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형석 2005. 7. 4. 19:33
태호는 아버지 말을 기억하면서 설희가 볼 수 있도록 준호가 가져온 서류를 들척이며 보고 있었다.
설희는 잠시후에 들어와서 말했다.
"부회장님, 그 사람이 왔었어요"
"그래, 음."
태호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서 한모금 마시고 테이블에 내려 놨다. 사기잔이 찻잔에 부딪치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 어떻게 할까. 오라고 할까. 아니면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릴까. -
태호는 생각했다. 설희는 태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태호는 말없이 서류를 보고 있다. 설희는 도무지 태호의 심중을 알 수가 없어 조마조마하며 있는데 태호가 말했다.
"글쎄 한번 더 읽어보고."
태호가 말하자 설희는 안심하면서 말했다.
"매일 11시가 되면 노크를 꼭 세 번만 하는 것 있죠?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와서 회장님을 뵐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회장님 지금 외출중이시라 뵐 수가 없다고 하면, "알겠습니다"하고 기다리지도 않고 그냥 돌아서서 내일 뵈러 오겠다고 말하면서 나가는 것 있죠."
설희는 태호가 화내는 표정이 없자 종달새처럼 말했다.
"그 사람이 뭐하는 사람이랬지?"
태호가 관심을 표명하자, 설희는 목소리에 톤을 높이면서 말했다.

"영업부래요"
"영업부에 근무하는 사랍이 왜 기획을 했을까?"
"전무와 본부장이 기획을 하라고 했대요. 그래서 3년동안 전문기술 연구소를 찾아 자기가 모은 돈을 다 쓰고 또 모자라 은행돈을 얻어 썼다고 하던대요. 지금은 방세가 석달 씩이나 밀려 있고 추석에 성묘도 못가서 회장님께 말씀드려 어떻게든 브리핑을
해달라고 매일 왔다가 돌아가요."
설희는 지겹다는 생색을 내면서도 은근히 준호의 입장을 대변해주듯이 말하고 있었다.
"전무와 본부장이?"
태호는 확인이라도 하듯이 되물었다.
"네, 그러면서도 영업을 계속하면서 시장조사를 했다고 하던데요."
"그래? 알았어."
태호는 일단 설희를 비서실로 보내고는 서류를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모델 : 아리아스 아그리빠 비너스 줄리앙"
태호는 다음 장을 넘기면서 아까 화랑에서 본 석고상을 떠올렸다.
향후 이프로젝트의 국제시장은 약 5조 달러 시장이 된다고 하며 또한 빨리 우리의 브렌드화 하기 위하여서는 단기간에 상품을 개발하여 세계시장에 내놓아 열강국들은 물론이고 이웃 일본과 라이벌인 대진그룹이 준비하기 전에 비밀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뭐, 5조 달러? 향후 30년 동안?"
태호는 어이가 없어 천정을 보며 한동안 넋나간 사람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태호는 생각했다. - 과연 그만큼 시장성이 있을까? -
태호는 또 자신이 흥분되고 있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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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음 장에는 맥주시장을 공략해야 되기 위해서는 해외에 비밀리에 착공을 해야한다고 설명되어 있었고 물이 많이 소요되는 과정이라 필수적으로 우리나라는 물이 부족하여 도저히 감당을 할 수가 없으므로 동양의 어느 한 곳, 필리핀에 시급히 착공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라 할 만큼 90% 이상이 술을 마실 수 있으므로 동남아 중에서 가장 적합한 나라라고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자면 지금 하루라도 빨리 서들러서 유력한 후보지 필리핀에다 세울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카톨릭을 믿는 그 나라에서도 맥주를 소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필리핀에는 우리나라 미스 코리아 진으로 뽑힌 여자가 그 곳 부동산 개발의 그룹의 회장과 결혼을 해서 그 그룹과 교섭을 희망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태호는 거대한 중국에서 가져온 차 맛을 음미하면서 서류에 기재된 내용들을 샅샅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검토하고 있었다.

