파묻고 있었지.
그때는 고속버스도 없었지. 버스를 타려면 중랑천 뚝길을 십리 길을 걸어가야 만이 버스를 탈 수 있었고, 요금이
5원이었던가 그랬지. 명절에 큰아버지 집 제기동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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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난 듯이 아버지는 말하셨어. "그 오리농장은 어떻게 될까? 논이 전부 다 물바다가 됐는데.."
그러자 어머니는 말하셨어.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요. 우리집보다 지대가 낮으면 물 속에 잠겼겠지."
그러자 나는 우산을 들고 문을 나서자, 어머니가 물으셨지. "어디 가니? 이 비오는데..."
"뚝에 올라가서 오리농장을 봐야겠어요."
나는 말하고 우산을 펼쳐 뚝으로 올라가서 오리농장 쪽을 바라보았지. 그런데 그 주변은 논이 안보이는 것처럼
농장 지붕 만이 물 위에 떠있는 것 아니겠어
나는 집으로 달려가서 말했어.
"아버지. 오리농장이 지붕 밖에 안보여요."
그러자, 아버지는 혀를 차셨지. 그리고 특유의 담배 두가치를 꺼내 한 개를 필터를 손으로 비틀어 잘라내고
다른 담배 한 개 끝에 끼어넣자, 두개의 담배개비가 길게 한개로 되자, 입술에 물고, 불을 붙이고
빨기 시작하셨지. 늘 걱정이 생기면 그렇게 담배를 피우셨지. 재를 털며 말하셨어.
쯧,쯧, 오리가 다 익사했겠구나 !"
" 어머, 그럼 어쩌나, 그 젊은 총각은 전재산을 다 털어서 오리를 키운다고 들었는데..."
어머니는 걱정이 가득해서 말하셨어.
저녁이 되니까. 비는 멈추었지. 어둠이 일찍 찾아온 것 같았어.
이튿날 아침 아버지와 나는 일찍 일어나 뚝 위로 올라가 보았어. 커다란 물이 뚝 바로 5미터 정도까지
차서 흐르는 것 아니겠어. 그렇게 사납게 흐르는 물을 지금껏 본 적이 없었어.
조금 있으니까 어머니도, 형들도 옆집 아저씨와 아이들 뚝방에 집짓고 사는 모든 사람들이 걱정돼서 다
올라와 있는거야. 마치 날리라도 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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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은 흘러서 한강으로 간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한강은 얼마나 클까. 하고 나는 궁금했어.
흘탕물이 되어 물 위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떠내려왔어. 돼지가 둥둥떠서 떠내려오고 있었고, 꿀꿀거리며 말이지.
그 무거운 돼지는 수영을 하는지 가라앉지도 않더라. 배를 하늘로 내밀고 있다면 죽었다고 보겠지만.
멋진 자개로 수놓은 장농도 떠내려오고 세숫대야. 등 다행이 사람은 떠내려오지 않는 거야.
그렇게 며칠 지나니까 논도 제모습을 찾고 나는 닭먹이 주려고 개구리 사냥과 미꾸라지 잡으려고 삼태기를 들고
형과 나는 부리나게 논으로 달려갔어.
닭장을 보니 이녀석들이 며칠 개구리를 못먹어서 그런지 비실대는 것 같아서 안스러웠거든.
해가 배봉산 너머로 넘어가고 나서 형과 나는 커다란 통에 개구리와 미꾸라지를 가득 잡아왔지.
아버지와 어머니도 나와 보시고는 " 많이 잡았구나. 어서 닭사료와 풀을 가져와 버무려서 줘라."
"알았어." 나는 대답하고 오랫만에 하는 것처럼 도마에 개구리를 올려놓고 칼로 두들기기 시작했어.
개구리를 잘게 썰어야 했거든 그래야 작은 녀석들도 먹을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큰 닭들만 먹는다고
어머니가 말했어.
옆집 누나들은 나와서 구경하는데 내가 칼을 도마에 두들기는 것을 보고 "어머, 징그러워.." 하고 눈을 돌리더라.
형은 그릇에 미꾸라지를 담아 소금을 뿌리자, 미꾸라지들이 발광을 하는 거야. 미꾸라지에게는 소금이 독약이라더라.
잠시 후 미꾸라지들이 하얀 거품을 다 토해내고 축 늘어졌어. 나는 한마리씩 꺼내 칼로 난도질쳐서 개구리와 섞고,
또 사료를 뿌리고 잡초를 잘게 썰어 막 버무렸지 마치 김치를 무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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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그릇에 나눠서 담고 닭장에 가니까 난리 이런 생 난리가 있을까. 닭들이... 그렇게 축늘어져 있던
병걸린 것처럼 하고 있던 녀석들이 웬 힘이 그렇게 있는지 날아올라서 내게로 달려들어 먹이통으로 뛰어드는 거야.
나는 깜짝놀라서 뒤로 자빠졌어. 바닥에는 닭똥이 빗물에 범벅이 돼서 나의 엉덩이는 닭똥이 달라붙어 냄새가
고약하게 나더군.
겨우 빠져나온 나는 방에 들어와 닦고 나서 식구들과 밥을 먹고 있을 때, 오리농장 걱정하고는 모두가 잠들었지.
이튿날 옆집 아줌마가 달려와서 어머니에게 말했어.
"아, 글쎄 그 오리농장 총각이 목매달아 죽었대요. 에구 불쌍해라."
"언제?"
어머니는 놀라서 물었지.
"물이 다 빠지고 나니 오리가 싹 죽어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길래 동네사람들이 갔더니 그 총각이 농장 한 가운데
천정에 매달려 있다잖아요. 지금 경찰서에서 와서 조사하고 있대요."
나는 놀랐어. 그처럼 돈을 벌겠다는 꿈에 가득차 있던 그 아저씨가 목숨을 끓었다는 데에 충격받았지.
어느 날. 아버지는 강아지 한마리를 가져오셨어. 나는 얼마나 기쁜지 가슴에 안고 입을 맞추고 했지.
강아지 입에서 초켤렛 향수가 나더라. 그녀석이 잠자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나는 저녁에 몇번씩 나와
강아지 잠자는 모습을 보고 했지.
나는 신이 났어. 학교 갔다가 오자마자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는 개구리 낚시대를 창고에 가서 찾아들고
논에 가서 개구리 큰 놈 만을 찾기 시작했어.
집에 와서 개구리 몸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 손에 칼을 들고 뒷다리를 내리치면 사람피처럼 빨간 피와 내장이
쏟아졌지.
다리를 골라서 물에 씻어서 부엌으로 가서 냄비를 찾아 불에 올려놓고 다시 와서 몸통을 칼로 다졌지.
작은 병아리와 중닭들도 먹을 수 있도록. 잘게 칼로 다진 다음 풀을 자르고 사료를 섞고 닭장으로 가서
닭 먹이통에 넣어주고는 부엌으로 가서 냄비를 들고와서 뚜껑을 열면 노란 기름이 가득 떠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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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은 내가 듣거나 말거나 옛추억에 젖어 말했습니다. 마치 라디오 성우가 여운을 남기고 말하는 것처럼
"목포가 얼마 남지 않았구나!"
주인님은 정신차린 듯이 말했습니다.
"휴.. 그때 그 누나들은 지금은 어디에서 살까. 좋은 사람 만나 우리 어머니들처럼 아이들을 많이 낳았을까.
아니면, 나처럼 결혼 못한 누나들도 있을까?"
주인님은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는 안피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담배연기를 후~하고 불었습니다.
창문을 조금 열고는 담배연기를 반복하며 앞유리로 쏟아냈습니다.
