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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221
방형석
2005. 7. 4. 23:28
택시기사는 가까운 전철역에 차를 대자 준호가 말했다. “아니, 여기 말고 다음 정거장에요.” “오빠, 왜?” “첫 정거장에 차를 대면 포졸대장이 이곳에다 사람을 배치하기 때문에 그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야.“ “아, 그러니까 어느 전철역에서 내릴지 모르게 하려는 거구나.” “그렇지, 바로 그거야.” 두 사람은 다음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뒤따라 타는 사람이 없나 확인했다. “오빠, 타는 사람이 없는데...” “음, 그래. 커피숍이나 레스토랑에 문이 두개인 곳을 알고있니?” “응, 왜?” “그런 곳을 알아봐. 한쪽으로 들어갔다가 다른 곳으로 나오면 포졸들을 따돌릴 수가 있어.“ “알았어.” 버스가 정거장에 섰다가 막 출발하려고 하자 준호는 진경에게 재촉했다. “아저씨, 잠깐만 세워주세요. 여기서 내려야 하거던요.” 선경이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 정거장에 세웠을 때 뭐하고 차가 출발하니까 그래요?”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는 짜증을 내면서 차를 세웠다. “앞문으로 내려요.” 말하면서 앞문을 열어주자 두 사람은 내렸다. “에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저렇다니까.” 기사는 투정을하는 소리가 두 사람 뒤에 들렸다. 진경과 준호는 피식 웃으며 서로를 마주보았다. “오빠, 이제 따돌렸지?” 준호는 선경과 함께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에 올라탔다. “그래. 하지만 이제는 시작에 불과해, 왜냐하면 포졸이 우리들을 놓친 것을 알면 다른 방법을 세울거야.“ “그럼 어떻하지?” 진경은 걱정이 되어 물었다. “걱정하지마. 놈들이 위자료를 안내놓고는 못견디게 할테니까.” 준호는 말하고 웃자, 진경은 궁금해서 물었다. “오빠, 혼자만 알고있지 말고 말해봐.” “응, 진경아 너 오빠 있지?” “응, 왜?” “오빠를 내가 만나봐야 겠다.” “우리 오빠는 왜?” “그물을 쳐야지, 그래야 참새가 망에 걸려들것 아니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나중에 말해줄께.” 216 준호는 말하면서 2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커피를 마시면서 준호는 진경을 바라보았다. 사랑스런 마음을 느끼는 준호. 선경은 준호가 자신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자 물었다. “오빠, 왜 그렇게 쳐다봐.” “음, 아무것도 아니야.” “오빠, 우리 돈을 받아내면 여행가자, 응?” “아직은 안돼.” 준호가 강조하듯 말하자 선경은 궁금하여 묻는다. “왜, 안되는 거야. 이혼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진경은 준호 얼굴을 보면서 알 수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준호가 아무런 말이 없자, 선경은 말했다. “오빠, 나 오빠가 불행해지면 나도 같이 불행해져도 좋아. 그게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해. 그냥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나는 정말 오빠가 좋아. 이해타산이 없는 순수한 사랑만이 삶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 겪으면서 이겨내고 황혼의 종착역까지 오빠와 같이 갈거야. 나는 십년을 살아오면서 맛있는 것, 좋은 옷과 호화로운 생활은 순간의 만족과 기쁨일 뿐 긴 인생의 여정에는 영혼적인 충족감을 안겨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어. 라면에다 찬밥이라도 그리고 잘 익게 담근 김치 하나만 가지고도 나는 식사를 할 수가 있고, 차가 없어도 버스를 타고 다녀도 나는 삶의 행복을 느낄수가 있어.” 진경은 준호를 설득하듯이 말했다. “고마워.” 준호는 말하고는 서초동 성당에 있는 성모상을 떠올렸다. ㅡ 이혼을 하게끔 도와주고 돈을 타내고 나서 사랑을 나누는 것은 죄가 아닐까? 이혼을 하기전에는 어떤 사랑도 하지 않았으니 남의 아내를 탐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ㅡ 준호는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시선을 거리에 두었다. 그런 준호를 보며 선경은 준호에게 무슨 사정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오빠가 기다리라면 언제까지 기다릴 거야. 알았지?” 선경은 다짐을 하듯이 준호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그만 들어가봐야 하지 않아?” 준호는 걱정이 돼서 물었다. “응, 오빠, 그럼 내일부터 안나올거야?” “응, 이따 현사장 만나서 그만둔다고 말할거야.” “그럼 오빠 언제 만나는 거야?” 진경은 걱정이 되어 물었다. “응, 걱정하지 마. 자주 전화할께.” 준호는 커피숍을 나와서 말했다. “전화하면 오빠하고 같이 나와.” “오빠하고?” “그래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 오빠 도움이 필요해.” “언제?” 217 “다음 주 수요일 쯤 오빠더러 시간을 비어달라고 해.” “알았어. 오빠.” 