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형석 2005. 7. 4. 23:33
안기부에서 왜 나를 감시하고 있습니까?"
"궁금하실 겁니다. 한성그룹에 프로젝트 서류를 저희가 보았습니다."
"뭐라고요?"
준호는 더 참지 못하고서 얼굴을 돌렸다. 등산모자를 쓰고 있는 손과장 얼굴은 모자에 가려
자세히 볼 수가 없었고, 준호가 얼굴을 돌림과 동시에 손과장은 옆 그림을 보기 위해 얼굴을 돌렸다.
준호는 다시 얼굴을 그림으로 향하고서 물었다.
"어떻게 안기부에서 내일에 관여하게 되었지요?"

"저희 선에서는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상부의 지시에 선생님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지금 현사장측에서 은퇴한 형사를 동원하여 뒤를 밟고 있으며, 만약 현사장 부인의 일에
관여하면 잘못하다가는 형사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자중하셔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내게도 생각이 있습니다."

"전화도 도청을 하고 있으며, 미행하는 인원도 더 늘릴 것입니다."
"도청을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여자를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기왕에 저를 보호하고 있다니 도와주십시오."
"무엇을 말입니까?"
"잔인한 인간들에게 철퇴를 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인간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생각하지 않고 시간을 끌며 함정을 파놓고 한 여자를 빠뜨리려하고 있는데 제가 모른다면 모르지만 안 이상 그냥 묵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려야 합니까?"
"경기도 이천에 수만평 산에다 호화사치묘를 하고 있는데 마치 옛날 임금의 무덤처럼 만들어 놨는데 돈이 그렇게 많으면서 한 여자의 슬픔을 위로를 하지 못할망정, 위자료를 안주려고 수 년을 끌어오니 세금을 때려줬으면 하는 것이지요."

"그건 저희 능력 밖이라서 어떤 도움이 될지 단언을 할 수가 없지만, 선생님의 부탁이니 알아는 보겠습니다. 만약 세금을 때린다면, 더욱 광기가 들어 역효과를 내는게 아닐까요?"
"그전에 증거를 연출하여 법정에서 판결을 유리하게 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건하고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게 됩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합니까?"

"안됩니다. 만약 제가 정보를 누설한 것을 알게되면 저는 경질됩니다. 이 사건만 아니면 선생님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어느 미술관이든 미술품을 감상하고
계시면 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말이지요."
"알겠습니다."
준호가 말을 마치자 손과장은 옆의 그림으로 걸어갔다.
앞을 주시하면서 곁눈질하여 보니 키는 175정도 되었고, 떡 벌어진 어깨는 군살이 하나도 없는 듯했다.



222



청와대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경제기획원 장관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오?"
대통령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각하, 지금 미국경제는 침체되고 있으며, 통계에 의하면 미국경제는 향후 3년은 회복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우리의 주력수출인 반도체가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자동차, 철강의 하락세와 수출감소 추세이며 화학은 과잉설비 투자로 적자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세계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이웃 일본도 금융구조조정 실패로 6년 째 불경기 늪에서 허덕이고 있으며, 헤어날 기미가 조금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은행으로부터 빌린 외채 상환 날짜도 얼마 남지 않고 있으며 다시 연기를 신청해야 합니다. 아시아 개발은행으로부터 빌린 돈도 수 개월 내에 지불해야하고 지금 지불유예를 신청하여야 합니다.
이 돈을 다 갚고 나면 우리의 외화 잔고는 백억달러도 안될 것입니다. 해외여행은 계속 늘어나 관광수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국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무언가 말을 할려고 입술을 움직였지만 다시 입을 굳게 다물고 듣고 있었다.
"한국은행의 박총재와 의견을 조율해봤소?"

"예, 하지만 박총재는 저와 상반된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낙관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만, 경제를 정확히 예측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신만이 결과를 알수가 있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외채를 다 갚고 나면 외화위기가 찾아오게 되면 어떻해야 합니까?"
"최악의 경우에는 IMF로부터 차관을 빌려올 수 밖에 없습니다. "
"얼마를 말입니까?"

"상황은 그 때 가봐야 하겠지만 약 어림잡아 수백억달러를 차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수백억불이라?"
"IMF로부터 차관을 들여오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대통령은 걱정이 되어 빨리 물었다.
"IMF 관리 아래 모든 경제정책이 이루어지고 모든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럼 중소기업은 막대한 타격을 입게되겠군요."
"그렇습니다. 각하. 낙엽이 떨어지듯 도산업체가 끓임없이 줄을 이을 것입니다."
"큰일이군."
대통령은 걱정이 앞선다는 듯이 말했다.
"만약 박총재 말대로 된다면 더없이 좋지만, 만약을 대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알았소, 김장관의 말대로 우리는 대비를 해야하는 것이오. 그리고 국민이 선택한 지도자를 우습게 아는 인간들에게는 어떠한 벌이 뒤따르는지 모든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거요."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을 짓고 김장관에게 말했다.