마치 달리는 차 앞으로 던져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연기는 곧 창문 밖으로 빨려나갔습니다.
어머니는 젓가락을 가져와서 다리를 건져 접시에 올려놓고 소금을 찍어 내 입에 넣어주셨어.
<먹어봐, 아주 고습지? > 정말 개구리 뒷다리 맛이 입에서 살살 녹아내렸지.
어머니도 먹고 남은 것을 강아지에 먹이셨어. 어머님은 닭장에 가시더니 기웃거리며 살피시는 거야.
<알이 나올 때가 됐는데..> 말하셨어. 나는 궁금했어. 닭이 알을 낳는 것을 보지못했거든.
여지껏 어머니는 숫컷 만을 사왔거든... 고기로 쓰기에는 숫컷이 빨리 자라고 또 고기 양도 많이 나오기 때문이었어.
이번에는 암컷 병아리도 30마리 사오셨지. 알을 낳게 하기 위해서...
나는 강아지 코에 입을 맞추고 개집에 넣어주고 방으로 들어갔어. 아침에 일어나니까. 어머니가 즐어워하신
얼굴이 지금도 기억나지.
<여보, 글쎄 닭이 알낳는 소리를 듣고 가보니 세상에 알을 다섯개나 낳았지 뭐유.~>
말하시고 보여주셨지. 아버지는 뚝 넘어에 배추와 열무, 호박을 심고 방에 들어오시고 나서 엄마처럼 몸시
기뻐하시는 모습이 기억난다.
어머니는 밥을 큰 그릇에 넣고 양념간장을 만들어 닭장에서 가져온 알을 비벼보라고 하셨지.
식구들은 비빕밥을 입에 넣고 삼키고 나자 너무 맛있다고 난리법석이야.
<야, 정말 고습다.> 어머니는 감탄하셨지. 보통 시장에 파는 알은 하얀색인데 비해 닭장에서 꺼낸 알은
누르스름한 거야. 닭이 먹는 사료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거야. 어머니 말에 의하면 미꾸리,개구리가 섞인
사료는 닭에게는 보약과도 같은 거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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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나는 닭이 꼬꼬댁하는 소리를 듣고 아침 일찍 일어나 닭장에 가는 습관이 됐지.
닭들도 내가 들어가면 가만히 있어. 내가 먹이를 매일 넣어주니까. 기억력이 없는 닭대가리들도
나의 모습은 기억하는 가봐. 바구니에는 닭이 방금 알을 낳아 대여섯 알이 낳아 있는거야
손에 넣으면 따끈따끈하거든 ... 그 감촉을 지금도 나의 가슴에는 훈훈해.
주인님은 쉬지 않고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걱정됐습니다. 저렇게 동심에 젖어있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고 말이지요.
개구리 뒷다리를 강아지에게 먹이기 위해 논두렁에 가서 낚시대를 던졌지.
낚시바늘에는 지렁이가 매달려 있었는데 커다란 개구리 녀석은 쉽게 바깥으로 나오지 않아.
그래서 낚시대를 길게 해서 지렁이를 녀석 코 앞에다 좌우로 흔들면 강심장이던 왕개구리도
마침내는 덥석 물었지.
얼마나 큰지 낚시대가 휘어져 둥그렇게 원을 그릴 만큼 무거워 아슬아슬하게 낚시대를 뿌러뜨리지 않고
개구리를 왼손으로 잡을 때는 기쁨으로 넘쳐났지.
집에 가져오니까 어머니도 반가워하시는 거야. 개구리 뒷다리를 냄비에 쪄서 소금에 찍어 먹어보시고는
너무 고습고 육질이 연해서 이번에도 큰 녀석들을 잡아왔는지 매우 궁금해하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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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석쇠로 구워보자고 어머님이 말씀하셨지. 나는 개구리 뒷다리를 잘라 널판지 나무 위에
핏물을 씻고 올려놓고 있을 때 강아지가 어디 갔다가 내 곁에 달려왔습니다.
녀석은 벌써 강아지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고 제법 개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어.
빨리 자라서 그런지 조금 말른 것 같은데, 그래도 살이 넓적다리에는 제법 있었지. 다른 집 개는
삐쩍 말라서 병에 걸린 개 같았지.
어머니는 개구리를 많이 먹여서 살쪘다는 거야. 한창 성장할 시기여서 살이 몸에 있을 겨를이 없다는 거지.
내가 사료를 개구리와 섞어 닭 먹이를 만들어주고 닭장에서 나왔을 때, 고소한 향기가 마당을 감돌았어.
어머니는 석쇠 위에 개구리 뒷다리를 얹어놓고 익히는 데 노란 기름이 자글자글 끓는 거야.
개구리는 무얼 먹고 살기에 이렇게 기름이 잘잘 흐르는지 참 궁금했어.
소금을 살짝 뿌리고 입에 넣고 뜯으시더니 너무 맛있다는 거야. 어머니는 살을 조금 뜯어 내 입에 넣어주어서
먹어보니까 너무너무 맛있는 거야. 아마, 대통령도 이 맛을 모를거야.
어머니는 뒷다리 몇개를 구어서 남겨서 아버지 오시면 드리겠다고 말하자, 마침 아버지가 오셨지.
아버지도 마당에 나오셔서 먹어보시더니 참으로 맛이 기막히다는 거야.
개는 냄새에 미치겠다는 듯이 마당을 껑충껑충 뛰고 있었고, 목줄을 묶어놓지 않았다면 난리법석을 피웠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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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고속도로 날씨는 변화가 심했습니다.
눈이 펑펑내리다가 햇님이 고개를 내밀고 다시 하늘은 구름을 몰고 왔습니다.
"눈이 또 왔으면 좋겠다."
주인님은 말했습니다.
"개띠들은 눈을 무척 좋아하지. 58년 개띠가 왜 유명한가 하면... 당시 1958년도에 가장 많이 출산을 했다는 거야.
또 박정희 대통령 아들 박지만이도 나와 동갑이지. 우리나라 속담에 아니땐 굴뚝에 연기가 나올까? 라는 말이
있는데 나도 공부를 못했지. 그래서 집에서는 시험에 떨어지면 어떻하나? 하고 부모님은 걱정하셨지.
그런데, 나의 세대부터 중학교 입시를 추첨으로 하겠다고 발표한 거야. 나는 껑충껑충 뛰었지. ㅋㅋ"
주인님은 하늘을 자주 보았습니다. 눈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눈이 오면 개들이 좋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는 거야. 나중에 소문이지만... 중학교 입학시험을 추첨으로 한 이유는
박정희대통령 아들 박지만이 나처럼 공부를 못해서 대통령이 추첨을 하라고 지시했다는 거지.."
까만 학생복에 한자로 中자가 새겨진 까만 모자를 쓰고 학교가니까 시간마다 선생님이 바뀌니까 참 좋더라.
물론 담임선생님도 있지만, 과목마다 맡은 선생님이 들어와서 가르치니까 더욱 재미있었어.
특히 생물, 지리,국어, 음악선생님이 여자였어. 그러니 누나 같기도 하고 정말 좋더라.
28
남자 목소리만 들었던 국민학교와는 천지차이였어. 지금도 여자선생님이 다정하게 말하던 것이 기억나!
담임이었던 생물선생님이 미국으로 이민간다고 하고 마지막으로 기념촬영했어. 지금은 나이가 70이
넘었겠지. 미국에 사는 교포와 결혼해서 아이낳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을까.
그후 국어 여선생님이 학교후배였는데 반학생들이 보고싶다고 미국에서 보낸 편지를 읽어주시던 추억이...
