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山 行 後 記/덕유산향적봉설목.설화

향적봉은 안개에... 2014 . 1 , 18

방형석 2005. 5. 7. 22:12

서울의 아침 거리는 비가 그치고 있었다.
아마 덕유산에 도착하면 날씨가 개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며칠 째 동장군의 전령인 겨울비가 추적거리며 뒹구는 낙엽을 적시니
웬지 마음이 우울하게 느껴진다.

화려했던 지난날.
그토록 뜨겁게 대지를 달구었던 지난 여름.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주었던 싱싱한 초록의 나뭇잎들이
단풍이 되고 이제는 색이 바래서 애처로이 가지에 매달리다가 떨어질 때
나는 비애를 느낀다.
우리의 인생과 다를 바 없이 느껴져서이다.

덕유산 무주리조트에 도착하니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등버스로 가는 편안함은

창 밖을 스쳐가는 풍경과 함께 즐거움을 안겨 주고 있었다.

우리는 좌측 길로 편안히 갈 수도 있었으나 보다 빨리 설천산장으로 오르기 위해
스키장으로 강행했다.

30도 경사로 시작되는 스키장은 이정표 거리도 없는 길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마치
용감한 수색대원 같았다. 안개가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가파른 길을 오르는

우리는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푸들님, 무속인님, 소피님 이렇게 4명은 후미를 조금 떨어뜨리며 가파른 스키장을 올랐다.

곤돌라는 멈추어 있고 하늘은 안개비로 시야를 해치고 있다.
지루한 행군이 계속되자 모두 힘들어했다.
곧 상급자 코스가 나타났다.

그러자 45도가 되는 것 같은 경사가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안개 속에 이어지는 스키장을 헤치고 오르자 마침내 설천산장이 안개 속에

어슴프레 나타났다.

산장 위로 올라가자 잠시 후에 회원들 모습이 하나 둘씩 나타났다.
안개비 속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꺼내 놓고 모두들 손이 시려워지는 가운데 식사를 시작했다.
바람은 세차게 불어대고 있었으면 습기를 머금은 물안개는 15 미터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고사목은 지나날의 영화를 나타내듯이 가지를 수평으로 펼치고 있었고

우리는 그 애수에 젖을 사이도 없이 먹기에 바빴다.

슈퍼에서 소주와 복분자를 믹스해서 1.5 리터 생수병에 가득채운 것을 금새 바닥이 났다.

나는 배낭에서 콜맨 휘발류 버너를 꺼냈다. 그런데 아무도 코펠이 없었다.
아니, 이런! 

후라이 팬을 꺼내 물을 끓여서 깨끗이 닦고, 열심히 데워서 커피를 만들었다.
역시 휘발류 버너는 금새 많은 회원들에게 따뜻한 물을 제공할 수 있었고,

손이 곱아져 오는 우리는 속을 데웠다.
아마 체감 온도는 영하 5도는 넘었으리라.

커피를 마시고 우리는 향적봉으로 향했다.
안개비와 세찬 바람에 떨고 있는 산죽들의 녹색과 회색으로 테를 두르듯이

무릎에 우리를 반기며 흔들고 있는 산죽들은 언제 보아도 정겹웠다.

정상에 오르니 안개는 세찬 바람과 함께 우리에게 추위를 안기고 있었다.
향적봉 1614m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백련사로 내려오면서 오르는 사람이 없어 우리는 조용한 산행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래서 비오는 산행도 운치가 있다니까...

나는 조용한 산을 무척 좋아하기에 내려오면서 사색을 즐기고 백련사 기와가 보이자,

그 사이 지나온 지난 몇년의 세월을 떠 올릴 수 있었다.
참 빠르게 지나가 버린 그 시간 나에게는 분명히 <대기만성> 을 위한

준비기간이었던 것이었다.

어느새 안개비는 이슬비가 되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비구나 절인 백련사는 지난날의 아늑함은 사라지고 현란한 색으로 바뀌어져 있었고

건물도 여러군데 눈에 띠었다.

삼공 매표소까지는 5.6킬로였다.
우리는 우렁차게 흐르는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 내려 오면서 경이로운 감탄을 연발하였다.

녹차를 풀어 놓은 듯한 玉水, 기암괴석들, 거대한 암반과 소, 그리고 폭포물을 담아 놓은 담들.

아아. 이 모든 것들이 언제부터 지금까지 있어왔는지 그 긴 세월을 헤아릴 수가 없다.

우리는 백년도 살지 못하는데...

그래서 우리의 선비들이 이곳으로 은거하고 영원한 아름다운 자연을 예찬했는지 모른다.

지루함을 모르고 계곡 다리 위에서 사진 촬영도 하면서 즐겁게 내려오면서

마침내 우리는 삼공매표소에 이르렀다.

자판기 커피를 열심히 나누어 주는 오향님, 커피 맛이 정말 다섯가지 맛이 나는 것처럼

아주 맛있었다.
주차장에 오니 회장님이 정한 출발 시간, 4시30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7시 너무 일러 오랜만에 뒷풀이를 11시까지 하고 노래방 가는

회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내일 변산반도 여행을 위해 버스에 올라야 했다.

 

 

 

갑오년에 지인과 함께 덕유산에 올랐다.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