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1부:창조의 아침을..

창조의 아침을... 1~76

방형석 2007. 9. 6. 20:23

   

   

 

   소설   1부 :              창조의 아침을 맞다 

                             

박정희대통령은 독일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서울.부산을 연결하는 도로를 생각했다.

고속으로 달리는 독일의 아우토반 도로를 보고 국토대동맥을 생각했다.

한남대교가 놓여지고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부터 강남에서 밭과 논으로 생활을 해나가던

농민들은 가지고 있는 땅들로 인해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되었다.
갑자기 부자가 되리자 그 많은 돈을 은행과 사채로 재산을 불리기만 하던 졸부들은 자식들에게 땀을 흘려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보다는 자식 사랑을 외제차와 호화사치품으로 대신하였다.

그결과 거리에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외제차는 물론 벤츠, BMW, 도요다,사브,볼보, 폴스바겐, 자동차가 눈에 띠게 거리를 누비고 있었고 한대에 수 천만원하는 오토바이까지 가세해 거리는 굉음을 울리고 다녀 시민들을 알게 모르게 일하는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은 잠자고 있는지 무방비 상태로 방임하고 있다. 그 반면에 기업들은 중동시장에 진출하여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파견된 근로자들은 수년을 근무하고 돌아오면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땀을 흘리던 시대도 있었다.

개중에는 남편이 중동에 가서 섭씨 40도가 넘는 곳에서 고국의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그리며 달력을 손꼽아 보고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지만 한편 바람난 여자는 카바레에 맛을 들여 남편이 송금하는 돈을 제비와 함께 소비하는 사례가 심문에 종종 나기도 하던 시대도 어느새 훌쩍 지나가고 어느덧 달력은 90년대를 넘어섰다.

약속 시간이 되어갈수록 고여사는 가슴이 설레이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아침을 맞기위해 기나긴 밤을 뜬눈으로 새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남편을 잃고 나서 긴 밤을 남편을 그리다가 새벽을 맞이 하였던 것과 다름이 없었다.

잠을 자려고 하여도 웬일인지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자꾸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인데 마치 필름이 멈추지 않고 밤새도록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꼬박 밤을 새워 영화를 본 것만 같았다.
십여년이 지나도록 오직 자식만 바라보고 뒷바라지를 해왔던 것인데 이제 고생이 끝나는
듯하여 지나온 과거가 아련히 떠올라 그 긴 세월을 어떻게 참고 견뎌 왔는지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세수를 하고 화장대에 앉아 거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자세히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얼굴을 수건으로 닦고는 말았던 것인데, 오랜만에 거울을 들여다 보니 이마에는 주름살이 어느새 새겨지고 눈가에는 잔 주름이 깊게 잡혀 있었으며 뺨에는 기미로 인해 검은 점이 군데 군데 생겨나 상처라도 입은 것처럼 흉하게 보여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피부가 변했는지는 고여사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갸르스름하고 도톰하게 탄력있었던 얼굴은 지나온 긴 세월속에 외로움과 생활에 시달려 젊었을 때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있었고, 피부도 쪼글쪼글해진 것 같아 마음이 더욱 쓰렸다.
이따금 혼자 있을 때 원망스런 표정으로 한없이 바라보던 것처럼 남편의 사진을 다시 올려다 보았다. 볼 때마다 남편의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던 해를 떠올리게 되었다.

벽에 걸린 사진속의 얼굴은 고여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처럼 젊었고, 마치 갓 결혼한 신랑처럼 싱그러움 마저 들었고, 그럴 때마다 고여사는 자신만이 늙어감에 남편이 야속했다.
야속함이야 어디 이루 말할 수야 있겠냐 만은 표정없이 내려다 보는 그 모습에는 타인의 초상화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볼 때마다 벽에 걸린 남편의 사진을 당연한 순서처럼 보게 되었고 이제는 습관이 되어 올려다 보면,
남편의 얼굴은 너무도 젊었기에 저 사람이 과연 나의 남편이었던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흔히 매일 나오는 뉴스 중 하나가 바로 교통사고였고, 차가 많다보니 그렇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그 불행한 운명이 바로 자신에게 찾아 올 줄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이후에 오는 휴우증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사망 소식에 믿기지 않아 확인하러 가는 도중 제발 다른 사람 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갔었으나, 그것은 요행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와 시신위에 그만 엎어져 한없이 울부짖었던 것이 마치 어제 같았다.

관을 땅속에 묻어야 할 때 이제는 남편의 모습마저 다시는 보지못할 것을 생각하니 그대로 떠나 보내게 할 수가 없어 땅 속에 묻는 관을 따라 뛰어들려는 나를 붙잡던 사람들을 지금도 누군지를 모르고 있다.
울부짖는 나를 보며 덩달아 따라우는 아이들을 껴앉고 절망감에 사로 잡혔던 기억이 떠 올랐다.

                                                                          2



고여사는 남편의 사진을 올려다 보다가 다시 거울을 바라다보았다.
화장을 중단하고 장롱에 새겨진 양각의 원앙의 새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가는 한 숨을 자기도 모르게 내쉬고 말았다.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일어나 옷장으로 다가가 장롱문을 열고 촘촘히 걸려있는 옷들을 보았다. 농 속에는 신혼시절에 입었던 옷가지들이 옷걸이에 걸려 총총히 장롱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남편의 옷은 하나도 없다. 모두들 가버린 사람의 유품은 남겨 두는게 아니라고 했다. 한 두개라도 보관하고 싶었지만, 주위사람들의 말을 듣고는 지나는 엿장수에게 주고, 고물상에다 전화해서 가져가라고 했다.

결혼을 해서 전세방 하나를 얻고 첫애인 경일이를 갖고서 나도 아이를 낫는구나 하고 생각되자 어머니가 생각났던 것인데...

수건을 들고 밖으로 나가 물에 적셔 가지고 물기를 빼고는 들어와서는 벽에 걸린 남편의 사진을 내려 먼지를 닦았다. 혼자 사는데도 먼지는 어김없이 내려 앉았고, 고여사는 늘 남편의 사진에 먼지가 앉는 것이 싫어 자주 사진을 내려서 무릎에 얹어 먼지를 닦었다.
닦여진 사진은 젊었을 때의 남편의 모습이 보다 뚜렷해져서 고여사를 마주보고 있었으며 눈이 큰 남편은 사각형인 얼굴에 아주 잘 어울렸으며, 연애시절에는 무슨 남자가 눈이 그렇게 크냐고 이따금 묻곤 했던 것인데 그럴때마다 그는 나에게 웃으며 말하곤 했었다.
" 나의 큰 눈이 자기의 눈이라면 자기는 매력이 넘쳐 많은 남자들이 아마 줄서서 따라 다녔 을 거야. "그러면 나는, "그래도 나는 당신만을 사랑했을거야." 하고 말한 기억을 떠올렸다.

결혼사진을 보면서 고여사는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ㅡ 어쩜, 이렇게 경직되어 있을까? 미소라도 띠웠으면.ㅡ
다시 한 숨을 내쉬며 잃어버린 세월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벽에 걸어 놓고 올려다
보았다.
잠을 자다가 평소처럼 팔을 뻗어 보지만 허공을 젓는 느낌에 섬뜩 잠을 깬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그럴때마다 남편의 가슴에 안겨서 맡았던 뜨거운 숨결이 그리웠으며, 포근한 숲처럼 느껴왔던 가슴에 다시는 안길 수가 없다는 사실에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하고 그리움으로 밤을 새야했었다.
방안에 갇힌 어둠은 정적과 함께 그리움과 고독으로 더욱 짓누르고 있는 듯해서 고여사는
불을 켜고 아이들이 자는 방으로 가서 살며시 문을 열어보고는 세상모르게 자는 평온한 모습에 안심하고 마루에 앉아서 밤하늘을 비추는 달을 보면서 토끼가 떡방아를 찌는 모습을 그리면서 어렸던 자신의 추억으로 달려가곤 했다.

아침이 밝아오면 아버지가 없다는 현실에 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어대던 아이들을 달래는 것도 이제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얘들은 책가방을 들고 대문을 나서지만 큰 아이의 어깨에는 힘이 없고 작은 아이에게서도
명랑함을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을 볼 때에 고여사는 마음이 쓰렸다.
오늘도 웬지 걱정이되는 것은 남편이 이 세상에 없다는 데에서 오는 불안감이지만,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아이들마저 사고를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근심에서였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와서도 예전처럼 대문을 요란하게 열고 들어오지 않을 때는 아버지 


                                                                           3



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우울함에 젖어 있어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을 알아도 고여사는
아이들을 야단칠 수가 없었다.
걱정이 되어 화를 내보지만 아이들의 풀 죽은 모습을 보면 애처로와 함께 껴안고는 말할 뿐이었다.
" 그래, 공부 못해도 괜찮다. 사고를 당하지 말고 건강하게 커다오. 얘들아! "
그 후부터 고여사는 얘들한테 공부에 대한 말은 하지않고, 남에게 절대로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없는데도 명랑하게 성장해 갈수록 고여사는 사랑스러웠으며, 엄마를 걱정 할 때면 너무도 고마웠다.
어른스러워지고 숙녀같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면 대견스러웠다. 매일 기나긴 밤을 홀로 세워야하는 반복되는 고통과 남편과 사랑놀이의 즐거움을 갖지 못하며 살아왔지만, 오직 자식들의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보면, ?의 보람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해마다 6월이 오면, 나라의 부름으로 사랑하는 부인과 자식들 그리고 부모형제를 이별하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여야 했던 호국 영령들의 거룩한 뜻을 되새기면서 남겨진 원호가족들의
슬픔을 생각하면, 고여사는 자신을 위로 받던 것인데, 젊음을 나라를 위해 피로서 이 나라를 지켜야 했던 원호가족의 처연함에 비하면, 자신의 슬픔은 작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작동 국립묘지 비석 앞에 차례를 차려놓고 아이와 함께 흐느껴 오열하는 미망인의 슬픔을 보면 자신도 눈시울이 붉어져 눈물이 절로 나오고, 화면을 통해 전해오는 소리없는 흐느낌은 자신의 가슴이 울리는 것을 느끼고는 저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파란 잔디 위에 하얀 소복을 입고 오열하는 미망인의 흐느낌은 자신만의 슬픔이 아니기에 소리내어 울지 못하고 억제하는 것이리라. 한 번 가면 다시는 오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나라의 명령에 따라 저 세상으로 가버린 남편을 원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자식을 보고 싶어서만은 아닐 것이며, 언제까지나 고독으로 살아야 하는 며느리와 손주들의 긴 세월 만을 원망하는 것은 또한 아닐 것이고, 자식에게 아비없는 설움을 평생 안겨주어야하는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고여사는 잘 알고 있다.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것도 슬프건만, 어떻게 아이들과 그리고 시부모를 모시고 험난한 세월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 더욱 서러울 것이기에...
부모로서 자식을 다른 아이들 못지 않게 가르쳐야 하는 것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이 더욱 흐느낌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라고 고여사는 알고 있다. 또한 자신이 과부가 되어 재혼이라는 운명의 슬픈 갈림길에 놓여져 있다는 것이 너무도 기가막히고 서럽기 때문일 것이었다.

아이는 엄마가 슬피우는 모습에 영문도 모르고 엄마 치마를 잡고 덩달아 우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면 고여사는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비석을 잡고 가슴을 쥐어짜듯이 우는 노모의 슬픔에는 어찌 자식을 잃은 슬픔만 일까. 생활에 찌들리고, 자식을 잃은 슬픔만도 국가가 원망스러운데, 명예로운 죽음에 대한 남겨진 유족의 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이 나라가 너무도 원망스러워 노모의 울음은, 곧 국가에 대한 사무치는 한 바로 그것 이었다.

 

                                                                           4



 

 

그리고 강대국 틈 속에서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생명을 바쳐야 하는 것은약소 국가 국민 만이 갖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은 더욱 슬픔을 자아내게 할 것이었다.
자기는 교통사고 보상비를 받았기에 그런데로 얘들 교육 시키고 겨우 먹고 살수는 있지만 원호가족들은 나라에서 주는 것 이라고는 아이들 교육시키기에도 벅찰 것이라는 것을 아는 고여사로서는, 오히려 그들에게 위로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명분만이 원호가족이지 실상 남겨진 가족에게는 살아가야 하는 것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며
명절이 돌아오면 슬픔과 괴로움이 와락 밀려와 삶을 더욱 무겁게 짓누를 것이며, 노모라도 모시고 살아야하는 부인은 시부모의 한스러운 넋두리를 들으며 모시고 살아야하니 그 슬픔과 외로움은 어찌 말로 다 표현을 할 수가 있을까.
방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진경이가 들어서며 말했다.

" 엄마, 또 아빠 생각하구 있었구나! 하여튼 엄마는 혼자만 있으면 아빠 생각 이라니까."
"그래, 이제 네가 시집을 가는데 네 아빠가 살아 있으면 얼마나 기뻐하겠니?"
고여사가 기쁜 듯이 말하자 진경은 내심 걱정이 되면서도 겉으로는 입을 삐쭉하며 말했다.
"피이, 누가 시집간다고 말했나? 엄마가 하두 성화니까 그냥 흔해빠진 선을 보는 거지 뭐."

"얘는? 그러면 못쓴다.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엄마 마음도 모르고 그러니? 엄마가 됐다면 너에게는 더없는 행복인줄 알야야 해. 그러니까 두 눈 딱 감고 아무생각 말고 시집가야 한다."
"엄마는? 뭐 결혼하면 내가 사는 거지 엄마가 살아 주는 건가?"
진경은 걱정된다든 듯이 장난기가 있던 표정을 바꾸고 정색하며 말했다.
"물론 그렇지만, 여지껏 부모가 자식을 걱정해서 한 일이 잘못된 법은 없어. 이것아!"
고여사는 손을 들어 진경의 머리를 쥐어박듯이 누르지만 눈빛은 간절하였고 진경에게 말했다.


                                                                           5


"알았어. 엄마."
진경은 마지 못해 승낙 반 거절 반 투의 말로 대답했다.
"그래, 파마는 제대로 되었니? "
"응. 엄마가 봐. 잘된 것 같지? "
윤기 있고 긴 검은 머리카락은 넝쿨 모양으로 아주 잘 잡혀 있었고 유행에 맞게 약간 염색을 한 금발은 보기에도 탐스럽고 외국의 배우처럼 느끼게 하였다.

고여사는 벽에 걸린 사진을 향해 일어서서 사진을 떼어냈다. 그러자 선경은 알면서도 모른 체 하며 물었다.
"엄마, 아빠 사진은 왜? "
"응, 먼지를 닦느냐고."
대답하는 고여사의 눈가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힌다. 진경은 화제를 바꿀려고 물었다.
"엄마, 사진 가지고 있지? "
"응, 무슨 사진? "
고여사는 벽에 걸린 남편의 사진을 들고서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물었다.
"선 볼 남자 말이야. "

"계집에는, 있으면 왜 내가 안 보여주겠니? "
"엄마! 요즈음 사진도 보내지 않고 선을 보는 사람이 어디있어! "
"글쎄, 그렇긴 한데. 사진이 잘 안 나와서 그렇대니까 뭐 이유가 있겠지.
그런데 키가 조금 작다고 하지만 몸은 건강하다고 하니까..."
고여사가 말을 하다가 머뭇거리자, 진경이는 얼른 말을 받으면서 말했다.
"피이~ 강남에 땅이 많으니까. 엄마는 무조건 시집가기 바라는 거지? 맞지!"
진경은 엄마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가까이하며 야무지게 말했다.
고여사는 선경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진경아! 사람이 살아가려면 경제적인 여유가 행복을 좌우 하는거야, 알았니? 특히 여자에게는 더욱 그래."
"알았어, 그러니까 내가 사진도 없이 선 보러 가잖아."
고여사는 다른 집 딸과는 달리 이렇게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딸이 대견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엄마, 오빠는 뭐래? "
진경은 궁금한 듯이 물었다.
"뭐라고 하긴, 너만 좋다면 된다고 하더라."
"엄마, 뭐해 빨리 화장해야지. 어제 또 아빠 생각하면서 잠을 못 잤구나."
"못 자기는."
"에이, 엄마는 선 한번 보는 것 가지고...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아닌데."
진경은 고여사를 보면서 눈을 흘기고 말했다.
"쓸데없이 시간 보내지 말고 너도 화장 좀 더하고 옷도 갈아 입을 준비해야지."
" 알았어. 엄마."
진경은 대답하고 자기 방으로 갔다.
고여사는 사진을 벽에다 다시 걸고는 옷장에서 옷을 고르다 말고 벽에 걸린 사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6

 

 



"여보, 진경이가 어쩜 내말을 이렇게 잘 듣지요. 사실 그 사람 사진을 봤는데 선경이가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하지만 여자는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살다보면 정이들 것이고 그러면 자연히 백년해로 하는 것 아닌가요? 당신과 나는 연애를 했지만 당신이 사고 만 당하지 않았던들 우리도 잉꼬부부처럼 백년까지는 아니라도 오래토록 함께 살아갔을 텐데 말이지요.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지는 않았을 거예요. 당신이 부자 였다면 어쩌면 그렇게 일찍 세상을 등지는 일은 없었을런지도 모르지 않겠어요?

또 여자의 행복은 부부의 사랑 만으로 얻어지는 세상은 이미 지났어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유행에 맞는 옷을 사 입는 것도 여자의 행복이고, 좋은 차도 타고 다니며 맛사지도 받고 가정부도 두어 허리가 아프지 않게 일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도 ?의 행복이라는 것을 당신은 아시겠지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이고, 여행을 다닐 수 있는 넉넉함도 행복이 아니겠수? 그런 행운이 지금 우리 진경이에게 다가왔어요. 여보, 당신도 도와주세요.

진경이가 이 행운을 놓치지 않게 말이예요. 남들은 해외여행을 몇번 다녀왔다,

유학이다, 하며 어학연수를 떠나는데 우리는 여행커녕 컴퓨터 학원비도 감당을 할 수가 없으니

 행복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아니겠어요?
당신 나를 나쁘다고 하실 건가요? 당신도 나를 이해 할 수가 있을 거라고 나는 믿어요.
지금 세상은 우리가 살던 세대하고는 변해도 너무 변했어요.
당신도 비록 저 세상에 있을 지라도 진경이가 행복해지게 기도라도 하시구요."
고여사는 허락이라도 받아내려는 듯이 간절한 눈빛으로 남편의 사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흰색으로 사면을 벽지로 도배되어 있는 깨끗한 벽에는 만종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실내에는 라디오 소리가 넓지 않은 병실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둥그런 얼굴에 살이 유난히 많다고 느낄 만한 20대 후반 사람이

병원 침상에 누워 있었다.
무늬가 있는 환자복을 입고 누웠는데도 배가 나와 있는 사람은 배 위에 진경의 사진을 올려놓고

 한참동안 유심히 보고 있었다.

단아하게 기른 윤기나는 검은 머리결은 귀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다.
하늘색 긴팔 티에 책을 가슴에 안고 하얀 이를 들어내고 웃는 모습은 햇빛에 반사되어서 그런지

 더욱 희게 보였고, 검은 바지에 베이지 색 코트는 갸름한 얼굴에 아주 잘 어울렸고 앞이 둥글고

 굽이 낮은 까만 구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하였다.
햇볕을 받으며 밝게 웃고 얼굴 양 볼에는 보조개가 생겨있었으며 하얀 피부를 한눈에 더욱 곱게 보였다.

뒤에는 조경사가 솜씨로 다듬은 아름다운 나무가 있었고 잔디는 푸르름을 갈색을 나타내고 있는데

 아마도 초가을에 찍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진을 뒤로 넘기자, 좀 더 얼굴이 크게 확대 된 사진이 보조개를 더욱 선명하게 하며 웃는 모습이었다. 현철은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팔을 당겼다. 단발머리를 하고있는 선경의 얼굴이 클로즈 업 되듯이 크게 확대되어 나타나 있었으며 웃음을 지을 때마다 뺨에는 보조게가 살짝 파여서 한층 더 매력을 느끼게 하였다.

현철은 사진을 입에 가져다가 키스를 하고는 다시 쳐다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 문이 열리고 간호원이 다가와서는 현철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떠세요? 빨리 퇴원하고 싶지요?"
간호원은 늘 같은 어조로 현철에게 물었다.



                                                                           7


 

 

 

 

"그럼요. 이제는 떼어낸 상처도 다 낳았으니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죠."
"허리를 좌우로 움직일 때 통증 같은 것은 없나요?"
간호원은 감정 없는 어조로 물었다.
"며칠 전에는 조금 느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현철은 언제나 같은 어조로 표정 없이 말하는 간호원을 보며 물었다.
"환자가 많은가요?"
"네. 그전보다요."
간호원은 짧게 대답하고 돌아서서 문 손잡이를 잡고 말했다.
"점심식사 후에 선생님이 어떤 말씀이 계실 거예요 "
"오늘은 퇴원을 할 수 있겠지요? "
"아마, 선생님이 말씀하시겠지요."
키가 작은 간호원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면서 말하고 나갔다.
퇴원할 생각을 하니 병원에서 주는 점심을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고 원장이 부르기 만을 기다렸다.

현철은 다시 선경의 사진을 배 위에 올려 놓고 보고 있었다. 그리고 창문으로 하늘을 보고 있다가 문 여는 소리에 창밖의 나무를 보던 것을 멈추고 문을 향해 돌아보았다.
베이지 색 양복 정장을 입고 밝은 표정으로 형이 들어왔다. 현철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사진을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형을 쳐다보았다.
"어떠냐, 오늘은 퇴원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 같던데? "
"응. 원장 선생님이 곧 들어올 거야."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사진을 들고 현일은 보았다.
"음, 역시 미인이야! 이런 여자가 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안나갔지? 나갔으면 틀림없이 진은 되고도 남았을 텐데."
현일은 정말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현철이가 얼른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내가 이 고생을 해가며 비계살을 빼지 괜히 고통을 받으면서 수술을 하겠어? "
"잘했어, 나중에 살이 다시 찔 망정 일단 내사람을 만들 때까지는 뚱뚱하다는 느낌을 주어선 안돼."
현일은 명령하듯이 말하면서 사진을 현철에게 돌려주었다. 노크소리가 나자 현철과 현일은 동시에 문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 간호원이 들어왔다.

"옷을 갈아입으시고 원장님실로 오시랍니다."
말하고 돌아서는 간호원의 뒷몸매를 보면서 현철은 신이나서 말했다.
"옛, 명령대로 하겠읍니다."
현철은 옷을 갈아 입고 현일과 함께 원장실에 들어가자, 원장은 챠트를 걸어놓고 두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어때요? 몸이 날아갈 것처럼 움직이기 편하지 않습니까?"
타원형의 안경을 쓴 원장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물었다.
"네, 그래요. 제 몸이 이렇게 가볍게 움직여보기는 처음입니다."
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흰 벽에 붙어 있는 검은색 필름에 회색 모형이 찍힌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자 여기를 보십시오. 좌측이 수술 전의 모습이고 우측이 지금 모습입니다. 얼만큼 지방질을 떼어냈는 지 아실 것입니다"
현철과 현일은 벽에 걸린 사진을 보았다. 수술 전에는 상반신이 도라무통 같았는데 지금은 헬스한 사람처럼 허리와 겨드랑이 까지가 삼각형 빗변처럼 경사져 있었다.
"어디 몸무게를 볼까요?"
원장은 체중계를 가리켰다. 현철은 올라가 숫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다가 61이라는 숫자가 나오자 내려왔다.
"몸무게가 35킬로그램이나 줄어습니다. 앞으로 식사를 절제하시고 음식도 가려드시면서 저녁에는 가급적 육식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렇게 까지는 살찌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운동을 하셔야 합니다." 


                                                                           8



원장은 챠트를 접으면서 말했다,
" 알겠습니다, 그런데요. 봉합한 흉터는 정말 생기지 않을까요?"
현철은 걱정이 되어 물었다.
"아무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컴퓨터로 수를 놓는 것처럼 촘촘히 봉합을 했으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여지껏 부작용이 생긴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네, 안심했습니다. 걱정이 돼서요. 다음에 살이 또 찔 때는 그 때도 지방 제거를 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마음을 푹 놓으십시오. 거리를 걸어다니는 여성들도 돼지 넓적다리 같이 살찐 비계살도 감쪽같이 지방 제거를 하여 날씬한 다리를 뽐내며 걸어가고 있지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아니 자세히 본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흔적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현미경을 가지고 보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더군다나 스타킹 신으면 감쪽 같지요. 그 분들도 또 살이 붙으면 두 번 세 번씩 지방질 제거 수술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원장은 웃으며 말했다.
"그랬군요.원장님 말씀을 듣고 보니 알 것만 같습니다."
옆에 있던 현일이 현철을 보며 말했다.
"퇴원하시고 거리을 활보하고 다니는 여성들을 한 번 자세히 보십시오. 걷는 모습이 어딘지 부자연스러운 것은, 무거운 몸 자세로 걷다가 날씬해지니까 본인이 아직 습관이 안돼서 그렇지요. 보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데 괜히 본인이 어색하게 생각하니까 그런 겁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지나면 곧 몸에 균형이 잡혀가게 됩니다.
날씬한 것은 태어날 때부터 체구가 작고 뼈도 굵지 않아야 하지만, 늘씬한 것은 다르죠. 늘씬한 것은 신체적으로도 크고 뼈도 가늘지 않지만 운동, 즉 에어로빅을 한다든가 아니면 다이어트하면서 지속적인 체조를 통하여 몸을 고루 다듬었기 때문에 늘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날씬하면 몸이 약한 느낌이지만 늘씬하고 금발이라면 체격이 좋은 남자들은 그런 여자가 옆을 스치고 지나가면 코를 킁킁거리며 여자의 향기를 맡으려고 하지요. 그리고 뒷 모습을 다시 보게 되는 이유입니다. "

원장은 몇가지 차트를 꺼내 보여주면서 그림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었다. 자신이 수술했던 지난

 사례를 보여주면서 오랜 전통이 있는 정말 뛰어난 수술 솜씨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현철과 현일은 감사의 인사를 하고 원무과에 가서 계산을 끝내고 병원을 나서자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고생 많았다."
현일은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휴, 이제 병원을 나서니 살 것 같군."
"날아갈 것 같지 않냐? "
"두말하면 잔소리지. 내몸이 이렇게 가볍다니, 날아갈 것처럼 몸이 가벼워, 근으로 따지면 몇 근이야 그러니까 35킬로면 1근이 600그램이지?"
"글쎄."
현철은 궁금한 듯이 커피를 가져오는 아가씨에게 물었다.
"아가씨, 우리가 먹는 고기 한 근이 몇 그램이죠?"
그러자 아가씨는 웃으면서 말했다.
"600 그램 입니다."
"한 근에 600그램이미까 35킬로그램이면 자그만치 6근이야 하고도 남아 으으...지겨워"
현일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현철은 6근이나 되는 살을 자신의 몸에서 떼어냈다고 생각하니 신음을 하면서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수술할 때, 어떻든?"
현일은 엄살 많은 현철이 어떻게 통증을 참았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말도 마, 수술대 위에 누워서 간호원들과 원장이 나를 빙 둘러서 허리를 만지는데 내가 마치 돼지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지 뭐야.