다정한 누나 같은 목소리로 읽어 주시던 내용을 반 학생 모두는 눈을 감고 들었지..
나를 포함하여 반 학생들은 눈물을 찔끔찔끔흘렸어. 그리고 안타까워했지.
<결혼이 뭔지...>.
그러나 역시 난, 공부에 취미와 소질이 없나봐. 성적이 중간을 넘지 못했거든.
그렇게 중학교 생활에 적응하던 어느 날 이었어.
저녁 3시 경에 집에 오니까 매일 마중나오던 개는 안보이고 형들은 내 눈치만 보는거야.
마루에는 이상한 냄새가 풍기고. 개구리 냄새도 아니고 이것이 무슨 냄새일까.
큰 형이 나의 눈치만 보다가 내게 말했어.
"개가 죽었으니 어쩌니? "
" 개가 죽어 ? 나는 너무도 놀라서 비명을 질렀어. "
"그래. 약 먹고 죽었단다."
어머니가 힘없이 말하셨어. 어머니도 마음이 아퍼 무척 상심하는 얼굴이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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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무슨 약을 먹었는데..? 누가 먹였는데? "
"밭 주인이 소고기에 쥐약을 적셔서 놓았는데, 글쎄 그것을 먹었더구나. "
"그 비싼 소고기를 왜 밭 주인이 쥐약을...
" 개들이 밭으로 뛰어들어가 운동장을 만들어 놓으니까. 열무와 배추, 쑥갓,부추 농사를 짓지 못한다는 거지 뭐니.?
나는 또 한번 충격 속에서 머리가 멍 하고 귀에서는 윙윙 마치 벌이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
오리농장 사장이 죽었을 때는 그저 사람이 죽었구나. 그처럼 젊은 아저씨가 목을 매달아 죽어버리나니..
그 충격을 잊기까지는 나도 시간이 꽤 걸렸는데...
내가 가장 아끼고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개 머리를 쓰다듬어줄 때마다 녀석은 낑낑대면서 앞다리로 나에게
안기려고 달려들었고, 학교에서 돌아올 때 쯤이면, 녀석은 그 멀리서 달려오는 거였어.
그 속도가 너무도 빨라서 멈추느냐고 먼지를 일으키고 그렇게 나를 반가워하던 녀석이 죽었다니...흑 흑
나는 마루에 털썩 힘없이 앉아서 엉엉 목놓아 울었어. 그러자 엄마가 화를 내시면서 꾸중하셨지.
"개가 죽은 것을 가지고 그렇게 목놓아 울면 어떻해! 남들이 알면 집안 사람이 죽은 것으로 알겠다!"
어머니는 화를 내셨지 뭐야. 나는 울음을 뚝 그치고 마당으로 달려 나왔지.
나중에 알았지만, 마루에 커다란 바구니에 속에는 개고기가 잔뜩 쌓여 있다는 것이었어.
개가 쥐약을 먹고 쓰러져 입에서 거품을 품으면서 헉헉대고 있을 때 바로 내장을 꺼내 버려야 만이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거야. 쥐약 독이 몸 세포로 번지면 먹지 못한다는 거지.
주인님은 중얼거리고 나서 나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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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은 차를 갓길에 세우고서 엔진을 껐습니다.
그리고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습니다.
아마 그 시절의 추억으로 돌아가 있는 듯 했습니다.
"국민학교 시절에 아버지가 공사를 해주고 돈을 받지 못해 학부형으로서 학교에 나갈 수도 없었지.
이버지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
대머리 5학년 담임선생은 내가 학비를 못내고 자꾸 미루니까 나한테 별명을 지어주었지. 궁금하지 않아? "
주인님은 나를 보고 아니 상체를 내 앞으로 끌어다가 얘기하였습니다.
" 뺀질이야.. 나를 부를 때는 뺀질이는 언제 육성회비를 낼 거야? 4학년 것도 아직 남았는데..
엄마를 오라고 하던지 아니면 아버지라도 오게 해야잖아."
당시는 의무교육이었어 국민학교까지는...
그런데도 학교선생은 학비를 내라고 성화였지. 다행이 의무교육이라 학비를 2년 동안 못내도 박정희대통령은
졸업을 시켜주었어.
6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날, 대머리 담임선생이 나를 조용히 불러 갔더니, 그도 사람인지 섭섭해 하더라.
"이제 나한테 뺀질이라는 소리 안들어서 속이 시원하겠다. 정말 집이 그렇게 가난하니?"
그는 못내 의심스러운 듯한 눈을 가지고 나를 보고 말했어.
"네, 아버지가 전기공사했는데 공사대금을 안주고 도망갔어요. 그리고 또 아버지는 오리농장에 가서
전기 일을 해주었는데.. 젊은 농장 주인은 목메달아 죽었어요."
"왜 ?"
" 장맛비로 오리농장 지붕 만 남기고 전부 다 물 속에 잠겼어요."
31
나는 너무나도 한스러워 엉엉 울면서 말했지. 여지껏 대머리선생하고 이렇게 진지하게 뺀질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친절하게 해주기는 일 년 내내 처음이었거든.
"그랬구나. 그럼 왜 엄마는 학교에 한 번도 오지 않는 거니?"
대머리 선생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지.
"어머니는 서모에요. 내가 6섯살 때, 우리집으로 들어왔어요."
그 말을 듣자, 대머리선생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내년에는 졸업이니까. 학교 매일 하루도 빠지지않고 나와야 한다. 내가 너의 사정을
잘 기록해놓을게. "
그 다음 해 겨울방학이 끝나고 학교 갔더니 담임선생은 젊고 안경을 쓰신 미남선생이었어.
나는 여자선생님이기를 바랬는데... 여복이 없나 봐.
새로운 담임선생은 육성회비를 못가져와도 재촉하지 않고 그래, 괜찮다 하시면서 나의 어깨를 안아주셨지.
졸업식 하루 전에 선생님은 아이들을 모두 모아놓고 풍금을 치면서 노래를 한 곡 가르쳐 주었어.
오전 내내 그 노래만 가르쳐주고는 말씀하셨지. "너희들은 이제 내일부터는 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노래를 가르쳐주었는데. 아마 이 노래를 부르지도 않고 곧 잊어버릴거다. 그래서 오전 내내
이 노래를 가르쳐준거다. 그럼 잘 가거라.
6학년 선생님이 우리를 마지막으로 보내면서 하신 말대로 그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선생님 얼굴 모습은
지금도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그 빛나는 졸업장을 받고 교정에서 다같이 노래를 부르는 영광을 안았어.
중학교부터는 의무교육이 끝나 학비를 내지 않으면 학교 더 다닐 수 없다는 거야. 담임 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불러
말했어. 학생들이 다 집에 가고 난 뒤에 나를 남으라고 하고는...
주인님은 자신의 몸을 내게 다가와 나의 얼굴로 향하지 않고 오른손을 쭉 뻗어 팔로 나의 허리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놀랐습니다. 어~엇 !
"아니? 너 S라인 이구나.~"
주인님은 놀라서 깜박이 버튼을 누르고 차를 갓길에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번쩍들어 자신 무릎 위에 앉히고
나를 뚫어지게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놀라움을 금치못하겠다는 듯이 두 손으로 내 허리를 훑어내려갔습니다.
"아, 너를 에스라인으로 만들었구나. 너는 여자 ! "
나는 도무지 무슨 말이지 몰랐습니다. 에스라인이 뭐고 여자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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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은 곧바로 목포로 가려다가 고창 선운사 이정표를 보고 나오며 말했습니다.
"좋은 곳을 보여줄께."
