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친구가 있다.
나는 광화문에 오면 이순신장군동상을 보게 된다.
수년 전에 광화문광장을 만들면서 도로 중앙에 굵고 커다란 은행나무들를 옮기고
세종대왕동상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버스를 타고 종각에서 광화문으로 U 턴하면 녹색잎을, 가을이면 커다란 은행나무는
노랑 잎으로 아름다운 색을 연출하였다.
잠시 사이에 그 많은 잎들은 녹색에서 노랑색으로 물들어 바닥에 떨어져
가을바람에 휘날리며 도로를 물들였다.
창 밖을 보면 애수를 자아내게 하였던 광화문 거리였다.
우리 민족이 존경하는 동상이 있다.
이순신장군. 세종대왕이다
대국 (大國)의 침략으로 우리 민족은 많은 피를 흘리며 국토를 지키기 위해
수없이 침입을 당했고 그때마다 국민은 유린당해야 했다.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일본의 침입까지 국토는 또 한번 유린당하고
국민은 통곡 속에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던 역사의 날을 기억하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박근혜정권이 들어서였다
필자는..
에이스프로젝트로 이병화필리핀참사관에게 의뢰한 적이 있었다.
현대그룹 왕자의 난 전에 정 명예회장이 필리핀을 방문하여 당시 미스코리아 진 출신이
부동산재벌과 결혼해서 살고 있는데 한국경제에서 동향을 기사화했다.
필자는 ..
에이스맥주에는 많은 물이 소비된다.
또한 판로를 염두에둬야했다면 카톨릭신자가 많은 필리핀이 유력해서였다.
갑자기 이병화대사 신변이 있음을 직감했다.
그 후 연락이 두절됐는데..
이병화씨가 러시아대사관 공사로 나이 60세 되어 일선에서 물러나 경기도자문대사로
근무했는데 ..
필자는 통화했고 만날 시간을 조율 중이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이병화씨는 은퇴 2년을 남겨두고 노르웨이대사로 발령받고
부임했다.
,,,
많은 후배들이 있는데 ...
왜? 의문이 길게 늘어섰지만 알 길이 없었다.
1
진주성
관군과 성 안에 백성들 10만명이 왜군을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그림을 보면 눈시울이 붉어졌다.
관군, 백성,어린아이. 부녀자 등이 흘린 피는 모여서 냇물이 되어
흐르고 시신은 여기저기 사방에 섞여 흩어져 있는 그림이었다.
논개바위가 남강에 아직 있었다.
많은 영웅이 있었고, 조상들의 슬기와 단결로 승리를 거두었다.
많은 위인들 중에서 이순신장군, 세종대왕 동상을 볼 때마다 역사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어제...
대국의 나라 시진핑국가주석내외가 방문했다.
한반도 평화와 경제협력을 위해 박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기자회견하였다.
서울대 강연에서는 일본의 침략으로 잔인성을 발표하였다.
일본은..
헌법을 개조하고, 일본 국민 절반이 반대하는 일을 벌였다.
2
20대 였던 필자는 시류 <時流>에 떠밀려 지금에 이르렀다.
시작은 김영삼정권부터 시작해서 이명박정권은 옛 현대가에서
입지를 세웠기에 기대하지 않았고.
그동안 세월은 쉬지않고 흘러 오늘에 박근혜정권에 이르렀다.
가을이면 광화문거리는 황홀 그 자체였다.
푸른 하늘. 녹색으로 푸르름을 뜨거운 여름 내내 보여주었던 은행잎이
한 잎, 두 잎씩 노랑색으로 변해가기 때문이었다.
광화문 뒤로 인왕산자락도 울긋불긋 물들어도 청와대는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삼청동으로 먹거리가 집합한 총리공관 뒤로 이어진 가로수들은 노란 카페트처럼
은행잎이 도로를 덮어 밟을 때마다 자연의 신비로움으로 가득찼다.