223



" 무슨 말씀이신지."
김장관은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듯이 공손하게 묻는다.
"아니오, 나중에 알게 될꺼요."
"알겠습니다. 각하,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김장관이 나간 후에도 집무실에서 한 동안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두 팔을 괴고 생각에 잠겨있는 대통령.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다보며 벽에 걸린 태극기를 보고 있다.
집무실을 나선 대통령은 어둠을 밝히는 조명을 받으면서 소나무로 향하여 갔다.

언제부터인가 어떤 중요한 문제에 부딪히면 늘 소나무를 만지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는데. 그것은 아마 워더맨 프로젝트가 파생되고 나서부터 일 것이었다.
광화문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음이 간간이 조용한 정적을 흔들고 있었고, 학처럼 구부러진
소나무는 거북이 등같은 옷을 입고 어둠속에서 담을 넘어 들어오는 소음들을 받고 있다.


하늘에는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대통령은 하늘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별을 찾는 소년처럼.
이튿날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불러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박실장, 화성그룹의 명예회장에게 가서 워더맨 프로젝트를 어떻게 할 것인지 확답을 받아오시오."
"예? 각하, 그건 이미 각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알고있소. 한 번더 기회를 주려는 것이오. 그들도 이나라 국민이고, 나 또한 국민들이 국가를 잘 관리를 해 달라고 뽑아준 이상,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주려는 것이오. 그래야 마음이 개운하단 말이오? 알겠소? 내 말뜻을 잘 전하시오."

대통령은 굳센 의지를 나타내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비서실장은 대통령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보면서 무언가 심상찮은 느낌을 받았다.
'무슨일일까?' 속으로 생각하면서 집무실을 나섰다.

화성그룹 장회장은 대통령비서실장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생각에 잠겨있다.
여지껏 수년간 말이 없다가 왜 갑자기 아버지에게 대통령의 말을 전할게 있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강 대통령 성격으로 아버지와 쉽게 타협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는 않았다.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명예회장도 이야기를 듣고는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저녁에 들어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끓었다.
장회장은 동생인 부회장과 함께 저녁에 아버지를 뵈오려 한남동을 가니 장 명예회장은 응접실에 앉아 있다가 반가히 아들들을 맞이하고 있다.



224




선거 휴우증으로 장 명예회장은 그전보다 훨씬 늙어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장회장은 마음이 안타까웠다.
"어서 오너라."
아들이 쇼파에 앉자 성격이 괄괄한 명예회장이 말했다.
"그래 비서실장이 뭐라고 하면서 나를 만나겠다고 하드냐?"
"용건은 말하지 않고 대통령이 아버님께 전하라는 전갈이 있어서 그런다고 하는데 아마
프로젝트 분배에 대해서 재촉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명예회장은 말했다.

"그럴테지, 자신의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떻하든 매듭을 지어야 하겠지. 그래
뭐라고 대답했냐?"
"여쭈어보고 답을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만나서 어떤 의도가 있는지 들어보시죠."
"둘째아들인 부회장이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권했다.
"그래, 네말이 맞다. 일단 만나서 무슨 말인지 들어보기나 하자. 임기가 거의 끝나는 마당에
우리 화성그룹을 어쩌겠냐?"

명예회장은 승리자의 흡족한 미소를 띄우며 즐거운 듯이 말했다.
"그동안 이 프로젝트 가지고 우리는 현 정권과 화해를 했으며, 그 동안에 자금압박이 풀렸 습니다. 지금 우리가 대통령의 명령에 따르지 않더라도 다시 자금을 죄어온다고 해도 일년
만 버티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니 새 정권하고는 아버님과 조금도 감정이 없습니다.
새정권의 참모진과 국회의원들 그리고 추종자들을 지금부터 접촉하여 우리 사람으로 만들 면 하등의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장회장이 자신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내생각도 그렇다. 그럼 날짜를 정하여라."
기분이 매우 좋은 듯 명예회장은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장회장은 그런 아버지 모습을 실로 오랜만에 보는 듯하여 그 역시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어느덧 아버지 얼굴에는 검은 반점이 생기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파왔다.
선거만 아니었어도 아직까지 건강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명예회장은 술을 가져오라고 하고는 아들들에게 따라주고 자신도 맥주를 들이켰다.
" 자, 화성그룹의 무한한 영광과 발전을 위하여 건배 !"
세 사람은 술잔을 부딪히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다음에는 우리 에이스 맥주로 건배를 하자, 아마 내년 초에는 생산이 될테니까."
명예회장은 맥주를 마시면서 아들에게 말했다.
"예, 지금 거의 90%가 됐으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시음을 할 수가 있을겁니다.
제가 지난번 싱가폴 출장을 갔을 때 필리핀에 가서 현장을 살펴봤습니다."
어둠속에 묻혀있는 한남동에 장명예회장 집만이 유독 환하게 불이 켜져있다.
그는 이곳 한남동으로 이사오기를 잘했다고 늘 생각했다.