 세사람이 내 주위를 빙 둘러쌓고 칼로 내 몸에서 싹뚝! 하고 칼질을 할 것을 생각하니 이러다 죽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소름 같은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있어야지 어휴."

현철은 진저리를 내면서 말했다.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다는듯이...
"그랬구나. 나는 네가 아파서 소리를 꽥 지를 줄 알았는데..."
"수술을 막 하려는데 내가 신음을 하고 몸을 벌벌떠니까 의사가 간호원에게 마취 를 좀더 시키라는 거야. 그리고는 가물거리며 까무라쳤지."
"마취를 다시?"


                                                                           9



"그렇다니까."
"아니, 왜? "
"소름이 돋는 것을 보니 마취가 덜 됐다는 거지. 아마 마취가 덜 들어가면 살을 떼어 낼 때 발광을 하면

큰일이거든. 그 때까지는 의식이 또렸했는데 간호원이 마취 주사를 놓자마자,

그 후부터는 나는 의식을 잃어버렸어."
"너무 긴장을 하니 마취의 효력이 듣지 않은거지."
"응, 그랬나봐."
"자식아, 그러니까 이제 고기를 조금씩만 먹고 식생활 개선을 해봐. 뭐냐 생돈을 이천만원
날리고 몸은 몸대로 골고 어디가 다쳐서 치료한 것이라면 할 수 없다지만..."
현일은 나무라듯이 말했다.
"근데 형, 음식점에만 가면 고기냄새에 환장을 하겠다니까. 남들은 술 담배를 끊을 수 있다
지만, 술 담배는 끓을 수 있어도 고기만큼은 못 끊을 것 같아."
"다 어머니 때문이야. 밭농사를 하느냐고 어디 고기를 마음대로 실컷 먹을 형편이 됐었냐? 그러니 어려서부터 걷어 먹이느냐고 막내인 너만 계속 고기를 먹게하고 내가 좀 뺏어 먹으면 엄마한테 꾸지람 들었잖냐. 형이 동생 것을 빼앗먹는다고. 그래서 이런 결과가 생긴 거야."

"형, 이십일을 병원 침대에서 있으면서 꽃등심에 커피와 술 생각이 얼마나 나는 지 말도 못해.

우리 한국관에 가서 모처럼 포식 한 번 하자, 응?"
"수술한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벌써 고기타령이냐?"
현일이가 망설이자, 현철이가 벌떡 일어나 카운터로 가더니 계산을 마친다.
할 수없이 현일은 따라 나섰다.

두사람이 한국관에 들어서자 지배인이 정중하게 인사하며 인사말을 건넨다.
"어서오십시오. 사장님, 왜 한동안 안오셨습니까? 혹시 저희 집 고기가 맛이 없어서 안오신 것은 아니지요?"
지배인은 살피는 듯이 말하고 손을 들어 안내를 했다.
"아, 해외에 일이 좀 있어서 못왔습니다."
현철이 얼른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사장님께서 저의 집을 오지 않으실 리가 있겠습니까? 않으시지요.

 그런데 얼굴이 조금 안되어 보이시는데요."
"아, 고기를 못 먹어서 그렇습니다. 외국에 잠시 있다 보니 입에 맞아야지요."
현건이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현철을 정색을 하며 말하자 현철은 형에게 눈을 깜박거렸다. 지배인은 직원에게 꽃등심 두근을 많이 드리라고 주문을 하고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현철은 허겁지겁 입에 넣고 술을 들이키듯이 마셔대고 있었다.

그 먹는 모습을 보던 현일은 보다못해 말했다.
"야! 체하겠다. 안 빼앗아 먹을테니 좀 천천히 먹어라."
현철이가 게걸스럽게 먹어대니까 현일은 먹다 말고 젓가락을 놓았다.
"형, 왜 벌써 젓가락을 내려놔?"
"배부르다. 많이 먹어라. 나는 먹을 만큼 먹었어."



                                                                           10




 

 

 

 

"병원에서 창밖을 내려다 보면서 아! 형은 지금쯤 한국관에서 술과 함께 꽃등심을 먹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하루하루 견디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마 형은 모를거야."
현철은 말하면서 술을 입에 들이키고 다시 잔에 술을 가득따라 들이키고는 안주를 집어 큰지막한 한점을 집어 입에 넣고 먹는다. 술을 또 한 잔을 마시고는 현철은 말했다.
"형, 날짜를 잡아야 되는데 언제가 좋을까?"
"응, 잡아야지, 수술도 마쳤으니까. 어머님이 오셔서 말씀 없으셨냐?"
"나 퇴원하면 바로 잡는다고 했어."
"그럼 뭐 영남이 엄마에게 적당한 날짜를 정하라고 하면 되지 않겠냐?"
"응, 그런데 형은 선 볼 때 어땠어? "
"맞선 볼 때?"
"응."
"처음 선을 볼 때는 설레였지만, 두번 세번 보다보니 그냥 담담했지더라."
현일은 말하고 선을 보는 날 저녁에 잠이 오질 않아 술을 마시고 잤던 기억이 생각났다.
"너두 마음을 담담하게 먹고 보면 돼. 맘에 안들면 또 보고 또 본다고 생각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게 되는 거야."
"그러면 될까?"
현철은 걱정되는 듯이 말하고는 술을 들이켰다.
"그럼. 선이라는 것은 이 여자와 꼭 결혼을 해야겠다 하고 마음을 먹으면 오히려 인연이 닿지 않는거야.

양가가 인사를 하고 당사자가 마음에 들어야 하고 단지 차 한 잔 하고 생각해보는 그런 자리라고 반드시

 생각해야 돼."

현일은 걱정이 되어 확실하게 인식을 시켜 주려고 또렷이 말했다.
나이 차이가 다섯 살이나 나건만, 마치 친구처럼 보이는 것은, 현일이는 나이가 덜 들어보였고 또

붙임성이 있어 누구에게나 호감이가는 타입이고, 수려하게 생겨 미남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인기가 있는데 비해, 현철은 동그런 얼굴에 주먹코였고, 두터운 입술에다 입이 커서 우락부락하게 보여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받지 못하였다.

또한 성격도 급하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을 소유하지 못하면 과격함과 함께 괴팍함을 들어내기에

현일은 걱정이 되었다.

현일이 조차도 동생이 화가 났을 때는 선뜻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말을 할 때도 현일은 조그맣게 속삭이듯이 고저를 적절히 섞어가며 목소리에 신중을 기하면서 말하지만, 현철은 그렇지가 않았다. 화가나거나 자신의 욕심을 채우지 못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쳐 말하기에 현일은 걱정이 돼서 방지하려고 말 한 것이다.
"물론 여자 측에서도 그러겠지."
현철은 형의 말을 받았다.
"그럼 그건 일종에 룰이야, 가령 뭐랄까. 게임이 규칙 같은 것 말이라고 할까?"
"상대가 싫다고 하면 미련없이 두손을 툭! 툭! 털고 일어나듯이 깨끗이 잊어버려야 하는게 바로 선이거든."

"그럼 어떻하지? 나는 그녀의 사진을 보고는 잊을 수가 없는데...병원에 누워 그녀 사진을 볼 때마다 이 여자와 결혼을 못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 여자측은 집안이 가난하다며. 대학도 과외를 가르쳐서 학비를 조달했고, 장학금으로 오히려 집안을 꾸려나간다고 했으니까."
"무조건 안돼!"
"여자측에서 싫다고 하면 무조건 잊어야 하는거야. 여자가 싫다고 해서 억지로 따라다니고 또 결혼을 했다고 가정해도 행복할 수는 없는거야. 거리에는 여자가 많듯이흔한게 여자야. 그리고 또 흔해빠지게 있는게 남자거든. 딱 한번만 차 한잔하고 상대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걸 명심해! 절대 츠근대면 안돼, 알았지?"
현일은 현철을 얼굴을 보면서 다짐 받듯이 명령조로 말했다.


                                                                         11




"그럼 여자가 싫다고 하면 결혼하기가 불가능한거야?"
현철은 걱정이 되어 물었다.
"꼭 그렇다고는 말 할 수는 없지만 딸이 싫어도 부모가 설득해서 할 수 없이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은 행복한 결혼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 여자가 사랑스런 마음이 없는데도 결혼을 하면 그것은 의미가 없거든. 애정도 없이 억지로 결혼해서 하는 부부행위는 동물적인 성적 충동 해소 밖에는 되지 않거든."
현철은 듣고만 있었다,
"사람이 살아오면서 환경,교육과 개성, 성격등 모든 것이 서로 맞아야 공감대가 형성되고 더 나아가서는 사랑도 속삭일 수가 있는 것인데, 그것을 하루 하침에 억지로변하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따라서 대화를 나눈 후 데이트를 하면서 그런 공감대가 형성이 될 수가 없다고 판단되면 돌아서는 거야. 즉 인연이 없다는 뜻으로 받이들이고 다시 공감대가 맞는 다른 여자를 ?아 결혼하는 거야. 이것은 진리와 같은 철칙이지."

현일이 말하자, 현철은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다 말고 멍하니 창 밖을 쳐다본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자, 현일은 그 심정을 알 수 있다는 듯이 술을 한 잔 따라주고 자신도 잔에 따라서 현철의 잔에 부딪치고 입에 가져간다.
현철은 잠시 생각하더니 젓가락을 들어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으면서 말했다.
"형, 그렇다면 단번에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
"어떻게? 그럴수만 있다면 더할나위 없지. 여자는 한번 싫으면 다시 좋아진다든가 그런 동물이 아니거든. 남자야 뭐 허심탄회하게 서로 말하고 술을 마시고 다시 의기투합하면 되지만... "

현일은 도라지 하나를 입에 넣고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더군다나 그녀는 명문대 불문학과 졸업생이고 교양과 아름다움을 다 갖춰졌으니 아마 지금 쯤 여기저기에서 며느리 삼으려고 '어서오십시오' 하는 모양이던데, 누나한테 영남이 엄마가 말했다는데, 엄마가 재촉해서 보는 것 같다고 하는거야. 본인은 결혼을 빨리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다고 하는데, 아마 마지못해서 엄마의 고생을 보다 못해 보는 것 일거다."
"마지못해서?"
"누나 말에 의하면 그녀 엄마가 간절한 명령에 의해서 선을 보는 것이라고 하던데..."
" 엄마 말은 잘 듣는가보군."
현철은 귀가 솔깃해서 현일을 보며 말했다.
"그럴수밖에, 어려서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갖은 고생 다하면서 대학까지 뒷바라지
하면서 키웠왔는데, 딸이 보기에도 엄마가 불쌍해 엄마의 간절한 말을 잘 들을 수 밖에..."
현철은 눈을 빛내면서 얼른 물었다.

"형, 선을 하얏트 호텔에서 보면 어떨까?"
"뭐! 하얏트에서, 왜?"
현일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것도 좋겠지."
"커피숍에서 내려다 보면 강남땅이 훤히 보이거던. 우리가 강남에 땅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면 그녀가 긴장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이튿날 싫다는 말을 하지는 않을지도 모를거야."
현철은 걱정이 돼서 형을 보면서 물었다.
"그것도 좋겠지. 그러면 전문대 나온 핸디캡도 보완 될 것이고... 이번 기회에 차도 외제차로 바꾸는 것도 좋겠다. 어머니가 반대하시겠지만 내가 옆에서 잘 말씀드리지. 외제차와 국산차가 가격 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고 수명도 길고 그녀가 명문대 불문과를 전공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도 벤츠 600은 아니지만 살 필요성이 있다고 말씀드리면 어머님도 허락하실 거야."
"세금도 많이 내지 않는다고 해야해!"



                                                                         12



"알았어."
"그런데 어떤 차를 살까?"
"글쎄, 그여자가 좋아하는 차와 선호하는 색깔을 알아맞춰야 할텐데..."
현일은 고심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진을 보면 베이지 색 코트를 입었고 검정색 구두를 신었으니 차 색깔도 둘 중에서
하나로 정하는 것이 어떨까?"
"너 병원에서 많이 생각했구나."
현일은 동생을 보면서 대견하다는 듯이 놀라며 말했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야. 하지만 그녀는 빨강색을 좋아하지는 않을거야. 왜냐하면 고생하는 엄마를 보면서 성장했으니까 유행에 젊음을 외치면서 자라오지 않았기 때문이지."
"요즈음 여자들은 튀는 색을 선호하다던데..."
현철은 알아맞추기라도 하듯이 말했다.
"물론 그나이에는 대개 그렇지만 그녀는 아닐꺼야. 여유가 없이 자라왔거든. 불문학을 전공했으니까 프랑스 차가 좋을 것 같은데..."
현일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푸조나 르노가 좋기는 하지만, 이왕이면 세계에서 알아주는 차를 사는게 좋겠어. 벤츠는 비싸서 엄마가 반대하실 것이고, 도요타는 성능이 좋다지만 젊은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는 것 같아. 볼보나 사브가 어떨까?"

"형,볼보나 사브는 무게가 떨어져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가 힘들 것 같은데...
프랑스에서도 귀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차가 어떨까? 아무래도 싼건 안되겠지, 가급적이면 부티나는 것으로 사야해."
현철은 강조하듯이 말했다.

"그래, 시간이 있으니 좀 더 생각해보자."
두 사람은 남은 술을 마시고 일어났다.
현철은 일어나서 옆구리를 손바닥을로 눌러보았다.
현일은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하고 현철은 양 손을 옆에 얹고 몸을 좌우로 움직여 본다.
운전하는 형을 보면서 현철은 자기에게 형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를 새삼 느꼈다.

고여사는 시계를 보면서 선경이에게 서두르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진경이가 옷을 갈아입고 들어오자, 고여사는 한복 치마를 거울에 비춰보면서 물었다.
"진경아! 뒤에 어떠니?"
"아휴, 엄마는. 대강대강 입고 나가면 되지 뭘 그렇게 꼼꼼하게 살피려고 해."
진경은 엄마가 뒷모습을 보고 또 보고 하는 게 못마땅해서 말했다.
"얘는. 사둔이 될 사람을 처음 만나는데 아무렇게나 입고 가라니."
"엄마는... 선도 보지 않아서 벌써 사둔 타령이야?"
문 밖에서 이웃 영남이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고여사님, 다 되셨어요?"
"예,지금 나가요."
고여사는 대답을 하면서 문을 열고 영남이 댁보고 물었다.
"어때요? 어울리나요?"
"어머, 색상이 너무 고와요.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릴까?"
영남이 엄마 탄복하듯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진경씨."
"감사합니다. 이렇게 신경을 써 주셔서..."
진경은 고개를 약간 숙이며 말하고 엄마를 따라갔다.
영남이 엄마는 고여사의 차림을 보고는 수다를 떨어대고 있었다.

"어쩜, 진경씨도 차려입으니까 미스코리아에 왜 나가지 않았는지 아쉬워요. 곱기도 해라."
영남이 엄마는 진경에게는 인사를 하고 말했다.



                                                                         13


 

 

 

 

 

"고맙습니다."
진경은 말하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자 영남이 엄마는 진경이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그런 말 하지 안해도 돼요. 허물없이 지내도록 해요. 우리는 이웃이잖아요."
"그래, 진경아. 큰 언니처럼 생각해도 된다. 영남이 엄마는..."
세사람은 대기시켜 놓은 개인택시를 타고 맞선 보는 장소로 향했다. 택시는 복잡한 거리로 들어서고 있었다. 남산은 어느새 단풍이 서서히 들어가고 있었고 순환도로에 들어서자 택시는 제 속도를 낼 수가 있었다. 순환도로에서 내려다 보는 서울 시내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고 저 멀리 한강이 흐르고 63빌딩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택시가 하얏트 호텔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외제차들이 눈부시게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고 하얏트의 건물이 햇빛을 받아 반사하고 있었다. 정문에 도착하자 벨멘이 문을 열어주었다. 고여사는 벨멘이 문을 열어주자 양 손으로 치마를 잡고 내려섰다. 영남이 엄마가 고여사 앞에 서서 정문으로 안내했다.
고여사는 하얏트 호텔에 들어서자 선경이 옷차림을 보면서 눈을 흘기며 조그많게 말했다.
"진경아! 너 옷을 사입을 것 그랬나보다."
"괜찮아요,엄마 "
"괜찮긴 기집애두."
마치 새 옷을 사입은 듯한 하늘색 투피스를 입고 걸어가자 선경의 외모에 주위가 환해지는 듯했다. 실내를 오가는 사람들이 진경을 눈부신 듯이 바라보았다.

"진경씨는 아무 옷이나 입어도 너무 잘 어울려요."
말하고는 앞장 서면서 커피숍으로 안내했다.
커피숍에는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드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드문드문 외국인들이 의자에 앉아서 영어와 불어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커피숍에는 피아노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많은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음악은 마치 손님들의 대화를 피해서 모든 사람들의 테이블로 향하는 것 같았다.
실내를 흘러 돌아 가듯이 조용한 피아노 음률은 감미롭게 잘 들렸다.
고여사 일행이 들어서자 현철의 형수가 일어나 반가이 맞았다. 영남이 엄마는 먼저 일어서서 고여사에게 다가오느 현철의 형수를 고여사에게 소개했다.

그리고 현철의 엄마인 김여사를 소개하고 현일과 현철을 소개했다.
이윽고 모든 사람이 자리를 앉자 영남이 엄마는 옆에 있는 직원에게 차를 주문했다.
양쪽 집안이 서로 인사를 마치자 여직원이 차를 가지고 와서 테이블에 올려 놓고 갔다. 현철은 일어나서 고여사에게 인사를 하고 진경이에게는 인사를 했다.
진경도 일어나 고개를 조금 숙여 인사를 하고 김여사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서 자리에 앉는다.
"곱기도 하여라. 이렇게 곱게 키우느냐고 얼마나 힘드셨겠수?"
김여사는 고여사에게 오랜 사이처럼 정답게 말했다.
"네, 얘들이 엄마를  생각해서 걱정없이 키웠답니다." 고여사가 미소를 띠우며 말하자 영남이 엄마가 말을 이었다.
" 이웃에 십년을 함께 살면서 큰 소리 한 번 듣지 못했어요. 공부를 얼마나 잘 하는지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계절마다 엄마 옷을 해드리고 아이들을 과외공부 가르치면서 대학을 다니고 있답니다."
" 정말, 장하군요. 이런 훌륭한 따님을 둬서 얼마나 기쁘겠어요? 저도 둘째아이 고등학교 때 남편을 잃었다우. 영감이 술을 많이 먹어서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다우.
그렇지만 않았으면 지금 쯤 여기에 있었을텐데...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김여사는 마치 오늘이 진경이를 며느리라도 삼은 듯이 말했다.
영남이 엄마는 양가 칭찬을 잔뜩 늘어 놓기에 바뻤고 사람들은 차를 마셨다.
김여사는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시다 말고 내려 놓으면서 말했다.
" 이 쓴 것을 사람들은 왜 마시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오."
그리고는 물을 한모금 마셨다.
"어머니, 이 커피는 맛으로 드시지 말고 향을 음미하면서 드시는 거예요. 아주 비싼 것이라 일부러

 주문했어요.

다시 천천히 향을 음미하면서 한모금 입에 넣으시고 향을 맡으려고 하여 보세요."
현일이 찻잔을 입에 가져가 마시면서 말했다.
"그런것 같아요. 저도 커피 맛을 잘 몰랐는데 얘들 말을 듣고 마시다 보니 커피 맛을 알 수 있겠더군요."
고여사는 김여사를 보면서 말했다.


                                                                          14



" 어머니, 현철이와 진경씨는 따로 떨어져서 얘기를 나누게 하죠."
영남이 엄마가 눈치 빠르게 말했다. 그러자 현일의 형수도 옆에서 거들었다.
"그게 좋겠어요. 어머니."
현철은 일어나서 고여사에게 인사를 하고 말했다.
"어머니, 진경씨와 저쪽에서 있을께요."
" 얘,진경아! 어서 너도 일어나서 인사드려야지."
진경도 일어나서 김여사에게 인사하자 영남이 엄마는 현철과 진경 두 사람을 조금 떨어진 자리로 안내하고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새로운 자리로 가서 앉자 현철은 진경이에게 말했다.
" 반가습니다. 멀리 이곳으로 와줘서... 여기서 바라보는 한강 경치가 그만이거든요."
현철은 말하고 진경을 보았다.
"정말 경치가 좋군요. 날씨도 좋구요."
"사진보다 훨씬 더 키가 큰 것 같아요. 그리고 더 아름답구요."
현철이 진경에게 말하자 진경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 사진은 대학 2학년 말에 찍은 사진이죠. 그사이에 키가 좀 컸나봐요."
현철은 큰 입을 벌리며 웃었고 선경은 싱긋 웃었다.
"제 친구는 여기서 결혼했죠. 지난 봄에. 남산에는 꽃이 많이 피었더라구요."
"네."
여기서 있을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 올림픽대로 드라이브 하지 않겠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말씀드리고 올께요."
현철은 진경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영남이 엄마에게로 간다. 그러자 영남이 엄마는 양가의 엄마에게 말했다.
"진경이 어머님, 두 사람이 날씨도 좋아 한강 드라이브 하겠대요. 다녀 오라고 하지요?"
"좋지요. 날씨도 좋고 ..."
고여사는 김여사의 말도 기다리지 않고 승낙했다.


진경은 할 수 없이 현철의 뒤를 따라가고 현철은 앞장서서 정문으로 진경이를 데리고 갔다. 잠시 후 벨멘이 차를 현관에 대자 현철은 조수석을 열어 진경이을 태우고 자신은 운전석으로 가서 의자에 앉아 키를 돌렸다.
그러자 강력한 BMW 엔진은 소리를 내면서 입구를 향하여 나아갔다.
영남이 엄마와 현일부부는 정문에 와서 두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차는 경쾌하게 정문을 미끄러지듯이 빠져 나간다.
현일이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자 김여사가 묻는다.
" 아범아! 차타고 갔냐?"
" 네, 어머니"
나두 처녀시절 데이또 하던 시절이 아련이 생각나는구나. 그런데 벌써
죽을 때가 가까워졌으니 세월은 참 빠르기도 하지.
"어머니,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민망스럽다는 듯이 며느리가 말한다.

"세월이 그리워서 그런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그립던 그 시절이..."
" 예, 정말 세월은 영화 한편 보는 것같이 너무 빠른 것 같에요.
병원에서 남편의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고 까무러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얘들이 다 커서 시집을 갈 나이가 됐으니..."
고여사도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면서 처연히 말했다.
" 여자는 자기를 아껴주는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우.
나는 우리 집 영감을 만나서 농사를 수십년 해 오면서두 말다툼 한 번 안했다우.
우리 현씨 집안들은 여자를 신주라도 모시듯이 끔찍이 아낀다우.
맛있는 것, 좋은 옷, 다 무슨 소용이 있겠수. 자식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속 안 썩이고 시집 장가를 들이고 손주 보는 게 제일 행복이 아니겠수?"
김여사는 호소하듯이 고여사에게 말했다.
고여사는 김여사 곁으로 자리를 옳겨 앉으면서 김여사의 손을 살며시 잡으면서 말했다.



                                                                           15



"우리 애는 제가 말하면 뭣이든지 따를 거예요."
"그랬으면 오죽 좋으련만..."
고여사는 안심된다는 듯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현철은 하얏트 호텔을 나서자 미끄러지듯 능숙하게 차를 몰고 한남대교 방향으로 갔다. 한강을 끼고 물결을 거스르며 강변도로를 달리면서 진경에게 묻었다.
"진경씨,음악 좋아해요?"
"네, 클래식을 좋아하는 편이죠."
현철은 핸들에 부착된 버튼을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조용한 차내에는 베르디의 음악이 흘렀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장중하면서도 힘찬 곡은 두 사람으로 하여금 침묵하게 만들었다.
"음악 어때요?"
"너무 좋아요."
진경은 밝게 웃으며 창 밖을 스쳐가는 한강을 내려다보며 음악감상에 몰두하고 있었다. 흘러가는 강물은 하류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잔 물결을 일으키고
있었고, 하늘은 푸른색으로 칠해놓은 듯 짙었으며 햇볕을 받아 반사하는 강물은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수많은 물고기들이 수면위로 올라와 숨을 쉬는 것처럼 보였다.
ㅡ 그럴테지, 집에서 늘 듣던 음악이니까. ㅡ
현철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없이 웃었다.
형이 형수한테 말해서 영남이 엄마에게 부탁해 고여사로부터 알아온 것이었다.
현철은 얼굴에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차가 커브를 돌 때에도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나는듯이 달리는 승차감은 더없이 좋았고 저 멀리 강 상류에 맞닿은 듯한 파란 가을하늘은 너무나도 즐거움을 안겨다 주기에 충분했다.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자 쉐라톤 워커힐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베르디의 음악은 노예들의 합창으로 이어지고 있었으며 파워 넘치는 엔진으로부터 전해오는 강력한 힘은 호텔 입구로 가는 언덕을 소음도 없이 날으는 듯이 올랐다.

현철은 차를 정문에 대자 로마 병정 같은 옷차림은 한 벨멘이 다가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두사람이 내리자, 벨멘은 키를 받아들고는 차를 능숙하게 주차장이 아닌 귀빈들이 주차하는 곳에다 주차하고 있었다.
현철은 그것을 보고 씨익 웃고 정문을 열고 진경이가 먼저 들어가도록 문을 열었다.

진경은 문을 들어서서 현철을 따라 커피숍으로 들어섰다.
하얏트와는 또다른 웅장한 실내 인테리어는 선경을 사로잡았다.
높은 천장에서 쏟아지는 샹그리에의 빛은 원목에서 발산하는 색상을 보다 더욱 눈부시게 하였으며 의자에 앉아서 대화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하얏트 호텔보다 더 많이눈에 띠었고 그들이 대화가 진경으로 하여금 자연히 시선을 끌게 하였다.
진경은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안내를 받고 현철은 창가로 다가가 예약된 자리로 가자 종업원이 물었다.