경복궁 입구에는 옛 영화의 향기와 함께 고궁을 둘러쌓고 있는 담 위에 일렬로 길게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얹어져 있는 검은 기와는 노란 은행잎과 멋진 앙상블을 자아냈다.
20대 꿈을 가진 친구는 외무고시 2번을 떨어지고 허탈해있었다.
홀어머니 아래 형이 직장생활로 신림동 집에서 넉넉지 않게 살고 있는 친구였다.
졸업을 앞두고 대학 4학년에 외무고시를 두번째 보고 나서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마시면서 자신만만해 했던 친구는 떨어져 풀이 죽어 다방에 나타났다.
두꺼운 검은테 안경을 끼고 삐쩍 마른 몸과 얼굴은 무척 수척해있었다.
광화문 사거리 신문로 입구에 황태자다방있었다.
국제극장 뒷 편에 자리한 다방은 이층이었고, 계단은 나무로 되어 있었다.
오를 때마다 가벼운 우리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삐걱거렸다.
3
교보빌딩 뒤에는 먹자골목길이며, 퇴근한 셀러리맨들은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꼼장어, 꽁치,삼치,청어, 닭모래집 등 요리하는 냄새로 골목길은 연기와 함께
왁자지껄하기는 지금도 같다.
세월이 30년 넘게 휙 ~ 화살처럼 지났어도 변함없다.
그 주인아주머니도 이제는 할머니되어 살아있는지 알 수 없으리라.
친구와 나는 틈새 동그란 식탁에 마주앉아 소주를 마셨다.
술을 잘먹지 못하는 친구는 허탈감에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 고시에 두 번 안떨어진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해 ! "
나는 속에 있던 말을 알콜과 함께 친구에게 보냈다.
" 말도 마 ! 나는 점수가 미세한 차이로 알았는데 형편없더군."
어느새 얼굴이 벌개진 친구는 손바닥을 내게 보이며 흔들었다.
" 어떤 과목이 ? "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 외국어 말이야."
친구는 자조섞인 목소리로 소주와 함께 내밷듯이 말했다.
" 어느 외국어 ?"
" 다, 형편없더구만. 일본어만 괜찮고 영어, 독일어가 기본을 겨우 넘겼어."
나는 말없이 소주잔을 들이켰다.
" 당분간 시험충격은 잊고 머리 식혀야겠다."
" 그나저나 어쩐다 ? "
"뭐가 ? "
" 대학원 진학을 하지 않았어."
" 어.. 왜? "
" 붙을줄알고 .."
나는 실소를 금치못했다.
" 그래도 만약을 생각해서 신청해놓아야지."
나는 테이블에 있는 소주병을 들어 빈잔을 채워주었다.
얼음 같이 차가웠던 소주는 녹아서 병 표면에 물기가 흐르고 있었다.
4
그 후 친구는 우리동네로 버스를 타고 왔다.
신림동에서 삼양동까지 다니는 버스는 25번 이었는데 잡생각이 나서
시간이 안간다고 했다.
나는 대망소설을 2권 주었다. 일본 북해도신문 편집장이 낸 작품이었다.
일본 역사상 가장 치열하게 싸움을 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였다.
친구는 두꺼운 책을 받아들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문득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을 느꼈다.
일주일 지나 일요일 책을 들고 친구는 나의 동네로 내렸다
책을 가져왔다.
"어때 ? 재미있니 ? "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 도꾸가와 시대가 펼쳐지기 시작하는군."
나는 친구가 가져온 책을 받아들고 다시 3.4.5 권을 주었다.
친구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책을 가지고 버스에 올라타면서 손을 흔들었다.
며칠 후, 퇴근 길에 충무로에서 만났다.
스카라극장 옆 카페 2층에 오르니 친구는 벌써 와 있었다.
바텐더가 칵테일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술을 주문했다.
" 어머님이 뭐라 하시더니 ? "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 아무 말씀도 없으시네. "
5
" 병역문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니 ? "
"글쎄, 대학원을 가야겠어."