진경은 고개를 끄덕이고 택시를 타면서 준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준호도 손을 흔들며 진경을 보내고 자신은 서초관 가게로 돌아왔다. 방에 누워 천정을 바라보며 어떻해 해야 선경에게 위자료를 받아줄수 있는지 생각하고 있다. 진경이 자기에게 말한 것을 떠올리면서... 국가 안전기획부의 손과장은 워더맨 프로젝트 팀을 맡으면서 늘 생각하였다. 자신에게 지금이 바로 출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정권이 바뀌고 훗날 워더맨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였을 때는 이미 늦었고 그전에 워더맨과 인사를 하고 뒤를 돌보아주고 있다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서 신임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워더맨과 접촉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팀이 24시간 감시하고 미행하고 있는데 자신이 접촉을 한다면, 그리고 발각되었을 때는 밥줄을 내놓아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지금 워더맨과 돈독한 관계를 하지 않으면 워더맨으로부터 신임을 얻을수는 없는 것이기에 자신의 박실장의 입장도 자신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조그만 봉급으로 아이들 대학 가르치고 나면 저축을 할 여유가 없어 걱정이 되었고, 또한 퇴직금 해봐야 노모 수술비를 대느냐고 별로 탈 것이 없었다. 자신의 직속 상관인 박실장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 실장실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비서가 책상에 앉아 뭔가 서류를 작성하다가 인사를 했다. “과장님, 안녕하세요? 실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응” 비서는 인터폰으로 손과장이 왔다는 것을 보고하였다. 손과장은 말하고 실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오게.” 박실장은 손과장이 들어오자 책상에서 일어나면서 쇼파로 다가와 손과장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비서가 차를 놓고 나가자 박실장이 물었다. 218 “워더맨에게 무슨일 있나?” “최근에 서초관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래? 그런데?” “우리가 미행을 하다가 놓쳤습니다.” “놓치다니?” 박실장은 깜짝놀라 물었다. “서초관 앞에서 택시를 타고 전철역에서 막 출발하려는 버스를 타고 나서 갑자기 내리고 서있는 택시를 타는 바람에 놓쳤습니다.“ “아니, 워더맨이 왜?” “아마 위자료를 타내려는 것을 도와주려는 의도인 것 같으며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닌 현사장 말이지요.“ “우리는 방심하다 놓쳐버렸고 형사들이 뒤를 밟다가 들켰단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런데 형사가 아무리 퇴직했다해도 그렇게 미숙하지는 않을텐데 말입니다. 어떻게 자신이 미행을 당하고 있다고 판단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 전화도청까지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그럴테지. 그럼 어떻게 되나?" "뭘 말입니까?" "법적으로 말일세." 박실장은 걱정이 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밀회장면을 들킨다면 그야말로 큰일이지요. 간통죄를 면할 수 없을테니까요." "간통죄라는 것은 명백한 선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그렇습니다만, 단순히 애정문제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문제는 돈을 타내려는 의도가 있기에 범죄에 해당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큰일인데..." 손과장은 지금이 바로 말할 때다 하고 생각하고 말을 꺼냈다. "우리가 워더맨에게 접근해서 자중하라고 하면 어떨까요?" "우리가? 팀을 노출시키겠다는 건가? " 박실장은 손과장을 보면서 의아해하며 물었다. "보안은 명령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날도 기껏해야 1년 조금 더 남았을 뿐입니다. 그후에는 다른 팀이 이 프로젝트를 인수하지 않겠습니까?" 손과장은 말하고는 박실장의 표정을 살폈다. "그럴수도 있겠지." "그래서 제 생각은 지금 워더맨에게 신뢰를 받아두는게 훗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장관직을 해려면 줄을 잘서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승진을 위해서도 또 노후를 위해서도 워더맨의 그늘아래 있는 것이 평생을 편안하게 쉴수가 있지 않을까 해서요." 박실장은 손과장 말을 듣고는 침묵을 지켰다. 219 손과장은 실장이 이렇게 심사숙고 할 지는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다. 안기부에서 이십년 가까이 근무했지만 이런일은 비일비재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박실장은 대통령실에서 안기부장이 말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손과장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펭귄총재가 정권을 인수하고 강대통령과 밀약이 성립된다 하더라도 인사이동을 하게되면 자신은 퇴직을 하게될지 알 수가 없는 일. 