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형석 2005. 7. 4. 22:50
진경의 고함소리에 자고있던 아이들이 둘 다 함께 울기 시작했다.
진경은 큰 아이를 달래고 작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입술을 꼭 물고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진경의 뺨에는 소리없는 눈물이 흘렀다.
"흑.흑."
진경은 서러워서 참으면 참을수록 더욱 눈물이 흘러나왔다.
거실의 시계는 자정을 알리고 있었고, 일순 적막감이 찾아와 외로움을 더욱 느끼게 하였다.

고여사는 벽에 걸린 남편의 사진을 보고는 한숨을 쉬며 괴로움에 눈시울을
적셨다. 이웃에 살고있는 영남이 엄마라도 있으면 가서 화풀이라도 하겠는데 이미 진경이가 결혼한 후에는 서초동 아파트로 이사를 가버려 마음속으로 원망을 해볼 뿐이다.
진경의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나 십여년이 지나버린 지금이나 벽에 걸린 사진은
지그시 고여사를 내려다 볼뿐 이렇다 하는 아무런 말도 없다.
고여사는 그럴 때마다 설움이 복받쳐 오르는 것을 참을수가 없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려 주름살이 생긴 얼굴을 적실 뿐이었다.

ㅡ 당신이 진경이가 결혼을 하기 전에 어떤 암시라도 주어야 하지 않았수.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다 볼 수가 있지 않은가요? 당신이 자식을 사랑하고 나의 고생을
알고 있다면 어찌 그렇게 무심할 수가 있나요? 당신은 이 세상을 내려다 볼수가
없고 또한 관심을 가질수가 없는 곳에서 있나요? 이제 진경이는 어쩌면 좋아요?
도저히 같이 못살겠다고 하는데 그리고 현서방은 이혼을 절대로 해주지 않겠다
고 한다던데 이문제를 어떻게 풀어야지 당신 뭐라고 말좀 해봐요. 예? ㅡ

고여사는 사진을 보며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며 하염없이 슬픔에 젖어 중얼거렸다. 그래도 벽에 걸린 사진은 무심히 고여사를 내려다 볼 뿐이다.
넓은 이마와 머리를 옆으로 넘기고 둥그스름한 얼굴에 넥타이를 메고 찍은 사진의 모습은 결혼하고 바로 찍은 것인데 얼마나 젊고 멋있던지 고여사는 남편이 저 세상으로 가버린 지가 수십년이 되었건만 연애시절의 즐거웠던 추억을 지금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서럽고 이 고통을 자신 혼자서 떠맡아야 하는 괴로움을 어찌할 수가 없어 얼굴이 그사이 몰라보게 늙어 있었다.
자신의 무리한 욕심에 딸아이의 일생에 상처를 주어야했던 죄책감을 남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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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는 한성그룹 부회장실에 출근하여 자리에 앉자 마자 차를 가지고 들어온 설희에게 말했다.
"천우 인터내셔날에 전화를 해서 전무와 본부장을 이리로 들어오라고 해라."
"네,지금 말이죠."
"그래."
"알았습니다."
설희는 자신의 자리로 들어와서 곧바로 천우 사장에게 전화를 하였다.
"천우 인터내셔날입니다."
여직원이 전화를 받는 목소리가 선을 타고 들려왔다.
"미스공, 여기는 한성그룹 부회장실입니다. 사장님을 부탁드릴까요?"
"아, 그러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시후 가냘프면서 섬세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 난데 무슨일이야?"
권사장은 긴장을 하면서 말했다.
"네, 회장님께서 사장님과 전무님과 본부장님, 그리고 경리부장을 이리로 오시라고 하십니다."
"그래?"
권사장은 놀라서 되물었다.
"무슨일이 있나?"
탐색하는 듯이 물어오는 질문에 설희는 갑자기 오준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잘 모르겠어요. 이곳으로 오시라는 지시만 받았습니다."
설희는 순간 부드럽던 자신의 목소리가 냉정해져 있다는 사실에 자기도 놀랐다.
"알았어. 전무와 본부장을 불러서 곧 뵈러 들어가지."

권사장은 전화를 내려놓고는 쇼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ㅡ 무슨 일일까? 왜 갑자기 이리로 오지않고 한성그룹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걸까?
전무는 미국에 출장을 가고 없는데 무슨 일이 있지 않고서야 호출을 할 리는
없는데... ㅡ
사장은 시계를 보더니 미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후 교환이 나오고 미국 쉐라톤 호텔을 연결해달라고 하고 기다렸다.
곧 전화벨이 울리고 전화가 연결되어있다고 교환원이 알려왔다.
김전무 목소리가 인공위성을 거쳐 선을 타고 들려왔다.
"여보세요?"
"김전무, 나요."
"아, 사장님. 무슨일 있어요? 이 밤중에 전화를 주시고..."
"장회장이 김전무와 본부장, 그리고 경리부장과 함께 한성그룹으로 들어오라고 하는데 무슨일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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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난 아무런 얘기도 없었는데요. 사장님 회사에 무슨일 있습니까?"
"글쎄 나도 지금 어떤 일이라도 있는가 해서 궁금해서 전화를 한건데 무슨일이
없고서야 나와 경리부장까지 그리고 해외 출장중에 있는 전뭄까지 부르는 것이 좀 걱정이 되서 말이요."
"글쎄. 생각해보니 그것도 그렇군요. 하여튼 가보시고 전화를 주세요."
"그래요."
권사장은 전화를 내려놓고 본부장과 경리부장을 불러 사무실로 바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경리부장과 함께 권사장은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한성그룹 사옥이 있는 서초동으로 향했다.

아무도 영문을 모른채 한성그룹에 다가갈수록 권사장은 초조감을 금할 수가 없었다.
정문에 기사가 차를 대자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수위 권사장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일어나서 인사를 하였다.
본부장이 나서서 말했다.
"부회장님이 그룹과 별도로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님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경비원은 반문하고 인터폰을 들더니 부회장실로 연결하고 확인하였다.
"아, 네. 알겠습니다. 올라가십시요."
인터폰에 지시를 듣고는 권사장을 보면서 말했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는 권사장은 웬지 불안했다.
좁은 엘리베이터 공간은 마음을 더욱 불안하였고, 좁은 공간 내에 정적이 흐르자 권사장은 긴장이 되었다.
엘리베이터가 8층에 멈추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두사람은 나와서 부회장실로 복도를 꺽어서 걸어갔다.
조용한 적막감이 흐르는 복도를 따라 걷는 두사람의 구두소리가 심장에 고동을 치는 것처럼 크게 들리자 두사람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천천히 걸었다.

권사장은 복도 맨 끝에 있는 문에 다가가자 문은 열려 있고 설희가 앉아있다가 복도에서 들리는 구두소리를 듣고는 일어나서 문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설희가 말을 하자 권사장이 대답했다.
"응. 회장님 계시나?"
두사람은 비서실로 들어가자 설희는 부회장실로 안내하였다.
"들어가세요. 부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두사람은 설희가 안내하는 부회장실로 들어가니 열개의 의자가 양쪽으로놓여진 긴 테이블 가운데 큰 의자에 태호가 앉아서 두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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