주인님은 기분이 좋은지 내게 말했습니다. 마치 연인에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고창에는 풍천장어와 복분자가 있어. 두 가지를 함께 먹으면 정력이 솟는다는 거야.
어느날 할머니는 소문을 들었어. 마을 할머니가 산딸기를 따서 담가 할아버지를 주었더니,
글쎄, 할아버지가 방에서 오강에 소변을 뿌리는데..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린다는 거야. ㅋㅋ
주인님은 뭐가 우스운지 이를 드러내보이며 낄낄거렸습니다.
할아버지 오줌줄기에 오강이 움직인다는 거야. 그후 할머니는 신혼시절의 기분을 냈다는 거지 뭐야.
복분자 효험에 재미를 본 할머니는 풍천장어를 사와서 석쇠 위에 엊어놓고 구우면서 소금을 뿌리는데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거래. 신이 난 할머니는 식기전에 영감~ 어서 드시유, 따뜻할 때
먹어야 효험이 있다고 하니...
할머니는 밤이 기다려졌다는 거야.. 그래서 지금도 음식에는 궁함이 있다는 거지 !
나는 도무지 몰랐습니다. 정력이 무엇이고, 할마버지가 쉬를 하는데 오강이 움직인다는 둥...
뭐, 그래서 할머니가 또다시 아이라도 낳았다는 것인가요? 하고 묻고 싶었습니다.
구약성서에 하느님 천사가 와서 할머니에게 와서 당신은 곧 임신을 할 것이라고 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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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은 감을 가져와 내 앞에 놓아주었습니다.
<선운사에서 가져 온 거야.> 주인님은 내가 에스라인으로 알고는 무척 친절해졌습니다.
절에 눈이 내리면 그렇게 신비로울 수가 없어. 톨게이트에서 진입하고 목포를 향해 달렸습니다.
빨리 가야지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 밤 12시에 도착하겠어. 완도까지 아직 한참 가야하는데.
목포 톨게이트를 나오자 주인님은 갑자기 나를 챠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주인님은 차를 갓길에 세워놓고 나의 허리에 손을 뻗치고는 번쩍 안고는 차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머, 이 양반이... 나는 놀랐습니다. 여지껏 차에 쳐박아 놓던 양반이었으니까요.
주인은 중얼거렸습니다.
< 너도 기억 해, 여기서 저 북한 끝 신의주까지가 이어지는 도로야. 통일이 되면 너를 신의주 구경시켜 줄께.>
다시 나를 조수석에 태우고 이번에는 안전벨트를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 왜 나를 묶는 담? 쳇 ! >
나는 투정했습니다. 여지껏 하지 않던 짓을 해서 말이지요.
시동을 켜자, 라디오에서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 김부선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2001년 자신이 운영하는 유흥주점에서 박정희대통령 아들 박지만씨와
동료 연예인이 함께 필로뽕과 마약을 사용해서 경찰에서 조사받았는데, 자신들은 감옥에 보내고 박지만씨는
재할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해서 사회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법은 만인에게 공평해야 한다면서
김부선씨는 당시를 회고하며 말했습니다.>
"그랬군. 그리고 변호사 30대 초반 아가씨아 결혼을 할 수 있었구나 ! 지금은 아이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 !"
주인님은 중얼거림이 아닌,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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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국가경제를 일으켜서 굶주림에서 해방될 수 있던 옛 향수를 잊지않고 있는 국민들의
가슴 속 깊이 남아있는 기억을 밖으로 분출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한나라당 수뇌부들은 대선 패배로 인한
당이 분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잊혀져 있던 아가씨, 박근혜씨를 당대표로 불러 앉혔어.
고운 손을 아가씨 시절 그대로 가지고 있는 박근혜씨는 처음 연설할 때, 목소리를 떨렸고, 마이크 앞에서 말할 때는
부자연스러웠는데, 지금은 아주 또박또박 세련되게 잘하더라. 말도 절제하고, 끊는 것도 능숙능란한데 정치인 다 됐어.
주인님은 중얼거렸습니다.
부모님 두 분이 총 맞고 돌아가셨을 때, 아가씨였던 그녀의 충격과 슬픔은 얼마나 컸을까?
나도 지금 기억이 생생해, 박정희 대통령이 광복절 강단에 서서 연설하는데 문세광이었던가,
예술의 전당에 들어와 총을 쐈는데 단지 상체만 조금 숙였을 뿐이었어. 다른 대통령 같았으면 바닥에
납작 엎드렸을거야. 대통령 뒤에 의자에 앉아 있던 육영수 여사가 대신 총에 맞았어.
어떻게 검문했기에 권총을 가슴에 숨기고 들어오게 했을까. 금속탐지기가 없었을까?
멍충이 ,밥버러지들...!
주인님은 납득할 수 없어 화가 잔뜩 난 목소리였습니다.
35
어둠이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주인님은 헤드라이트를 키자 도로가 환해졌습니다.
나는 신기했습니다. 차에서 불빛을 발하다니... 마치 태양처럼...
목포 시내를 지나자 방파제를 지나고 있었고, 왼편에 배가 떠있었으며 배에서는 불빛이 새어나왔습니다.
보성이 어디더라? 그렇군 저쪽이구나.
주인님은 이정표을 보고 옛기억을 되살리며 차를 운전했습니다.
그렇게 한참 달리고 있을 때, 사방은 짙은 어둠으로 감싸고 있었습니다.
지난 번에 올 때는 나 혼자라서 오가는 차도 없어 무척 쓸쓸했는데 지금은 네가 있으니까 외롭지 않구나.
주인님은 말하고는 오른 손을 뻗어 나의 에스라인을 더듬었습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 어머나 ! 하고 외쳤습니다.
해남 방향으로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어둠의 장막을 헤치고 나아갔습니다.
음악도 틀지않고 주인님은 도로에 집중했습니다. 한참을 가더니 이정표가 어둠 속에서 차 불빛에 의해
나타났습니다.
왼쪽은 완도, 오른쪽은 해남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주인님은 왼쪽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완도가 다와가는구나.
주인님은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움찍하는 것도 느끼지 못했는가 봅니다.
완도다리를 건너고 주인님은 계기판을 보았습니다.
500킬로를 달려왔구나. 기름을 넣어야 겠는 걸. 중얼거리고 나자 주유소가 보였습니다.
차가 환하게 밝힌 곳에 대자 사람이 달려왔습니다.
" 얼마넣을까요? "
"오만원이요."
주인님은 짧막하게 말하고 지갑을 꺼냈습니다. 파란색 지폐를 다섯장을 꺼내고 창문 밖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 저기 신시도 다리 개통됐습니까? "
"네, 됐어요. 안녕히 가세요."
주유원은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36
주인님은 신지도 다리를 건너 파도가 철썩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불빛따라 천천히 나아갔습니다.
초겨울 바닷가 날씨는 추었습니다.
차를 해안가 백사장으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쏴아~ 소리를 들리는 곳에 정차하고 트렁크를 열어
텐트를 꺼내고 모래 위에 쳤습니다.
그리고는 거위털 침낭과 에어벼개, 메트리스를 뒷문을 열고 꺼내고, 텐트 안에 들어가서 폈습니다.
돗자리를 펴고 나의 에스라인 허리를 팔을 뻗어 자신의 허리에 붙이고 돗자리 위에 옮겨놓았습니다.
나는 이제 움찔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후라이팬, 버너, 가스등, 소주와 김치를 꺼내 돗자리 위에 놓고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스등에서 나오는 불빛은 밀려오는 하얀 파도소리와 함께 후라이 팬 위에 삼겹살이 구어지는 냄새와 함께
해변의 밤이 그토록 멋질 수 없었습니다. 잠시 고기가 구어지자 후레쉬를 켜더니 고기가 익었나 하고 확인하고는
소주잔을 꺼내 가득 따라서 내 입에 갖다 대는 것이었습니다.
