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한라산 파수꾼 까마귀요. 나이를 먹을 수록 자꾸만 잊어먹어서
남들이 나를 까마귀로 부르죠. 뭐. 내가 정력에 최고라던데 ...
영실휴계소까지 약 4킬로.
눈덮인 길을 오르며 흐린 날씨에 변덕이 있으면 오늘 출사는 헛수고 !
휴계소에 도착하니 나를 먼저 반긴 것은 까마귀였다.
멀리 오백기암을 올려다 보고 전설을 떠올렸다.
까마귀는 어렸을 적에 쓰레기 속을 뒤지는 새였다.
녀석은 가까이 가면 허공으로 날개짓해서 줌렌즈로 담았다.
그 후 소득이 높아지면서 <까마귀를 잡아 먹어야 만이 정력이 증가된다>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좀처럼 볼 수 없지만, 한라산 만은 예외였다.
밤사이 내린 눈은 바람을 타고 날라와 영실 화산석에 붙어 신령스럽게 했다.
거리가 꽤 멀었다. 줌렌즈로 당겨서 영실기암을 보았다.
제주시를 출발할 때에는 날씨가 흐렸다. 그래도 나는 나아갔다.
터미날에서 버스를 타고 영실에서 내려 수킬로를 걸어 올라가니 등에는
어느새 땀이 흘렀다.
쉬지않고 호흡을 조절해서 걸었다. 휴계실에 도착해서도 호흡은 일정했다
숨도 차지 않았다. 쉬지 않고 등에 배낭을 메고 있었는데도..
나뭇가지들이 가로막아 사진찍는데 고생했다.
드디어 내가 수많은 세월을 찾아 헤메었던 자연 속의 기암을 찾아냈다.
사실. 이 기암을 찾기까지는 주변을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했다.
나무와 가지들이 찰영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나무에 올라 가지를 피해 망원렌즈로 당겨서 셔터를 누르자, 순간 청아한 소리가...
영실 위에는 크고 작은 바위가 500여개나 된다고 한다.
소원했고 기다렸던 장면이 나타났다. 흐려서...
해가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밀기를 기대하고 한라산을 올라갔다.
날씨 변화를 기대했는데.. 기원한 그대로 마침내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멀리 있는 기암들은..눈바람으로 옷을 갈아입은 기암을 포커스하기에
나무가지가 렌즈를 가렸다.
나무위로 올라 가지 사이로 줌렌즈를 넣고 기암을 포커스에 맞추고
셔터에 손가락을 얹고 나서 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호흡을 멈추고
눈을 머금은 바람이 셔터 위를 스치고 지나가듯이 나의 오른손
인지손가락은 셔터에 얹어 살며시 누르자, 순간 찰칵 ~ 청아한 소리가 들렸다.
하늘이 갑자기 맑아져왔다. 흐렸던 하늘이...
까마귀는 하얀 눈 가지 위에 앉아 풍류를 즐기는 듯...
자연이 빚어낸 구상나무 설화
동장군으로부터 선택된 구상나무
군계일학 群鷄逸鶴
기축년에는 내가 선구자가 되리.
우리는 선택된 형제
뮤지컬을 공연하듯.
잠시 얼굴을 내밀었던 태양을 시샘하는 구름이 다가왔다.
내가 사실 군계일학이 아니오 ?
오늘 이 시간이 아니면 언제 다시 이 같은 장관을 만나리오.
백록담 화구벽이 멀리 보인다.
필자는 수천년 아니 수만년 전에 바다 속에서 분출되어 생긴 화산섬 제주도를
매년 겨울 올 때는 순례자가 된다.
대자연을 모시는 순례자가 되어 경건해지고 술을 따라 올리고 마시면서
인간의 미약함을 새긴다.
제주도 백록담 바로 아래 윗세오름.
IMF시대 제주도 찾아왔다.
깊은 시름을 안고서...
그때 만난 제주도 아가씨가 있었다.
필자도 그 당시는 싱싱했다. 비록 IMF 時代 를 맞아 서울에서 일할 것이
없어 무작정 제주도로 왔다.
죽어도 이 설원에서 죽으리라... 하고서
그 때, 제주시외터미날에서 만난 아가씨가 나와 함께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소설 같은 스토리가..
인사를 하고 뒷자리에 같이 나란히 앉았다.
서울에서 왔다고 했다.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이름이 송영임 이라고 했다.
제주지방법원 판사 비서직에 근무한다고 하고 내가 졸라대는 열의에
그녀는 할 수 없이 회사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녀는 당시 20代 후반이었다.
바로 이곳 윗세오름에 와서 컵라면을 사서 뜨거운 물을 배급받아 함께
후르륵 시장기를 떼웠다.
그 때 그녀는 인사를 했다.
내 앞... 십미터 앞에는 안경을 쓰고 하얀 피부를 가진 키가 173 cm 정도
되는 듯한 뚱뚱하지 않은 30대 후반 남자가 따가운 햇빛을 받으며 나를
나를... 보고 있었다.
송영임씨는 그 남자 앞에서 어쩔줄몰라했다.
나는 영문을 몰랐다.
그녀가 왜 그렇게 당황하는줄을...
필자도 당시 30 代 초반이었다.
물론 나의 옷차림은 그 남자. 즉 판사가 보기에는 만족할 수준이 아니었다.
