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山 行 後 記/호남금강산 월출산

호남의 금강산 월출산과 산사의 정취가 가득한 도갑사 2004,4,12

방형석 2005. 5. 29. 21:40
버스 한대를 꽉채우고 강남1번지인 신사동을 출발할 때에는,
이미 도갑사에 봄바람을 불어넣고 돌아 강진에서 불어오는 바다내음을
실고 불어 올리는 연둣빛 바람이 구름다리를 하던 사월 초에 월출산을 찾았다.

새벽에 도착하여 천황사 주차장에서 옹기종기 모여 아침을 먹고 나니 여명이
밝아오기 전이었다.

세죽(細竹)은 어둠을 젖혀온는 이른 새벽에 푸름을 간직한 채 나의 두배다 되는 ㅋ큰 키를 자랑하며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날씨가 흐려서 가파른 산을 오를 때는 어느새 이마에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시선을 압도하는 장엄한 산머리에는 희뿌연 하늘이 펼쳐졌다.

뿌연 가스가 장막처럼 산을 감싸고 있었는데..
깃대봉,시루봉,매봉,연실봉,사자봉,천황봉,장군봉이 한 덩어리고 얼크러져 밝아져 오는 하늘 아래 스카이 라인을 그려 놓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아침 땀을 흘리고 가파른 숨을 고르면서 근육 같은 바위를 넘고 올라서 천황봉에 오르자 완만한 곡선과 함께 삐죽삐죽한 바위들은 마치 창검 같았다.

왼쪽으로는 영산강이 선명하게 구부러져서 목포 앞바다로 흐르고 있었으며 오른쪽에는 강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등의 땀을 식혀주고 있었다.

준령들이 백두대간 시점인 지리산에서 내려와 강진까지 이어지고 있었으며 아침의 고요한 바다는 장대하게 뻗어나간 준령들을 안고 있었다.

서쪽으로 어깨를 내리는 향로봉 줄기가 용의 이빨 같은 뾰족한 기암을 세우고 있고
바로 곁에 구정봉이 우뚝서서 강진을 향하고 있었다.

세월의 영광스런? 훈장인 주름살을 하늘에 맡긴채, 손님이 오거나 말거나 걱정을 벗어난 산꾼처럼 졸고 있는 것 같았다.

경포대로 내려가는 길 먼 아래에는 산으로 둘러쌓인 분지처럼 검푸른 저수지가 있었고 그 곁에 한쪽으로 마을이 내려다 보였는데, 아주 평화롭게 보여졌다.

이처럼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영암에 누가 이처럼 우람한 근육 같은 기암괴석을 만들어 놓았는가.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남진하던 백두대간이, 장수에서 함양의 경계를 이루는 영취산(1,075m)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치며 금남호남정맥을 흘려놓았다.

바람재에 이르러 능선을 따라 걸으며 좌우를 둘러본다.
유독 이곳 만이 설악산의 공룡능선을 받치고 있는 기암을 불러놓고, 한라산의 오백나한이 있는 영실의 뾰족한 바위들을 심어다 놓았으며, 지리산의 지리한 능선을 옮겨 놓은 것 같다.

이 세곳의 명산의 아름다움의 일부들을 옮겨 놓을 수 있는 자는 오직 창조주의 능력 뿐이 아니겠는가!

국토의 균형이 장백산맥을 축으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한반도의 허리라면 이곳 영암의 월출산을 심어 놓고 동서의 균형을 잡아 놓은 것이 아닐까.

그것은 마치 지진을 염려하여 배려해 놓은 신(神)의 안배가 아닌가 싶다.
이웃나라 일본이 지진의 공포에 살고 있는 데에 반해 우리는 이러한 신의 축복된 땅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산행을 하면서 중얼거리게 하였다.

지도를 보면, 장안산~수분치~마이산~ 부귀산을 거쳐 온 금남호남정맥이, 완주군 조탁치에 이르면 입봉~황조치~현석산~왕사봉 쪽으로 북진하는 금남정맥과,웅치~갈미봉~내장산~무등산~구봉산~봉미산을 거쳐 섬진강 줄기를 감싸며 광양의 백운산을 향해 구불거리며 뻗어가는 호남정맥으로 갈린다.

백운산을 등산하고 나서 여인이 배를 살며시 보이듯이 섬진강의 백사장의 곡선을 보면서 거슬러 올라가면 수많은 항아리에 매실즙을 보관하고 있는 매화마을을 만난다.
전국의 상춘객들은 매화축제가 벌어지는 때에는 화개장터를 들려 만개한 매화를 보로 섬진강의 호젓한 도로는 심한 체증의 몸살을 앓는다.