16



"예약 하셨습니까?"
빨간 립스틱을 유난히 짙게 바르고 화사한 호텔유니폼을 입은 여종업원이 다가와 물었다.
"여기"
현철은 목에 힘을 주고 배를 내밀면서 티켓을 내밀었다.
종업원은 두 사람을 창가로 안내 하고 두 사람이 앉도록 의자를 뒤로 당겼다.
현철은 진경과 함께 식사를 주문하고는 물을 한 컵 마셨다.
두사람은 아래로 흘러가는 한강을 내려다 보았다.
현철은 형이 자기에게 요구한 것을 곰곰히 생각했다.
병원에 누워있을 때 구구단을 외우듯 수십번 암기한 것을 생각했고, 진경은 강상류와 구리시 쪽을 바라보았다.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달려 가듯이 끓임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진경이도 친구들처럼 차를 갖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가 고생하는 것이 생각나 포기하곤 했다.
겨우 생활하기에도 빠듯하고 엄마는 오빠 고시공부 뒷바라지 하기에도 힘든 형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진경씨, 프랑스에 가 본적 있습니까? 아, 실례 갔다 왔다고 들었는데요."
"아직."
진경은 강을 바라보다가 현철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대답했다.
사실 친구들이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떠날 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랐다.
그러나 집에 와서도 고생하는 엄마에게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저는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현철은 긴장을 병원에서 외운 것을 떠올리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어머, 그러세요?"
진경은 뜻밖의 말에 궁금해서 묻었다.
"친구자식이 한 번 갔다오자고 해서 다녀 왔는데 한번 다녀와서는 프랑스에 매료 되었습니다."
"어디가요?"
진경이 궁금해서 물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듣기로는 조경을 전공하고 2년제 전문대를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더욱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생활용품도 무엇이든지 예술적으로 만들었고 파리 시내의 거리도 서울과는 달리 도시계획에 성공한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인상적인 것은 에펠탑이었죠."
현철은 서투른 한국말을 하는 외국 사람처럼 말했다.
"그렇지요. 에펠탑을 보려고 전세계 관광객이 모여들지요."
진경은 자신도 모르게 화제에 끌려 대답했다.
"진경씨는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으니까 프랑스에 대해서는 잘 알겠어요. 화원에는 자주 가시나요?"
현철은 더듬거리며 물었다.
"네? 화원이라니요?"
선경은 무슨 말인지 잘 몰라 되물었다.
"거 왜 프랑스 문명을 알리기 위해 있는 곳 있잖아요. 경복궁 들어가는 입구에..."
"아하, 문화원 말이군요. 그럼요, 친구들과 이따금 가요. 가보셨어요?"
진경은 웃으면서 물었다.
"아, 네 문화원이죠. 하도 가 본지 오래돼나서... 저도 친구녀석이 가자고 해서 한번 따라가봤지요. 그녀석따라 프랑스를 다녀왔는데 역시 예술의 나라답게 즐겁고 배울점도 많았고 본 받을 것이 많았던 유익한 여행이었죠."
"그랬군요" 


                                                                           17




유니폼을 입고 화장을 진하게 한 여직원이 식사를 가지고 오자 두 사람은 식사를 시작했다. 현철은 형이 말한대로 천천히 소리내지 않게 조금씩 먹고 이따금 맞은편을 바라보면서 진경을 훔쳐 보았다.
태양이 아차산을 넘어가자 산능선은 그림자를 강물에 드리우고 있었다.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면서 현철은 말했다.
"저는 에펠탑을 보고는 정말 놀랐습니다. 그 탑을 세우기까지 우여곡절을 생각하면 정말 프랑스인은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교량엔지니어인 A,G 에펠은 자신의 기술을 전 세계에 자랑하고자 약 300미터의 높이의 탑을

건설하려고 했지요.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반대를 하였고 건설사까지도 부정적이었으며 시공에 실패라도 한다면

국가망신 이라며 프랑스 국민들도 우려를 표명하였답니다."
현철은 컵을 들어 물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에펠 기술자는 신념에 가득찬 확신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주 탐사선을 제작 할 수 있었던 것은 역대 수학자,물리학자인 피타고라스, 오일러,

파스칼등의 이론이 존재하였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 이라고 프랑스 건설 기술은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국민들을 설득했습니다.

마침내, 프랑스 국민들은 에펠의 설득에 조금씩 납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건설사들도 자신있게 나서는 회사가 없었으나 국민들이 서서히 지지를 보내자
시공사가 선정되고 공사가 시작되어 감에 따라 마음을 졸이면서 탑이 점점 높이 올라갈수록

박수를 보내게 되었지요."
현철은 잠시 말을 멈추고 말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현철은 화장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자신의 얼굴을 가져가 거울에 비추어 보면서 생각했다.
ㅡ 말을 할 때는 탈렌트처럼 매끄럽게 말하고, 표정은 자연스럽게 코매디언처럼

액션을 취해야 해! ㅡ
현철은 형이 말한 것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 여자들끼리 모이면 성에 관한 궁금함을 화제로 삼는 것은 당연해.

(남자들은 소변을 어떻게 볼까?"하고 궁금해하며 화제로 삼기도 하겠지. "소변을

보는데 왜 고추를 잡아야 하는지 아니?" 하고 한 여자가 물으면, 다른 여자는 "기집에야,

그러지 않으면 고추가 축 쳐져 바지를 적시니까 수평으로 세우고 봐야지.)
말하면서 까르르 숨이 막힐 듯이 웃는다고 했지.

짓궂은 여자애가 "고추도 매운 것이 있다던데 어떻게 구별하는 줄 아니?" 하고 물으면

 또 다른 애는 "계집애야, 그걸 어떻게 알아. 먹어 봐야 알지.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것을..."

하고는 서로 깔깔대며 음담패설을 한다고 했겠다! 진경씨는 음담패설을 하지는 않겠지만 친구들이

 하는 것을 들었을 걸 - 이라고 자신있게 말한 형의 모습을 생각했다.
주머니에서 기록한 것을 꺼내어 읽고는 주머니에 다시 집어 넣고 거울을 한번 더 보고 머리결을

 만지고 문을 나섰다.


                                                                          18

 

 

 


진경은 현철이 프랑스에 대해 이렇게 많이 알고 있고, 자신이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더우기 전문대 밖에 나오지 않았으면서도...
커피잔을 들어 다 마시고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오후의 햇빛을 받으며 달리는 자동차들의 유리에 반사되는 것을 강 건너 여기 실내까지 비췄다.


커피숍 실내에는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경음악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현철은 화장실을 나서자 진경이가 창밖을 보고 있는 것을 보자 생각했다.

ㅡ 불문과를 전공했으니 프랑스 영화도 많이 봤겠지. 영화를 보면 당연히 남녀

정사장면도 나오겠지. 유럽은 섹스는 동양보다 개방되어 있고, 성교육을 일찍

학교에서도 가르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생각할까?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안들까?

섹스란 언제든지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심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남자의 고추가 자신의 몸 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을 상상하고 화두를  첫째로 삼는 것은 당연하겠지.

그 순간의 기분은 어떨까. 짜릿할까 아니면 흥분하게 될까? 소름이 돋을만큼 무서울까? 혹은 오금이 저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ㅡ

"진경씨,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현철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으면서 묻었다.
"아, 그냥요. 한강 상류를 바라보며 경음악을 듣고 있으니까 정말 좋은데요."
진경은 고개를 돌리면서 생각에서 깨어나며 말했다.
"저녁이 되면 여기에서 바라보는 강남의 야경은 정말 아름답지요."
"녜, 그럴 것 같아요."
"프랑스에서 쇠로 된 탑을 세운다고 하니까 전 세계 매스컴의 귀는 온통 파리로 쏠렸어요. 공사가 진적 되어감에 따라 자연히 에펠탑을 홍보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지요."

현철은 자신이 외운 것을 다시 꺼냈다.


마침내 쇠로 된 에펠탑이 완성되고 전망대에서 파리 시내를 조망하기 시작하자 모든 파리 시민 모든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게 되었지요.

자연히 매스콤이 취재열기를 불어 일으키자 전 세계인들이 너도나도 프랑스 아니 파리를 방문하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일년에 이천만명이나 되는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답니다."
현철은 진경의 표정을 살폈다.

 
진경은 현철이 조금도 막히지 않고 강의 하듯이 말하는 설명을 들었다.
현철은 마음속으로 간절이 외쳤다,
ㅡ 그래, 제발 한 번만 더 만나다오. 그러면 분명히 60% 로는 일이 다 된거라고

하니까. ㅡ
"진경씨가 프랑스에 가고 싶다면 언제든지 말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다녀오게 해드리죠."
"말씀만 이라도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정말입니다."

"에펠은 왜 도심 한 가운데 탑을 만들려고 했나요?"

진경은 새삼 궁금함이 일어나 물었다.

<됐다. 관심을 갖고 있구나.>

현철은 속으로 기뻤다.

" 귀스타프 에펠은 미국 대혁명 100주년 기념 만국 박람회를 위해 자유의 여신상 제작에 참여할 만큼 세계적인 기술자였죠.

고국에 들어와서는 영감을 얻었습니다. 에펠탑은 철로 만든 철골탑으로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1789년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계단을 1789개를 만들었습니다.   야경을 보면서 식사할 수 있는 카페,레스토랑,전망대를 만들어 많은

시민들에게 찬사를 받고 전세계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면서 사방을 보면  파리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 또한

외국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현철은 정색하며 말하고렸    형이 말한 것을 주마등처럼 떠올렸다.
ㅡ 마! 연애는 머리가 좋아야 하는거야. 아무나 연애하는 줄 아니? 연애박사가

되려면 아이큐가 높아야 되는 거야. 공부를 해, 선배들한테 경험담을 많이 들어야 만이 실패하지 않는 거야.--

여자의 표정을 살피고는 마음속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까지 파악 할 줄을 알아야 하는거야.
두뇌회전이 번개 같아야 여자를 꼬드끼지 돈으로만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데이트를 하려고 하면 속물 밖에 못건져. 또, 오래 못가는 법이야.


                                                                       

 

                                                                           19





학교에서 내노라 하는 연애박사들은 말도 없이 숱하게 물을 먹었기에 그 분야에 도가 통한거야. 여자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발에 채이고, 눈물을 흘리며 좌절감을 얼마나 곱씹었는지, 그리고 아마 여자들에게 환심사느냐고 돈도 숱하게 낭비했을거다.
그래서 얻은 노하우를 아무나 공짜로 가르쳐 주겠냐? 너 같아도 안그럴걸.
자기가 그만큼 투자해서 얻은 경험을 너 같으면 거저 가르쳐 주겠냐 말이다.


그녀석들은 책도 여자 친구들이 서로 사주려고 줄을 설 것이고 아마 자기 돈으로 산 책이 졸업 할 때까지 몇권이 되지 않을거다.
왜냐하면 여자가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하고 기분만 좋게 해주고, 언제나 웃을 수 있는 말만 골라서 하고, 슬픈 이야기나 자존심 상하는 말은 절대 금물이라는 거야.

그렇게만 하면 여자처럼 다루기가 쉬운 동물도 없다는 거야.

여자심리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재판에서 판,검사들이 심리를 여는 것도 부족한 죄를 확실하게 입증 하기위해 대화를 유도하여 증거를 찾아내듯이 그런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데이트 예약이 되어있는거다.

그런 녀석들은 여자 표정만 봐도 머리속에 무엇이 들어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알고 있다. 스타일과 옷차림 그리고 좋아하는 노래를 알게 되면 성격마저 파악할 수가 있는 거지.

나도 너의 형수하고 연애 할 때 그녀석한테 술 사줘가며 용돈은 물론이고 해외 배낭여행도 시켜주고 나서야 그녀석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너의 형수와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다.
그녀석 말을 듣고 있노라면 여자 낚는 것어 밥먹는 것보다 더 쉬운 거라더군. 또 여자는 냄비라는 거야.


 

왜, 그러냐하면 우동을 끓일려면 냄비에다 끓이지. 그런 냄비처럼 여자는 금방 달궈지고 또 금새 식는 것이 바로 여자라는 거야.
연애 하다가 며칠만 전화를 하지 않으면 금새 열정이 식어서 누군가 옆에서 꼬드끼려고 기분 만 맞추어주면 까르르거리고 그리로 마음이 기울어진다는 거야.
그래서 연애시절에는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를 해서 마음이 식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거야. 달래 여자보고 갈대라고 하겠냐?

조물주가 다 그렇게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런거지 학교와 가정교육이 그리고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니까 여자는 갈대라고 탓할 수 만은 없겠지.
갈대처럼 바람에 쏠려 바람에 따라 좌우로 기울었다가는 다시 일어서고, 금새 더워지다가도 빨리 식어지고, 우동처럼 빨리 끓여서 먹을 수 있는 도구는 바로 냄비 밖에 없다는 거다
.

남자가 여자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면 검은 머리가 파뿌리처럼 하얗게 세야 될거란다. 노하우가 없다면....
그래서 연애박사들은 척하면 이 여자는 빨리 끓는다, 저 여자는 구워 삼으려면 사람진을 다 빼야지만 품에 안을 수 있을거다라는 판단을 내리는데 100%로 틂림없지.
그런데 그런 여자는 한 번 남자한테 정을 주면 정말 남자를 끔직히 생각하고 위한다는 거지. ㅡ
현철은 자리에 앉으면서 형이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을 기억했다. 


                                                                          20



"진경씨는 어느 쪽일까?"
현철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녜? 뭐라고 하셨어요?"
진경은 영문을 몰라 묻는다.
"아, 아닙니다."
현철은 손을 들어 흔들면서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에펠탑 완성으로 프랑스 건설과 시공능력이 세계에서 인정을 받고 예술의 나라라는 인식을 전세계인에게 심어 놓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진경은 현철의 커다란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면서 매료된 듯했다.

 
해는 어느덧 서쪽으로 기울어졌는지 한강에는 어두움이 드리우고 있었다.
"저, 이제 집에 가봐야 되겠는데요? 어머님이 걱정하셔서요."
진경은 땅거미가 지고 바깥에는 달리는 차들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리자 그만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아,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군요."
현철은 말하고 일어나서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했다.
벨멘으로부터 차 키를 받아 든 현철은 진경이 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고는 운전석으로 돌아 갔다.


 

두 사람을 태운 차는 강변도로로 미끌어져 가고 있었다.
"진경씨, 오늘 고마웠습니다. 늦게까지 시간을 내주셔서."
현철은 진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뭘요, 덕분에 저도 즐거웠습니다."
"어디로 가실 건가요"
"집으로 바로 갈건데요."
"그럼 제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아니, 굳이 그러실 필요는... 지하철 타고 가면 되는데요."
"그러시다면 다음에는 집에까지 바라다 드리겠습니다."
현철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아차! 생각했다.
ㅡ 자존심 상하는 말은 하면 안된다고 형이 그렇게 말했는데... ㅡ


 
                                                                         21


"우리가 함께 있었던 워커힐 호텔 뒤에 산이 있는데 산 이름을 진경씨는 아세요?"
현철은 전철역으로 향하면서 물었다. 형이 강조했다. - 첫 선을 보고 유종의 미를 거둘려면 웃으면서 손을 흔들던가 웃음을 안겨주어야 만이 어색함을 떨치는 거야.
그러니까 아차산 이야기를 잊어먹지 말고 꼭 해줘야 해! -
"아니, 몰라요."

"어느날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시는데 오대양과 육대주를 만들고는 중국과 추운 나라인 러시아를 만들고 섬나라인 일본과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작품을 만들어야 겠는데 하고 고심하다가 우리 한반도를 만들었답니다.

중국의 농산물보다 더 귀하고 맛있는 것을 나오게 하고 러시아의 춥고 맑은 공기를 불어 넣고, 섬나라인 일본의 바다를 함께 넣으면 가장 아름다운 곳이 될 것이다. 하고 하나님은 생각했죠.

이렇게 만들고 보니 정말 금수강산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만족했지요. 그래서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중국과 러시아는 늘 우리나라를 갖고 싶어서 침략을 끓이지 않았던 것이죠. 그렇게 땀흘려 일하시고는 한강을 다시 한번 살펴 보고 나서는 뭔가 아쉬움이 남았답니다.

그래서 담배를 한 대 피시고는 산을 멋지게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하시고 천지창조하는 기구를 작동시켰는데 그만 피곤해서 한 가지를 빠뜨리고 만드셨는데 기암과 나무가 울창하게 한다는 것을 그만 키보드를 잘못쳐서 이렇게 만들게 됐답니다.
그래서 다시 만들까 하시다가 그냥 놔두었고 이름을 <아차산>이라고 짓게끔 옛사람에게 계시를 보냈답니다."
현철이 말을 마치자 진경은 손을 입을 가리며서 킥킥거리며 웃었다.
현철도 큰 입을 쩍 벌리면서 따라 웃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수정을 안하셨지요?"
"네, 그것은 < 전능하신 하나님도 실수를 하니 너희들도 헐뜯지 말고 서로 사랑하여라 > 라는 계명을 늘 깨닫기 위한 것이었지요."
현철은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재빨리 말했다.
"하하, 너무 웃으워요."

진경은 소리내어 웃으면서 운전하는 현철을 바라보았다.


 

"여기에요. 여기서 전철을 타고 가면 돼요. 오늘 감사합니다."
진경은 차에서 내렸다. 현철도 내려서 진경이가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을 전송하면서 말했다.
"또 만나주시는 거죠?"
그러자 진경은 미소를 띠면서 인사를 하고 내려갔다.
진경은 전철에서 오늘 데이트 한 것을 생각하면서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떠 올렸다.
- 생각했던 것 보다는 굉장한 분이야.-



22




고여사는 벨 소리가 들리자 불이나게 대문으로 달려가 문을 열며 묻었다.
"데이트 잘했니?"
"응, 그분이 전철역까지 태워주었어."
진경은 즐거게 말하고 문을 닫았다. 고여사는 진경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더니 속으로 안심했다. 그리 불쾌한 표정이 아니어서 한시름 덜은 듯했다.
"어디 갔었니?"
"응, 워커힐로 드라이브 하다가 호텔에 가서 저녁먹고 오는 길이야."
"그 외제차 타고, 그래, 어떻든?"
"어때긴 뭐, 좋았어."
"계집에두, 그 차가 1억짜리라더라. 집에까지 바래다 준다는 말 않던?"

고여사는 진경의 눈치를 밝은 불빛에서 살피며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왜 안그래, 그랬지만 그냥 지하철 역에서 내려 달라고 했어."
진경이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자 고여사는 따라 들어와서 궁금해서 묻었다.
"무슨 얘기를 하던?"
고여사는 재촉하여 물었다.
"프랑스에 여행갔다 온 얘기를 하고 또 음악에 대해 얘기했어."
고여사는 음악이라는 말을 듣자 움찔했다.

"그사람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왔대?"
"아니, 친구와 여행을 갔다 온 모양이야"
"그사람 어떻든?"
고여사는 선경이 그리 싫어하는 말투가 아니자 은근히 결론을 물었다.
"엄마, 그 사람 형하고는 딴판이지만 말도 잘하고 지식창고 같아. 아는게 너무 많은 거 있지? 그런데 형은 미남인데 동생은 입이 왜 그렇게 클까?"
"얘는, 별걸가지고 다 그러니."
고여사는 일단 말을 막고는 말했다.
"남자가 입이 커야 음식도 덥석덥석 먹고 말도 잘 할 것 아니냐?"
"그래도 너무커, 물고기 입처럼 큰 것 같애."
진경은 말하고 킥하며 웃었다.

"계집에두, 아무려면 우럭처럼 입이 클까? 가물치 만하다면 모를까?"
"하여간 입이 그렇게 큰 남자는 드문 것 같아."
"그건 흉이 안되는거야. 남자는 장군처럼 생겨야 하는 거야. 대기업 회장들 봐, 우락부락하고 보통사람들과 다르게 생겼잖니?"
"그건 그래. 매스콤에서 보면 재벌 회장들 아들까지 그렇더라."
"오빠는 아직 안 왔어?"
진경은 시계를 보면서 물었다.

"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서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 하는가보다."
"엄마, 그사람 얼굴도 몸도 둥근 형이라서 키도 작아보이는 걸까?"
" 뭔 키가 작다는 거냐, 170이라고 하는데 아무려면 영남이 엄마가 우리를 속이겠니? 살이 좀 쪄 그럴게 보일거다."
"진경아, 네 아버지도 가정이 유복했다면 운전을 하지않았을 것 아니냐?
여자는 그저 남자가 끔직히 위해주면 되고 거기에 경제적으로 넉넉하면 그 이상 뭐를 바랄게 있겠니?"


                                                                          23


                                                                          
"알았어, 엄마. 이제 그만 해"
진경은 지겹다는 듯이 말한다.
"이 세상에서 백 프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너 모래시계의 여주인공 고현정이 알지?"
"응, 왜?"
"걔도 신세계로 24살에 은퇴하고 시집간 것 봐. 스타는 잠깐 있다가 지나가는 것이고 결혼은 평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거지.


미련없이 훌훌 털어버리고 재벌회장같은 남자하고 잘 살고 있지 않니?"
고여사는 달래듯이 진경을 설득하고 있었다.
"남녀라는 것은 말이야 서로 정을 붙이고 살면서 아이들 낳고 그러면
사랑하게 되는거야. 내 남자이기 때문에 더 사랑스럽고 또 내 여자이기 때문에 아껴주고 싶어하는게 사람인 거야.

여자는 뭐니뭐니해도 남자와 백년해로 할 수만 있다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니?"

"엄마두 참, 어떻게 같이 한 시각에 함께 죽을 수가 있단 말이야."
진경은 말도 안된다는 듯이 말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고여사는 말하고는 부엌으로 가며 진경에게 씻고 식사하라고 말했다.
진경은 옷을 갈아 입으면서 곰곰히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 정말 그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할까? -
드라마 "모래시계"가 한창 인기를 끌 때 그녀는 촬영을 마치고 신세계그룹 회장 아들에게 시집갔다.
그때 결혼이 그렇게 가고 싶은 것일까?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진경은 오늘 낮에 호텔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현철이 말하던 것을 생각했다.
프랑스에 대하여 그렇게 관심이 많고 많이 알고 있다는데서 다소 놀랐던 것은 사실이었다. 에펠탑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유래까지는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었는데...
또 그사람이 프랑스 문화원에 드나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영어도 많이 안다고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프랑스 문화원에서는 자국의 영화를 상영하는데 필름 아래에 영어로 번역하여 쓰여있어 독해력이 없으면 영화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니까.
진경은 드라이브하던 기분을 생각했다.
차장 밖으로 스쳐가는 가을의 한강 풍경과 파란 하늘 그리고 조용히 차 안을 울리는 음악, 그것도 자기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니 기분이 더 없이 좋았다.

여지껏 타보고 싶었던 차, BMW. 포근한 승차감, 호텔로 오르는 오르막 길을 사뿐이 나는 듯한 기분들 생각하면 모든 것들이 좋았다.
진경은 현철이 아차산에 대해 말하던 것을 기억하고 싱긋 웃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방문을 나섰다.
ㅡ 어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같이 좋아할까? ㅡ
목욕실에 들어가 쏟아지는 샤워 물줄기를 얼굴에 맞으면서 진경은 기분이 유쾌해지는 것을 느끼며

 피식 웃었다. 


                                                                           24

                                                                          

현철은 진경을 내려주고는 휘파람을 불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와 차를 차고에 넣고 응접실로 들어서자 김여사가 묻는다.
"데이또 잘 했니?"
김여사는 아들이 대견하다는 듯이 묻자, 현철은 대답했다.
"응 엄마, 워커힐가서 점심먹고 진경씨와 드라이브 하고 오는 길이야."
현철이 말하자 김여사는 이층을 올려다 보고는 외쳤다.
"아범아, 막내가 왔다."

"형 이층에 있어요?"
"그래, 너 일이 궁금해서 어디 나가지 않고 하루종일 집에서 네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현일이가 이층에서 내려오면서 말했다.
" 어떠냐? 미녀를 태우고 드라이브 한 기분이...."
"끝내주었어"
현철은 말하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형 내가 프랑스 에펠탑에 대해 말하니 그녀는 벙 쩌가지고 그저 내 얼굴만 바라만 보고 있는 것 있지."
"그래서?'
현일은 웃으면서 재촉했다.

"에펠이란 엔지니어에 대하여 말하다가 잠시 화장실 다녀온다고 말하고
자리를 비웠지. 한 오분간 정도 기다리게 하고 메모를 한 번 훑어보고 가니까 실내에는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음악이 흘러 나오는 것 있지.
정말 환상적이었어. 형 그녀도 내가 화장실에서 빨리 오지 않으니까
당연히 뭐하는데 이렇게 안나올까 하고 생각했겠지."
"당연하지, 마! 그녀도 여자인데."

"형 어쩜 그때 그녀가 좋아하는 필하모니 음악이 흘러나오는지 나는

 깜짝 놀랬어."


"짜식아, 세상에 우연이 어디있냐. 내가 친구한테 부탁해서 너 사진 보여주고
시간에 ?춰 음악을 틀어 달라고 주문을 했으니까 돠는거지 우연히 되는게 어디 있냐?"
현일은 말하고서 현철의 머리에 알밤을 한 대 먹인다.
"아야! 형은? 고마워."
내 은공을 잊지 말라는 뜻에서 주는 선물이다.
고여사는 뭐가뭔지 모르겠다는 듯이 묻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
" 아무것도 아니에요, 엄마."
"고마워, 형."
현철은 머리를 극적이며 말했다. 


                                                                            25

                                    

 


준호는 하숙방에서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다듬고 있었다.
1미터 76센티의 후리후리한 키에 정사각과 직사각형의 중간형의 알맞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은 많은 여자들의 시선을 받기에 충분하고 수직으로 가는 줄무늬가 쳐진 푸르스름한 양복을 입은 준호의 모습은 모든이에게 호감이 갈 수 있는 타입이었다.


빗으로 머릿기름을 발라 넓은 이마가 훤히 드러나 보였으며 헤어 스타일은
이목구비가 선명한 얼굴을 더욱 돋보였다.

날카로우면서도 얼굴에 알맞는 검은 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소평가를 할 수없게 하면서도 친근함이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준호는 몸을 돌려 거울에 자신의 뒷모습을 돌아보며 심호흡을 했다.
ㅡ 내 일생의 운명을 좌우할 시간이 지금부터 시작 되는구나.ㅡ

준호는 웬지 마음속으로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들렸다.
"총각 있수?"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 목소리가 방안에 흐르는 라디오 음악을 밀어 제치고 들어왔다.
"녜 아주머니."
문이 열리고 하숙집 여주인 얼굴을 내민다.
준호의 모습을 본 여주인은 깜짝 놀래서 묻었다.

 
"총각, 무슨 좋은 일이 있수?"
"좋은 일은 뭐, 누구좀 만나러 가는거죠."
"아니 누굴 만나는데 이렇게 쫙 빼입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가지?"
"그럴 일이 있습니다."
"아가씨라도 만나러 가는구나."
"아주머니도 참 제가 방세가 몇 달씩 밀려있는 판에 아가씨하고 연애하게
됐습니까?"
"방세야 뭐 얼마 되나? 빨리 장가를 가야지. 언제까지 하숙생활을 하려고 그래?
벌써 우리 집에 들어 온 지 5년이 넘었는걸. 엊그제 '아주머니, 하숙방 있나요?' 하고 물었던 때가 기억이 생생한데....나는 아무래도 알 수가 없어요?"
"뭐가 말입니까?"
준호는 넥타이를 와이샤쓰에 맞게 조이고 왼손으로 우측으로 밀면서 물었다.