" 그래야 만이 군입대가 연기되겠지."
" 그렇지. "
친구는 결심한 얼굴로 술을 들이켰다.
" 알아보고 있는 중이니 ? "
"응."
" 후기를 알아보고 있는데 서울대는 꽉찼어."
" 석사과정이 목적이 아닌데 아무데면 어떤가 ?"
나는 문득 사둔집 친척이 생각나서 말했다.
형수 조카사위 형이 건국대 야간을 다니면서 고시를 패스했기때문이다.
"그래야겠어."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 상영시간됐다. 나가자."
나는 카운터에 가서 계산하고 좁은 계단을 내려왔다.
스카라극장 마지막회를 보고 나니 20시 30분이 넘었다.
퇴계로 걸어가서 좌석버스에 그 친구가 오르는 것을 보고 나도 길을 건너가
수유리로 가는 버스를 타고 들어왔다.
친구는 단국대학교 후기 대학원에 들어갔다고 연락이 왔다.
6
"공부는 잘 돼가니 ? "
"차근차근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어."
"그래 2년 시간이 주어졌으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다시 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등산도 가고 여주 신륵사도 탐방했다.
국산양주 나폴레옹을 사가지고 잔디 위에서 젊은 시간을 나누었다.
겨울이 다가오자, 친구는 마지막 점검을 하느냐고 일요일도 도서관에 출근했다.
세번째 도전한 친구는 시험을 보고 나서 차분하다고 했다.
발표날이 지나자, 나는 이번에도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는 어깨가 축쳐져서 나타났다. 몸은 삐쩍마르고 얼굴은 수척했다.
뺨은 살이 없어 피부는 뼈를 달라붙어있었다.
머리를 깎지 않아 귀와 뒷머리가 불룩했다.
머리카락은 난방 목에리를 덮었고 검은테 두꺼운 안경을 쓴 친구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했다.
우리는 을지로 국도극장 앞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갔다.
성룡 < 취권>을 몇 번을 반복해서 보았다.
데뷔영화 취권은 우울함을 잊기에 충분했다.
나는 친구로서 무엇을 말해주어야 할 것인지 절대적인 필요성을 느꼈다.
일년, 마지막 한 번 밖에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잘못하면 고시병을 앓다가 인생 망치는 예는 허다했기 때문이다.
7
나는 친구를 불러냈다.
스카라극장 맞은 편 우리가 늘 만나는 카페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맥주를 시켜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 속에 있던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말문을 열었다.
" 올해부터틑 외국어를 2개국어로 줄인다고 신문에서 봤는데 3개 외국어 중에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 정했니? "
친구의 마음을 잘알면서 나는 새삼 물었다.
" 전공, 독일어는 계속하고 , 생각중인데 영어를 하려고 한다. "
" 영어는 필수니까."
" 자, 공부를 하기 전에 마음정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 뭔데 ?"
친구는 궁금해서 내게 물었다.
" 이번에 떨어지면 미련없이 싹 잊는거야. 그렇지않으면 너는 평생 우울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렇게 되면 사회에 나와도 의욕적으로 사회에서 일할 수 없을거야."
친구는 묵무부답이었다.
" 누구나 실패는 있는거야. 고시패스 해야 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아니야.
산업에서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 보람을 느끼며 왕성하게 성공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마지막이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해
그리고 안되면 싹 잊어버려. 더 이상 공부가 머리에 안들어오고 잡생각들면
군대를 지원하는 것이 올바른 생각이라고 해. 너 생각은 어떠니?"
친구는 아무말 없이 테이블 위만 내려다 볼 뿐이었다.
테이블에 있는 맥주도 마실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8
" 너가 서울대 독문과 나왔으면 사회에 진출해도 얼마든지 즐겁고, 보람되게
사회생활하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내려다보아도 후회 한 점 없어야 해.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마음이 들어야 만이 휴우증에서 벗어 날 수
있는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는 평생 잊지못해. 그러면 다른 일을 하여도
적극적으로 임할 수 없을거야."