음, 하느님이 네에게 입술을 만들었으면 더욱 좋았을텐데.. 내가 립스틱을 짙게 발라주었을거야.
주인님은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입술이 , 립스틱이 무엇일까 하고 궁금했습니다.
그리고는 소주잔을 자신의 입에 털어넣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바다를 보면서 드넓은 대자연을 보며 한번에 마시면 마음이 바다처럼 되는 거야.
하고 내게 말했습니다.
고기가 구워지는 냄새가 났습니다. 주인님은 고기 한점을 젓가락으로 짚고 내 입에 대었다가는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소주를 따라 얼굴을 들고 단번에 입에 털어넣었습니다.
아, 술맛 좋구나~
37
주인님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바람이 불어와서 추위를 느꼈는지 옷을 꺼내 내 어깨를
덮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ㅋㅋ 웃었습니다. 주인님은 술이 취해오는 것 같습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는 힘껏 빨더니 소리내며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연기를 뿜었습니다.
파도는 굉음을 울리며 밀려왔습니다. 발끝 저만큼에서 흩어지고는 아쉽다는 듯이 물러갔습니다.
담배연기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삼켜버렸기 때문입니다.
주인님은 가슴 속의 한을 털어버리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반복해서 후~뿜어내고 꽁초를 꺼서는
빈 담배갑에 넣었습니다.
배낭을 가져와서는 취사도구를 담고 나서 돗자리를 걷고 가슴에 나를 안고 텐트 앞으로 와서는
차안에 배낭을 넣고 텐트 속으로 나를 안고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소리쳤습니다.
어머머.. 별꼴이야....
텐트 안으로 들어오자 바람은 들어오지 않았고, 메트리스는 쿳션이 좋았습니다.
거위털 침낭은 포근하였으며 주인님은 바지를 벗고 츄리닝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나는 긴장됐습니다. 나를 자신의 옆에 팔벼개를 하는 줄 알았거든요. 다행이 주인님은 나를
문 옆에 세워놓고 목에 힘주며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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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초 서 ! > 말하고는 텐트 문 쟈크를 조금 열어두었습니다.
나는 보초 서 라는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습니다. 왜 나를 출입구에 세워놓고 자신만이
편한하게 누워 잠을 자는지를...
나의 마음은 오락가락하고 있었습니다.
주인님은 술에 취해 눕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졌습니다. 나는 문 앞을 똑바로 보고 있었는데..
텐트 앞에서 무엇인가 텐트를 밟는 바스락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물체를 느꼈습니다.
작은 소리로 보아 사람은 아니고 날쌘 동물인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다행히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는 물체는
열려 있는 텐트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다이아몬드처럼 어둠을 가르고 빛나는 그 두개의 광선은
나를 벌벌 떨게했습니다.
저녀석이 들어와 주인님을 해치면 어쩌나 하고 나는 걱정했습니다.
하느님이 나에게는 손,발을 휘둘러 상대를 제압하게 할 능력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나에게는 나를 지킬 만한 날카로운 불곰 같은 발톱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나가더니 텐트 밖 주위를 돌면서 염탐하는 것이었습니다. 섬뜩할 눈빛을 발하는 녀석은 주인님 머리쪽으로 걸어갔고,
잠시동안 자리를 뜨지않아 나는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지지 않아 하느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니 세상에 무ㅡ슨 눈이 저렇게 다이아몬드처럼 번쩍이는지 나는 너무 무서워 소름이 끼쳐서 오줌을 흘릴 뻔 했습니다.
생리가 있다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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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녀석이 다시 문으로 날쌘 발을 들어 걷고 나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나도 눈에 힘을 주어 광선을 날려보냈습니다.
그러자, 녀석이 발걸음을 돌리며 텐트을 떠나는 것을 느끼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느꼈습니다.
휴~ ... 나는 십년을 감수한 것처럼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녀석이 가버리자 파도가 밀려오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수십번은 철썩거렸을텐데
긴장해서 듣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무아지경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밤새도록 파도는 쉬지않고 밀려왔다가는 가버리기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다행이 그후 아무도 텐트를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
주인님은 아는지 모르는지 코를 드르렁거리면서 잠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의 숨소리는 일정한 것으로 보아 건강에는 아직 이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밤이 그렇게 긴 줄은 몰랐습니다. 파도소리가 밤에는 왜 크게 들리는지도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밝은 빛이 텐트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나는 주인님을 흔들어 깨우고 싶었습니다. 긴 밤을 내가 당신을 지켜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인님은 기지개를 켜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어.. 수고했어. 말하고는 내개 왼손을 뻗어 나의 에스라인을 잡고 자신의 자리로 당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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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깜짝놀라서 어머 ! 외쳤지만, 역시 소리가 되어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거위털 침낭은 주인님 체온으로 따뜻했습니다. 문득 나는 님의 향기를 맡고 싶었습니다.
코를 킁킁거리며 곰 특유의 냄새 추적을 하였습니다.
주인님은 자신의 자리에 나를 눕히고 거위털 침낭을 덮어주고, 자신은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밖에서 쟈크를 닫아주었습니다. 그리고는 텐트 앞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기지개를 크게 하고 나서
야~호 ~ 오... 대자연이여...! 외치고는 산책하는 것이었습니다.
밤새도록 파도가 왔다 가기를 수없이 반복하여 백사장은 마치 시멘트 포장한 것처럼
매끈하고 단단했습니다.
나는 어이가 없어 눈만 멀뚱멀뚱뜨고 텐트 천장을 보기만 했습니다.
나는 그가 나의 에스라인을 팔에 감고 산책나갔으면 하는 서운함이 생겨났습니다.
나도 변덕이 많은 여자처럼 들쑴날쑴 했습니다. 나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해는 어느새 산 능선 위에 올라왔습니다. 주변을 밝히자 파도는 신이 났는지
밤보다 더욱 거세게 요란한 굉음을 내며 밀려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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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 기술자가 손에 큰 고대를 들고 싹 ~ 문지른 것처럼 백사장은 아주 매끈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파도는...
이렇게 만들기 위해 파도는 수없이 들락날락거리며 물을 몰고와 다듬었나 봅니다.
갈매기들도 깨끗한 백사장이 상쾌한 듯이 꾸꾸~ 소리를 내며 아침 먹이를 찾아
부지런히 백사장 위를 지나 갑니다.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백사장에 산책하는 것은 정말 즐겁습니다.
이러한 태초의 대자연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느님이 주는 특혜가 아닐가 합니다.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이름 그대로 백사장이 십리길로 펼쳐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리가 놓아지기 전에는 배를 타고 와야 했기 때문에 쉽지 않았지만, 다리가 놓아져서
이제는 단숨에 반원을 그리며 고운 모래가 펼쳐져 있는 태초의 대자연 모습을 찾을 수가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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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백사장은 비행기도 착륙할 수 있을 만큼 끝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조가비, 소라, 조개껍질이 이따금 보입니다. 따개비는 까만 홍합 위에 다닥다닥 붙어 집을
지었습니다. 따가비는 전세를 내었나봅니다.
아침 빛을 받으며 갈매기는 눈을 빛내고 낙하했다가 아무것도 부리에 물지 못하고 비상합니다.
내려올 때마다 먹이를 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갈매기들은 날개를 잠시도 멈추지 않고 파도가 거품을 일으키며 몰고온 작은 물고기들을
찾기 위해 눈을 빛내며 꾸륵꾸륵 소리를 내면서 다시 내려와 먹이를 찾습니다.