"아니 총각같이 미남에다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왜 장가를 삼십이 넘도록 안가는지 알다가도 몰라서 하는 말이지."
"아주머니도 참, 아니 불알 두쪽 만 가지고 갑니까? "
준호는 답?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서 물었다.
"요즈음 여자들이 얼마나 약아 빠졌는데 고생하려고 나 같은 놈한테 미쳤다고 시집을 온 답니까?"
"쯧쯧, 저러게도 순진하다니까. 일단은 여자 마음을 꽉! 사로잡고 그리고 살을 섞어 살면 여자는 다 남자의 그늘에 순응하게 되있다니까 그러는구만. 5년째 내가 이런 얘기를 해도 아직 동거도 하지 않고 있다니... 쯧쯧 쑥맥이 따로 없구먼." 



                                                                            26



"일단 여자를 꼬드껴 방 한칸 이라도 달랑 얻어서 파김치를 만들어 놓으면 그집 부모가 죽일거야, 아니면 살릴거야, 결국에는 여자측 집에서 서둘러 시집을 안보내고 견딜수가 있겠냐 이거라니까."
준호는 아주머니 말을 듣고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제가 아주머니의 말씀이 너무 재미있어 다른 곳으로 못간다니까."
준호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주머니 딸이 그러면 사위감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시집을 보낼 겁니까?"
"안보내면 어떻할꺼야, 이미 몸과 마음이 망거졌는데 다른 남자에게 보내!
그러면 딸만 더 망가지고 상처 받잖아."
"아주머니 말씀도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장가 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설사 그렇게 했다선 치더라도 부모가 불알만 두쪽 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결코 시집보내지는 않을겁니다.
우리나라도 성이 개방되어서 요즘 처녀를 찾아보라 하면 그놈은 미친놈 이라는 소리를 듣고도 남습니다.

그런세상에 돈많은 집에서 뭐가 아쉬워서 불알만 달랑 가지고 있는 저같은 사람에게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딸을 주겠습니까?

보십시오 선경그룹도 물태우 딸에게 결혼을 시켜서 정략적으로 결혼으로 서로의 이해에 맞는 야심에 자식들을 결혼시키지 않습니까?


대기업 오너들은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집안끼리 서로 부족한 것을 메우고 보다 낳은 미래를 창출하기 위해 결혼을 시키는 겁니다.

돈이 있으면 권력이 필요해서 사둔을 삼고, 또 권력이 있는 집은 돈이 필요해서 재벌,대기업 회장의 자식들과 줄을 대기위해 마담 뚜쟁이를 동원하는 세상입니다.

또 고급 공무원 관리의 자식이라도 상류생활을 하려면 봉급만 가지고는 도저히 상류층의 생활을 할 수가 없으니 안되니 자식들이 연애를 해서 둘이 죽자하고 사랑하는 사이라도 헤어지게 하고 잠시 진정시켰다가 시집을 보내는 것 아닙니까?"

"저런, 남자가 한 번 시도해 보지도 않고 저러니 장가 가기는 틀렸지. 어느 세월에 돈을 모아서 장가를 가누?, 벌써 삼십대 중반인걸. 쯧쯧."
하숙집 아주머니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못가도 팔자고 연애하다가 부보의 등살에 헤어지는 것도 할수없죠 뭐."
준호는 하숙집 아주머니 말을 받아 넘겼다.

 

"근데 오늘은 왜 이렇게 양복을 쭉 빼입고 가는거지?"
하숙집 아주머니는 궁금해서 못참겟다는 듯이 다시 묻었다.
"회장을 만나러 갑니다. 그래서 옷에 신경을 쓰는 거죠,"
"회장 ? 그럼 밀린 방세는 오늘 다 갚겠네."
"글쎄요, 가봐야 알겠지요."


준호는 마음속으로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아니, 어떤 회장을 만나러 가는 건데?"

주인 아주머니는 더욱 궁금해서 물었다.
"제가 방세가 밀린 이유도 다 거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준호는 말하고는 검은 색 007 가방을 들고 거울을 다시 보고 나더니 문을 나섰다.
주인 아주머니는 검은 색 007 가방을 들고 나가는 준호를 배웅하면서 물었다.

"그런데 그 가방에는 뭐가 있길래.... 여지껏 그런 가방을 한번도 못봤는데...잘 다녀와요."
하숙집 아주머니 말을 등 뒤로 하고 대문을 준호는 대문을 나섰다.
누렁이가 꼬리를 흔들며 준호의 양복으로 달려들었다.
"저리가 마! 옷 다 버려!"
준호는 말하고 누렁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강남으로 가는 좌석버스를 기다리며 준호는 하늘은 바라다본다.
- 나의 할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 


                                                                               27


 
버스는 출근시간을 지나서인지 막히지 않고 고려대학교를 지나서 동대문을 지나더니 장충동의 타워 호텔을 지나 남산 언덕을 넘어 한남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준호는 강남이 다가올수록 차츰 가슴이 답답해져서 창문을 한강이 바라다 보이자 강바람을 쐬이기 위해서 창문을 열었다.
푸른 하늘에는 흰구름이 보기좋게 떠 가고 있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어느 새 가을의 강바람을 달리는 버스 창문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준호는 정말 걱정이 되었다.


내일 모레가 추석인데 주머니는 텅 비어있고 어디가서 손을 내밀어야 할지 막막했다. 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모아 놓았던 돈을 다 쳐박고 그것도 모자라 친구 돈은 말할것도 없고 은행 돈까지 썼으니 더군다나 내일이 추석인데 밀린 방세는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져 스트레스가 쌓여 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준호는 결코 후회하지는 않았다.
이 프로젝트는 반드시 해야하는 절대적인 것 이라고. 만일 자신마저 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사업을 이웃 일본이라도 파악하고 먼저 시작한다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일본의 기술 속국에서 벗어 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현재 일본과의 기술 격차가 분야가 다르겠지만 15년 이상 차이가 난다고 가정 했을 때 우리가 년 70억 달러에 이르는 대일무역 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사업 분야이기 때문에 준호는 마음 속으로 달아 올랐다.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먼저 이 프로젝트를 개발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천추의 한이요 순국선열들 앞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수있단 말인가?
시간이 촉박하건만 과연 회장이 자신을 만나줄런지도 아니 사무실에 가면 비서가 없다고 말하고 성가시게 하지 못할런지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회장은 이러한 사실을 조금도 감지 못하고 오직 나 자신만 미쳐서 날뛰는데 이 심정을 모르는 것을 알면서도 무작정 찾아가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그사람이 어디 보통 회장인가 국내 최대그룹의 회장 조카인데 일개 영업사원인
자신을 만나 줄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 아닌가. 아무리 자신이 돈을 투자하고 다른 사람이 위탁 경영을 한다 해도 현 회장과 얼마나 믿고 신뢰하니 거액을 투자하고 맡긴 것인데 자신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만날 수 없다면 앞으로 자신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동안 쌓아 놓은 탑은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착찹했다.
한남대교 아래를 흐르는 강물은 지나온 수많은 역사의 사건들을 기억이라도 해주려는 듯이 밀어내듯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고 햇빛은 하류로부터 불어오는 강바람과 부딪치는 물살 위로 파장을 일으키며 반짝이고 있어 준호의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하였다.

버스는 한남대교를 지나 강남대로를 들어서자 서초동으로 방향을 틀고는 신호에 대기하고 있었다.
준호는 검은색 007 가방을 열고는 서류를 꺼내어 다시한번 타이핑 한 것을 검토하고 회장이 가장 눈에 잘 띠어야 한는 소제목을 잘 볼수 있도록 굵게 크게 인쇄되었나 확인하고 뒤로 넘기면서 다시 한번 훑어보고 가방에 넣고는 찰칵하고는 잠궜다.
버스는 한성그룹 사옥에서 300미터 떨어진 곳에 준호를 떨어뜨렸다.
준호는 가방을 들고 회장이 있는 사옥으로 가면서 갈수록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순서를 머리속에 그려보아도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은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국내최대그룹의 위성그룹인 한성그룹 사옥 앞에는 출입하는 모든 사람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킬 만한 그룹 조각품이 정문 앞에 전시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지하에는 사우나 시설을 나타내는 간판도 눈에 띠었다,
정문을 들어서니까 보안을 담당하는 경비가 책상에 앉아있다가 준호가 안내 앞에서 머뭇거리니까 다가와 묻는다.
"어디를 찾습니까?"
모자와 정복을 차려 입은 경비는 머뭇거리는 준호의 아래 위를 의아스러운 듯이 쳐다 보면서 물었다.
아마도 바이어 같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준호가 007 가방을 들고 있는 폼과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고 세일즈 맨으로 판단한 듯 싶었다.

                                                                             28



"회장님을 뵈려 왔읍니다만."
"녜? 회장님을요?"
"그렇습니다."
"회장님이라면..."
경비는 엘리베이터 앞에 놓여진 책상 앞에 의자에 양 팔꿈치를 고이고 물었다.
"한성그룹 회장실을 방문하려고 그럽니다."
준호는 경비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약속을 하셨습니까?"
"아니, 회사 일로 뵐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여기 한성그룹 회장님 말입니까?"
"네, 저는 천우 인터내셔날에서 왔습니다."

준호는 자신이 영업하고 있는 회사 이름을 댔다.
"여기는 한성그룹인데... 천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경비는 알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여기 한성그룹 회장님 아드님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요? 잠깐 기다려 보세요."
경비는 서랍에서 수첩을 꺼내 여기저기 인터폰으로 물어 보고 있다.
"8층으로 가면 왼쪽에 비서실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서 물어 보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준호는 말하고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면서 생각했다. 회장은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브리핑을 해야 자신의 꼭 전달해야 할 포인트를 제대로 보고할 수가 있을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8층에 서자 준호는 내리자마자 좌우를 둘러 보았다.
복도는 조용했고 적막감마저 들었다. 준호는 부서를 가리키는 벽에 붙은 안내를 보고 왼쪽 복도로 꺽어 걸어갔다. 깨끗이 닦인 복도는 준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자국 소리를 크게 내고 있었다.

문 앞에 도착하자 문을 아래 이로 보았지만 회장실이라는 표시가 없었다.
준호는 노크를 세번 두드렸다. 똑. 똑. 똑.
잠시 기다려도 대답이 들리지 않아 준호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준호가 들어가자, 여직원은 들어온 준호를 바라보았다.
"천우 회장님을 뵈려고 왔습니다만."
준호는 비서인 듯한 유니폼을 입은 아가씨에게 말했다.

"아, 천우는 회장님께서 우리 한성 그룹과는 별도이기에 여기서는 관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꼭 뵈어야만 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준호는 사정하듯이 말했다.
"잠시 기다려 보세요."
여직원은 쌀쌀하게 말하고 나서 인터폰을 누른후, 준호를 앞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한 후 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29




준호는 의자에 앉아 미스코리아에 출신처럼 미인의 여비서가 읽고 있던 뉴스위크 영문잡지를 보고 있었다.
조용한 실내에는 볼륨을 줄여 조그많게 흘러나오는 FM 클래식은 붉은 카페트가 풍기는 아늑함과 따스함 그리고 지적인 느낌과 동시에 위엄 있게 하였다.
왼쪽에는 쇼파용 의자가 6개가 놓여져 있었으며 여비서 뒤편에는 냉장고와 접대용 찻잔과 접시가 테이블 위에 비치되어 있었고 그외의 공간은 비어 있었다.
바닥에는 넓은 실내를 다 덮은 붉은 색의 카페트가 깔려 있었으며 오전의 햇빛이 카페트의 붉은 색을 긴 삼각형을 그리며 가리고 있었다.

앞쪽에는 폭4미터에 길이에 6미터 길이의 카페트 깔린 공간이 더욱 넓게 느껴졌다.
준호는 비서실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했다.
하얀 속옷에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여비서는 회장실을 나와서 말했다.
"회장님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시는데 천우를 경영하고 있는 회장을 찾아 가서 말해 보십시요.

 

회장님께 아무리 말씀드려요 소용이 없습니다."
"물론 회장님께서 저 같은 일개 영업사원을 만나주실 만큼 그렇게 한가한 분아 아니라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허지만 이건 아주 긴박한 상황이라 제가 그쪽 경영진에게 보고하지 않고 올 수밖에 없었던 점을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희가 어?게 일일히 말씀을 드릴수가 있겠습니까?"
준호를 바라보며 말하는 여비서의 눈은 귀찮아서 제발 그만 가주었으면 하고 호소하는 듯한 간절함이 있는 것 같았고 갸름한 얼굴에 하얀 피부는 청순함을 돋보이게 하였다.

눈이 크고 또렷한 이목구비는 준호가 좋아하던 그런 타입의 여성이었다. 준호는 한 눈에 미인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준호는 그랬다.

이처럼 아름다운 여성이 길을 지나가면 꼭 뒤를 돌아보지 않고서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지난날이 자신의 초상을 생각했다.

준호는 붉고 깨끗한 카페트와 넓은 공간속에 잔잔히 속삭이듯이 흘러나오는 라디오 진행자의 목소리와 책상에 펼쳐져있는 영문잡지 그리고 중역들이 결재받기 위해 대기할 때 앉는 고급의자등이 더 이상 준호로 하여금 머물게 하지를 못했다.
준호는 검은색 007 가방을 열고 서류를 꺼내어 비서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뭔가요?"

"제가 수년간 시장조사와 세계에 내놓아야 할 새로운 모델을 기획한 서류입니다. 이것을 회장님께 보여드리고 브리핑할 수 있는 시간을 저에게 주셨으면 하는 거지요. 아마 회장님이 이것을 보신다면 저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준호는 말을 마치고 궁금한 듯이 물었다.
"참, 미스 어떻게 되지요?"
"미스 박 인데요. 이것 여기다 놓으셔도 소용이 없어요.

 

보나마나 회장님께서는 보지도 않으시고 천우로 갖다 주라고 하실 것입니다."
"미스 박께서도 회사에 근무하니까 하시겠지만 기밀서류라는 것이 있어요, 그렇지않은가요?"
준호는 미스박의 맑고 검은 눈동자를 보며 묻었다.
"그렇긴 하지만..."
"바로 그겁니다. 이 기밀서류가 라이벌 회사에 가면 어떻게 되지요? 그것은 불을 보기보다도 더 뻔한 결과가 벌어집니다." 


                                                                           30 



준호는 여비서가 자신의 화술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가 회장님을 찾아 온 이유입니다. 물론 회장님이 고용한 전문 경영인을 의심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만일을 생각해서 그러는 겁니다.
만약에 회장님께 직접드리지 않고 절차를 밟아서 올라간다면 도중에 라이벌 회사의 중역과 인맥이 닿아서 즉, 동창이라던가 또는 형제 관계가 있다면 서류가 복사되어 우리가 개발하기도 전에 그 쪽에서 상품이 개발되어 시판된다면 그 결과는 어떠하리라고 생각은 해 보셨습니까?"

준호는 말하고서 비서의 얼굴을 살폈다.


 

ㅡ 여기서 비서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나무아미타불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납득시켜서 부회장에게 브리핑을 해야한다.ㅡ
미스 박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천우 사장님께 직접 갖다 드리면 되지 않을까요? 천우 사장님은 우리 부회장님이 신뢰하고 또 미국에서 같이 기숙하면서 공부를 오랫동안 같이 한 사이니까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래도 됩니다. 하지만 우리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사람의 속은 모른다 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바로 그겁니다. 사람은 견물생심을 늘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우사장이라도 라이벌 회사인 대진그룹에서 파격적인 제의로 스카웃 한다면 더 좋은 조건에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형제간에 사업을 함께 하는 경우가 때로는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죠.
제가 꼭 천우 사장님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혹시 있을지 모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말이죠. 워낙 사안이 중대하니까요. 유비무한이라는 속담을 저는 호소하고 싶은 것입니다."

미스 박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글세 말씀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과연 보실는지.."
미스 박은 자신이 없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준호는 미스 박이 착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사실 이러한 기밀서류가 대진그룹 보다도 일본이라도 먼저 알아차리고 개발이라도 한다면 우리나라는 영영 일본으로부터 무역적자를 면할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가 이웃 일본에 수출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수산물 말고는 무엇이 있을까요? 아마 손가락을 꼽아도 없을 겁니다. 오직 이 프로젝트 만이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을 자금줄 역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매년 우리나라는 200억 달러를 넘어 대일적자를 보고있는데 앞으로도 대일무역 적자는 계속될 것입니다.

 

해방 직후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여 유럽 쪽으로 다변화하지 못한 이유가 되겠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일본의 부품을 수입하고 기술 로얄티를 내서 제3국으로 수출해서 벌어들인

 외화는 바로 일본에 두손으로 받쳐 내야 하는 실정입니다.

 

언제 어떻게 우리가 기술을 앞질러 일본을 추월할 수 있겠습니까? 일본은 우리가 따라오도록 잠자고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행히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아이디어 시대입니다. 보리로 처음 맥주를 만든 독일은 나일강물이 오염되어 물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 필요성에서 탄생한 것이 "맥주" 아니겠습니까?  처음에는 씁쓰레한 맥주는 시민들의 호응이

 없었습니다.

그때 아이디어가... 세계의 커다란 잠자고 있는 <황금거위가 낳은 황금알 시장>이 탄생된 것입니다.

 아이디어 하나로... !  거대한 중국도 우리의 70년대 시대처럼 숨차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역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회장님께 어떤 수를 내서라도 이 프로젝트 서류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웅변을 토하고 있었다. 준호의 열변을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이 서류 내용대로 우리가 개발하면 일본에다 내다 팔수있다는 말인가요?"

설희는 준호의 열변에 자신도 모르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천우에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 회장님을 직접 뵈려한 것이죠. 이건 정말 긴급을 다투는 일입니다. 제가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는데 꼭 삼년이 걸린 셈이죠."
"그럼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가요?"

설희는 자신도 모르게 궁금해서 물었다.
"아니, 본부장과 전무는 알고 있습니다. 단지 제가 서류를 보여주지 않았을 따름입니다. 그들이라고 대진그룹 또는 다른 그룹과 줄이 없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제가 처음에 새로운 상품을 개발 필요성을 말했을 때 그들은 그럼 기획을 짜서 가져오라고 했던 것이니까요."
미스 박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31




준호는 정말 사랑스런 여자라고 생각했다. 눈이 크고 날씬한 몸매와 맵시 있는 오차림 그리고 상냥함, 무엇보다도 준호의 마음을 끄는 것은 마음이 착하고 인정이 있다는 것에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끌렸다.

"제가 이 프로젝트에 매달리느냐고 삼년동안 소비한 금액만도 저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으며 그것도 부족하여 은행돈을 얻어다 썼기 때문에 은행으로부터 얼마나 시달리는지 하루라도 빨리 회장님을 뵙고 프리핑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내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말씀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과연 회장님이 내용을 찬찬히 읽을실는지 저로서는 알수가 없지요. 하여튼 놓고 가세요.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니 제가 회장님께서 보시도록 잘 말씀드려 볼께요.

그룹 계열사를 여섯개를 운영하시니 좀처럼 제가 말할 기회가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설희는 말하고 안심하라는 듯이 웃어보였다.
"고맙습니다. 추석이 내일 모래인데 몇 년째 이러고 있으니."
준호는 한숨섞인 소리로 말하고 인사를 하며 문을 나섰다.
한성사옥을 나오면서 하늘을 올려다 보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속으로 외쳤다.
"제발 서류를 보고 프리핑을 하게 해다오."

사무실로 들어오자 회전의자에 앉아있던 본부장이 일어나 반겼다.
"오준호씨, 요즈음 얼굴을 보기 힘들어. 무슨일 있어?"
본부장은 탐색하는 눈초리로 준호를 바라봤다.
"내일이 추석인데 걱정이 돼서 그렇지요."
" 기획한다는 것은 어떻게 됐어?"
"글쎄요, 아직 멀었습니다."

준호는 녹차를 마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부장의 느글느글한 얼굴을 보기가 역겨워서 서둘러 마시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준호씨 마감이 얼마 안남았어.힘을 내!"
본부장은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나서는 준호의 뒤에다 대고 외쳤다.

막상 사무실을 나왔지만 어디 갈 곳이 뚜렷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강남 사무실을 나서자 거리에는 인파로 메어지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아직도 많이 남았지만 강남 사거리는 늘 그랬다. 준호는 지하도로 건너 전망 좋은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준호는 2층에서 부지런히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다.
모두가 활기를 띠고 거리를 오가고 있건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신의 처지가 한심했다. 즐거움을 뒤로하고 프로젝트를 완성하겠다고 뛰어들었지만 휴유증은 너무도 심각했다.
언제나 가정을 꾸밀 것인가 ? 오전에 자신의 얘기를 들어준 미스 박이 생각났다.

ㅡ 회장이 자신의 기획서류를 결재한다면 그러면 미스 박하고도 오래동안 대화를 나눌 수가 있을텐데...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안정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고 그 후 미스 박에게 프로포즈를 한다면 그녀는 받아줄까?

그렇게만 된다면 그녀와 함께 강남의 젊은이처럼 거리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을텐데... ㅡ
준호는 두손을 턱에 괴고 창밖을 내려다보면서 생각을 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32 



진경은 학교 앞에 있는 커피숍에서 친구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야, 진경아! 너 선 봤대며?"
명숙이가 물었다.
"응."
진경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어땠니?"
명숙과 정희는 궁금해서 얼굴을 마주대며 물었다.
"어때긴, 그저 그래."
"아휴,계집에두. 선을 봤으면서도 여지껏 시침떼고 있는거봐. 나쁜 기집애 같으니라구.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거지 그저 그래가 어딨니?"

명숙이 옆에있던 정희가 되물었다.
"어머님 말씀에는 선을 본 남자 집이 강남에 있는 알부자라며?"
일전에 진경의 집에 놀러갔던 명숙이가 아는 체 했다.
"어머, 그러니? 그럼 뭘 망설이니? 빨리빨리 서두르지 않고서."
"선 봤다고 다 결혼할 것 같으면 뭐 걱정이 하나도 없게?"
"기집에야 그런 혼사가 어디 쉽게 들어오니?"
"남자는 어떻든?"
정희가 물었다.
"그저 그래."
"어휴, 기집에두"

"키는 얼마고 얼굴은 어떻냐는 거야. 학교는 어디 나왔대?"
"응, 우리보다 조금 크고 살이 좀 많이 찐 것 같아. 학교는 뭐 전문대 건축학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말은 잘 하더라. 프랑스에 대해 많이 알고있는 것 같아.
에펠탑에 대해 말하는데 프랑스 문화에 관심이 많고 파리 여행도 갔다 왔어."
"어머, 건축학을 전공했는데 프랑스에 관심이 많어?"
정희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불어를 할 줄 아니?"

"불어는 모르는 것 같아. 프랑스 문화원에 가끔 드나드는 가봐."
"어머, 그남자 실력있다. 영어 독해도 다 하고... 문화원에서 영화를 상영하는데 전문대 나와서

 어떻게 영어를 즉석에서 독해할 수 있을까?"
명숙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부자니까 해외 여행 다닐려고 공부를 많이 했나봐."
"대단하다. 그 남자, 진경아 뭐 망설일 필요가 있겠니?"

정희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뭐 있겠냐는 듯이 말했다.
"어머님은 뭐라고 하셔?"
명숙은 물었다.
"어머님은 내가 결혼하기를 바라시지. 어머님이 꼭 선을 봐야한다고 해서 억지로 나갔던 것인데..."
"그래 어머님이 너희 뒷바라지 하느냐고 얼마나 힘드셨겠어? 어머님이 좋다면야..."
정희는 말끝을 흐렸다. 


                                                                           33


"데이트는 어디에서 했니?"
"자동차 타고 워커힐까지 드라이브 하고 호텔에서 식사하면서 얘기했어."
"어머, 그래 그남자 어떤 차 타니?"
정희가 물었다.
"BMW 5시리즈더라."
"어머, 그 비싼 BMW를..."
정희와 명숙은 놀라서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어땠니? 승차감 말이야."

"응, 좋더라. 역시 나무랄데가 없더라."
"그럼 기집에야 그 차가 얼마짜리인데."
"기집에 복이 터졌구나."
명숙은 정희말에 맞장구 치며 말했다.
정희는 부러운 듯이 말했다.
"집까지 태워주더니?"
"그러겠다는 것을 그냥 전철역에서 내렸어."
"이왕이면 집 근처까지 타고가지 기집에두 참,"
명숙은 나무라는 듯이 말했다.

"좋겠다. 누구는 외제 자동차에 강남 알부자에게 시집가게 생겼으니 우리에게는 그런 호박이 안 굴러오나?"
정희는 말하면서 명숙이 한테 말했다.
"안그러냐, 명숙아?"
"글세 말이야. 호박은 그만두고 넝쿨이라도 문에 걸렸으면 좋겠다."
명숙이도 부러운 듯이 말했다.

"기집에들두, 참 누가 뭐 시집이라도 간다고 했니? 부러워 하긴."
"어머머, 너 그럼 그 남자와 결혼 안할거니?"
정희와 명숙은 뜻밖이라는 듯이 반문했다.
"뭐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단지 그렇다는 것 뿐이지."
"기집에두 속으로는 좋으면서두 내숭떨기는..."
정희는 진경을 보면서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명숙은 진경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말했다.

"기집에야. 내숭 좀 그만 떨어라. 누가 달랠까봐 그러니?"
"내숭은 내가 뭘. 그래도 졸업을 하고 나서 뭐 결정을 해야지 벌써부터 호들갑이니?"
"기집에야 봉은 빨리 잡아야지 질질 끌다가 날아가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날아가면 마는거지 뭐, 시집 못가서 내가 안달이라도 났단 말이냐?"
진경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기집에가 이렇게 철이 없어서 원."
정희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약혼을 하고 졸업후에 결혼을 하면 될 것 아니니?"
"약혼을 하고?"
"그래, 약혼을 하고 나서 좀 더 교재를 하다가 마음에 들면 그때 결혼 날짜를 정해도 좋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파혼하면 되지."
명숙이와 정희는 안달이라도 난 듯이 선경이를 설득하려는 듯이 말했다. 

 

 

                                                                          34



준호는 하숙집으로 돌아와서는 옷을 갈아 입었다.
잠시후 하숙집 아줌마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네, 아줌마. 문 열어도 돼요."
하숙집 아줌마는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됐어, 총각?"
"뭐가요? 아, 회장을 만나러 간 것 말이죠. 못만나고 서류만 비서에게 전해주고 왔어요. 비서가 회장에게 건네 주겠데요."

주인은 실망의 표정을 지우면서 말했다.


"아 그럼, 어떻허지? 곗날이 내일인데... "
아줌마는 실망해서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수년동안 살아오면서 한 번도 밀리지 않을 만큼 신용이 있었고 또한 그동안 정이 들어서 가족처럼 생각하고 생활하여 왔기 때문에 수 개월씩 밀려도 재촉을 하지 않았던 것인데 오늘도 지불을 못하자 걱정이 되어 말했다.

"총각 그러면 어떻허지?"
아줌마는 걱정이 되어 물었다.
"제가 방을 빼죠. 그리고 밀린 방세는 제가 안정이 된 후에 갚도록 해주십시오."
"그동안 정이 들만큼 들었는데 돈 한푼 없이 어디로 가려고 그래?"
"잠시 친구 집에서 머물다가 빨리 취직을 해서 갚겠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보지? 비서가 서류를 회장에게 건네주면 그까짓 방세 회장이 못주겠어?"