아무리 밀약을 했더라도 펭귄총재 추종자들이 이 사건을 안다면 서로 맡으려고 나설 것은 불을 보기보다 뻔한 일 이었다. 어쩌면 손과장 생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박실장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손과장." "예," "좋아, 그렇지만 절대로 흔적을 남겨서는 안되네." "흔적을?" "국회의원, 그리고 화성그룹에서도 전문가를 시켜 미행하고 있을테고 도청까지 하고 있다는 것을 늘 명심하게." "알겠습니다." "그들에게 어떠한 흔적, 즉 워더맨과 우리가 접촉했다는 증거가 그들에게 들어가면 나중에 법정에서 우리가 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두게. 직원들에게도 모르게 자네 혼자서 움직이게. 알았지," 박실장은 눈을 빛내면서 날카롭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에게 이처럼 신뢰를 주셔셔 감사합니다." "아마, 자네하고 일한지도 벌써 20년이 돼가는군.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변해도 두 번은 변했을테니. 만약 어떤 사고가 발생하면 자네 혼자서 책임을 질 각오하게." "명심하겠습니다." 손과장은 고개를 숙이고 진실로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실장이 이처럼 다짐을 할 정도라면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손과장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연기를 허공으로 날리면서 무겁던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안심했다. 등받이에 상체를 편안히 누이고 연기가 벽에 걸린 태극기 쪽으로 줄무늬를 만들면서 태극기 위에 있는 대통령 사진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이제는 자신에게도 빛이 비춰졌다고 생각했다. 정권이 바뀌고 워더맨이 국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할 때 자신은 박실장과 함께 측근에서 일할 것을 생각하니 신이 절로 생겨났다. 이제는 아이들 교육걱정은 하지 않아도, 조기퇴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한시름 놓은 이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때 행정고시 공부하겠다고 마음먹던 젊은 날의 추억이 떠올랐고 지금은 고시라도 패스 한 것 같은 심정이었다. 친구녀석에게 그 순간의 심정을 물으니 마치 천하를 얻은 기분이라는 심정을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20 현철은 준호가 그만두자 걱정이 되어 약국에 있는 사촌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울림과 동시에 귀에 익은 사촌 형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나야. 그 사람이 어제 그만두었어. 무슨 일 있어?" "그래? 왜 그만뒀지?" "내가 가게에 출근하니까 집사람하고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있길래 큰소리를 쳤더니 저녁에 와서 그만두겠다고 하며 가버렸어. 어떻하지?" "그만두겠다는데 뭐 할 말이 있니? 조금 전에 육촌형한테서 전화가 왔었는데 어제 그사람을 미행하다가 놓쳤다는 거야." "왜? 육촌형이 뒤를 밟았는데도 놓쳐버렸단 말야?" "형님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시켰는데 글쎄 그사람 말을 들으면 택시타고 버스타고 갑자기 내릴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놓쳤다는 거야." "집사람은 어제 늦게 왔어. 집에 들어가서 기다리니 10시경이 돼서야 들어오는거야. 어디 갔다 왔냐고 물으니까 왜 상관이냐고 소리를 지르길래 하마터면 때릴 뻔 했어." "참아라. 절대 손대면 안돼. 알았어?" 사촌형은 다짐을 받듯이 외치듯이 말했다. "알아, 그래서 나도 열이 받쳐서 어머님 집에서 잤어." "전화는 어떠니?" "아직 어떤 뚜렷한 것은 잡히지 않고 있는데. 명숙이라는 대학동창한테 부탁을 했는지 부산에서 만나자고 하는 사람이 있나봐." "그러니까 뭐래?" "지난번에 말한 사람하고 교재를 할 거라고 하는데 그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어." "두고보면 알겠지. 곧 꼬리가 잡힐거야. 미행하는 사람을 더 늘릴거다." "알았어. 형 손님이 왔어." "응, 그래." 준호는 인사동거리에 있는 그림가게에서 그림을 보고 있다. 옆에서 같이 그림을 보고있던 등산복 차림의 사람이 그림을 감상하면서 말했다. "선생님. 고개를 돌리지 말고 그대로 그림을 보면서 제 이야기를 듣기만 하십시오. 다행이 가게에는 다른 사람이 없으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움직이지 말고 말하면 됩니다. 지금 선생님은 서초관으로부터 미행을 당하고 있습니다." 등산복을 입은 손과장은 그림을 보면서 말했다. "누굽니까?" 준호는 고개를 돌리면 보려고 하니까 손과장이 말했다. "저를 보면 안됩니다. 밖에서 감시하고 있으니까요." 준호는 움찔하면서 그림으로 시선을 주었다. "저는 안기부에 근무하는 과장인데 신분은 더 이상 밝힐수 없는 것을 양해하십시오." 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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