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형석 2005. 7. 4. 23:03
"카렌다 제작회사에다 판대요. 카렌다에 나오는 우리나라 비경들을 아버지와 친구 분들이 촬영한게 상당수래요."
"정말 멋진 아버지를 두었구나. 설희는..."
"제 이름이 왜 설희인지 아세요?"
"아니."
"원래는 아버지께서 설화라고 지으셨는데 어머니가 화자를 희자로 고치자고 해서
설희라고 된 것이죠. 설화는 좀 천하다고 어머니가 우기셔서. 그러나 한자로는 설화는 눈설 자와 꽃 화자가 합해져서 눈으로 피어난 꽃 또는 눈 속에 피어난 꽃이라는 뜻이래요. 아버지는 사계절 중에서 겨울 산에서 볼 수가 있는 설화가 제일 아름답다고 하시고 가을단풍도 설화에는 아름다움이 미치지 못한다고 하셔요.

또 매화와 함께 사군자를 무척 좋아하시고 사군자를 그리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시죠."
"야, 정말 멋진 아버지를 두셨구나. 나도 사군자를 좋아하는데."
태호는 말하고는 설희의 어깨에 팔을 슬그머니 얹었다.
설희는 어깨를 움찔하고 얼굴이 붉히며 고개를 죄지은 사람처럼 푹 숙였다. 태호는 설희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손에 힘을 주며 자기 쪽으로 당겼다.
태호는 마치 참새가 파득거리 듯이 자신의 가슴에 안겨 떨고 있는 것을 느꼈다.
"회장님, 이러시면..."
설희는 말을 잇지 못하고 흐렸다.
"설희야, 나는 언제부터인가 네가 좋아졌다. 이해할 수 있겠니?"
"회장님, 사모님이..."
설희는 태호를 바라보면서 궁금한 듯이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지금 별거중이니까."

태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면서도 집에 있는 부인을 떠올렸다.
화성그룹 부회장인 태헌 형이 어이가 없어 하는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기억에 떠올렸다.
ㅡ 아, 글세 대통령이 그 사람에게 순익의 50%를 주라고 하잖아. ㅡ
태호는 사촌형이 바로 앞에서 말한 것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해냈다.
"어머, 왜요?"
설희는 궁금해서 까만 눈을 들어 태호를 또렸히 바라보았다.
"개성이 너무 강해서 그렇지 뭐. 집에 들어가기가 싫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태호는 팔에 힘을 더주며 설희를 자신의 몸에 밀착하도록 당겼다.

"부회장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드릴께요."
설희는 숨이 막혀서 태호의 팔을 벗어나겠다는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태호 팔을 들어 내리면서 말했다.
"응, 그래."
태호는 설희의 부드러운 팔이 자신의 팔을 내리게끔 힘을 빼면서 쇼파에 등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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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움직인 개미' 라는 우화인데요 부회장님도 들으시면 우울한 기분이
줄어들 거예요.
코끼리가 어느 여름날 언덕으로 소풍을 나갔습니다. 코끼리는 그 때 마침 어디론 가 끝없이 이어져 가는 행렬을 보았습니다. 개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긴
행렬을 이루며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저 많는 개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틀림없이 무언가 굉장히 좋은 것이
있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한 코끼리는 마침내 개미 행렬의 맨 끝을 따라 붙었습 니다. 도데체 이렇게 많은 개미들이 틀릴 리가 없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개미들은 코끼리라는 산을 움직이게 되었답니다."
"하하, 정말 재미있구나."
태호는 크게 웃으면서 설희에게 몸을 기댔다.

"생떽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를 의하면, 둘은 서로 쳐다보는 사랑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사랑만이 인간 한계성의 비극을 넘어 영원하고 무한한 사랑
으로 성숙된다 라고 말했다."
태호는 팔을 뻗어 설희의 상체를 자신의 가슴으로 당긴 다음 얼굴을 설희에게 가져갔다.
두 사람의 얼굴은 맞다을 만큼 가까이 있었고 설희의 숨쉬는 맥박이 뛰고 있는 것이 전해져 왔다.
태호는 설희의 양 어깨에 두 손을 얹고는 조그맣게 말했다.