산행을 하고 그녀는 나와 함께 회귀산행을 해서 영실로 돌아내려가지 않고
어리목으로 다시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왔다.
그녀는 두려웠는 지도 모른다.
뭐, 제주도가 금남의 구역이라도 되는 듯...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젊은 남녀가 만나는데 뭐가 잘못됐다는 것인지...
나는 어렴풋이 송영임씨가 두려워.. 마치 몰래 어떤 일을 하다 들킨 듯한 ...
그녀는 제주도 지리를 전혀 모르는 내게 동문시장으로 안내했다.
제주도 왔으니까 회 한접시 대접할께요...
그 당시는 동문시장인지 나는 결코 알 수가 없었다.
그 후 서울에 도착해서 나는 결코 그녀를 잊을 수가 없어 전화했다.
그녀는 전화받는 데 눈치를 보고 목소리를 낮추었고 소근댔다.
< 지금은... 통화 곤란해요. 전화 하지 마세요.. >
집으로 전화해 통화했을 때, 그녀는 "언제 제주도 내려와요 ?"
말하면서 물었다.
기술분야에서만 15년 넘게 일했어도 나는 알아챘다.
그녀가 나로 인해 난처함에 처했다는 것을...
아니.. 세상에 판사는 남자가 아닌 중성이란 말인가.
그 판사는...
여자에게 구애하지 않았단 말인가.
물론 근무시간에 전화가 와서 받지만, 제주도가 아닌 먼
서울에서 전화를 왔다면...
웃으면서 즐겁게 여비서에게 말 한마디 해줄 수 없단 말인가.
그 판사는 냉냉했다. 마치 독신자였을까.
그 후 전화를 하니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슬픔이 밀려왔다. 나로 인해서...
당장 비행기 타고 그 판사를 찾아 멱살을 잡고 흔들어 패대기치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 싶었다.
서울 제주를 수없이 다녀오고 한다면 사업구상과 연구개발은 뒷전으로
미룰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물의 거대한 사업시장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물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공부하는 시기였고, 전세계 시장성을 염두에 두었으며,
할 일이 쌓여있어, 제주도에 신경쓸 여유가 전혀 없었다.
자원과 과학기술과 자본이 없는 우리나라...!
사명감을 갖고 뛰어들었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분산하면 지체될 뿐이다. 일 년 지체한다면 10년 개발이
늦어지고 그 만큼 시장 점유율에서 늦어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일 년 지난 후 제주지방법원을 찾아갔다.
어느 직원에게 물으니 인쇄부에 있다고 해서 갔다.
그녀는 복사기 앞에서 서서 일하고 있었다.
문 밖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
손..? 송순임씨를 유리로 자세히 보니 그녀는 배가 불러있었다.
결혼을 해서 임신했고 해산 달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는 인쇄부에 근무하고 있었다.
복사기 앞에서 부지런히 배부른 몸으로 눈도 돌리지 않고 일하고 있었다.
유리문 건너에서 그 모습을 보는 나의 가슴이 아파왔다.
왜 , 나는 만사를 젖혀두고 제주도로 내려와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하지 않았는가.
그녀는 내가 자주 전화하여 판사 비서직에서 쫒겨나 인쇄실로 왔을 때 얼마나
슬픔으로 눈물을 흘렸을까.
윗세오름에서 영임씨와 내가 함께 있는 것을 유심히 나를 관찰하던 그 눈을
떠올렸다.
각진 안경 속에서 나를 주시하던 눈을...
나는 ... 그녀에게 보답을 무엇으로 해야 하나.
19년 전 이야기이다.
< 휴대폰이 있었다면... 그 녀는 좌천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자로... >
판사와 나는 악연을 끝없이 수평선을 긋고 있는 가보다.
구상나무가 아닌 화산석이다.
한라산 강풍은 유명하다
밤새도록 불어왔던 바람은 화산암을 괴물 형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웅장한 한라산 백록담 화구벽
수천년 전에 바다 밑에서 가스가 분출해 용암이 흘러내린 곳이다.
아니 만년 전이었을까.
사람이 살지 않았던 섬에 언제부터 살기 시작했을까.
제주도에는 360개가 넘는 오름이 있다. 즉, 기생화산이라고 불리운다.
그래서 더욱 신비롭다.
육지에서 결코 볼 수 없는 섬 한라산 산행은 설원에 묻혀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매년 이곳이 좋아 나는 찾아온다.
자연의 신비에 영원함을 확인하러 온다.
권력,재산이 있어 휘두르는 인간들도 이곳을 찾아 와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보다 더 겸손해지지 않을까.
인간은 신으로부터 생명의 마감이라는 숙명을 누구나 맞이한다.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백세도 살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는 것을
인간은 망각하고 있다.
젊었던 시절 영화 <닥터지바고>의 설원이 생각났다.
카메라를 배낭에 담으려고 목에 걸친 벨트를 걷고
눈 덮인 백록담을 일별하기 위해 뒤를 돌아다 본 순간 !
영화. 닥터지바고 설원에서도 볼 수 없는 비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나도 모르게 손은 카메라 케이스를 열고 꺼내서 담았다.
IMF 時代 이후 나는 매년 겨울이면 만사<萬事>를 젖혀놓고
제주도를 찾아 외로움 속으로 젖어들었다.
백록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곧 나 만의 성지순례 ( 聖地巡禮 ) 이다.
대자연 속에 잠시 존재하는 인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