해는 점점 떠올라 제법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인님은 라면을 끓이기 위해 물을 코펠에 담고 버너에 불을 붙이고는 텐트로 돌아가 안에 있는
잠자리 도구를 꺼내 먼지를 털고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하나 꺼내 다시 차 뒷문을 열고 넣고 나자 물이 끓기시작했습니다.
라면을 넣고 김치를 꺼내서 식사를 맛있게 후르륵거리며 하는 것이었습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고는 중얼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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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둘러야 겠는 걸. 배 시간이 빠듯해! >
양치를 하는 모습니 보이고 해는 어느새 10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으며, 햇빛은 파도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습니다.
취사도구를 넣고, 나를 번쩍들어 조수석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매어주었습니다.
다리를 건너고 완도 여객터미널로 가니 많은 사람들이 와서 차를 몰고 배에 싣고 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주인님도 차를 배가 정박해 있는 곳에 가서 접수를 하고는 차를 배 밑으로 들어가 주차하고는
문을 닫기 전에 내게 말했습니다. < 3시간이면 제주에 닿게 돼, 지루하겠다. 조금 참아.>
그리고는 내 얼굴을 쓰다듬는 것이었습니다.
주인님은 갑판으로 올라가고 난 후 배를 출발하기 위해 엔진을 가동시켰습니다.
그 소음은 귀를 찢은 듯 했습니다. 문득 겁이 났습니다. 배가 침몰하면 어떻게 되나. 하고 말이지요.
배가 흔들렸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 있는 듯. 바람이 세게 부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수많은 차들은 바퀴에 체인이 쳐져 배가 흔들려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옥이 따로 없구나. 바로 지금이 지옥에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아...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겠구나 ! 좋은 일만 많이 해야 겠구나.! 나는 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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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판 위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는 광폭함이었습니다.
성난 파도는 칼끝처럼 뾰족하게 하늘을 향하여 물을 만들었습니다.
문득 그는 깨달았나봅니다. 내가 옆에 없다는 것을...
그는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짓고는 중얼거렸습니다.
<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뚝방에 무허가로 거주하던 많은 사람들을 철거만
하지 않았던들 우리집 행복은 이어졌을텐데...>
중랑천에 홍수로 둑이 무너지면 그 물이 서울 시내까지 들어온다고 참모가 건의했답니다.
그러자 박정희대통령은 단숨에 뚝 주위에 집짓고 사는 무허가 시민들 집을 철거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후 부모님은 살 집을 알아보느냐고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은... 그처럼 큰 집을 어디서 구하며 정부에서 주는 쥐꼬리 보조금으로는
월세도 살기 힘들었습니다.
닭은 알을 더욱 많이 낳았지만, 집 식구들은 근심으로 관심이 없고 닭을 주위에 한 두마리씩
팔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개구리,미꾸라지 잡이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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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아버지는 거여동 공수부대 부근 남한산성 아래 주택지로 이사하기로 했습니다.
형수님 사둔 댁은 도봉구 쌍문동에 살고 있었는데 그 당시 산 기슭에 천막치고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지금의 생각이었습니다.
개포동 구룡마을에 무허가 판자촌 집이 지금까지 많이 있으니 말이지요.
거여동은 천호동에서도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야 만이 나오는 곳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공사를 끝내고 잔금을 주지 않는 집을 빌려서 들어가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다니던 중학교에 학비를 또 내지 못하고 2학년으로 올라가서 산에는 개나리,
진달래가 불타오르고 아기손 같던 나뭇잎이 소년의 손 만큼 컸을 때,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렀습니다.
반아이들이 다 집에 돌아가고 없을 때 책상으로 나를 앉게하고는 옆에 앉으시고
가정형편을 물어보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말했습니다. 오리농장 주인이 홍수로 오리가 모두 죽자 목매달아 죽은
사실을... 아버지는 그 곳 외에 전기공사를 몇 곳을 했는데 아직 받지 못했다고...
형들이 내게 가르쳐준대로 나는 외운 것처럼 입에서 술술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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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마침내 내게 선고를 하였습니다.
"내일부터 학교에 나오려면 학비를 가져와야 한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려라."
"그럼 돈 안가져오면 학교오면 안돼나요?"
선생님도 슬픈 표정을 짓고 천정을 보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슬펐습니다. 음악가르치는 키작은 이목구비가 또렷한 여선생님, 누나 같은 국어선생님,
지리 가르치는 여선생님을 볼 수 없게 된다는 말에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습니다.
학교 아이들과 함께 공부할 수 없다는 선생님 말은 마치 판사 앞에 선 죄수가 가슴을 조이면서
판사가 예수님으로 보이기를 기대하다가 사형선고를 받는 충격과도 같았습니다.
국민학교에서는 학비를 3년을 내지 못해도 학교 나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데... 이상하다.
집에 와서 울먹거리며 말하니까. 어머니도 아버지도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집을 철거당하고 거여동으로 이사오고 난 후에 부모님 얼굴이 몰라보게 여의었습니다.
나에게는도 즐거움이 없어졌습니다.
황금 물결을 이루며 바람에 따라 출렁거리는 벼도 볼 수도 없고, 메뚜기를 잡아 볶아먹을 수도 없습니다.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구워먹을 수도 없고, 집안 식구들 모두 우울했습니다.
저녁에는 벼를 베어버린 논에 짚을 쌓아놓은 곳을 동네 아이들과 환히 비추는 보름달을 보며
강강수월레 노래부르며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놀 수도 없었습니다.
이제, 학교까지 다니지 못하게 됐으니 나는 기가 빠져버린 아이처럼 멍하니 보냈습니다.
형들은 나에게 집에서도 공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검정고시 라는 제도가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공부는 젖혀두고 새로운 동네에 이리저리 구경하는 것 만이 나의 하루 일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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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가는 배 위에서 외로운 섬을 보자,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회상에 잠겼습니다.
태양은 얼마나 뜨거운지 얼굴이 따가워서 등산용 검은 모자 <노스페이스>를 꺼내 머리에 썼습니다.
제주도를 처음 갈 때 미지의 곳을 찾아간다는 즐거움을 느낄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십년이 흘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허탈해야 할까. 이제 상처를 잊고 삶을 살아야 할텐데...
저 섬처럼 영원히 아니 절반을 넘게 살아왔으니까. 조금만 더 견디면 삶이 마감하게 되니까.
언제까지 언제까지 정착하지 못하고 부표처럼 떠돌아다니나
슬픔이 안개처럼 눈을 흐리게 하였다. 태양은 빛을 반사시켜 수면을 부딪치고 반짝거렸다.
나는 제주도에 정착하러 가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외로운 섬을 지나고 배는 뚜우~ 소리를 내면서 파도를 가르며 빠르게 나아갔습니다.
저 멀리 제주항 등대가 보였습니다. 소설을 쓰겠다고 제주도를 찾아온 지 벌써
10년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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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으로 사람들이 한둘씩 내려와서는 차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주인님이 올 때까지 눈이 빠져라 하고 기다렸습니다만,
나타나지 않아 초조해졌습니다.
(주인님께서 무슨 일이 있으니나?)
나는 걱정되었습니다. 갑자기 쿵 ! 하는 소리가 들리고 햇빛이 들어왔습니다.
몇 사람이 손에 연장을 들고 차로 가서는 허리를 숙이고 뭔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인님이 문을 열고 운전석에 털썩하며 자리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 난, 이양반 좀 봐 ! > 하며 화가 났습니다. 나에게 관심이 이렇게 없다니...