나는 강연하듯이 열정적으로 친구에게 말했다.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친구는 나를 바라보았다.
"좋아. 너의 말 잘 들었다. 한잔 마시자."
우리는 맥주를 잔에 가득 따라서 건배를 했다.
"해보는거야.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땅을 내려다봐도 후회 한점도 없이..
그리고 미련없이 싹 잊는거야.
어머님에게 말씀드려. 만약에 이번에도 떨어져도 마음 아파하지 말으시라고.
누구나 한계가 있는 것인데 어머님, 나는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하고 "
친구도 마음이 가벼워진 듯했다.
우리는 맥주를 배가 터져라 하고 들이 마셨다.
카페는 맥주가 비쌌다. 우리는 얼마나 마셨는지 몰랐다.
이튿날 주머니를 보고 많이 마셨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9
그후 친구 집으로 전화를 하면 형수가 받았다.
소식을 물으면 아침 6시에 도시락 두 개를 가방에 넣고 나갔다고 했다.
형수는 내게 친절했고, 친구 어머님도 전화를 받으시면 나의 목소리를
알고 이름을 말하셨다.
저녁에는 9시 되어서야 들어온다고 했다. 나는 메모를 남겼으나 전화도 없었다.
이따금 전화를 하면 친구 형수가 받았는데 소식을 전해주면서 이번에는
기대하는 듯한 목소리가 전해왔다.
아마도 이만큼 열정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연말에도 친구는 만나지 못했다.
2월에 발표였는지는 지금 기억을 할 수 없었다.
어쨋든 연말을 보내고 두 달 지나서 발표날 지나 전화했더니 형수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합격했어요. 합격을.."
아마 그 이후로 두어번 만날 정도로 친구는 바뻤다.
병역을 마치기 위해 방위로 들어갔고 서울대학교 신림동 동사무소 근처에서
방위병역을 했다.
" 야. 합격했으면 한턱내야지."
나는 바쁘다는 친구를 불러냈다.
충무로 늘 가는 카페에서 술을 마셨지만, 친구는 예전과는 달라 있었다.
" 어머님이 그러시든데 너 장가간다고 하시더라. 선 봤다며 ? "
나는 물었다.
" 응, 지난 번에 봤어."
" 어떤 여자인데 어머님이 기뻐하시니?"
" 부산여자야. 지금은 학생이야. "
" 어, 어느 대학인데 ?"
"연세대 가정학과 다녀."
"날 잡으면 전화해라."
친구와 헤어지면서 2년 만에 보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니 지난 날이 떠올랐다.
그후 청첩장을 건네주지도 않은 친구에게 나는 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10
그후 국제연합과 사무관 업무를 수 년을 하고 나서 독일 베를린 1등 서기관으로
발령 받고 갔다.
물론 갈 때도 송별식은 하지 못했다.
IMF 시대가 터지고 몇 년 지나서 나는 제주도에서 생활하였다.
핸드폰으로 독일에 전화하여 친구와 통화했다.
3년 1등 서기관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기 전이었다.
당시 정주영명예회장이 생존해 있을 때였다.
나는 친구에게 에이스정수기를 설명했다.
신모델 비너스. 아리아스 , 아그리빠. 줄리앙 16세기 조각품을
정수기 디자인해서 현대그룹에서 해외에 팔고 있으니
카다로그를 찾으라고...
겨울을 한라산, 제주의 푸른 바다를 보며 매서운 바다바람을 맞으며
일을 하였다.
제주시청에서 시행하는 아르바이트도 하였다.
봄이 되어 나는 서울로 와서 친구와 만났다.
광화문 종합청사 부근 지하 1층 참치횟집이었다.
4년이 지나고 있었다.
11
젊은 날의 시절.
고시공부하던 괴롭고 고뇌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경제과장으로 자리 앉으니 성공했다."
나는 축하했다.