225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 이같은 거대한 물이 맥주가 되어 열강 선진국인들이
마실 것을 확신하면서...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정권이 바뀔것이며, 그 때는 10%만 주고 아니 적당히 돈을 주고 해결을 하면 될 것이었다.
아들이 돌아가고 배웅을 나온 명예회장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실로 오랜만에 별들이 반짝이며 흐르는 한강을 비추는 듯했다. 강을 거슬러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자신이 어렸을 때 시절을 떠올리며 세월은 참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화성그룹 회장실을 방문하기 위해 사무실을 출근하고는 보고를 받은 뒤에 바로 광화문으로 향했다.
현관에 도착하니 장회장이 나와 반갑게 맞아준다. 두사람은 중역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장실로 들어섰다.
장회장 따라 회장실을 들어서니 명예회장이 의자에 앉아있다가 반가이 맞는다.
"어서오세요."
"안녕하셨습니까? 명예회장님. 건강하시죠."
비서실장은 자리에 앉으며서 명예회장의 얼국에 반점이 생긴 것을 보면서 말했다.
"나야 뭐 늘 그렇지요."

비서가 차를 가져오자 명예회장은 권하면서 용건을 물었다.
"그래. 실장님께서 오신 것은 어떤 일이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대통령께서 2년 전에 필리핀에 맥주공장을 준공할 때, 말씀한 것을 어떻게 하실건지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비서실장은 말하고 궁금해서 명예회장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명예회장은 몸을 흩뜨리지 않고 턱을 아래로 당기면서 테이블을 주시하고 있다. 일순간
정막이 감돌았다. 잠시후 명예회장이 말을 꺼냈다.

"물론 대통령이 말한 것을 아직 잘 알고 있소. 아직 맥주공장도 준공이 안됐고, 에이스도 이제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하는데. 조금 더 있어봐서 맥주공장이 완공되고 과연 얼마나 팔리는지 그것을 보고나서 결정을 하려는 것이니 대통령께 잘 말씀드려 주시오."
명예회장은 노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특유의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일년만 있으면 대통령도 임기를 마치게 됩니다. 대통령께서는 임기내에 이일을 매듭 을 짓고자 하십니다. 명예회장님과도 약속하셨 듯이 필리핀에 맥주공장을 허락하셨으니
벌써 회장님께서는 어떤 말씀이 있었어야 한다고 저도 또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소만, 워낙 중요한 일이돼나서요. 지금 중동에서 달러를 벌어들이려고 건설공사를
시공하고 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마진이 얼마남지 않아요. 지금 우리가 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외국에서는 이제 시공사가 투자를 하여 운영을 해서 회수해 가길 바라고 있고
우리에게는 그만한 자금이 없습니다.


226



그렇다고 정부에서 돈이 넉넉하여 이웃 일본처럼 보증을 서지도 않는 실정이니 말이지요.
또한 반도체와 자동차, 그리고 제철공장 설립이 필요하고 보면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정부에서도 도로, 항만등 사회간접시설을 하려면 민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화성이 그 모든 것을 다 맡아서 할 수 있습니다.

통일을 대비해서 신의주까지 고속전철을 우리 화성이 국가를 위해 시공할 수 있습니다.
50년동안 우리 화성그룹이 국가경제발전에 얼마나 이바지했는지 누구보다도 더 대통령이
잘 알고 있습니다. 왜 우리를 밀어주지 않고 탄압을 하려는 건지 난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한 때 정치에 입문하겠다고 한 것은 그만한 동기가 있는 것 아니냐 이겁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돈을 갖다 바쳐야 하고, 시원찮으면 보복을 하여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지도 못하게 하여 자금을 조이는 그런 일이 반복되니 내가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동기가 아니냐 이겁니다.
이제는 대통령도 나에 대한 감정이 풀릴 때도 되는데 이처럼 강요를 하면 나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명예회장은 화가나서 언성이 커지고 있다.

"아버지 고정하십시오."
장회장이 옆에서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가서 대통령께 말씀하신 취지를 잘 전하겠습니다."
"고맙소, 우리가 나라를 위해 일을 해야하는데 사사로운 묵은 감정을 가지고 다퉈서야
되겠습니까? 대통령께 나의 뜻을 잘 전해주기 바래요."
말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비서실장은 악수를 하고는 청와대로 향했다.
차에서 스쳐가는 자동차를 바라보면서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명제를 떠올리면서
명예회장의 의중을 대통령은 과연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자못 궁금해졌다.
아마 자신을 보냈을 때는 대통령도 어떤 특단의 대책이 있을 것이 분명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이 나라가 어쩌면 커다란 시련에 부딪힐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 명예회장은 대통령의 뜻을 따르지 않는가. 그 서류가 없었다면 꿈을 가질수가 있는가.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