"설희야, 나는 너를 나도 모르게 사랑하게 되었다. 이해해 줄수 있겠니? 사람에게는
인연이 있고 또 만남이 있는 것이다.
부모와의 만남으로 해서 삶을 마칠 때까지 수 많은 만남이 있고 이별이 있는 것인 데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연일 수도 있는 법이다.
키스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입술이 서로 닿는 행위인데 이는 곧 육체의 맞닿음을
넘어 '넋의 맞닿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태호는 엄숙하게 설희의 귓속에다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술을 설희의 입술 위에 덮었다.
설희는 자신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고 정신은 아득한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같이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흥분 되어가는 것을 어쩌지 못하고 태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몸이 뒤로 누워졌다.
"으읍."
설희는 무슨 말인 가를 하려고 했지만 태호의 입술에 눌려 입밖으로 내지 못하고 만다. 아마도 '부회장님, 이러시면 안되어요.' 라고 분명히 말하려고 했을 것이었으리라.
태호는 설희와 키스를 하면서 중국 속담을 떠올렸다.
ㅡ 사랑은 온 몸이 눈이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지 모를
법정에서 증언을...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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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을 한 설희는 서초동 성당으로 향한다. 멀리 성당의 건물이 보이고 창공을 가르듯이 십자가가 하늘을 향하여 있다. 지붕 위에는 지금 수탉이 새벽을 막 알리는 훼를 치는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른 아침을 깨어나라는 자신의 임무의 소명을 다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충실한 수도자가 본연의 사명을 나타내는 듯하여 신자들에게 무언의 교리를 설명하는 듯하며 설희는 다른 성당보다 늘 서초동 성당을 찾곤 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학이 마치 나래를 펴듯이 가지들을 펼치고 거북이 등처럼 한 무늬
를 하고있는 줄기를 한 소나무를 뒤에 두고있는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서 묵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돌아서 사무실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 있는 김대건 신부 상 앞에 묵상을 하고는 성당으로 들어가 예수님 고상 앞에서 참회의 기도를 하였다.

성당 안에는 설희와 미사를 드리기 전에 묵상을 하려는 사람들 몇사람이 자리에 앉아있고 또 명상에 잠겨있는 수녀님도 눈에 띄었다.
높은 벽 가운데에는 예수님 고상이 십자가에 양 손과 두 발에 못이 밖혀 고개를 떨군채, 고통에 못이겨 신음을 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붉은 카페트는 분위기를 더욱 엄숙하게 하였으며 고요함은 설희로 하여금 숨이 막히게 하였다.
설희는 무릎을 꿇고 참회의 기도를 하였다. 태호와의 합당치 못한 관계를 생각하며 기도를 하였다.
" 나는 지금 나의 아픔 때문에 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직 나의 아픔만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나의 절망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직 나의 절망만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깊은 허무에 빠져 기도합니다

그러나 허무 옆에 바로 당신이 계심을 알게 하소서

나는 지금 연약한 눈물을 뿌리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남을 위해 우는 자 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죄와 허물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또다시 죄와 허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모든 내 이웃의 평화를 위해서도 늘 기도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영원한 안식을 기도합니다

그러나 불행한 모든 영혼을 위해 항상 기도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용서받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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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굳셈과 용기를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더욱 바르게 행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설희는 기도를 드리고 나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참회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기도글 끝에 씌여있는 도종한 이름을 기억에 떠올리면서...
이 기도글은 설희가 예수님께 가까이 가고 싶을 때에 속으로 묵상을 하던 것인데 오늘은 자신이 지은 죄책감에 속으로 읽고 있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아내가 있는 남자와 불륜을 맺고 말았다는 것에 예수님께 용서를 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튿날 설희는 제 시간에 사무실에 도착해 의자에 앉았다.
태호가 출근하기에는 시간이 아직 여유가 있어서 자리에 앉아 어제 언니가 한 말이
생각났다.
ㅡ 사람이 어떻게 완벽하게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니?
처음부터 알고 행한 일도 아닌데... 이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키는 사람이 과연 몇사람이나 되겠어. 너무 죄책감을
갖지 말도록 해라.
어차피 부회장님이 그런 갈등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조만간
너가 아니라도 다른 여자와 재혼을 하게 될 것이니까. ㅡ

설희는 언니의 말대로 위안을 삼았다. 또한 언니의 말이 사실이라고도
여겨졌다.
현실과 죄 그리고 행복 이 세가지가 갑자기 자신에게 왜 들이닥쳤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설희는 자신이 지금 혼돈 속에 빠져있다는 것을 느꼈다. 잠시후 복도에서 태호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이른 아침 근무중 이시간에 부회장실로 올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구두소리가 들리는 간격도 설희는 익숙해져 있다.
태호는 연한 베이지색 양복을 입고 문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설희는 어제일을 생각이라도 한 듯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였다.
"응."
태호는 대답하고는 설희의 표정을 힐끗 일별을 하고는 열려있는 부회장실로
들어갔다.

설희는 늘 하던대로 따라 들어가 태호의 상의를 받아 들고 옷걸이에
건다. 그리고는 차를 준비하기 위해 뒤돌아갔다.
설희의 뒷 모습을 오늘도 다름없이 태호는 보고 있다. 그리고는 싱긋이 웃는다. 자신의 뜻대로 되었을 때에 웃는 만족하게 웃는 미소였다.
쇼파에 앉은 태호는 기지게를 켜고는 몸을 쇼파에 푹 파묻고는 눈을 감고 어제의 일을 생각했다. 설희가 출근을 하자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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