오랜 만에 만나는 친구가 잘 돼가니 정말 좋았다.
" 베를린에 있을 때 들으니 뭐 카다로그가 어떻다느니 하던데
무슨 말이니?"
친구는 옛날 특유의 목소리로 물었다.
문득 < 나는 친구가 들고 다니는 가방에 카다로그를 가지고 왔구나 >
생각이 번쩍 들었다.
" 내가 정수기분야에 뛰어들었다. 청호나이스 회장이 현대 정주영명예회장 조카야
그러니까 둘째 동생이 경영하는 회장 둘째 아들이지.
즉 , 정몽구 현대그룹회장 사촌지간이다.
그 사람이 내가 정수기사업 리스트럭쳐링 프로젝트로 서류를 건네주었어
그 서류를 사촌인 현대그룹으로 주었다고 판단하고 있어.
해외 판매하고 있는데 카다로그 있어야 만이 나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
나는 젊은 날의 초상을 떠올렸다.
암울했던 시절. 친구는 고시시험에 계속 떨어지고 , 사회는 화이트칼라를
우대했던 시절을..
나는 친구를 속일 수가 없었다. 그 젊은 날의 초상이 가슴에 생생하기 때문이다.
12
< 이것 말이냐 ! >
나는 친구가 검은 가방을 뒤척거리며 카다로그를 꺼내 내게 내밀 줄 알았다.
"그래 ? "
친구는 서둘러 일어나려는 기색이었다.
설중매 매실주와 참치가 테이블에는 많이 남아 있었다.
" 아니, 술이 남았어. 한 잔 더 마시자. 오랜만에 만났는데..."
나는 잔에 따라 마셨다. 친구는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일어나기를...
친구는 택시를 타고 논현동 집으로 갔고, 나는 우이동 고시촌으로 돌아왔다.
며칠 간격으로 나는 전화를 했다.
"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
말끝을 흐렸다.
어느날 고시촌 침대에 누워 있는데 전화가 왔다.
친구였다.
" 등산이나 가자."
" 등산 ? 갑자기 웬 등산이냐, 어디 가자고 ?"
"북한산에 가자."
"그래, 그럼 내일 몇시에 ? "
"아니, 지금 가자. 이리로 와!"
" 어디 있는데..."
"사무실이야 "
"오늘 토요일인데 출근했단 말이냐?"
13
나는 뜻밖의 전화를 받고 어리벙했다.
< 카다로그 주려나보다.> 나는 희망에 부풀어 서둘러 광화문 종합청사
뒷문에 가서 인터폰으로 도착했다고 알렸다.
" 경비에게 말하고 들어와 "
친구는 내게 말했다.
"뭐, 나보고 청사 안으로 들어오라고?"
"그래 들어와서1층에서 기다려."
나는 친구 주문대로 경비에게 말하니까. 경비는 전화를 하더니 내게 말했다.
" 신분증 보여주시죠."
나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청사로 들어가 1층에서 기다렸다.
지루했다. 친구는 약 1시간 정도 지난 후에 1층에 나타났다.
뒷문으로 가는 줄 알았더니 정문으로 앞장서갔다.
종합청사에는 지하가 없었다. 청사 건물 앞에는 토요일인데도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친구는 한 켠으로 가더니 키로 문을 열고 시동을 걸었다.
쏘나타 2였다.
13
친구는 정문을 향해 차를 몰고 갔다.
경비는 신분증을 보이는 친구를 보고 조수석에 앉은 나를 보았다.
문이 열리자 친구는 액셀레이터를 밟고 청사를 빠져나와 거리로
차를 몰았다.
" 차를 주차장에 대고 출근하니?"
"평일은 국장급만 주차할 수 있어. 토욜은 자리가 있으니까."
친구는 구기동으로 차를 몰았다. 이승만대통령 부인이 봉양한 절 입구를
둘러보고 내려와서 내려오면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친구에게 물었다.
" 야, 카다로그 언제 줄래?"