그 호남정맥이,장흥과 영암과 화순의 경계가 세갈래의 머리를 모으는 바람재에 이르렀을 때,영산강 줄기들을 남쪽에서 감싸안으며 월출산으로 서진하는 산줄기 하나를 흘린다.

바람재~덕룡재~계천산~서일봉~가음치~불티재~천황봉~향로봉~월각산~별매산~흑석산을 거쳐 점두봉에서 서해로 감겨드는 70km가 넘는 산줄기. 바로 그 산출기에 월출산은 솟아 있는 것이다.

이 산을 거쳐서 해남 해남 땅끝으로 가는 산줄기는 분명, 금남호남정맥보다 길고 금북정맥이나 한남정맥보다 높은 봉우리들을 지니고 있다.

이 산줄기가 영산남정맥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가 영산강 수계(水界)가 백두대간에 머리를 대지 못했다는 데 있다면 별매산~서기산~ 첨봉~두륜산~달마산을 거쳐 갈두로 이어지는 60km 남짓한 산줄기가 있다.

결론을 말한다면,백두산에서 갈두까지, 더 먼곳부터 말하라면, 장백산맥의 정간이 발을 담그는 두만강변에서 한반도의 땅끝까지, 물을 건너지 않고 이어지는 분수령이 있는데, 그 끝머리 일부는 서맥(西脈)의 취급을 받으면서 이름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 아닌가.

구정봉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고 호남정맥과 금남정맥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산악회를 떠올려본다.

인적이 닿지 않는 길도 희미한 곳을 헤치며 지도를 보고 나침판을 대보면서 선조들이 지나간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산행도 흥미를 돋군다.

구정봉에 앉아 회원들과 담소하면서 간식이랑 삶은 계란을 까먹고 있을려니 후득후득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도갑사로 향하여 능선을 내려갔다.
저멀리 도갑사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눈에 띠었다.

길 옆에는 일행이 모여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장소가 있는데, 헬기장이었다.
잔디가 넓게 자라고 있어 문뜩 앉아서 하늘을 보고 잠시 쉬어가고 싶었다.

뒤따라 오시던 죽산님과 등산객들이 하산하는 길을 비껴서 호젓하게 나있는 길로 접어들었다.

진달래가 길 양쪽으로 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그 꽃잎이 어찌나 붉었는지 장수군에 있는 논개사당이 생각났다.

우리의 어머니인 논개, 주논개의 입술은 님을 향하는 정열과 더불어 구국의 열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 뜨거움처럼...
고려청자로 유명한 강진의 바닷바람으로 해서 붉게 되었을까.
초연하게 피어있는 진달래꽃의 색은 누구도 표현할 수가 없으리라 여겨졌다.
논개의 구국을 향한 마음처럼 초연하게 보였던 것이다.

조용한 산길을 걸으면서 내내 느낀 것은 산행할 때부터 새소리가 끓이지 않고 들려왔는데...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깊은 산도 아닐진데 새소리는 얕으막한 능선에 살며 바위로 이루어진 이 산에서 물림을 받아 새소리를 들려준다는 데에 월출산을 수차례를 다녀왔지만 새삼 훌륭한 신의 작품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

누군가 그랬는데...
산은 같은 산이라 하여도 세번 혹은 네번은 가보아야 만이 그 산의 풍기는 정기를 알 수가 있다고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러한 느낌을 몰랐었는데...

도갑사로 이어지는 곳에 무덤이 있었다.
무덤 위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누구도 보살피지 않는 듯 했다.

그러자 죽산님이 말했다.
"돌보지 않으려면 화장을 할 것이지..."

그 무덤은 죽어서도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의 대화를 들을 것이고, 나름대로 후손은 부모를 외롭게 하지 않으려는 선견지명이 있는 듯 했다.

도갑사로 내려오는데 개울에 물이 졸졸흐르고 있었고 발을 담그니 차디 찼다.
산도 앝은데 물이 이렇게 차다니...

도갑사로 내려와 절을 지나면서 절 앞에 있는 좌우로 펼쳐져 있는 잔디밭과 화려하지 않은 절은 고향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에 충분했다.

절 입구에 있는 음식점에 커다란 팽나무에 대나무로 엮어 만든 넉넉한 상이 대여섯개 놓여져 있어 올라가 동동주와 도토리 묵을 시켜 놓고 죽산님과 마시고 있으려니 발비님과,걷기9단님이 내려왔다.

술을 마시면서 도갑사를 바라보니 아무리 보아도 이렇게 편안한 절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왜 여지껏 이러한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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