전세계인들이 A급 맥주를 마신다면, 태호는 이런 상상을 하자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고 생각했다. 가능한 일일 것이다. 코카콜라가 전세계에서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마셔대고 있지 않은가. 비록 맥주의 종류가 수 백개가 있다지만 날로 심각해져가는 환경오몀을 벗어난 깨끗한 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안다면 이 시장은 얼마나 넓고 클것인가도 생각했다.

맥주공장을 추진하려면 3,000억원이 들어가는데 한성그룹으로서는 감당을 할 수가 없었고 또한 아리아스 아그리빠 비너스 줄리앙 모델을 개발하여 세계시장에 내다 팔 능력은 국내 최대그룹인 큰아버지의 화성그룹에 찿아가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보통 맥주를 한 컵 만들려면 세 컵의 물이 소요가 되는데 더욱이 이 NASA의 특허 기술에 의존하는 방식에는 다섯 컵의 물이 소요가 되어야 한 컵의 맥주가 생산
될 수 있기 때문에 외국에다 맥주공장을 착공 하려해도 한성그룹으로서는 자금을
감당 할 수가 없다는 것을 태호는 잘 알고 있었다. 한성그룹의 재무능력을, 그리고 자금을 동원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태호는 다음 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피부에 화장이 얼마나 중요한 것 인지 설명되어 있고 화장품 사업에 진출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다음장에는 M&A를 해야 할 기업들을 한국기업평가 <주>에서 발행한 인수해야 할 회사의 재무재표를 포함한 공장 위치와 종업원 수 그리고 거래은행과의 빚 채무 액수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태호는 너무도 엄청난 서류의 내용에 엄두가 나지않아 서류를 든 채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ㅡ 어떻게 이런 서류를 기획한 사람이 영업을 하고 있었을까? 정말 독점적으로 판매를 할 수만 있다면 30년간 5조달러가 아니라 6조 달러시장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인들이 무한정 마셔대기 시작하고 10년에 한 번씩 기계를 교환 한다면 어쩌면 그시장을 우리 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웬일일까?ㅡ

태양은 푸른 하늘에서 빛을 쏟아내고 있었고 투명한 유리창을 비추고는 회의 테이블까지 와서 기다랗게 삼각형의 명암을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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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화성그룹의 명예회장은 대선에 출마하였다가 낙방을 하여서 현 정부로부터 심한 자금압박을 받아오고 있는 것을 태호는 알고 있었다. 사촌 형이 말할 때마다 가슴 아파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부의 압력에 어떻게 대항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다음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버티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그룹이 긴축정책을 해야 할 것이라고 사촌형들이 말했고, 큰아버지인 명예회장님도 인정하셨던 것이다.

이로인해 큰 아버지는 폭삭 늙어버렸고 라이벌 그룹인 대진그룹에게 선두자리를 빼앗겨 버렸던 것이다.
" M&A ( 기업 인수 및 합병 ) 라?"
태호는 생각했다.
ㅡ 그래 이 서류를 화성그룹에 갖다주자 그러면 부실기업을 인수해서 은행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심각한 정부의 압박에서 해방될 수 있겠구나! 어차피 우리 한성그룹이 해낼 역량이 없는데 오히려 잘 되었군. 3개의 회사만 인수하면 약 2조원은 자금이 조달되겠다. 2조원을 조달하려면 정부가 눈을 밝히고 감시하고 있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그러려면 은행으로부터 3개 회사가 빛을 지고있는 4,500억원을 떠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군.
현 정부가 모르게 감쪽같이 서둘러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인맥을 총 동원하여
빨리 진행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ㅡ
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탁!하고 내리쳤다. 그러자 설희가 깜짝 놀란 토끼눈을 하고 들어왔다.
태호는 그런 설희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아냐, 아무것도."
태호는 설희에게 말했다. 그러자 설희는 허리를 약간 숙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논개의 세계는 뭘까?"
아무것도 씌여있지 않아서 어떤 실마리도 잡을 수가 없었다.
태호는 다음장을 넘겼다.
"떠오르는 대 제국"
이렇게만 인쇄되어 있고 빈칸이었다. 마치 소설같은 이야기로군. 태호는 빙그레 웃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태호는 핸드폰으로 화성그룹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자, 이윽고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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