답답해서 참지 못하고 물었다.
"카다로그가 어디있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친구에게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친구는 광화문 교보빌딩 맍은 편 현대해상화재보험 빌딩 앞에
나를 떨어뜨리고 갔다.
나는 영문을 모르고 멀어져가는 쏘나타 2 뒷 모습을 보았다.
우이동 고시촌으로 돌아와서는 뭐가 뭔지 통 모르겠다.
도깨비 같은 행동에 자식은 카다로그도 주지 않고 왜 나를 불러내서
등산을 가자고 했는지...
14
이명박정권이 들어서 친구는 과천종합청사로 파견나와 있었다.
기후국장이었다.
딱 한 번 수년 만에 만났는데 반가운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자판에서 음료수 꺼내 테이블에 앉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음료를 다 마실 시간만 주고는 근무중이라고 들어가버렸다.
마치 문밖에서 쫒겨난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친구는 내가 만나자고 했다 해도 뭐하로 나왔을까
친구는 내 근황이 궁금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옛 정에 나왔을까.
"야. 너.카디로그 줄 수 없니 ?"
"코트라 같은 데 가서 구해 봐."
짜증섞인 목소리로 일언지하로 거절했다.
일 년쯤 지나서 전화를 했더니 뉴욕대사로 갔다고 했다.
외교통상부 인사과로 전화 문의 하니까 차석대사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15
나는 정권이 바뀌고 일 년쯤 지나 외교통상부 총무과에
전화했더니 한국에 있다고 했다.
외교통상부 신건물에 < 기후대사 >로 근무하고 있다고 들었다.
며칠 후 전화를 했더니..
친구는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담담하게 받았다.
수 개월 지나 전화를 했다.
비서는 내 이름을 묻었다. 내 이름을 대면 분명히 친구놈은
자리에 없다고 할 것이 분명했다.
( 외국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비서는 친구라는 이름 만으로 전화를 연결했다.
" 오랜만에 저녁하자."
나도 덤덤하게 말을 건넸다.
"내가 시간 나면 전화할께."
"너 핸드폰 번호 어떻게 되니?"
"아, 글쎄 내가 시간나면 전화한다니까."
말하고는 끓어졌다.
16
어떤 스펙트럼이 스쳐갔다.
물시장은 넓고도 넓다고 나는 말했다.
코카콜라가 세계적으로 오랜 세월동안 월드기업 베스트
상위순위에 올라와 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현대그룹 관계자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친구는 짚어냈기 때문이다.
친구는 나를 도와주고 싶어도 못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 나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나는 최근에야 깨달았다.
참으로 나는 무지하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기업기밀 유출도 전혀 아니다.
국가와 관련된 중요한 문서 복사도 아니다.
단지, 대기업이 국내는 건너뛰고 해외에 비밀리 판매하고 있는
상품일 뿐인 것이다.
정수기 새디자인 ...
16세기 르네상스 초상골동품 비너스, 줄리앙,아리아스
그리고 그 시스템으로 만든 에이스(ACE ) 맥주
유럽에서 방문판매하고 있는 카다로그를 친구를 위해
출장갔다가 오는 길에 찾아주는 것 뿐 아닌가 !
<친구는 현대그룹에게 손을 흔들었던 것이다.>
확트인 광화문거리 외교통상부 건물 몇 층 일까?
친구가 서울대학 3학년 시절, 나는 시류에 갈등을 겪고 있었다.
( 화이트칼라 , 블루칼라 )
한국사회는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소위 남자구실을 못하고 있다.
그 때 서울대학교를 탐방하고 잔디에 앉아 눈 앞에 보이는
학교건물을 보고 많은 학생을 보고 있을 때 ,
검은 테 안경을 쓴 친구가 내 옆 잔디에 털썩 앉았다.
궁금한 것을 묻고 내게 묻는대로 대답하고 시간 나면
시내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번호를 주고 받은 것이
인연이 되었던 것 !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