준호는 주인 아줌마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럴까요? 그럼 잠시 기다려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여지껏 기다려왔는데 며칠 못기다리겠어?"
주인 아줌마는 방문을 열고 나가면서 말했다.


"빨리 씻어요. 밥먹어야지. 배고플텐데..."
아줌마가 방을 나가자 준호는 앉아서 벽에 기대어 잠시 생각에 잠겼다.
ㅡ 과연 회장이 서류를 볼까? 그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일개 세일즈맨이 작성한 서류를... 읽어 본다면 세밀히 검토나 할까? 과연 납득을 할 것인가? ㅡ
준호는 생각하면 할수록 답답해서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지나온 삼년의 시간을 생각하면 이건 분명 모험이었다.
영업본부장이 영업을 계속 유도하기 위해 준호 자신을 미끼로 삼은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준호는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이 프로젝트는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한다고 더욱 다짐을 한 것이었다.


 

오랫동안 중소기업에서 종사해온 준호는 누구보다도 우리의 현실을 잘 알고 있었고 국제시장에서 우리의 상품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유일하게 전 세계에 내다 팔 것이라고는 이것 밖에 없다고 확신이 선 것이었다.
자본과 과학 그리고 기술이 없는 우리의 국력. 매년 무역이 흑자이니 얼마가 적자이니 하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준호는 우리의 조상을 원망하고 술로 화를 풀었던 것이다. 


                                                                            35


 

 

가장 비싸면서 귀한 것들과 맛있고 좋은 수산물을 이웃 일본에 수출해봐야 기계 한 대를 수입하는 것 밖에는 수출다운 수출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준호는 조상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을 했단 말인가! 더욱 웃을 수도 없는 일은 툭하면 어업침공이니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뻔뻔스럽고 기고만장한 일본 국민이 하는 작태를 볼 때면 더욱 울분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인데 것이다.

위안부 문제도 해결을 하지 않으려는 일본을 기필코 타도해야 한다고 외치는 준호였다.
그래서 한일간 축구경기가 벌어지면 목청이 터져라 하고 외치며 응원을 하였고 경기가 끝나서 이기면 즐거워서 한 잔 걸치고 지면 울분에 못이겨 통음을 하고 들어오는 것을 하숙집 아주머니는 쯧쯧 또 한국이 졌구먼.

하고는 북어국을 끓여주는 것이었다.
시장조사를 하러 일본 여행을 가보고는 이 프로젝트에 더욱 확신을 굳힐 수가 있엇던 것이었다.

 

 

 

 


영원히 모방할 수 없는 이 프로젝트의 고유의 모델은 이미 전 세계로부터 1,600년전르네상스 시대 이후에 모든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1억2천만의 인구를 가진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늘 팽창주의를 가지고 군비증가을 매년 세계에서 제일 많이 지출하고 있는 일본, 세계의 무역 장벽 속에서도 프리미업 자동차  벤츠나 BMW, 아우디가 세계시장을 장악하고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전세계인들이 도요다 자동차의 대표적인 브렌드 렉서스를 더이상 벤츠와 동등한 프리미엄 수준은 아니라도 기술과

고장없는 내구성이 비등하다고 평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전자상품으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으며 워크맨을 독점으로 우리 학생들까지도 하나씩 가지고 다니게 할 만큼 뛰어난 기술과 상술의 나라 일본에 수출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것도 일본의 국민들 내실에 수출할 수 있는 꿈이 실현될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준호는 상상의 꿈을 펼치고 있었다.

ㅡ 매년 입시생이 70만이라 계산하고 가정할 때, 워크맨 하나만 가지고 우리 국민들에게 자그만치 약 7,000억을 수출한 나라 일본, 어디 그것만인가 기계,전자,자동차 부품까지 추정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어 수 년후에 일본시장을 공략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기적같은 일인 것이다.

 

그야말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일 무역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상품인 것이기 때문이고, 영원히 우리 만이 독점으로 세계 선진국 장벽에 관계없이 판매할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에는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ㅡ

어두운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스타- 이세상 어디든지 많은 스타들이 있고, 또 스타들이 탄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스타탄생이라는 말을 매스콤에서 많이 듣도 또 CEO중의 CEO라는 기사를 많이 듣는다. 준호는 자신도 이 프로젝트가 무사히 달성되었을 때는 자신도 스타라는 영광의 찬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에 차있다.

서울의 하늘이 이처럼 반짝이는 별들을 보기가 싶지가 않은데 웬일인지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수 놓아져 있었고 카시오페리아와 백조자리까지도 보였다.
스타란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창조되는 것인가, 준호는 자신이 스타와 거지의 갈림길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은 스타가 될 마음도 없고 단지 이 프로젝트를 하지 않으면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되기 때문에 미련없이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이며 따라서 후회도 없다고 여겼다.
설사 거지가 되고 빚 속에 사는 결과가 나온다 치더라도 반드시 자신이 아니면 누군가가 해야 될 일이었다.
애초부터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않았기에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36


서초동에 사옥을 두고있는 한성그룹 회장은 국내최대의 그룹인 화성그룹 명예회장의 둘째동생이며 지난 해에

 명예회장으로 물러나 자식들에게 계열사를 물려주고는 일주일에 한번만 출근하고 있었다.
얼마전에 중풍을 맞아 중국으로 건너가 침을 맞아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완치가 되지는 못하였으며

지금도 걸을 때는 조금씩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해방직후 형을 도와 화성그룹을 일으키는데 일조를 하여 오늘의 화성그룹이 국내 최대의 그룹으로 올라서자

시멘트와 자동차 부품회사를 차려 지금은 30대 그룹으로 도약을 하겠다고 큰 아들인 지금의 회장이 선언을 하였다.
최근 소비 붐과 레저붐으로 콘도사업과 스키사업을 주관하는 레저사업으로 매스콤에 광고를 쉬지않고 홍보하고

 있으며 특히 해외 스포츠 경기에는 빠지지 않고 그룹 이미지광고와 함께 한성레저를 광고를 하고 있었다.

1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한성그룹은 사원들에게는 30대 그룹 어느회사 못지않은 대우를 받고 있으며

 또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국내 최대그룹인 화성그룹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고 있으며 건설의 노하우를 직접 건네받아

 중동지역에까지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화성의 현 회장들과 사촌간인 한성그룹의 회장들은 선친이 이룩해놓은 업적을 어려서부터

성장할 때까지 귀가 따갑게 들어왔다.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기까지의 우여곡절과 국내 처음으로 중동에 진출하여 기적에 가까울 만큼 시공해놓은

 성공신화 이야기는 마치 영웅담이나 고전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전세계 건설업계가 주목하고 놀랐던 것이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하며 비웃었지만, 큰 아버지는 전세계

 기업인들에게 보란 듯이 공사기간을 어기지 않고 성공리에 마무리 지었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외환위기가 왔을 때에 우리나라의 3분지1에 해당하는 외화를 벌어들여 부도나기 직전인 국가경제에 커다란

일을 한 것은 정말 신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었다.

지금세대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해방직후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는 흉년까지 겹쳐 소나무 껍질을 솥에

 푹 삶아 끼니를 연명하고 보리가 수확을 할 때에 이르러 보리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소위 보리고개의 어려움을 지금의 50대 후반이 되는 사람 만이 그 고통을 알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시절에 국가가 외환이 부족하여 국가부도라는 웃지못할 에피소드 같은 일이 벌어지려는 찰나에

 화성그룹의 명예회장은 중동건설에 뛰어들어 기술도 자본도 없이 전세계가 불가능하다는 설을 뒤집고

 시공을 기한내에 마쳐 세계속에 화성건설을 심어놓았던 것이다.

그렇게까지 할 수있었던 것은 포항제철이 있었고 박정희 대통령의 섬유와신발등 1차 산업에서 중화학으로 자동차.

조선,중공업,전자.기계,건설등에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은 바가 컸기 때문이다. 세계의 석학들과 경제전문가들이

 한국의 수준으로는 중화학으로 뛰어드는 것은 시기상조다 하며 말렸지만 <잘살아보세>라는 새마을운동의

 기치아래 마침내 도약에 성공을 하였던 것은 큰 아버지의 공이 크다고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세상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입에 침을 튀겨가며 말할 것이다.

 

                                                                                   37



아무것도 없는 모래땅에 조선소를 설립하던 당시 웃지못할 에피소드하며 전 세계에서 불가능하다는 공사를 거뜬히 해낸

 큰아버지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듣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하게 올라가고 자부심이 생겨나게 하였다.
밤이 새도록 들어도 싫증이 나지않는 영웅담이라 어려서부터 성장하면서 "나는 큰아버지보다도 더 훌륭한 회사를

 만들어야지" 하는 다짐을 했던 것이다.

미국에 있는 UCLA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MBA를 마치고 나서 한국에 돌아와 아버지 사업을 수업하면서 지금은 부회장으로서 경영을 하고 있었다.

유학생활 중에 기숙사에서 같은 룸을 사용하던 선배, 환경공학을 전공하던 한국 유학생과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그 선배의 의견을 받아들여 아버지한테 사업자금 300억을 달라고 해서 회사를 설립하고 그 사람에게 사업을 맡기고 있지만 사실 불안감은 늘 가지고 있었다.

물론 보름에 한번씩 사장인 그 선배에게 보고를 받고있지만,..
만약에 사업이 잘 못되기라도 한다면 한성그룹 직원들에게도 창피한 일이고 큰 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사촌들에게 얼굴을 들수가 없기 때문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터 이었다.
오늘도 부회장은 9시가 한참 지나서야 한성그룹 사옥에 도착했다.
늘 그 시간에 오는 것을 아는 경비와 보안직원은 미리 나와서 무전기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차가 정문 앞에 정차하자 운전기사는 재빨리 내려서 뒷문으로 다가가 문을 연었다.
검은 차문이 열리자 태호는 내렸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은 허리을 90도로 굽혀 인사했다. 직원의 호위를 받으며

 태호는 대기해 놓은 엘리베이터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러자 지나는 한성그룹 직원들이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보통보다 좀 큰 키에 곤색 양복을 입은 태호는 부리부리한 눈에 사각형의 얼굴을 하였고 얼굴에는 사춘기 때에

여드름이 많았는지 피부가 햇빛에 탄 것처럼 약간 검었으며 뺨에는 젊은 날의 여드름으로 점같은 구멍이 보였다.

머리는 젊은 세대들이 하는스포티하게 무스를 발라서 올렸기 때문에 유난히 크고 날카로운 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부모들로부터 어려서 호랑이 눈을 닮았다고 해서 태호가 들어오면 큰 아버지가 무릎에 앉히며 기뻐했던 것이었다. 큰 아버지는 태호의 눈이 상대를 꿰뚫어 보고 거역할 수 없는 위엄있게 생겼다고 종종 말했던 것이다.
비록 체격은 크지는 않지만 남을 위압하는 눈은 상대로 하여금 오랫동안 마주볼 수 없게 하였다.

태호가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인폼에 다가가니 화사한 유니폼을 입은 늘씬한 안내 여직원이 공손하게 인사를 하자 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스 김, 요즈음 이뻐지는 것 같은데...여자는 사랑을 하면 이뻐진다고 하는데 애인이 생겼나봐."
태호는 기분이 좋은 듯 웃으며 말했다.
"아니예요. 부회장님. 고맙습니다." 

화사한 웃음을 보이며 엘리베이터로 가서 버튼을 누르고 태호가 타기를 기다렸다.
- 늘씬한 몸을 가졌군.-

스튜디어스같은 유니폼에 입술에 진하게 바른 루즈색과 화장품에서 풍기는 여자의 향기를 맡으며 오늘은 기분이 상쾌함을 느꼈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세워져 있었으며 태호가 타자 여직원은 인사를 하자 곧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곧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8층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태호는 문을 나서서 부회장실로 갔다.
비서인 박 설희는 문을 열고 화사한 유니폼과 함께 화사한 백합같은 미소를 머금고 서서 기다리고 있다. 

 

                                                                                       38

 


"안녕하세요,회장님, 회장님이 창업한 회사에서  직원이 왔었습니다. 처음보는 직원이라서 잘 모르니까 그쪽 사장님이

모든 것을 경영하시기까


그곳 사장님을 찾아가보라고 했는데도 꼭 회장님을 만나서 브리핑을 해야 된다고 해서..."
설희는 말 끝을 흐렸다.

"누군데?"
"저도 처음보는 사람인데요 영업부에 근무 한다고 하면서 회장님께 꼭 브리핑을 해야 한다면서 몇시간씩 기다리고 있었어요."

"여기서?"
"아뇨, 밖에서요. 저는 천우로 가서 그 쪽 사장님을 만나서 브리핑을 하던가 아니면 전무를 만나서 절차를 밟아 올라와야지 여기는 그 곳의 일을 전혀 관여하지 않는데 무작정 이곳에 와서 이러면 회장님을 뵙겠다고 하면 어떻하느냐고 말했어요."

"그랬는데?"

태호는 호기심이 생겨 반문했다.
힘을 얻은 설희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밝을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서류를 놓고 가면서 천우사람들에게 절대로 건네주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회장님 외에는 아무도 건네주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달라고 해서 받아두었습니다."

"그래? 무슨 서류인데."
태호는 웬지 자신도 모르게 걱정이 되어 반문했다.
"기획서류라고 하는데 이 서류를 작성하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하면서 다른 회사로 건너가면 큰일이라고

하여서 받아두었습니다."


"그래? 그럼 가져와봐. 그사람은?"

"서류를 제게 주고 갔읍니다."
설희는 신이나서 얼른 가져왔다.
태호는 설희가 가져온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개봉을 하고는 서류를 꺼냈다.
첫 장에는 "21C 글로벌 마케팅 프로젝트" 라고 크게 쓰여있었다.
태호는 다음장을 보았다.

출사편: 선구자 라고 쓰여있고 조금아래에는 완결편: 논개의 세계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일출편: 떠오르는 대제국으로 종결되어 있으며 맨 끝에는 제출자 . 천우 인터내셔날 영업부 오진호라고 작성되어 있다.
대충 쭉 훑어본 태호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서류를 테이블위에 올려놓았다.
테이블 위에 놓여진 서류 위의 선구자라는 글이 눈에 유난히도 들어왔다.
태호는 문뜩 큰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래서 인터폰을 누르고 지시했다.

 

 


                                                                                  39



"선구자 음악을 틀어봐."
설희는 곧 부회장실로 들어와서 음악을 틀었다. 잠시 후에 선구자 노래가 부회장실을 울리며 퍼져나갔다. 태호는 눈을 감고 음악을 듣으면서 큰아버지가 이루어 놓은 업적을 생각했다.

해방직후 소위 보리고개라는 시절에 자본도 기술도 없는 황무지나 다름없는 그 시절에 맨손으로 일구어 놓은 한국경제의 선구자인 큰아버지의 은덕을 늘 감사하고 있고 자신은 큰아버지를 위인처럼 존경하면서 성장해왔다.
물론 태호는 보리고개를 전혀 모른다. 단지 자라면서 시골 아저씨들이 하는 말을 귀동냥으로 들었을 뿐이었다.
전쟁으로 국토가 폐허가 되었고 먹을 것이 없어 보리가 수확이 될 때까지 소나무 껍질을 벗겨서 솥에 푹 삶아 먹어야 했던 그 시절을 보리고개라 했다
.

지금 50대 후반 나이가 되어야 그 고통을 경험해서 알 수가 있다고 했다.
오로지 보리만이 영글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그 심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한다.

섬유, 신발, 가발만 의존하던 1차 산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중화학공업으로 바꾼다고 했을 때 세계 경제

 석학들은 모두들 비웃었다.

그러나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새마을운동이라는 기치아래 잘 살아보려는 마음으로 똘똘 뭉쳐 아시아에 떠 오르는 용이 될 수 있었던 것을 태호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은 고생을 모르고 자라나 세상물정을 모르고 고생한번 없이 아버지 덕에 살아왔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한국의 저력에 전 세계가 경악했고, 이제는 살만하니까 너도나도 해외여행이다 유학이다 하며 뻔질나게 외국을 드나들고 있었다.

태호는 그것이 싫었다. 과거에 그 어렵고 고통스런 세월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이 자식들 관리를 하지 않고 마치 잡초처럼 키우고 있는 졸부들이 못마땅했다.

미국에서 유학시절 한국 유학생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었고, 그 중에는 강남의 졸부자식들과 놀부자식들이 유난히 눈에 띠었다.

한때는 자신도 그들중의 하나로 오인을 받기도 하여 불쾌한 마음을

받고 쓴웃음을 지웠던 기억이 생각났다.

나라가 외화가 없어 부도나기 직전에 큰 아버지가 중동으로부터 당시 우리나라 예산의 3분지1에 해당하는 달러를 벌어들여 국가부도라는 치욕을 모면하기 까지는 큰 아버지 공헌이 너무나도 컸다는 것을 경제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그 신화를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음악이 끝나자 설희는 스톱버튼을 누르자 찰칵! 하는 소리가 여운을 남겼다.

 

 


                                                                                  40



그러자 태호는 눈을 뜨지 않고 다시 한번 더 듣겠다고 설희에게 말했다.
곧 성악가의 우러찬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그랬다 큰아버지를 도와 아버지는 우리의 과제인 중화학공업으로 올라서게 하는 발판을 만드셨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선진국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있지 않는가.

자동차, 중공업, 조선, 기계, 건설, 전자 등에서 수출에 힘입어 생활이 풍요로워지게 되자 이제는 임금 인상 때만 되면 파업으로 산업현장이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생겼다.

음악이 끝나자 태호는 서류를 다시 보았다.
피식! 하고 태호는 웃었다.
자신은 대 화성그룹의 회장과 사촌이고, 또한 자신이 이끌고 있는 그룹이 30대 그룹의 진입의 문턱에 있으며 부회장으로 있는 자신이 그래, 자신이 창업한 조그만 영업부에서 일하는 세일즈맨의 서류를 보고 있다면 모두들 웃을 것이었다.

태호는 서류를 테이블 위어 놓고는 햇볕이 들어오는 창을 바라다 보았다.
햇빛은 투명한 유리를 뚫고 들어와 붉은 카페트를 각도를 만들면서 비추고 햇볕을 받지 못한 카페트에는 색채의 명암이 선명하게 가르고 있었다.
태호는 생각했다.

 

ㅡ 아니다. 큰아버지도 세일즈맨과 다를 바 없지. 누가 큰 아버지가 화성그룹을 세계적인 그룹으로 만들고 국내 최대그룹으로 일구어 놓을 줄은 아무도 생각을 못했지 않는가. ㅡ
태호는 다시 서류를 들어 천천히 읽어본다.

"새로운 모델? , 리스트럭처링 (사업의 재구축)이라."
태호는 계속 읽어 내려갔다.
"화성그룹에서 가전업에 진출해야 할 필요성이라."
화성그룹은 이미 전자법인을 세울 때 반도체를 할 것인가 아니면 가전업을 해서 일본 "소니" 사와 합작을 할 것인가를 놓고 큰아버지와 동생들이 거느리고 있는 그룹, 즉 위성계열사 로얄가족 모두 모여 토의를 한적이 있었고 결국에는 반도체로 정했는데, 그것은 라이벌 대진그룹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대진그룹 창업자는  역시 아들과 딸을 많이 두었다. 계열사를 분리하여 모두 독립했다. 화성과 대진은 영원한 맛수였고, 국민들은 용과 호랑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대진그룹 창업주는 돌다리도 두들기며 사업을 확장하였고, 외국의 성공사례를 확인하고  도입했다. 하지만 화성그룹은 달랐다.

파이오니아 정신으로 맨주먹으로 그것도 전쟁, 강대국의 파워게임으로 

황폐하게  변해버린 나라 기술도 자원도 아무것도 없는 여건에서 경제를

일으킨 선구자였다.

   

반도체는 리스크가 많지만 그만큼 사업전망과 부가가치가 높아 결국에는 가전사업을 포기한 것이 동기였다.
"아리아스, 아그리빠 , 비너스., 줄리앙,? 이게 뭘까?"
태호는 어디서 많이 듣던 기억이 생각이 났지만 그게 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논개의 세계라?"
태호는 뒷장을 넘겨봤지만 아무것도 없어 서류를 내려 놓았다.
태양은 우면산을 뒤로하고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사무실 안에는 어느새 어스름한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인터폰이 울리고 손님이 왔다는 설희의 보고가 들어왔다.
태호는 서류를 한 쪽으로 옮겨 놓고 일어났다. 


    

 

                                                                                                     41

 

 

 

 


태호는 비서실로 나가서 온 손님을 정중히 맞았다.
"어서 오십시요. 형님."
태호는 허리를 굽히고 왼손을 부회장실로 안내하면서 자리로 안내했다.
"오랜만이네."
두사람은 자리에 마주하고 앉았다. 키가 크고 몸이 호리호리하고 머리를 루스를 묻혀 뒤로 넘긴 사람은 필리핀 대사관에 근무하는 공사였다.

태호에게는 대학 동창중에 가장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형이었다.
필리핀에 가끔 친구와 함께 가족을 동반하고 피크닉을 가기도 했다.

그 때마다 지금 여기 앉아 있는 형이 마중 나와서 반겨주었던 것이다.

대사 다음으로 대사관 일을 맡고 있는데 외무고시 공부할 때 태호는 가끔 놀러가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하였던 것이었다. 설희는 중국에서 가져온 향기 넘치는 차를 가져와 테이블에 놓고 나갔다.
"드십시요."
태호는 차를 권했다.
파란 양복에 희미한 줄무늬 양복을 입고 있는 공사는 차잣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무슨 차지? 향기가 아주 좋은데..."
"네, 아마 그럴 겁니다. 중국에서도 상류층 만이 마실 수 있는 차이니까요.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 차라고 하는데 이름은 잊어버렸습니다.

선물을 받은 거죠."
태호는 즐거운 듯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아는 선배도 중국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그분은 중국어를 잘 모른단말야."
"네, 그렇군요."
"중국어 아는 외교관이 드물어. 수도 북경 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들도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니까. 안타까운 일이지."
"우리가 중국 개방을 대비해서 후학을 장려했어야 하는데요."
"글쎄 말이야. 누가 중국이 이렇게 우리에게까지 빨리 개방할 줄 알았어야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얼마전 미스코리아 출신이 필리핀 재벌 회장에게 시집을 갔다고 하던데요?"
"응, 필리핀 매스콤들도 기사화하고 있지."
"그 그룹은 어떤 그룹이지요?"
"주로 부동산을 다루고 있는데 필리핀에서 상위 7위에 들지. 재무구조가 탄탄하다고 하더군. 매스콤에 의하면 말이지."
"잘 살아야 할텐데요."
"잘 살겠지. 아쉬움 없이 말이지."
공사는 껄껄 웃으며 차를 훅! 하고 소리내며 들이마셨다.

"언제 들어가세요?"
"아, 오늘 들어가야지. 오랜만에 사업하는 자네도 볼겸해서..."
"네. 잘 오셨습니다."
태호는 말하고 비서실로 나갔다. 잠시후 자리로 돌아와 다시 앉았다.
자리로 돌아와 차를 마시고 태호는 테이블 위에 있는 서류를 보자 생각난 듯이 물었다.
"필리핀은 열대지방이니 물이 많겠지요?"
"그렇지, 그런데 왜?"
"네 그 물로 맥주를 만들면 어떨까 해서요."
"맥주라면 우리나라 맥주도 있지 않나?"
"그렇긴 하지만 새로운 프로젝트 서류가 올라와서요."
"흠, 그것 좋은 일이군."
공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새로운 맥주를 만들려면 보통 맥주보다 3배 이상 물이 소비가 됩니다."
"그래서 물어 본 것이군. 필리핀이야 홍수피해가 심각한 지경이니 물걱정은 일년내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네."
"네, 조만간 찾아 뵙겠습니다."
태호는 인터폰을 누르고 말했다.
"가져와."
잠시후 설희는 봉투를 가져와 태호에게 두손으로 건넸다. 태호는 받아서 설희가 나간 후 공사에게 건넸다.

"형님 쓰십시요. 작은 월급가지고 사교생활을 하는데 필요하실 겁니다."
"아니, 괜찮네. 지난번에도 신세를 졌는데..."
"괜찮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쓰십시요. 달러니까 환전없이 그냥 가지고 출국하시면 표가 나지 않습니다."
"고맙네. 잊지 않겠네."
공사는 봉투를 양복주머니에 넣고 일어섰다. 태호는 공사를 모시고 대기해 놓은 차로 가서 함께 승차했다. 공항까지 마중하려고 했으나 같이 출국해야 할 직원이 있어 광화문 종합청사까지만 동행하고 자신은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42



태호는 차 안에서 설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설희의 사랑스런 모습이 떠올랐다.
"난데, 바로 퇴근하지."
"예, 알겠습니다."
설희는 대답을 하고 평소와 같이 퇴근 준비를 했다. 부회장실로 들어가 테이블을 정리하고 실내를 한바퀴 둘러보고 나왔다.

자신의 자리에 와서 음악을 끄고 보던 뉴스위크지를 덮고 핸드백을 열어 거울을 꺼내 들여다 보았다.

다시 백 속에 넣고 곰곰히 생각했다.
- 누굴까? 달러를 드린 분은? -

태호는 아파트에 도착해서 차임벨을 눌렀다.
곧 인터폰에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야?"
"응"
태호가 들어서자 아내는 태호의 양복을 받으며 말했다.
"자기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좀 생각할 것이 있어서.... 애들은?"

"지금 막 나갔어. 옆집 아이와 함께."
태호는 옷을 벗으면서 샤워실로 갔다.
태호는 평소와는 달리 혼자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아내가 물었다.
"등 밀어 줘?"
"아니, 금방 씻고 나올거야."
"저녁 준비할께요."
아내는 냉장고로 갔다.
태호는 샤워를 하고는 김이나는 목욕탕에 몸을 담그고 생각에 잠겼다.
언제나 하루일과를 끝내고 하는 습관이지만 오늘은 사무실에서 본 새로운 모델을 떠올리고는 그 모델이 무었일까? 하는 궁금증이 따라 다녔다. 태호가 욕실에서 나오지 않자 아내는 들어와서 태호에게 말했다.

그러자 태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당신 아리아스, 아그리빠, 비너스, 줄리앙이 뭔지 알아?"
태호는 허준호가 놓고 간 서류중에 새 모델 이름을 기억하고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미대를 졸업했다. 그래서 태호는 혹시 아내는 알고 있지 않을까 하고 일찍 들어왔던 것이다.
"그건 미대 입시생들이 입시과목으로 선택된 교재인데, 그건 왜요?"
아내는 궁금해서 듯이 물었다.
"응, 회사 영업부에 근무하는 사람이 새로운 모델은 그것으로 해야된다는 거야."
"당신이 새로 설립한 회사?"
"응, 그게 뭐지?"
태호는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초상 조각품이야. 전 세계인들이 다 알고있고 그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 장식품으로 하나씩은 갖다 놓는데 미대생들은 그것을 보고

 기초 뎃싱 연습을 하는데 소묘라고 불러."
"엇! 그래?" 