주인님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동을 켜자 차는 온몸을 떨고 소리를 내었습니다.
앞 차를 따라 천천히 차는 어둠의 배 안에서 빠져나와 온 몸을 빛을 받았습니다.
차를 어디론가 몰고 가면서 내게 말했습니다.
" 어둠 속에서 심심했지 ?"
<심심한게 아니라 이양반아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는지 알아 ? >
나는 눈을 흘겼는데, 주인님은 아는지 모르는지 손을 뻗어 오른손으로
나의 머리를 만지고는 씩 웃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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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번화한 로타리로 가더니 시장으로 들어가 한켠에 세우고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 딱지 끓나 잘 봐 ! >
마치 인간에게 말하는 것처럼 내게 말했습니다.
잠시 후에 들어오면서 내 앞에 검은 봉지를 신발 바닥에 내려놓고는 시동을 켰습니다.
슈퍼에 들려 술을 사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방파제에 주차해놓고는 나가서 조수석 문을 열고 안전벨트를 풀어 나를 강아지 안듯이
옆구리에 끼고 오른손으로 술과 검은 봉지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 어머나 ! >
나는 놀라 소리쳤습니다.
방파제로 올라가더니 계단에 앉아 옆에 나를 세워놓고 검은 봉지에서 한치회를 꺼내고
술을 따고 잔에 따르고 초장을 열고 손이 일사천리로 신속하게 움직였습니다.
마치 외과의사가 숙련된 행동으로 칼을 들고 수술하려는 과정처럼...
맥주를 한번에 마시면서 좋다 ~
"곰아 너도 한잔 할래?"
말하고는 맥주가 가득 들어있는 잔을 나의 입에 대고는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나는 수평선을 찾고 있었고, 아득한 바다 끝, 하늘과 바다를 갈라놓은 선에 매료되었습니다.
< 어쩜... 누가 저렇게 하늘과 바다를 똑같이 갈라놓았을까 >
나는 감탄하여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냐고 주인님의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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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거리는 푸른 바다는 잠시도 쉬지않았습니다.
하늘에는 흰구름이 둥실 떠있고 비행기는 어디로 가는지 공항에서 이륙해 굉음을 울리고 하늘 높이 올라
어디론가 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푸른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곧 조그만 점으로 나타나더니 커다란 소리와 함께 비행기 모습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비행기 배에서는 바퀴가 서서히 나오고 있었고, 하얀 유선형은 마치 커다란 밍크고래 배와 흡사했습니다.
나는...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필요하면 무엇이든지 만들어내는 동물이라는 것을...
아, 하느님은 왜 인간에게만 그 같은 능력을 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출렁이는 푸른 바다 위를 배는 낙엽처럼 떠서 항구로 들어옵니다.
등대에서는 빛을 번쩍입니다.
항구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배들이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갈매기들은 꾸욱꾸욱거리며 날개를 쉬지않고 흔들며 물 위를 날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정박해던 커다란 배가 고동을 울렸습니다.
" 저 배는 부산으로 가는 배야. 아침에 오륙도를 볼 수 있지."
주인님은 나를 보며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팔을 들어 내 어깨에 올려놓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순간 움추렸으나 나도 모르게 주인님에게 기울였습니다.
주인님을 좋아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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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도착한지 얼마쯤 되니 창 밖에는 비가 내리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멀리 푸른 바다가 보였고, 파도가 몹시 화가나서 거칠게 달려와서는
하얀 거품을 만들고 부서지고 방파제를 때리고 허공에 물보라를 일으키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주인님은 저녁 때에 들어왔습니다.
들어올 때는 안주를 꼭 사와서는 저를 옆에 앉혀놓고 술을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 혼자서 마시는 술이 맛있을까 ? 무슨 재미로 혼자 마실까. >
나는 주인님이 한라산 소주를 마시는 것을 보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주인님은 케이블방송을 잠시 보다가 끄고는 잠을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벽 구석에 던져놓고서...
이튿날 주인님은 잠을 푹자고 나서 창문에 드리워진 커튼을 젖히고 밖을 보고는
전화에 대고 말했습니다.
" 한라산에 눈이 내렸습니까 ?"
그리고는 배낭을 꺼내 부지런히 챙겨넣습니다.
등산양말을 싣고 방안을 한바퀴 둘러보더니 시선이 에게 멈추었습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조마조마했습니다.
.. 나도 데려갔으면 ..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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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은 방문을 열고 방바닥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더니 등산화 끈을 풀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고 구석에 있는 커다란 배낭을 가져와
작은 배낭 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어 커다란 배낭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다 넣고 나서는 구석 벽에 기대있는 나의 허리를 잡고는 커다란 배낭 속에
넣고는 커버를 덮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나는 캄캄함 속에서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침침한 창고에서 있었던 시절을...
주인님 등에 맨 배낭에 넣어져 주인님이 길을 걸을 때마다 등에 엎인 것처럼 포근했습니다.
아기가 엄마 등에 업히면 포근히 잠이 드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따금 버스와 화물을 실은 트럭이 굉음을 울리며 지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갔을까 주인님은 배낭을 내려놓고는 옆좌석에 앉아 운전기사와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운전기사는 체인 없어도 1100고지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버스는 털렁거리며 한참을 달리다 서고 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나는 다시 허공에 들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마 주인님이 다시 등에 배낭을 맨 것 같았습니다.
" 야, 온통 은세계구나 ! "
주인님은 탄성을 발했습니다.
배낭을 풀르고는 나를 꺼냈습니다. 나는 순간 눈이 부셨습니다.
사방이 온통 흰눈으로 변해있습니다. 나는 또 한번 놀랐습니다.
어떻게 세상을 이처럼 하얀 색으로 덮을 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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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커다란 배낭 속에 담아왔던 것들이 흰 융단 위에 펼쳐놓았읍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흰 설원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멀리 조그맣게 보였습니다.
마치 개미들이 행진 같습니다.
주인님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준비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버너케이스에서 버너를 꺼내고 연료를 채워넣습니다. 그러자 , 곧 빨간 불꽃이 피어나더니 곧 파란색 불이 되어
버너는 불을 내뿜었습니다.
후라이 판을 꺼내고 젓가락을 찾아 가져온 고기를 꺼내 한점 두점을 얹어놓았습니다.
이녀석...
부리가 반달처럼 우아하고 온통 검은 색을 자랑으로 여기는 녀석이 파란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빙빙 돌면서 하강하여 고기를 채가려나..? 하고 나는 녀석에게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녀석은 독수리가 아닌 까마귀였던 것입니다.
"저녀석은 까마귀야. 들판에 죽은 동물을 뜯어먹는 것을 나는 어렸을 때 봤어.
아주 지저분한 녀석이지. 어른들은 재수없다고 하며 삽과 가래를 휘둘르며 내쫓았지.
녀석들은 아주 끈질겨서 물러갔다가 다시 몰려들어 아주 귀찮게 했어.
주인님은 젓가락으로 고기 한점을 들어 허공에 휙~ 던졌습니다.
그러자 녀석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윙~ 날개를 흔들며 삼겹살이 눈 위에 떨어지기 전에
우아한 부리로 낚아채더니 멀리 가버렸습니다.
나는 이젠 안오겠지 생각했습니다.
주인님은 소주를 꺼내 눈 속에 팍 ! 심었습니다.
고기를 한 점 집어 쌈장에 덥썩 묻혀서 입에 넣습니다.
수염이 듬성듬성 난 턱을 나는 무심히 보았습니다.
여윈 듯한 그의 뺨에는 살이 없었습니다. 많이 드시고 얼굴에 살좀 붙으기를 나는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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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린 줄만 알았던 녀석이 다시 나타나서 좀 더 머리 위에 가까이 원을 그리며 돌았습니다.