                                                                               43 




"그러면 아리아스, 아그리빠, 비너스, 줄리앙이 서기 1,600 전에 나왔던 골동품이란 말이지?

그럼 그것을 어디 가야 볼 수가 있지?"
태호는 다급하게 물었다.

"화랑에 가면 볼 수 있어."
"그럼 당신 지금가서 사와."
"지금 몇시인데 벌써 문을 닫았을거야. 여성 속옷파는 회사가 비너스를 상표로 하고 있거든. 닦고 나와요. 보여 줄게."
"알았어.그럼 내일 나하고 같이 화랑에 가보자구."
태호는 무언가 영감이 스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상하게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태호는 서둘러 목욕을 마치고 부엌으로 나와 식사를 하는 동안 아내는 비너스 상표를 가져와서

보여주었다. 태호는 커피를 마시면서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럼 이것을 모델로 하면 다른 기업에서 모방을 할 수 없겠지?"
태호는 흥분하여 다급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런데 지금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 그림을 모방해서 판매하고 있는데 그건 어떻게 되는거지?"
아내는 궁금해서 물었다.
"그거야 장식용으로 걸어놓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할까, 훔쳐온 것이 아니고 사온것이니까 법에 접촉되지는 않는거지."

"하긴 당사자가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 누가 소송을 할까?"
아내는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고 이탈리아 국가에서 우리에게 국제법을 적용해 소송을 할 수도 없지 않잖아."
"아, 피곤하다. 신경을 썼더니 일찍 눕고 싶은데."
태호는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조금 있다가 누워요. 식사하고 나서 바로 눕는다면 배가 나온대."
"알았어."
잠시 신문을 뒤적이던 TV를 보던 태호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이튿날 태호는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며 아내와 함께 가까운 화랑에 들렀다.
태호를 태운 그랜저가 화랑 앞에 서자 마자 태호는 문을 자신이 열고 화랑 안으로 들어가자, 주인이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십시요."
뒤따라 들어오는 아내에게 태호는 물었다.
"어떤 거야?"
태호는 아내를 보며 물었다.
주인은 태호의 아내를 쳐다봤다.


                                                                                44


아내는 화랑을 둘러보다가 한쪽에 세워져있는 하얀 석고상을 보고 가리켰다.
"저기 있어요."
태호는 다가가 자세히 살폈다.
"그것은 아리아스 입니다. 드릴까요?"
주인은 태호 뒤에 서서 물었다.
"어떤게 아리아스이고 아그리빠이지? 그리고 비너스와 줄리앙은?"
태호는 자기도 모르게 흥분되어 물었다.

주인은 태호 앞으로 나서서 비닐을 벗기며 손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것이 비너스이고 이게 아리아스와 아그리빠이며 그 옆에 있는 것이 바로 줄리앙 이죠."
태호는 비너스를 테이블위에 올려놓고 넋이 나간 듯이 바라보았다.
"당신 왜 그래요?"
아내는 넋이 나간 듯한 태호를 보면서 물었다.
"이게 르네상스 시대의 초상 조각 골동품이란 말이지?"
태호는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주인에게 다시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학생들이 대학입시 과목으로 문교부에서 지정한 것입니다.
학생들이 방에서 뎃싱 연습을 하려고 하나씩 사가기도 하죠. 때로는 미대출신 부부들이 응접실에 장식하려고 하나씩 같다놓고 또 아이들에게 뎃싱공부를 시키려고 갖다 놓기도 하지요."

"이게 뭘로 만들어졌습니까?"
"네, 석고로 만들어서 다듬은 것입니다."
"태호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어쩔수 없었다.
"당신 이것 다 사가지고 집에 바로 가!"
운전기사가 차에 실으려고 하니 태호는 아내에게 택시를 타고 집에 가라고 말했다.

"당신 웬 난리야!"
아내는 영문을 몰라 걱정되어서 여지껏 볼 수 없었던 태호의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아내의 외침을 뒤로하고 태호는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다.
설희는 태호의 늦은 출근을 맞으면서 옷을 받아 옷걸이에 걸고 차를 준비하러 비서실로 갔다.
태호는 찻잔을 받쳐들고 들어오는 설희보고 허준호에 대하여 말하려다가 멈추고 아버지가 말한 것을 상기하면서 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ㅡ 아래 사람을 부리려면 자신의 심중을 내보여서는 안된다. 부하가 윗사람의 마음을 읽으면 거기에 ?추어 일을 하려하기 때문에 아부하게 되고 또 상사를 이용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부리는 것이 아니라 부림을 당하고 말기 때문이다.
표정관리를 잘 하여야 만이 부하들에게 마음을 읽히지 않는 방법중의 하나이고 또 위엄이 서는 것이다. ㅡ




                                                                          45


 

태호는 아버지 말을 기억하면서 설희가 볼 수 있도록 준호가 가져온 서류를 들척이며 보고 있었다.
설희는 잠시후에 들어와서 말했다.
"부회장님, 그 사람이 왔었어요"
"그래, 음."
태호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서 한모금 마시고 테이블에 내려 놨다. 사기잔이 찻잔에 부딪치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 어떻게 할까. 오라고 할까. 아니면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릴까. -
태호는 생각했다. 설희는 태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태호는 말없이 서류를 보고 있다. 설희는 도무지 태호의 심중을 알 수가 없어 조마조마하며 있는데 태호가 말했다.

"글쎄 한번 더 읽어보고."
태호가 말하자 설희는 안심하면서 말했다.
"매일 11시가 되면 노크를 꼭 세 번만 하는 것 있죠?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와서 회장님을 뵐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회장님 지금 외출중이시라 뵐 수가 없다고 하면, "알겠습니다"하고 기다리지도 않고 그냥 돌아서서 내일 뵈러 오겠다고 말하면서 나가는 것 있죠."
설희는 태호가 화내는 표정이 없자 종달새처럼 말했다.
"그 사람이 뭐하는 사람이랬지?"
태호가 관심을 표명하자, 설희는 목소리에 톤을 높이면서 말했다.

"영업부래요"
"영업부에 근무하는 사랍이 왜 기획을 했을까?"
"전무와 본부장이 기획을 하라고 했대요. 그래서 3년동안 전문기술 연구소를 찾아 자기가 모은 돈을 다 쓰고 또 모자라 은행돈을 얻어 썼다고 하던대요. 지금은 방세가 석달 씩이나 밀려 있고 추석에 성묘도 못가서 회장님께 말씀드려 어떻게든 브리핑을 해달라고 매일 왔다가 돌아가요."

 

설희는 지겹다는 생색을 내면서도 은근히 준호의 입장을 대변해주듯이 말하고 있었다.
"전무와 본부장이?"
태호는 확인이라도 하듯이 되물었다.
"네, 그러면서도 영업을 계속하면서 시장조사를 했다고 하던데요."
"그래? 알았어."
태호는 일단 설희를 비서실로 보내고는 서류를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모델 : 아리아스 아그리빠 비너스 줄리앙"
태호는 다음 장을 넘기면서 아까 화랑에서 본 석고상을 떠올렸다.
향후 이프로젝트의 국제시장은 약 5조 달러 시장이 된다고 하며 또한 빨리 우리의 브렌드화 하기 위하여서는 단기간에 상품을 개발하여 세계시장에 내놓아야 했다. 

 

열강국들은 물론이고 이웃 일본과 라이벌인 대진그룹이 준비하기 전에 비밀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뭐, 5조 달러? 향후 30년 동안?"
태호는 어이가 없어 천정을 보며 한동안 넋나간 사람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태호는 생각했다. - 과연 그만큼 시장성이 있을까? -
태호는 또 자신이 흥분되고 있는 것을 알았다.



                                                                               46



또 다음 장에는 맥주시장을 공략해야 되기 위해서는 해외에 비밀리에 착공을 해야한다고 설명되어 있었고 물이 많이 소요되는 과정이라 필수적으로 우리나라는 물이 부족하여 도저히 감당을 할 수가 없으므로 동양의 어느 한 곳, 필리핀에 시급히 착공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라 할 만큼 90% 이상이 술을 마실 수 있으므로 동남아 중에서 가장 적합한 나라라고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자면 지금 하루라도 빨리 서들러서 유력한 후보지 필리핀에다 세울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카톨릭을 믿는 그 나라에서도 맥주를 소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필리핀에는 우리나라 미스 코리아 진으로 뽑힌 여자가 그 곳 부동산 개발의 그룹의 회장과 결혼을 해서 그 그룹과 교섭을 희망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태호는 거대한 중국에서 가져온 차 맛을 음미하면서 서류에 기재된 내용들을 샅샅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검토하고 있었다.

전세계인들이 A급 맥주를 마신다면, 태호는 이런 상상을 하자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고 생각했다. 가능한 일일 것이다.

코카콜라가 전세계에서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마셔대고 있지 않은가. 비록 맥주의 종류가 수 백개가 있다지만 날로 심각해져가는 환경오?을 벗어난 깨끗한 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안다면 이 시장은 얼마나 넓고 클것인가도 생각했다.

맥주공장을 추진하려면 3,000억원이 들어가는데 한성그룹으로서는 감당을 할 수가 없었고 또한 아리아스 아그리빠 비너스 줄리앙 모델을 개발하여 세계시장에 내다 팔 능력은 국내 최대그룹인 큰아버지의 화성그룹에 ?아가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보통 맥주를 한 컵 만들려면 세 컵의 물이 소요가 되는데 더욱이 이 NASA의 특허 기술에 의존하는 방식에는 다섯 컵의 물이 소요가 되어야 한 컵의 맥주가 생산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다 맥주공장을 착공 하려해도 한성그룹으로서는 자금을 감당 할 수가 없다는 것을 태호는 잘 알고 있었다.

한성그룹의 재무능력을, 그리고 자금을 동원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태호는 다음 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피부에 화장이 얼마나 중요한 것 인지 설명되어 있고 화장품 사업에 진출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다음장에는 M&A를 해야 할 기업들을 한국기업평가 <주>에서 발행한 인수해야 할 회사의 재무재표를 포함한 공장 위치와 종업원 수 그리고 거래은행과의 빚 채무 액수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태호는 너무도 엄청난 서류의 내용에 엄두가 나지않아 서류를 든 채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ㅡ 어떻게 이런 서류를 기획한 사람이 영업을 하고 있었을까? 정말 독점적으로 판매를 할 수만 있다면 30년간 5조달러가 아니라 6조 달러시장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인들이 무한정 마셔대기 시작하고 10년에 한 번씩 기계를 교환 한다면 어쩌면 그시장을 우리 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웬일일까?ㅡ

태양은 푸른 하늘에서 빛을 쏟아내고 있었고 투명한 유리창을 비추고는 회의 테이블까지 와서 기다랗게 삼각형의 명암을 드리우고 있었다.



                                                                                           47



현재 화성그룹의 명예회장은 대선에 출마하였다가 낙방을 하여서 현 정부로부터 심한 자금압박을 받아오고 있는 것을 태호는 알고 있었다.

사촌 형이 말할 때마다 가슴 아파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부의 압력에 어떻게 대항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다음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버티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그룹이 긴축정책을 해야 할 것이라고 사촌형들이 말했고, 큰아버지인 명예회장님도 인정하셨던 것이다.

이로인해 큰 아버지는 폭삭 늙어버렸고 라이벌 그룹인 대진그룹에게 선두자리를 빼앗겨 버렸던 것이다.
" M&A ( 기업 인수 및 합병 ) 라?"
태호는 생각했다.

ㅡ그래 이 서류를 화성그룹에 갖다주자 그러면 부실기업을 인수해서 은행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심각한 정부의 압박에서 해방될 수 있겠구나! 어차피 우리 한성그룹이 해낼 역량이 없는데 오히려 잘 되었군.

3개의 회사만 인수하면 약 2조원은 자금이 조달되겠다.

 

2조원을 조달하려면 정부가 눈을 밝히고 감시하고 있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그러려면 은행으로부터 3개 회사가 빛을 지고있는 4,500억원을

떠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군.
현 정부가 모르게 감쪽같이 서둘러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인맥을 총 동원하여 빨리 진행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ㅡ

 

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탁!하고 내리쳤다. 그러자 설희가 깜짝 놀란 토끼눈을 하고 들어왔다.
태호는 그런 설희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아냐, 아무것도."
태호는 설희에게 말했다. 그러자 설희는 허리를 약간 숙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논개의 세계는 뭘까?"
아무것도 씌여있지 않아서 어떤 실마리도 잡을 수가 없었다.
태호는 다음장을 넘겼다.
"떠오르는 대제국"
이렇게만 인쇄되어 있고 빈칸이었다. 마치 소설같은 이야기로군. 태호는 빙그레 웃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태호는 핸드폰으로 화성그룹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자, 이윽고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48


"네."
"형, 나예요."
화성그룹 회장 장태준은 태호의 목소리를 알아 듣고 물었다.
"웬일이야?"
"형,시간 있어요?"
"시간? 왜?"
추석 때 다모여서 차례를 지낸지 며칠 안돼서 갑자기 시간을 내라고 하니 태준은
궁금했다.
"일 문제로 형이 시간을 내야 할 것 같아서."
"무슨 일인데?"
"중요한 일이예요."
"언제?"
"형 시간 나는대로 오늘 중에"

장회장은 정부로부터 심한 자금압박으로 인하여 지금도 동분서주하고 다니며 은행장을 만나고 외국은행 지점장을 만나서 해외 펀드에 대해 상의하러 가는 중 이었다.
"태영이하고 얘기 해."
"그래도 형이 있어야 될 것 같아서."
"무슨일인데 꼭 나까지 있어야... 알았어. 이따 6시경에 회사로 와."
"알았어.형"
태호는 통화를 끝내고 핸드폰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화성그룹 부회장인 태영이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고 곧 태영이 형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형, 나야."
"그래,왜?"
"형하고 의논할 이야기가 있어서 조금 전에 큰 형하고 통화해서 저녁 6시에 내가
사무실로 가기로 했어."
"그래? 무슨 일인데!"
태영이는 궁금해서 물었다.
"아주 중요한 일이야."
"아주 중요한 일? 긴장된다. 말해 봐."


                                                                              49



"이따 얘기할테니 사무실에 있어야 돼."
"조금만 얘기해봐."
"음, 자금압박도 해소할 수 있고 엄청난 잠재력이 있는 사업을 발견했어."
"뭐야, 빨리 말해!"
"아, 맥주에 관한것이야 그리고 음료수도,"
"맥주? 그리고 음료수도!"
당혹하다는 듯이 태영은 말했다.
"이따 만나서 내 설명을 들으면 납득이 될거야"
"허, 참, 알았어."
태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인터폰을 통해 설희에게 말했다.
"결제는 특별한 것 외에는 내일로 미뤄라."
"알았습니다."

오준호는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서류를 갖다 준지가 벌써 한 달이 다 돼가는데 아무런 지시가 없어 도데체 어떻게 된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다행인 것은 매일 11시에 노크를 세 번을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 비서에게 인사를 하여도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고 앉으라는 말도 않았다.

 

준호는 할수없이 다시 나와 문 입구에서 지시를 기다렸다. 그녀도 부회장으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틀림이 없는데 왜 한달이 다 되로록 지시를 내리지 않는지 준호도 그녀도 궁금했다.


매일 와서 귀찮게 노크를 하고 찾아오는데도 출입금지 지시를 내리지 않는 것은 부회장이 어떤 생각이 있어서 일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벌써 경비를 부르고 출입을 통제할 것이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건데 준호가 노크를 하고서 문을 열면 서로 고개를 끄떡이는 것이 인사가 되어버렸고 그녀는 자기 일에 열중하는 것이었다.

준호가 서있던 관심을 젖혀둔채. 오히려 준호로서는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마음놓고 일개 영업사원이 30대 그룹 회장실을 출입할 수 있다는 것과 이 사실을 누가 납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도 준호는 담담한 마음으로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고르고 거울을 보고 있었다.
양복을 입고 마루를 지나려니 하숙집 아주머니가 준호를 불러 세웠다.
"총각, 오늘도 또 가나?"
"네, 가봐야지요. 매일 가다보면 회장이 지겨워서라도 어떤 지시를 내리지 않겠어요. 그럴때까지 가야지요 예의를 갗추고 말입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라야 말이지." 


                                                                                50


하숙집 아주머니는 걱정이 돼서 말했다.
"나도 지겹지만 회장실에 있는 비서 아가씨도 지겨워 빨리 어떤 지시를 받으려고
회장에게 재촉 할 겁니다."
준호는 말을 하면서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에 매여 있는 개는 반갑다는 듯이 낑낑대며 꼬리를 계속 흔들고 두발을 들어 준호에게 다가왔다.
준호는 가까이 가서 줄이 엉켜있는 것을 풀어주고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생각했다.

 

ㅡ 너가 평생 이렇게 줄에 묶여 일생을 이 좁은 공간에서 살아야 할 운명을 안고 태어난 것과 같이, 나고 어쩌면 내가 스스로 해야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벌려 내 스스로 운명에 족쇄를 채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큰 멍에를 짊어지고 주어진 환경을 딛고 입지의 길로 일어서는냐, 아니면 평생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살아 가야 하는지 나도 확신을 못하겠구나.

 

너는 일개 짐승이지만 나에게는 조상의 얼과 문화속에 성장해왔고 또 앞으로 계속 사명감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후손에게 보다 나은 금수강산과 풍요로움을 물려주어야 할 책임을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단다.
우리나라가 열강 선진국 대열에 진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 한단다.

매년 임금투쟁으로 외국기업들은 우리나라에 공장 설립을 피하고 동남아와 중국으로 가버리는데도 우리는 까다로운 규제를 풀지 않고 있단다.

우리 노조들은 자신들의 철밥그릇을 갖기 위해 치열한 임금투쟁을 하고 있는데 훗날 우리의 아들 딸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중국으로 찾아가야 하는 슬픈 일이 생기는 줄도 모른단다.

 

저렇게 일을 하지 않고 파업을 일삼고 있으니 얼마나 걱정이 되겠니? 너는 동물이니까 모르지. 주인이 밥만 제때에 가져자 주면 되겠지만. 우리 인간은 특히 강대국 틈에 끼여 있는 우리나라는 앞으로 갈길이 멀고 험한데 정부는 속수무책이란다. ㅡ

준호가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개는 마냥 좋아서 낑낑거리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준호는 한숨을 쉬고 일어섰다. 오늘따라 왜 이런 상념이 드는 것일까.
추석에도 하숙방에서 깡소주를 먹고 골아 떨어져 성묘도, 형님 집에도 가지 못했다.
이 시간에도 준호는 어김없이 두 손을 양복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초동 한성그룹
부회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좌석버스는 시내를 빠져나와 한남대교를 건널 때, 하류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햇빛은 물결을 반사시키고 있었고. 다리를 건너는 차량들은 창문을 가리고 있었다. 버스는 강남으로 진입하고 있었고 쭉 뻗은 강남대로에는 많은 차들로 붐비고 있었다. 저 멀리 한성그룹 사옥이 눈에 띠었다. 준호는 우면산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랜저가 사옥에서 나올 때마다 준호는 부회장이 탔을까 하고 바라보지만 차 유리는 검은 선팅이 입혀져 차 안을 볼 수가 없었다.
경비도 이상한 듯이 준호를 바라보지만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다.
그 전에는 매일 드나드니까 어디가냐고 묻기에 준호는 부회장실에 간다고 말했다.
마치 친구라도 되는 듯이 ...

경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 할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위로부터 어떤 지시가 내려오지도 않고 방문하는 사람은 마치 돈 이라도 받으러 오는 것처럼 당당하기에 선뜻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는 것을 더욱 이상할 것이었다.

국내 최대그룹의 사촌 간인 30대그룹의 부회장을 만나러 온다는 사람이 차도 없이 걸어서 오는 것이 더욱 이상 할 것이라고 준호는 생각하면서 엘리베이터에 오랐다.
8층에 도착하는 벨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준호는 내려 왼쪽으로 바로 꺽여 부회장실로 뚜벅 뚜벅 걸어갔다.



                                                                                 51



근무시간이라 실내는 정적이 감돌았으며 먼지를 찾아볼 수 없이 잘 닦인 바닥 타일은 천정에서 비추는 불빛에 반사되고 있었다.
준호는 자신이 복도를 뚜벅뚜벅 걷는 구두소리가 정적을 깨뜨린다고 생각했다.

매일 걸어가는 복도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렸다. 한달전 쯤 서류를 놓고 올 때는 사실 가슴이 두근거려 마음을 편안히 걷지 못했는데, 이제는 습관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았다.

 

걸어가면서 생각나는 것은, 한성그룹 부회장은 부모를 잘 만나 사회적 지위를 노력없이 얻어 누리고 있다고 자위했지만, 현실로 돌아와서 생각하면 자신과의 위치를 비교해보면 자신은 그 근처에도 얼씬거릴 수 있는 신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준호는 아무런 표시도 없는 철문에 와서 오른손으로 노크를 했다.
철문이기에 안에서 뭐라 말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방음이 잘되어 있는 탓이었다. 준호는 평소처럼 문을 밀고 들어갔다. 설희는 노크소리가 정확하게 똑똑똑 하고 세 번 울리면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피식! 하고 웃으며 문에 일별하고는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준호가 와서 노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시계를 보면 정확히 11시였다. 마치 몇분 전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들어오는 것처럼 여겨져 한 번은 문을 열고 미리 와서 정확히 11시 되면 노크하는 것인가를 확인하려고 문을 열고 복도를 바라본 적이 있었다.

설희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이상하다고 여겨졌다.
그리고는 실없이 웃었다. 왜 자기가 준호가 오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문을 열고 내다 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마술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그 시간만 되면 괜히 기다려지고 노크 소리가 나나 문을 주시하기도 했다.

 

준호가 들어오면 설희는 내색을 하지 않고 한번 보고는 관심 없다는 듯이 책상 위로 시선을 돌렸다.
준호는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언제나 먼저 아는 체를 했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올 때마다 바뀌는 것을 보고 설희는 오늘은 어떤 넥타이를 맸을까 하고 속으로 궁금해졌다.

 
준호는 평소처럼 들어와서는 말이없이 문 옆에 서 있다. 설희는 앉으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부회장님으로부터 어떤 지시가 없기 때문이었다. 준호는 들어와서 먼저 부회장이 있는가 궁금해서 문을 보았다. 오늘은 문이 열려 있었다.

준호는 마음이 설레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밀린 방세가 해결될 수 있을까. 오직 그 생각만 들었다.

안에서는 무엇을 하는지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붉은 카페트는 더욱 조심스럽게 말하게 했다.

정적이 넓은 공간을 숨막힐 듯이 누르고 있어 준호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갑자가 맥박이 빨라짐을 느꼈다.

과연 어떤 지시가 내려질 것인가. 준호는 머리 속에서 윙하는 소리가 나는 것을 느꼈다. 극도의 긴장과 흥분 때문이었다.

 

준호는 설희의 얼굴을 보았지만 어떤 변화도 읽을 수가 없었다. 평소처럼 FM 라디오를 틀어놓고 있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꺼놓고 있다. 음악은 혼자 있을 때만 틀어 놓는다.
음악을 조그맣게 틀어놓고 있어도 매일 이시간에 들어야 하는 준호로서는 숨이 막히는데 갑자기 음악이 나오지 않으니 준호는 압박감과 동시에 긴장감을 느끼게 되었다.

태호도 노크소리가 정확히 똑같은 간격으로 세 번 울리는 것을 보고 준호가 온 것을 알았다.

 

자기도 모르게 벽에 걸린 시계로 눈이 갔다. 태호는 웃음을 입가에 흘리고 벽에 걸린 그림으로 시선을

돌렸다.
설희 말대로 정확히 11시에 온다고 해서 시계를 보니 11시였다.
ㅡ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진다. ㅡ
설희는 태호의 지시를 기다리다가 아무런 지시가 없자 안으로 들어갔다.
"부회장님, 그 사람이 왔는데 어떻할까요?"


                                                                                52



설희는 지시가 내려질까하고 서서 기다렸다.
"들어오라고 해!"
태호는 조그맣게 말했다. 언제까지나 매일 찾아오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개발을 끝내고 세계 선진국 시장에 진출할 때까지는 무슨일이 있더라도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희는 태호의 지시에 일순 당황했다.
"네? 들어오라고요.알겠습니다."


설희는 반문하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나서 몸을 돌려서 비서실로 가서 자신도 모르게 상기된 표정으로 준호에게 말했다.
"들어가 보세요."
준호는 오늘도 이대로 하루 일과가 끝나가는구나 하고 체념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서려는데 설희가 부회장실로 들어가라고 하니 순간 자신이 잘못들은 것같아 머뭇거리자 설희가 다시 말했다.
"회장님이 들어오시랍니다."
"네!"

 
준호는 대답하고 부회장실로 들어갔다. 짧은 거리지만 한참 걸린 것 같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부회장실로 들어갔다. 붉은 카페트는 준호의 몸무게를 푹신하게 받쳐주는 듯했다. 준호가 들어가자 기다란 회의용 테이블 사이로 의자가 열 개정도 좌우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띠었다.

 

 유리창에서는 햇빛이 투명한 유리를 뚫고 들어와 붉은 카페트가 자주색이 아닌 붉은 색임을 알게 했다. 태호는 준호가 들어와서 옆에 서자 조그맣게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앉아요."
준호는 태호가 무슨 말을 한 것 같았는데 알아듣지 못했지만 중앙에 앉아있는 태호의 옆 가죽의자에 등을 곧바로 세우고 앉았다.

두 사람의 운명의 첫 대면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훗날 두 사람 모두가 자신들의 첫 만남이 비극적인 만남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으리라.
운명의 여신은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오랜 시간을 준비한 듯했다.

"어디에 근무한다고 했어요?"
태호는 모르는 척 물었다.
준호는 설희에게 모든 것을 다 말했는데 다시 질문을 들으니 속으로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네, 영업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왜 이런 것을 작성했어요?"
"네, 전무님과 본부장님이 기획을 하라고 해서 3년 동안 매달렸습니다."
"3년을?"
태호는 처음 듣는다는 듯이 물었다.
"네, 3년이 좀 더 걸렸습니다."


                                                                          53


"이걸 작성하는데 3년이나?"
태호는 말 끝을 흐렸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완성을 못했습니다."
태호는 듣고는 묵묵히 앉아 있었다.
"경비가 바닥이 나서 그리고 더 이상 은행 빛을 얻어 쓸 수가 없어서 중단했습니다."


준호는 호소하는 듯한 어조로 하소연 하듯이 말했다.
뜻밖의 말에 태호는 톤을 높이며 반문했다.
"은행 빚?"
"네, 제가 가지고 있던 돈이 다 떨어져서 은행 돈을 쓰게 되었습니다. 전무님이 나중에 부회장님께서 다 지불해 주실 것이라고 말해서 기획을 하게 되었습니다."
준호는 태호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어떤 사람인지 베일에 가려 있던 얼굴을 직접 가까이서 보니 태호의 얼굴을 본 순간 준호는 자신의 뇌에 태호의 얼굴이 각인되는 것을 느꼈다.

"전무가 시켰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행으로부터 날아온 독촉장입니다."
준호는 말하고서 양복 속에서 독촉장을 꺼내서 펼쳐서 테이블 위에 놓았다.
태호는 집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내려 놓았다.
"그래, 내 알아보지. 가봐요."

 
준호는 마케팅 서류에 대하여 브리핑을 하려는데 설희가 들어와서 준호가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준호는 할 수 없이 일어나면서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다.
원망스런 눈길을 준호가 보내자 설희는 말했다.
"부회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된거예요. 어떤 지시가 회사로 내려갈거니 가서 기다리고 이젠 여기 오지 마세요."
설희는 준호에게 말했다.
준호는 무언가 더 말하려다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설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문을 열고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준호는 웬지 상쾌함을 느끼고 마치 사법시험 이라도 합격한 기분으로 뱅뱅사거리를 걸어서 강남역의 커피숍에 앉아서 생각했다.
ㅡ 이제 근심걱정은 날라 갔겠지? 부회장이 서류를 읽었다면 반드시 새모델 이라고 크게 인쇄한 것을

보았을까. 걱정했지만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안심이 되었다.

아리아스 아그리빠 비너스 줄리아의 석고 모델을 보면 분명 기절초풍하고도 남을 걸. ㅡ
준호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분이 유쾌해짐을 느꼈다.

 

                                                                               54


영남이 엄마는 부지런히 서초동과 고여사 집을 오고 가고 있었다.
현철의 형수로부터 부탁을 받은 영남이 엄마는 고여사에게 진경이를 현철과 함께 제주도여행을다녀오게 하려고 고여사 집에서 수다를 떨고 일어나는 것이 하루일과였다.

"고여사님, 요즘 제주도에 신혼부부가 아주 많대요."
"그렇겠죠."
고여사는 말하고 영남이 엄마를 쳐다 보았다.
"진경씨를 제주도에 다녀오게 하는게 어떨까요?"
"제주도에요?"
"네, 제주도요"
영남이 엄마는 이미 고여사의 마음을 아는지라 머뭇거리지 않고 말했다.

"결혼한 커플들은 물론이고 약혼을 하기도 전에 연인들이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는 것은 이제는 하나의 관례처럼 되어버렸어요.

연인들이 팔장을 끼고 쌍쌍이 다니는 것을 봐야 진경씨도 빨리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어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고여사는 납득하였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니까 빨리 진경씨를 제주도에 보내세요."
영남이 엄마는 착! 달라붙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약혼도 하지 않고 어떻게 여행을 보내요? 둘이 만나서 교재를 하고 있다면 모를까."
 
고여사는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어머, 고여사님. 제가 언제 신혼여행을 보내라고 했나요? 단지 바람을 쏘이라고 하는 거예요."
고여사는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경이가 가려고 할까?"
고여사는 자신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고여사님께서 설득을 시켜야지요."
"이따가 들어오면 말해볼께요."

고여사는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영남이 엄마는 벽에 걸린 사진을 보며 말했다.
"아휴, 이제 저 어른께서도 마음을 푹 놓으시겠어요."
고여사는 영남이 엄마가 벽에 걸린 사진을 가리키면서 말하자 사진을 보며 말했다.

"그렇겠지요. 자식이 다 성장해서 혼사가 들어오는데 기쁘지 않을려고?"
고여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며 물끄러미 남편의 사진을 올려다 보았다. 영남이 엄마는 수다를 좀 더 떨고는 자리를 일어났다.
"이제 아드님만 장가를 보내면 고여사님께서는 부러울 것이 없겠어요."



                                                                                 55



"경일이는 고시를 패스하고 나야 뭐 장가를 들이던가 해야지 아직은 뭐."
고여사는 아들이 판,검사가 되고 나면 그 때 훌륭한 며느리 감을 맞이하려고 염두에 둔 듯했다.
"그럼요, 사법고시만 패스하면 신부감이 줄을 서게끔 제가 나서서 중매서지요. 아무런 걱정 할 것 없어요. 제가 마치 줄줄이 새끼로 묶어 논 조기처럼 줄을 여기서부터 대문 밖에까지 서있게 하지요."
고여사는 흐뭇해하며 웃으면서 영남이 엄마를 대문 밖으로 마중을 나갔다.
"고여사님, 그러기 위해서는 진경이를 빨리 시집을 보내서 경일씨 고시공부 뒷바라지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영남이 엄마는 고여사를 재촉하듯이 말하고 대문을 나섰다.
영남이 엄마를 보내고 나서 고여사는 벽에 걸린 남편의 사진을 내려놓고 먼지를 닦았다.

 
30대의 사진은 세월이 많이도 흘렀건만 볼 때마다 조금도 퇴색하지 않고 젊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고여사는 사진을 보면서 남편에게 원망스런 눈길을 보낸다.
숱한 세월을 눈물과 한숨으로 보내기를 어언 이십년이 다 되가고 자신은 어느새 염색을 하지않고서는 외출하기가 거북할 만큼 늙어버렸건만, 그래서 사진을 볼 때마다 지나온 날들이 서러워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었다.

숱한 세월동안 얼마나 그랬을까, 잠을 자다가 옆이 허전해서 손을 어둠속에서 저어 볼 때면 그 때마다 허공을 저을 때 마음은 이루말할 수가 없이 슬픔속에서 흐느껴 울어야만 했다.

어둠은 서러움을 더욱 느끼게 하였고 늘 따뜻하게만 느껴졌던 남편이 땅 속에 있을 것을 생각하면 눈물을 샘솟듯이 나왔던 것이다.

 

저녁에 잠자리에라도 들어갈 때 차거운 이불이 피부에 닿을라지면 남편의 뜨거운 숨결과 몸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은 차디찬 땅속에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날 때마다 혼자 살아가는 여자의 슬픔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럴때면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회의가 자연히 생겼고 인생은 정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 물음이 생겼다.

그래서 혼자서 남편의 사진을 볼 때면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살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사색에 잠길 때가 있었다.
자식들만 아니었다면 훌훌 털고 새처럼 날아가듯이 자유롭게 살아갈텐데...하고 생각해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독수공방이 괴로워 재혼을 하라고 주위에서 그리고 시댁에서도 말하지만 차마 그러지를 못하였다.

다정했던 연애시절을 생각하면 남편의 얼굴이 떠 올라서 도저히 그럴수가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면 안경을 쓰고 남자의 팔을 잡고 지팡이를 짚고 동냥을 하는 장님부부를 보고는 때로는 부러움을 느꼈다.

 

명동성당에 가다보면 두 다리가 절단이 되고 나서도 살겠다고 찬송가를 틀고 한푼 두푼을 받아서 연명해가는 이들을 볼 때면 자신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자위하게 되었다.

독수공방의 고통, 생활의 부족함에서 나오는 괴로움, 아빠없이 자라야하는 아이들의 서러움을 지켜보아야 하는 서글픔등은 직접적이 아닌 간접적인 고통이라는 것을 깨닫곤 했다.



                                                                          56




고여사는 문득 사진을 보며 상상했다.
ㅡ 남편은 만일 내가 먼저 죽었다면 어땠을까?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재혼을 하지않고 기나긴 밤을

 홀로이 외로움과 슬픔속에 젖어 살아갈 수가 있을까?
어떻게 아이들 빨래를 하고 방청소를 하며 밥은 또 어떻게 먹일 수가 있는 것일까?

 
학교 갈 준비를 어떻게 해주고 아이들이 울면 과연 달랠 수가 있을까?
자기가 살아서 고통을 받고 사는 것이 훨씬 나았다고 여겨졌다. ㅡ
고여사는 한숨을 내쉬고는 사진을 벽에 다시 걸어놓고 부엌으로 갔다.

영남이 아버지는 현철이네 집에서 소작인을 하던 인부였다. 강남이 개발되기 전에 논과 밭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현철이네로부터 논과 밭을 임대하여 일년 농사를 지어 현철이네에게 김장배추와 쌀을 바치고 하며 생활해 왔던 것이다.

 

농사가 안되서 배추와 쌀을 수확을 못했을 때 현철이 아버지는 그 삯을 탕감해주어 영남이 아버지는 은혜를 잊지 못하고 있었고 자신의 동생과 아들들에게도 이 은혜를 잊어서는 안되고 갚아야 한다고 늘 말했던 것이다.

영남이 엄마는 그 사실을 시집와서야 알게 되었으나 현철이네가 워낙 돈이 많아 영남이 아버지의 뜻을 동의하고 현철이 집 근처에 살면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현철이 아버지가 생전에 가게를 하나 얻어주어 슈퍼를 하고 있으며 최근에 서초동 근처에 아파트를 하나 사는 바람에 돈이 궁색하여 현철이네로부터 빚을 얻어쓰고 있었으며 이번 혼사를 성사시키면 이자돈을 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놓고 있었다.

 

빚 때문에 갚을 길이 막연하여 궁리를 한 것이 이웃에 사는 진경이를 현철이에게 중매를 주선함으로서 빚을 해결하려고 갖은 호들갑과 수다를 다 떨어서 맞선까지 보게 할 수가 있게 되었던 것이다.

영남이 아버지한테는 군대 갖다온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 광수가 있었는데 대학을 졸업하여 굴지의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었다.

대학시절에는 학생회에서 활동도 하였고 비교적 학점도 우수한 점수로 졸업하여 대기업에 취직을 해놓고 군대 갖다와서 바로 취직하여 무역부에 근무하고 있었다.

광수는 형이 강원도 평창에 있는 현철이네 선산지기로 가서 살다시피 하는 것을 늘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형은 스스로 자원해서 현철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은혜를 그자식들에게라도 갚으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그어른이 집을 건축해서 아파트 한 채를 분양받은 것이며 그분이 선산을 샀을 때 스스로 관리인이 되겠다고 하였고 일주일에 5일은 강원도 평창에 가서 산을 지키는 것이었다.

광수는 이제 그만 그 틀에서 벗어나라고 그렇게 말해도 형은 "사람은 순리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야. 그 순리를 거역하면 곧 불행이 다가온다" 라고 말하시며 명절 때가 되면 동생을 데리고 주인 선산으로 가서 산지기로서 필요한 것을 광수에게도 가르치지만 광수는 한 귀로 듣고 그냥 흘러 듣을 뿐 이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산지기 노릇을 하느냐고 형과 형수에게 따지지만 현철이네로부터 돈을 얻어쓰고 또 가게까지 받고 있어 동생의 말을 듣지않고 있었다.
한 번은 형과 함께 추석을 맞아 미리 내려가 차례를 지낼 준비를 하고 있는데 현철이가 "머슴아!"하고 부르는 것에 화가나서 " 방금 뭐라 했어요!" 하고 대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후부터 현철은 광수를 쾌심한 놈이라 생각하고 언젠가는 혼을 내주려고 벼르고 있었다.


                                                                           57


가뜩이나 하인같이 막 부리는 놈이 명문대학을 들어갈 때부터 심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광수가

대드는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마음속에 분노가 끓게 되었다.
"머슴같은 새끼가! 감히 대들어. 집도 주고 슈퍼도 하게끔 차려 주었는데." 라고 말하고는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댔다.

진경은 엄마로부터 현철이네에서 만날 장소를 알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이대 앞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겠다고 영남이 엄마한테 전했지만 현철은 형의 말대로 호텔 신라에서 만나는게 어떻냐는

 제의를 해놓고 있었다.

진경은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는게 불편했지만 학교 앞 카페는 주차 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엄마의

 설득에 못이겨 할 수 없이 약속을 정하고 당일로 머리도 식힐 겸 제주도에도 다녀오라는 엄마의 간곡한 설득에 날짜를 승낙하고 말았다.
진경은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가 화장을 조금이라도 하라는 성화에 못이겨 살짝 머리만 대충 만지고

집을 나서 택시를 탔다.

장위동의 북적이는 도로를 택시는 잘도 빠져나가 고대앞을 지나면서 자신이 고대를 지원할까 하고

생각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고풍스런 정경대 건물을 창밖으로 바라보았다.

해는 벌써 하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었으며 정경대의 고풍스런 시계탑 건물의 시계 바늘을 비추고

 있었고 시계탑의 시계는 10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ㅡ 명숙이와 정희 말대로 졸업하기 전에 약혼을 해야하나? ㅡ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고 진경은 어느새 자신이 졸업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남산타워가 눈에 들어오고 호텔 신라의 높이 솟은 건물이 바로 앞에 다가왔다.

택시는 호텔 정문에 멈추었다.
진경이 내리자 택시는, 기다리고 있던 손님을 태우고 붕하고 떠났다. 진경은 안으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커피숍으로 가자 현철은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진경씨."

감색 양복을 입은 현철은 줄이 옆으로 나있는 넥타이를 매고 만족한 미소를 입가에 띠우고 있었다.

진경이 다가가자 현철은 일어나서 반갑게 맞이했다. 진경도 따라 인사하고 현철이가 안내하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주문받으러 종업원이 오자 현철은 진경에게 말했다.
"진경씨, 뭐로 들겠습니까?"
"커피로 마시겠어요."
현철은 종업원에게 커피 두 잔을 시키고 말했다.
"지난번에 집까지 태워드리려고 했는데 ..."
현철은 아쉽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괜찮아요. 힘드시게 굳이 그러실 것 까지는 없어요. 도로가 복잡해서요."
종업원이 쟁반에 차를 가지고 테이블에 내려놓고 갔다.
"마셔요. 진경씨!"
현철이 말하자 진경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찻잔을 가져가 마셨다.


                                                                             58

 


 

잠시 대화가 중단된 사이에 외국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커피솝에서 대화하는 외국어까지도 집어 삼키고 있었다.
"차를 산지가 얼마 안되서 주차하기 쉬운 아니 편리한 곳에서 담소하고 싶어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고 싶었습니다.

 

ㅡ 이러면 됐겠지? 그러면 지난번 워커힐에 갔던 기억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구름을 탄 것같은 BMW를

떠올리겠지. ㅡ
현철은 형이 일러준대로 말했다.
"그렇지요. 학교 근처에는 차를 주차하기가 힘들어요. 또 긁힐 염려도
있어요."
진경은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말했다.


 

"제주도에 가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현철은 말하고서 진경의 눈치를 살폈다.
"뭐 그냥 바람쐬러 가는건데요."
"제주도에는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죠. 중국인과 일본인들이 많이 오는 것 같아요. 저는 가끔 싱싱한 회를 먹으러 가서 머리도 식힐겸 다녀오는데 주말엔
비행기 좌석을 구하지 못할 때가 있어서 하루를 더 묵을 경우도 있었지요."
"호텔에서 묵으셨겠지요?"
"네, 늘 호텔 신라에서 머물지요."
"좋으시겠어요. 제주의 경치가 눈에 선해요. 저도 작년에 친구들과 제주도 갔다 왔는데 물이 파란색이죠"
진경은 대답했다.
"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가지요."
현철은 고개를 앞으로 약간 숙이며 겸손의 표시를 했다.

ㅡ 음, 이때쯤에 프랑스 화제를 꺼내라고 했지. ㅡ
현철은 형이 가르쳐 준 것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프랑스에서는 특히 파리에는 애견문제로 심각하다고 합니다."
"어머, 왜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견을 갖게된 것은 프랑스와 영국의 영향이 많지요.
관광을 다녀와서는 그들이 강아지를 분장한 것을 보고 따라하게 된 것입니다.

 

또 유학생활을 하면서 세계의 명문대생들과 어울리려고 부단히 노력하다보니 그들의 문화에 완전히 빠져버려 한국에 들어와서는 유학을 다녀온 것을 자랑하고, 향수에 젖어 애견을 키우다보니 자연히 이웃과 친지와 친구들에게 홍보가 되어 너도나도 한번 키워보자 하는 붐이 불어서 이제는 보약을 먹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죠."
진경은 새삼스레 현철을 바라보았다.


                                                                               59


현철은 습관처럼 일어나서 "잠시" 말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을 들여다 보고 형이 말한 것을 생각했다.
ㅡ 내가 너 사진을 가지고 여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100 명이 다 너의 첫 인상에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는데, 반드시 여자들이 생각하는 너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지식을 추월해야 할 필요가 있어, 그래야 여자들은 경의심으로 대할려고 할꺼야. 경륜이 넘치는 듯한, 학자같은 기이한 사람들이 풍기는 느낌을 심어 주어야 하는거야, 알았지? ㅡ
거울을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현철은 자신이 정말 입이 크다고 여겨졌다. 어려서 자라면서 친구녀석들이 "메기야~ " 하고 부른 이유가 있다고 느껴졌다.
"형은 입이 작은데 나는 왜 이렇게 입이 클까?" 하고 중얼거리면서 거울을 보았다.


 

넥타이를 다시 만지고는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읽었다.
현철은 화장실을 나와서 커피숍으로 향했다.
현철이 자리에 돌아오자 선경은 자세를 바르게 했다.
"실례했습니다."
"진경씨도 개를 좋아 합니까?"
"그렇지는 않지만 외국개는 우리나라 개처럼 크지 않으니 방에서도 키울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개를 좋아하지만 아직 방안에서 키워보지 않았습니다만, 외국 애견처럼 작은 녀석은 키우고 싶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애견들의 뒤처리가 문제가 되는군요. 외국에서 말이지요. 런던의 명물이 안개와 흐린 날씨 그리고 바바리 코트라면 파리는 어쩌면 에펠탑이 아닌 개똥이나 오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 왜요?"
진경은 뜻밖이라는 듯이 물었다.

"파리시내에는 자그만치 20만 마리 개들이 매일 배설을 해서 사람이 지나다 미끄러 져서 부상당하는 사고가 매년 600여 건이 되어 이미 외국 관광객들에게 조롱거리 가 된지가 이미 오래라는군요. 매일 16톤이나 되는 애견의 배설물이 파리시내에 쏟아진다나요.

 

결국 파리시청에서는 개똥을 즉각 처리하지 않는 시민에게는 벌금을 부과하지만 시정이 되지않고 있어 될 때까지 벌금을 계속 올리기로 방침을 정했답니다."
"그렇군요. 예술의 나라 파리에도 그런 골치거리가 있었군요."

"파리시민들은 또 개들이 물똥을 싸면 어떻게 하냐고 따지는데 그걸 어떻게 치우냐 고 내 개가 싼 똥인지 그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DNA 조사를 요구하겠다고 하자, 파리시장은 앞으로 개똥이 캐비어 보다도 더 비싸질 것 이라고 말했는데 과연 그렇게 될지 프랑스 국민들이 선진 국민인가를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60


"캐비어요?"
"네, 상어 알 말입니다."
"상어 알이 그렇게 비싼가요?"
"비싸지요. 아마 국내에서는 몇몇 호텔에서만 취급할 것입니다.
그것도 항상 있는게 아니지요. 그리고 상어 지느러미 요리가 또 일품이라고 합니다."
"상어 지느러미요?"
"그런 요리가 있다더군요."
"별 요리가 다 있군요."

"왜 또 있지않습니까?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원숭이 골을 손님에게 특별히 대접하는 요리라고..."
"아으, 징그러워라."
진경은 징그러운 표정을 짓고 고개를 내저었다. 
진경도 영화를 보면서 놀라서 소리를 낸 적이 생각났다.
"진경씨는 실례지만 번데기를 먹어 봤습니까?"

"네, 어렸을 때부터 먹기 시작했어요."
"국민학교 2학년 때 였던가 저녁에 잠자리에 들 무렵 오빠가 맛있는 것 있다고 해서 밖에 나갔더니 눈을 감고 입을 아! 하고 하라고 했더니 오빠가 뭔가를 넣어주고는 먹으라고 해서 먹었더니 고소한 맛이 나서 그 때부터 번데기를 먹을 수가 있었는데 낮에 먹을려니 얼마나 징그러운지 ...

그래서 먹을 수 있게 되었죠."


 

"바로 그겁니다. 선입관 이라는 것이. 사람은 누구나 겉을 보고는 그 사람을 어느 정도 평가 하는데 그것은 아주 잘 못된 습관이지요."
현철은 강조 하듯이 힘주어 말했다.
"맞아요, 보편적으로 그런 것 같아요."

"원효대사가 당나라로 유학을 가는 도중에 도를 크게 깨우친 일화가 있죠.
하루는 어두어져서 동굴에서 자는데 잠을 자다가 갈증이 나서 물을 찾다가 동굴속을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그릇이 없나 하고 찾다가 뭔가 어둠속에서
그릇을 찾고는 물을 떠서 아주 맛있게 마시고는 아침에 또 마시려고 그 장소에 가서 그릇을 찾으려고

보니 해골이 있어 어제 먹은 물이 생각나 왝! 하고 토하려고 하다가 깨우친 바가 있어 무릎을 탁! 치고는

당나라 유학을 그만 두고는 도를 연구하였다는 설이 바로 선입관이죠.
모든 생각은 고정관념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61


진경은 막히지 않고 끓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화제에 완전히 압도당하여 할 말을 잊고 현철의

 큰입을 보면서 나오는 말을 듣고 생각했다.
ㅡ 어쩜 저렇게 아는 것이 많을까?" ㅡ
"원효의 사상은 개혁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그 속에서 진리를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참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는 원효의 굳센 사상을 우리는 엿볼수가 있는 것이죠."

 

"불교를 믿으시나보죠."
"아닙니다. 단지 알고있는 지식을 말하는 것 뿐입니다."
"대단하군요."
진경은 감탄한 듯이 말했다.
"결국에는 원효는 공주와 사랑을 하는 파행을 하기에까지 이르렀고 참다운 진리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깨닫기 위해서는 어떠한 파행도 서슴치 않았죠.


그리고는 다시 파행을 거듭하자 당시 원효를 배척하는 운동까지 일어났지만 워낙 뚜렸한 개혁적인 사상을 제자들에게 심어주었던 관계로 많은 제자가 있었읍니다.

 지금 '분황사'에는 원효의 초상 만이 남겨져 있으나 모든 허례허식을 타파하고 그 속에서 진실된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우친 일종의 선각자 라고 할 수가 있지요.

 

모든 불교 제자들이 원효를 헐뜯었지만 그래도 내심으로는 그의 사상과 실천력에 공감을 하고 있었고

내색을 하지 않았을 따름이라는 것이지요."
"불교에 대하여 관심이 많으신가봐요?"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침략으로부터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 도달했을 때 승병들이
 전국 사찰 곳곳에서 피를 흘리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역사적 사실을 누구도 외면해서는 안될 것 입니다.

아쉽게도 요즈음 재산에 얽힌 권리 싸움에 혈안을 올리고 벤츠,BMW 같은 호화로운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사치를 추구하는 승려들이 눈에 띠지만, 직접 이러한 사실을 매스콤을 통하여 가끔

 접하고 있습니다만,

그러한 승려보다도 석가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행하는 스님이 더 많기에 또다시 우리나라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수수방관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현철의 설명을 들으면서 진경은 현철의 커다란 입과 우락부락하고 위엄있는 얼굴이 순간 어느 외국대학의 총장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ㅡ 설명을 하고 상대의 표정을 보고 판단해야 돼. 너에 대한 고정관념이 어느정도 깨어져 있는 가를.

경륜이 깊다는 인식을 꼭 심어주어야만 해. ㅡ

형이 말한것을 염두에 두고 현철은 진경의 표정을 슬쩍 훔쳐보았다.
ㅡ 어느정도 고정관념이 깨진 것 같은데... ㅡ
진경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컵을 입에 가져가 목을 적셨다.


                                                                                  62


현철은 어느정도 되었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진경씨, 바람쐬러 드라이브 가시겠습니까?"
진경은 현철의 제안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진경과 현철은 호탤현관에 멈추어 벨맨이 차를 가져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후 돼지코 모양의 공기 흡입구인 키드니 그릴을 상징하고 있는 BMW가 호텔 정문 앞에 섰다.
사이버 스타일의 헤드라이트와 매끄러운 지붕선, 아기자기한 5시리즈는 뒷면까지 날렵한 한 마리 새처럼 보여졌다.

아마 설계할 때 고속으로 질주할 때 받는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자연적으로 태어난 새처럼 디자인을 했을 것이라고 진경은 생각했다.

현철은 진경이 조수석에 타자 차를 몰고 나갔다.
ㅡ 차의 성능에 매료를 느끼게 해 주어야지. ㅡ
현철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남산타워로 방향을 잡았다.
"차가 신형이라 기존 차의 구조와 조금 다르죠. 변속기와 주차브레이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널찍한 팔걸이와 조그다이얼이 설치되어 있죠. 이게 바로 변속기입니다."

 

현철은 운전대 오른쪽 상단에 튀어나온 레버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 버튼은 전자화된 승용차 최초의 6단 자동 변속기입니다. 그리고 이 대시 중앙보드에 설치된 액정화면은 네비게이션,전화, 무선 인터넷등 70여가지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기술과 과학은 하루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죠. 숱한 세월을 연구와 노력을 부단히 하여야지만 즉, 日日新, 매일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일에 임하여야지만이 선진국 기술을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현철은 남산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차를 사기전에 외어두었던 구조를 설명하고 득의만만한 미소를지었다.
"신형이라 그렇겠지요."
진경이 대답하자, 현철은 눈에 힘을 주고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맞습니다. 신형만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BMW는 남산타워를 향하여 가파른 언덕을 힘들이지 않고 올라갔다.
험난한 도로를 따라 오르는데 힘이 조금도 부족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커브로 되어있는 언덕도 조금도 쏠리는 경향도 느낄 수가 없이 시원하게 잘 나가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힘차고 부드러운 엔진소리가 조수석으로 전해져오고 승차감은 이루 말 할수 없이 좋았다.
"새로 개선한 흡기와 배기장치 및 밸브매커니즘이 기존 엔진보다 출력을 14% 높였답니다."
"네, 그렇군요."



                                                                             63



"이 차는 정말 몸에 착! 달라붙는 양복을 맞춰 입은 느낌이죠."
현철이 어감을 강조하며 말하자 진경도 스스럼 없이 현철을 보며 웃었다.
"표현을 아주 재미나게 하시는군요. 자동차를 몸에 입는 양복으로 비교하시니."

"정말 이 차처럼 강한 심장과 균형을 갖춘 차는 BMW 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자 장점중에 하나이죠."
현철은 강조하듯이 조금 힘있게 말했다.
"최고제한 시속이 250km/h 으로 계기판에 나와있지만 300km 까지는 거뜬히 속도를 낼 수가 있지요.

 

또 제로백 즉,100m 도달하는데 불과 6초 밖에 걸리지 않아요. 얼마나 다이내믹하고 성능과 디자인이

 완벽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스포츠카가 아닌데도 말이지요."

현철은 자신이 타고있는 차가 어떤 차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듯이 성능을 덧붙여 말했다. 마침내 남산에 오른 현철은 차를 주차시켜 놓고는 선경에게 타워에 오르자고 말하자 진경은 고개를 끄떡였다.
타워는 천천히 회전을 하고있었다.