까~악. 소리를 지르자 녀석 친구들이 여기저기 나타났습니다.
나는 순간 겁이 났습니다. 주인님은 젓가락에 들었던 고기를 입으로 향하다 말고 또다시 허공으로 던졌습니다.
역시. 눈 위에 떨어지기 전에 휙~ 날아 부리로 물고 가버리자 다른 녀석들이 뒤따라갔습니다.
하지만, 몇 녀석은 가지않고 울어댑니다. 까~악 !
주인님은 또 고기를 던져줍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녀석이 날아와 물고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습니다.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생고기를 들어 던지고 해서 녀석들이 한 점씩 물고 사라졌습니다.
그후부터 주인님은 부지런히 먹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나는 걱정됐습니다. 저렇게 급히 먹다가는 체하면 어쩌나...
" 한 근을 사와서 반 근은 한라산 지킴이에게 세금을 냈으니 윗세오름에 오르자 "
주인님은 말하면서 배낭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녀석들은 배가 부른지 더이상 허공을 날지 않고 나무가지에 앉아 지켜보고 있습니다.
장비를 다 챙기고는 마지막에 나를 번쩍들어 배낭 속으로 넣고는 등에 매고 눈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엄마 등에 업힌 아이처럼 편안했습니다. 주인님이 걸을 때마다 등으로 전해오는 흔들림에
나는 마치 그네를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들게 하였습니다.
한 발 또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들려오는 뽀드득 소리는 신기했습니다.
나는 배낭에서 나와 어떻게 그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는지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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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을 걷는 것처럼 길만 나있고 나무도, 바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 좌우에 나무 말뚝을 박아놓았고, 사이를 밧줄로 엮어놓아 밖으로 이탈하지 않도록 해놓아 초보자도 쉽게
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눈길을 걸으면 간혹 눈에 홀려 길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었습니다.
지루할 정도로 눈과 희뿌연 하늘이 맞닿아 있을 뿐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는데도 주인님은 조용히 걸음을 뗄 뿐이었습니다.
내려오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는데도 길 위에는 눈을 헤치며 걸었던 흔적이 있습니다.
만일, 길 안내 말뚝과 밧줄이 연결되어있지 않았다면 누구나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인님은 걸음을 멈추고 시야를 옆으로 돌리고 보았습니다. 잠시동안 아마 다른 길로 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까요..?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도 이처럼 지루한 과정이 있지 않을까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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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은 배낭을 눈 위에 내려놓더니 나를 꺼냈습니다.
나는 해방감으로 가득찼습니다. 그리고는 놀랐습니다.
갑자기 커다란 괴물체를 보았기때문입니다.
우주선일까요 ? 무시무시했습니다. 다행이 조그만 집이 있어서 안심됐습니다.
수만년전일까요 바다 속에서 가스가 분출해 지하에 있던 용암이 하늘로 분출해서 생긴 섬인데
저 곳이 바로 분화구, 즉 용암이 바다속에서 뿜어져나온 곳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주인님이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루셀 수 없는 세월동안 백록담을 보고 또 보았을까 그리고 삶을 마쳤을까..
주인님은 중얼거렸습니다. 백록담 위를 보고는 말했습니다. "자연은 영원한데, 인생은 너무 짧다."
"저기 백록담 위에서 용암이 흘러나와 굳어버려서 저처럼 날카롭게 솟아있는 거야."
주인님은 내게 설명했습니다. 마치 여행사 가이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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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은 나를 배낭에 넣지않고 가슴에 앉고 걸었습니다.
나는 또다른 포만감으로 가득찼습니다. 뽀드득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 너무 기뻤습니다.
지나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외쳤습니다.
"어머, 북금 불곰이 한라산에 왔네. 하하하..."
아이들은 나를 만지기도 했습니다.
"귀찮아 죽겠어."
나는 자연감상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빨리 스쳐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떤 중년여자는 긴 손톱으로 나를 만지고 내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했습니다.
"쳇... 대자연에 와서도 화장하고 손톱에 퇴색된 색 매니큐를 칠하고 오다니 "
나는 싫었습니다.
이처럼 아름답고 광활한 대자연에 오면 숙연해져서 깨달음을 얻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님은 앞을 보고 걸었고, 나는 흔들릴때마다 부지런히 눈을 돌려 좌우를 보았습니다. 마치 동영상을 촬영이라도 하는 것처럼...
갑자기 주인님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그 거대한 분화구인 백록담이 멀어졌습니다. 세월이 지나가 저 멀리 있는 것처럼...
스쳐지나간 사람들도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스쳐지날까 하는 궁금함이 생겨났습니다.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하면... 삶이 완성되는 것일까...?
미완성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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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계일학 < 群鷄一鶴 >
빼어난 모습이었습니다.
타고나지 않았다면 이처럼 아름다울 수는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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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산에는 오백나한이라는 전설이 있지. "
주인님은 내게 말했습니다.
" 옛날 한라산에는 5백의 아들을 둔 할머니가 살고 있었단다.
한번은 흉년이 크게 들어 곡식이 다 떨어졌단다.
그래서 아들들은 사냥을 나가게 되었지. 할머니는 죽을 만들기 위해
오백명이 먹을 솥에 죽을 끓이기 시작했단다.
죽을 만들어야 음식이 많아지기 때문이지.
할머니는 5백 아들들이 먹일 커다란 솥에 국자를 휘젓다가 그만
빠져버렸단다.
" 어머.."
나는 깜짝놀라 속으로 소리쳤습니다.
아들들이 돌아와서 보니 죽은 김이 무럭무럭나고 있는데 어머니가
보이지 않자 더 기다리지 못하고 죽을 먹으면서 기다렸지
효성이 지극한 막내는 어머니가 돌아오면 같이 먹기로 버텼단다.
나머지 아들들은 죽을 거이 다 먹다가 사람 뼈를 발견했지.
그 뼈가 자신들의 어머니인 줄 알게 되었단다.
막내는 어머니를 먹어치운 형들과 함께 살 수가 없다고 하여
차귀도로 건너가 장군석이 되었고, 나머지 아들들도 통곡하다가
그 자리에서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란다.
바위 모습이 마치 나한 < 불교의 성인 > 같다고 하여 5백 나한이라 한다."
주인님이 오백나한에 깃들은 전설을 나는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언덕 위에 우뚝 서있는 나한 같은 기암을 올려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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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기암은 오랜세월 풍우와 함께 지켜가고 있을 것입니다.
영원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설을 전해주면서...
한라산 산행을 마치고 온 나는 벅찬 감동에 또 기다렸습니다.
이번에는 어디로 여행가려나 하고 말이죠 !
어느날.
주인님은 나를 안고 차 앞으로 가더니 조수석에 태웠습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고 나는 마음이 부풀었죠.
어느 횟집으로 갔습니다. 나를 가슴에 안고..
이미 좌석을 예약했는지 어느 중년여성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서울로 올라가신다구요 ? "
그 말을 듣고 나는 서울로 돌아가는구나 올라갈 때는 어느 코스로 나를 여행시켜주려나 하고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 응. 그래서 인형을 선물하려고.."
그 말을 듣고 나는 놀랐습니다.
" 어머머, 내가 뭐 물건인가 선물하게..! "
"어머, 이렇게 큰 곰인형이 있었네 색깔도 고와라."
그녀는 나를 자신의 옆으로 옮겨놓고 좋아했습니다.
나는 주인님을 마주보고 앉아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리호리한 주인님은 내게 말했습니다.
" 안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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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