 

두 사람은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서 다정하게 대화를 주고 받았다.
"전망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어요."
"네, 날씨가 무척 좋아서 시야가 탁 트여 그만이군요."
현철은 대답했다.
"에펠탑은 어땠어요?"
진경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좋지요. 세워진지 100 년이 지났지만 단 한건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을 만큼 안전관리를 완벽하게 한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TV송신탑도 겸하고 하여 아주 선명하게 파리시민들은 시청을 할 수가 있죠.
파리에서 가장 전망좋은 곳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어요."

"야경은 더욱 화려하고 아름답겠어요."
"그렇죠. 파리를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구조물로 만국박람회장을 기념하기 위해 귀스따브 에펠이 건축했는데 19세기 최후의 가장 위대한 구조물로 인정받고 있지만 당시 프랑스 지식인들은 흉물스런 고철더미라고 비난이 심했대요."

"그랬군요. 저도 불문학을 전공했지만 그렇게까지 상세하게 알지 못하는데
어쩜 그렇게 저보다 많이 알고 계시니 제가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별말씀을. 진경씨는 프랑스 문학을 번역하기 위해 공부에 열중하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그야 그렇지만."

진경은 말끝을 흐리고 저무는 해를 보고 있었다.

태양은 서쪽으로 기울어져 푸르스름한 하늘을 잿빛 노을로 불태우고 있었으며 구름은 가늘게 층층이

엷게 늘어져 기울어가는 해를 가리고 있었다. 빨갛게 달아오르는 구름과 대조적으로 뒤에는 회색구름이 산등성이로 넘어가는 태양의 빛을 받아 회색과 빨간 색을 함께 나타내고 있었다.



                                                                           64

현철은 기분이 무척 좋았다. 진경이 대화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웃으면서 부지런히 형이 말한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ㅡ 여자와 서로 대화를 할 때 말을 받아주면 어느정도 공감대가 형성 되었다는 건데 특히 선을 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어느정도 상대에 대한 고정관념이
즉 선입관이 서서이 바뀌어 가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손을 잡을 수가 있을 것인가의 타이밍을 유도하고 과감하게

손을 잡아야 한다.

 

손을 잡으려고 내민다던가 하는 짓은
바보같은 짓이다. 두 번째 만나서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고 적어도 세 번 만나서 손을 잡아도 거부반응을 나타내지 않아야 한다.

그 다음 즉, 네 번째 만나서는 포옹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아서 리드해야 되는거다. 그러면 다섯 번째는 몸과 마음을 자연스럽게 정복할 수 있는 것이다. ㅡ
"파리시민들은 따지는 것도 앞서가는 것 같아요.
벌금에 항의하여 개가 물똥을 싸면 내개가 싼 똥인지 증명하기 위해 DNA 조사 요구를 한다던가 인도견에 의지하는 맹인들은 어떻게 치우나, 개똥에 방울을 달것인가? 등 아주 까다롭게 따지고 있고 개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깊죠."

 

진경은 웃으면서 말했다.
"프랑스 국민성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요."
"극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유럽에서 유독 프랑스 만이 애견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진경은 학과 교수한테 들은 이야기를 말하고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아마 세 집중 한 집은 애완견을 키우고 있고 곧 가족과 다름 없어요.
가족을 소개 할 때도 막내로 소개되는 폴, 베티는 애견 이름이죠."
현철은 말하고는 웃었다.

진경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교수님이 그러는데 부부가 이혼을 할 때에도 애완견에 대한 양육권 소송이
벌어지기도 한 대요.
거리에서 떼쓰는 아이한테 따귀 올려붙이는 부모에게는 관대해도 짖어대는 개를 발길로 걷어차면 당장 신고하는게 프랑스 사회라고 하더군요."

 

두 사람은 부지런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사이 서울의 야경이 찬란하게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휘어져 흐르는 강줄기는 선명하게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진경씨, 그만 일어나 야경 드라이브 할까요?"
"좋아요."
현철은 먼저 일어나 진경이 일어날 때 손을 살며시 잡았다. 현철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68 



진경은 현철이 자신이 손을 잡자 순간 망설이는 마음이 생겼지만 머뭇거리는 사이에 이미 현철의 두꺼비 같은 손이 토끼손 같은 고운 진경의 손은 현철의 손에 잡혀 있었다.

현철은 진경의 손을 잡고는 카운타까지 가서 놓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ㅡ 이제 섬에 배를 댄거나 다름없겠지. ㅡ

 

현철은 진경의 손을 잡고 이끌면서 주차해놓은 곳으로 와서 조수석을 열고 진경을 태우고 자신도 운전석에 탔다.
키를 넣고 돌리자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엔진소리가 들려왔고 차체는 조금도 진동없이 조용해서 엔진을 켜놓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현철은 엑셀레이더에 발을 올려 놓고 살짝 누르고 공회전을 하자, 힘차게 느껴지는 엔진소리가 전해져왔다.

현철은 남산 도서관으로 차를 몰았다. 내리막 커브 길에서도 조금도 쏠림을 느낄 수 없다. 진경은 친구 아버지 차인 그랜저를 타본적 있었다.
그래서 지금 타고 있는 차가 얼마나 성능이 우수한지 잘 고있다.
ㅡ 어쩌면 이렇게 매끈하게 나갈수가 있을까 ㅡ
진경은 속으로 탄성을 발했다.

 

"정말 좋은 차군요. 어쩜 이렇게 날렵하게 달릴 수가 있는지, 마치 조깅하는 사람이 달려나가는 듯이 뭐라 표현을 할지 모르겠어요. 정말 기분이

좋아요."
현철은 기분이 좋아서 입을 함지박 만큼 벌리고 웃었다. BMW로 택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차는 남산 순환도로에 접어들고 있었고 하야트 호텔을 지나 한남대로로 빠져 나간다. 곧 강변도로에 접어들자 현철은 속도를 올렸다.

올림픽도로에는 퇴근하는 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정지해 있었다. 한강에는 수많은 차들이 비추는 불빛으로 어둠을 ?아내고 있었다.

 

맞은편 도로에는 막힘이 없이 차들은 달리고 있었고 차로 이어지는 행렬은 정체의 지루함을 잊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러시아워라서 드라이브를 할 수가 없겠는데요?"
"그만 집에 들어가요."
"진경씨, 유람선 타 봤어요?"
"아뇨."
"저도 여지껏 한 번도 타보지 못했는데 한 번 타보지 않겠어요?"

 

진경은 시계를 보았다.
"얼마나 걸릴까요?"
"얼마 안 걸려요. 약 한 시간 쯤."
"그럼 타보죠."

현철은 차를 여의도 강변으로 몰았다.
두 사람은 유람선에 승선하고는 난간에 나와 강바람을 쐬고 있었다.
"진경씨, 어때요?"
"너무 좋아요. 강변에서 야경을 보기만 하다가 배를 타고 양쪽에 펼쳐진 야경이 이렇게 멋진 줄은 정말 몰랐어요."

초가을 바람은 유람선을 마주하고 불어오고 있었다. 진경의 머리결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현철은 코를 진경의 머리결에 대고 들여 마시고 있다. 머리결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현철을 흥분하게 하였다.
현철은 진경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가슴을 조마조마해하면서...
진경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현철은 안심이 되어 두꺼비 같은 손바닥으로 자신을 향해 안으로 약간 당겼다.



                                                                                  69



진경은 현철의 손이 자신의 어깨를 감싸고 자신의 몸이 당겨지는 것을 느껴지는 것을 알았지만 싫지않아서 가만이 있었다.
ㅡ 하하 이제 상륙을 한것이나 다름없겠지. 확실히 여자는 무드에 약하다고 형이 한 말은 정말 진리야 ㅡ
현철은 생각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하나가 되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유람선에서 야경을 감상하며
즐거워 하고 있었다.
유람선은 잠실대교를 지나서는 손님을 내려놓고 다시 돌아서 내려 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다시 차로 와서는 올림픽 도로에 차를 진입하였다. 차는 막히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진경씨, 음악 틀을까요?"

"뭐 있어요?"
"저는 클래식을 좋아해요. 베르디 와 베에토벤을 주로 듣지요. 때로는 모짜르트 곡도 듣고 가곡도 이따금요. 지금은 베르디만 가져왔어요."
"저도 베르디 곡을 좋아해요."
진경이 말하자 현철은 연주곡을 켰다.
"언제 들어도 정말 좋은 곡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현철은 느긋하게 말했다.

"저는 베르디 노래를 전부 다 좋아해서 시간이 나면 집에서 듣고는 하지요.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에 시그날 음악을 좋아해요. 웬지 그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마음이 편해요."
"그랬군요, 진경씨와 저는 같은 클래식을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에 경음악을 함께 좋아하고 있었군요."

 

"베르디는 1813년에 태어나서 1901년 까지 88년 동안 '오페라에 의한, 오페라를 위한, 오페라의 인생을 살다 갔어요. 신화적, 초자연적 소재보다는 나약한 인간 내면의 본성에 관심을 기울인 불후의 명작들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오텔로, 리골레토, 등은 오늘날 오페라 무대서도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어요."

진경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이 노래가 노예들의 합창입니다."
스피커에서는 오페라 연주곡인 노예들의 합창의 웅장한 음율이 스피커를 통하여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경씨, 집까지 바래다 줄께요. 거절하지 마세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요."
"그러시겠어요?"
진경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두 사람을 태운 차는 간선도로로 접어들자 멀리서 한양대가 어둠 속의 불빛에서 환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공항에 가면 우리나라 사람이 얼마나 후진국인지를 잘 알게 되죠."
"어머, 왜요?"
"줄을 서지 않으려고 해요. 외국인들은 언제까지라도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는데도."


                                                                                       70


"정말 그래요. 교수님 말로는 이웃 일본만 가도 질서의식이 뚜렷하다고 하는데."
"그 좁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바닥에 비벼 끄고,세수하고 면도까지
하고는 옷까지 갈아입고 나오죠."

"우리나라 해외 여행하는 사람들은 교육도 받지않고 가는가 봐요."
"교육을 받지만 건성으로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버리는 거죠. 세관통과에서 외국인들은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우리는 막무가내로 남이야 어떻게 되던 말든 떠들고 나라 망신 다 시키지요.

 

일본인들의 질서의식은 정말 존경할 만 하죠.
어디서 그런 침착함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어요. 워낙 화산이 잘 터지는 나라라서 그런지 아니면 어려서 집에서 또는 학교에서 교육을 잘 받아서 그런지 정말 대단한 국민이죠.

우리는 그들보고 쪽발이라고 부르지만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도 빨리 고쳐나가야 하는데, 전혀 노력을 하지 않아요."

"쪽발이가 무슨 뜻인가요?"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인을 욕하듯이 천하게 스트레스 풀기 위해 부르는 말이죠."
"그런데 왜 우리는 일본인 보고 쪽발이 라고 해요?"
"글세, 게다짝 때문이기도 한 것 같고 훈도시를 차고 다니기 때문에 그러는 것도 같고 일본인들한테 당한 아픔 때문에 더욱 그러는 것 같군요."

"훈도시요?"
"네, 왜 어린이가 차고 다니는 기저기를 같은 것을 차고 다니는 것을 훈도시 라고 하는데 지금도 차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 것 같군요."
"어머, 그래요?"
두 사람은 이야기하는 동안에 차는 어느덧 장위동에 들어서고 있었다.
"다왔어요."

 

 

 

                                                                                71



현철은 길가에서 진경의 집에 들어가는 입구 앞에 차를 세우고 현철은 내려서 진경이가 문을 열기전에

열어주면서 두꺼비 같은 왼손을 진경이 허리에 대고 말했다.
"진경씨 내일 모레 이리로 오겠습니다. 제주도 날씨가 따뜻하니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오면 돼요."
"알았어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진경은 현철에게 인사를 하고 대문을 향하여 몸을 돌렸다. 그리고 조금 가다가 뒤돌아 보면서 손을 흔들고 골목길을 꺾어 들어갔다.
현철은 진경의 모습이 골목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다가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현철은 차에 타자 마자 음악을 가요로 바꾸고 볼륨을 높였다.
기분이 좋은 현철은 따라 부르며 창문을 내리고는 지나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핸드폰을 들고 숫자를 눌렀다.
신호가 가고 형 목소리가 들리자 현철은 고함치듯이 크게 말했다.
"형, 오늘 끝내줬어."
"그래? 잘됐니? 그래서 이렇게 고함치는거냐! 좋겠구나."
현권이 말했다.

"모레 제주도 가기로 했어,"
"외운 것을 빠뜨리고 더듬거리며 말하지는 않았겠지?"
"아냐 형 완벽하게 연출했어. 탈렌트처럼..."
"그래, 남산 야경은 어떻든?"
"좋았어. 너무 너무 그리고 남산타워에서 야경을 보고 내려오면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잽싸게 손을 잡았어. 그리고 유람선에서 살며시 어깨를 안아도 얌전히 있던데."

"야! 정신 차려 마. 뿅가서 교통사고 내지 말고."
"알았어, 형 담배 맛이 이처럼 꿀 맛인줄은 미처 몰랐어."
"다른데 들리지 말고 빨리 집으로 와."
"알았어."
현철은 한남대교를 지나면서 오가는 차량들이 비추는 불빛들이 새삼 아름다움을 느꼈다.

 

이제 하룻밤만 지나면 제주도에 가는 것이다. 그것도 내 사람이 될 여자와 함께. 사실 현철은 여지껏 서른이 되도록 데이트 한 번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만나는 여자마다 단 한 번으로 끝이나서 아마도 선을 수십번을 보았을 것인데 이번에는 두 번을 만나고 거기다가 손을 잡고 어깨까지 안았으니 그야말로 운수대통이라도 한 것 같아 신이 나지 않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현철은 집에 오면서 생각했다.
ㅡ 제주도 가서는 ... ㅡ


                                                                                   72

 

 

 


오준호는 강남에 와서 2층 커피숍으로 올라가 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창가의 테이블에 앉았다.

거리에는 젊음이 넘쳐나고 있었고 수많은 젊은이들로 강남의 거리는 활기를 띠고 있었고 준호는

 물끄러미 창 밖을 내려다 보았다.
쌍쌍이 팔장을 끼고 걸어가는 젊은 연인들을 내려다 보면서 자신에게는

애인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어떻게 여자친구 하나 없이 그동안 황금같은 젊음을 어디에다 보냈는지 자신이 생각해도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자 문득 설희의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자신은 그녀에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현실이 너무

초라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따뜻한 여자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떻게 회장을 만날 수가 있었을까 정말 고마운 여자라고 생각했다. 설희는 어떤 여자일까? 생각을 하면 할수록 궁금해졌다.
그 여자가 나의 애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생각하자, 자신이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는 것을 느끼자, 갑자기 의욕이 생겨나 일루의 희망이 떠올랐다.

 
회장이 자기와 면담을 했다는 것 만으로도 분명히 어떤 확신이 느껴졌으며 자신에게도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곧 생길 것이라고 확신했다.

우리나라를 이끄는 쌍두마차인 재벌그룹 회장과 사촌지간이 어떤 신분인데, 그리고 그의 사회적 위치가 어느 정도의 사람인데 자기같은 일개 영업부 사원을 만나줄 만큼 그리 한가한 사람이 아닌 것이라는 것을 준호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계열사 사장들도 그 양반 앞에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달달 떨고 꼼짝을 못하건만 그런 사람이 뭐가 답답해서 자기를 만나주고 또 이야기를 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준호는 자기가 제출한 서류를 그가 분명히 보았고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 되었기에 자신을 만나 준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도달하자, 준호는 힘이 났고 어쩌면 설희와 교재를 할 수 있는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리에는 어둠이 서서히 거리에 깔리기 시작했고 거리는 퇴근하는 차량들과 인도를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유흥업소와 상가의 네온사인이 현란한 색으로 환하게 점등 되어 있었고 초저녁 거리를 비추며 오가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준호는 일어나서 계산을 하고 강남 뒷 골목에 자리잡고 있는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기분이 날아갈 듯하여 오늘은 있는 돈을 다 털어서 술을 마시고 싶었다.
이제 회장이 서류를 보았고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알고 있으니 곧 돈이 나올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이제 며칠 후에는 그 동안 밀린 빚을 다 갚고 친구놈들을 불러다가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사줘야지. 그리고 냉대했던 놈들 앞에서 보란 듯이 큰 소리를 치고 쏘아야지.

"야! 오늘은 내가 쏘는 날이야. 아무도 지갑으로 손이 가지 말어." 자신이 외치는 모습을 상상하자 생각만해도 시원했다.

 

준호는 취기가 올라 중얼거리며 소주를 마시고 또 마셨다. 거리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한산해질 때까지 준호는 포장마차에 앉아 있었다. 포장마차 안에는 술꾼들이 외치는 소리로 가득찼다. 

 

                                                                           73 



주머니를 톡톡 털어서 술값을 계산하고 한산해진 거리로 나와 준호는 하숙집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올라탔다.
설희는 결혼한 언니 집에서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마츄어 사진가이고 전국의 유명한 산과강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달력회사에 팔아서

생활하고 있었다.

 
봄이면 철쭉과 진달래를 찾아 북한산부터 제주도 유채꽃과 한라산 진달래 대피소까지가서

사진찍으러 전국을 찾아다니고, 여름에는 녹음이 짙어진 산과 계곡과 시원하게 흐르는 강을 촬영했다.

 

가을이면 온산을 만산홍엽으로 물들이는 단풍과 바람에 출렁이는 억새를 찾아서 전국의 비경을

찾아다니고, 겨울에는 철새와 고니들의 모습을, 그리고 산의 설경을 찾아 설화와 상고대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눈 속에서 서있는 고사목을 찾아 지리산으로 가서 촬영하고, 태백산의 주목을 촬영하기 위해 눈오는

 날이면 태백에 가서 기다렸다가 배낭에 카메라 장비를 메고 오르며 일년내내 아름다운 비경과

경치를 찾아 다니곤 했다.

조류학자들과 함께 금강하구와 순천만 갈대 숲을 찾아 다니고 철새들이 편대를 가르며 날아가는 모습을 필름에 담아 방송국에 제공하기도 했다.
설희라는 이름도 겨울 꽃이 가장 아름답다고하여 지어준 이름이었다.


 

어려서는 설화라고 불렀는데 학교에 들어가서는 설희라고 고쳐 불렀다. 설화라고 부르니 옛 어른들이

기생을 부르는 것 같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그후부터 설희라고 고친 것이었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거의 그렇지만 설희 아버지도 일류 사진가가 못되어 역시 가정형편이 그리 풍족한 편은 못되었다.


 

엄마가 맞벌이하여 설희가 대학을 나오게 뒷바라지 하였고 자라면서 아버지를 따라 산과 들 그리고 계곡을 따라 다녀서 마음이 착했고 꾸밈이 없었다.
그리고 허례허식을 싫어했고 명문대 출신답지않게 소박했다.

설희도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학창시절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장학금을 타기 위해 밤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 하기도 하였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여 한성그룹에서 회장 비서를 보내 달라고 했을 때 학교에서는 설희를 1순위로 추천하였던 것이다.


한성그룹 부회장인 태호도 설희 이력서를 받아 보고는 총무부장에게 바로 출근하라고 지시를 내렸던 것은 아마도 자기가 젊은 날에 이상형으로 바라고 있었던 마음속의 이상형이었기 때문이었다.

태호는 중매로 결혼을 했는데 그 역시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고 아버지인 한성그룹 명예회장의 명령을 따랐다고 볼 수가 있었다.
장인되는 사람은 명동에서 사채놀이를 할 만큼 숨은 재력가였으며, 그 때문에 마음속의 이상형이 아니면서도 부모의 명에 결혼한 것 이었다.
여자측에서도 한성그룹 회장이 국내최대의 그룹인 화성그룹  회장과 친형제 사이라는 사실이 아니라면 어쩌면 결혼을 시키지 않았을런지도 몰랐다.

                                                                             74



한성그룹 부회장인 태호는 자라면서 국내최대그룹인 화성그룹 명예회장과 회장동생인 아버지, 한성그룹 명예회장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라났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감히 맞받아 볼 수 없을 만큼 상대를 압도하는 눈초리는 큰아버지와 아버지를 흐뭇하게 하였다.

"호랑이 자식이 나왔구나" 하고 칭찬을 받으면서 성장하였으며 큰아버지의 신화적인 업적을 쌓았을 때의 경험담과 경영인으로서 그리고 대장으로서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과 심리등에 대해서도 현 사촌 형인 화성그룹 회장과 함께 경영수업을 받을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또한 사촌지간 이면서도 친형제처럼 다정하게 어린 추억을 가지며 자랐기에 우애가 남달랐다. 태호는 결제를 내일로 미루고 화성그룹 회장을 만날 시간이 되자 인터폰으로 설희에게 말했다.
"회출한다."
"알았습니다."

태호는 부회장실에서 양복을 입으려고 옷걸이로 가자 설희는 태호의 양복을 들고 태호가 입는 것을 뒤에서 거들었다. 태호가 문을 나서자 설희는 태호가 엘리베이터로 향하여 뚜벅뚜벅 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등뒤를 따라갔다.
엘리베이터에 다가가서는 먼저 버튼을 누르고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태호가 안으로 들어가자 설희는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다녀오세요."
"응, 바로 퇴근하니 너도 퇴근 해."
"네,알겠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닫히고 내려가자 설희는 비서실로 와서 부회장실로 가서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부회장실 문을 잠갔다. 문이 닫혀 있으면 외출중이라는 표시이다.
설희는 자기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시계를 보니 아직 퇴근시간까지는 1시간 정도 남아있다. 설희는 보던 TIME 영문잡지를 뒤척였다.

태호는 광화문에 있는 화성그룹 사옥으로 향하고 있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이 바로 옆에 위엄스런 모습으로 비춰졌다.
바로 그 아래에는 거북선 모형이 놓여있다. 용머리를 하고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은 무시무시하다.

 

양 옆에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노를 젓는 역동적인 모습이 마치 돈벌레 다리처럼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하였다.
등에는 수 많은 창들이 뾰족하게 꽂혀있어 하늘을 나는 새들도 그 위에 앉기는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75 


태호는 문득 임진왜란 당시를 상상해본다.
무서운 용 입에서 불을 뿜어낸다고 생각하니 당시 치열한 전쟁장면이 생각하자 왜놈들이 얼마나 무서웠기에 가까이 오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 바지에 오줌을 흘릴 만 한 일이라 여겨졌다.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 큰 아버지가 그리스의 선박왕을 찾아가서 조선소를 세울테니 배를 사달라고 한 배짱을 떠 올리자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큰 아버지도 베짱이 두둑했지만 상대인 선박왕인 오나시스의 매제인 선주도 참 대단했다고 여겨졌다.
"당신네한테 그런 큰 배를 만들 기술이 없으며 또한 조선소도 없지 않소?"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러자 큰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오백원 지폐를 꺼내어 선박왕에게 보여주었다.

"이것 보시오.우리 선조는 벌써 수백년 전에 이런 세계 최초의 철갑선을 만든 기술이 있는데 지금 우리가 돈이 없어 조선소를 못짓고 있을 뿐이지 배만 주문해주면 영국은행으로부터 융자를 해준다고 하니 믿고 주문을 부탁하는 바이오,"

 

그러자 그리스 선주는 "좋소. 당신 베짱이 마음에 들었소. 우선 두척을 내 후년에까지 만들어 인도해 주시오. 자! 여기 선수금 이오."
어려서 큰 아버지로부터 동화같은 이야기를 화성그룹 회장들과 늘 들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조선소를 짓고는 또 한편으로는 영국으로부터 기술을 들여와 배와 조선기술을 동시에 이루어 놓은 역사적인 금자탑을 세운 것이라 여겨졌다.

거대한 배가 다 만들어지고 모든 사람이 과연 저 무거운 쇠가 뜰까 하고 조마조마하면서 기다리다가, 대통령이 테이프를 끊고 배가 바다 위에 뜨자, 와하! 하는 함성이 울러퍼지던 그 순간을 누구도 아마 참석한 사람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신호가 떨어지자 차는 곧 움직이고 태호는 이순신 장군상을 지나면서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백의종군을 하면서 나라를 걱정하며, 달밝은 한산도 섬에서 시름에 젖어 있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자 문득 오준호라는 사람이 떠 오르는 것은 웬일일까?

보니까 돈도 없는 사람 같은데 3년동안 있는 돈을 다 써가며 그리고 그것도 부족해 은행 빚까지 얻어서 포기하지 않고, 기획서류를 작성해 가져와서, 자신에게 한 번 브리핑하게 해달라고 졸라대는 것은, 어쩌면 큰 아버지처럼 배짱이 대단한 것은 분명했다.


                                                                                 76



자신은 지금 확신을 가지고 국내최대그룹 회장을 이 문제로 만나러 가는 것인데 과연 형님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하지만 신가전을 설치를 해놓고 마시고 있으니 그 물맛이 어떤지는 알 것 이었다.

화성그룹 사옥에 들어서자 회장비서가 나와 맞았다.
"어서 오세요. 부회장님."
"응, 미스 강 , 이뻐졌군."
"감사합니다. 부회장님도 더욱 건강해지신 것 같은데요?"
비서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태호도 즐거운 듯이 싱긋 미소짓고 여비서를 보면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비서는 앞장서서 세워놓은 엘리베이터로 가서 태호가 타자 함께 오르고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회장실이 있는 12층에 멈추자 먼저 내리고 앞장서서 회장실로 들어갔다.
"회장님, 한성그룹 부회장님이 오셨습니다."
태호가 뒤따라 들어가자 회장과 부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앉아."
회장인 태준은 말했다.

 
"그래, 뭔데 그리 호들갑을 떠냐?"
부회장인 태헌이 궁금한 듯이 서둘러 물었다.
"회장님, 차 뭘로 드시겠어요?"
비서가 들어와 상냥하게 물었다.
"커피 가져와."
"부회장님도 커피 드시겠어요?"
얼굴에 웃음을 띠운 비서가 태호를 보며 물었다.
"그래, 나도."
미스 강이 뒷 걸음으로 가서는 문을 닫고 나갔다.

"엄청난 사실이 있어, 형!"
태호는 자못 흥분한 듯이 말하며 자리에 앉자마자 미스 강이 나간 것을 확인한 후에 서류봉투를 내밀며 말문을 였었다.
"이게 뭐야?"
회장인 태준이 물었다.
"일단 꺼내서 봐요."
옆에 있던 태헌이 말했다.

화성그룹 회장실 테이블 위에는 준호가 한성그룹 부회장실에 놓고 간 서류를 세 사람이 보고 있었다.
"TAKE FIVE 라? 다섯을 잡자?"
"테? 파이브는 팝송 곡이기도 하다? 재미있군."
태헌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학창시절 팝송을 유난히 많이 들었고 드럼을 치면서 춤을 추고 밴드를 만들어 장발로 머리를 흔들어대며 몸을 유난히 떨었대었던 태헌이 었다.

그럴 때마다 화성그룹 명예회장은 "저 녀석들이 대가리는 왜 저렇게 기르고 다녀!"
계열사 사장들이 옆이 있을 때면 태헌이 장발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못마땅해 했던 것이다.

 


                                                                                   76

 

                                                                              2부에서 계속